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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형준 朴瑩浚
1966년 전북 정읍 출생.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춤』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불탄 집』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 등이 있음. agbai@naver.com
철새 같은 이름으로 지나가는 가을
새들의 이름을 몰라 바라보기만 한다
그런 적이 있겠지
무심히 앞을 보고 가는 내 곁을 지나가며
누군가도 이름이 생각날 듯 말 듯 하여
손만 들었다 뒷모습에 인사했겠지
새들은 저마다 강물 속 돌 위에 서서
햇빛에 취해 움직임이 없다
마침 새들을 나처럼 바라보는 옆 사람에게 용기를 내어
이름을 물어보니, 새들의 이름은 철새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선(禪)을 하듯 새들은 일렬종대로 서서
낮잠에 빠져 있다
강물 속에선 오후의 가을 햇살이
자전거 바퀴를 굴리듯이 반짝이는 물살을 튕겨낸다
이름을 부르지 못해
나도 뒷모습만 바라보다 떠나보낸 고향 사람 같은
이들이 있었지
철새 같은 이름으로
내 곁을 지나간 그런 가을이 있었지
일주일 만의 귀가
일주일 만에 서울집에서 돌아와 보니
토지문화관 창작실 유리창에 벌들이 잉잉댄다
이중 유리창의 틈새로 들어온 수십마리 벌들이
무섭지도 않게 가을밤의 미로를 기어 다닌다
이중 유리창을 엇비스듬히 열고
파리채를 들어 가을밤 하늘로 벌들을 조심조심 날려 보낸다
창문 앞 단풍나무 거미줄에 걸린
찬 공기가 끈끈하게 느껴지는데
벌들은 더듬더듬 유리창을 기어 다니다가
이중 창 안을 휘젓는 파리채를 피해 다니다가
간신히 밖으로 빠져나와 늦은 귀가를 한다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벌들의 날개는
이슬에 젖어 있는데
가을밤 아주 멀리 조약돌만 한 초승달이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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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토지문화관에서 창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