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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강미정 姜美貞
경남 김해 출생. 1994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타오르는 생』 『상처가 스민다는 것』 『그 사이에 대해 생각할 때』 등이 있음.
mij1421@naver.com
옹이라는 이름의 문장
내 속의 그 여자가 휘갈겨 쓴 글을 내가 읽는다
사람이 사람을 한없이 외롭게 했다, 이 문장은 선명하게 도드라졌다가 이미 닫혀
어두운 저녁이 오면 해를 향해 타올랐던 뜨거움을 끄고 꽃잎을 닫는 꽃처럼
그저 견딘 외로운 한 문장으로 그저 어두워진 오롯한 한 문장으로 그저 기다리는 뭉개진 한 문장으로 천천히 사그라지는
그 여자의 굳은살 잡힌 가슴에는 가장 나약할 때 떠나버린 한 사람이 있고
더 일어날 기력이 없을 때 손 내밀어준 한 사람이 있어서
가슴에 사람을 넣고 사람을 낳고 사람을 안는 새로운 모험을 본다
젖무덤에 아이를 끼고 피곤에 찌들어 혼자 곯아떨어져 있는 구불구불하고 어두침침한
내 속의 그 여자가 짧은 문장으로 휘갈겨 썼던 오래된 시간은 눈시울이 붉고 손마디가 굵다
말은 어디에 고여 있나
가만히 입술을 적신 노래는 내 몸 어디에 고여 있나
혼자 바라본 석양은 내 몸 어디에 새겨지나
더이상 내 말은 당신에게 향기롭지 않고
더이상 내 말은 당신 마음에 여운을 남기지 않는다
나에게 보낸 당신 말은 어디에 고여 있나
마음속에 당신을 간직한다는 말은
죽음이 내 육신을 가져갈 때까지 잊지 않는다는 말이야,
잊지 않는다는 말이야,
비수처럼, 당신 심장에 찔러 넣은 마지막 말을
세심천 맑은 물 위에 돋을새김했다 하여
여리여리한 푸른 그늘 위에 앉은
당신을 보러 갔지만
내 입술을 찢고 나간 내 말만 둥둥 떠 있고
소슬한 목소리로 흐르는 당신,
그늘 짙은 물 울음은 갓 언 마음처럼 춥고
묵은 나뭇잎이 나무의 전생처럼 사는데
당신이 보낸 돋을새김 전갈이 당도하지 않는 것은
당신이 나에게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거나
너무나 멀리 멀어지는 중이라는 것
나에게 보낸 당신 말은 어디에 고여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