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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24인 신작시선
도종환 都鍾煥
1954년 충북 청주 출생. 1984년 『분단시대』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접시꽃 당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등이 있음. djhpoem@hanmail.net
청년
세워놓은 통나무의 반지름 위에
도끼날을 가만히 내려놓을 때
오른발과 두 손에 힘을 모으며
포물선으로 내리찍을 때
내 가슴은 뛴다
참나무 장작이 반으로 갈라지는 몸을
짧은 된소리와 함께 받아들일 때
마음의 근육은 팽팽해진다
옛날 같으면 노인 취급을 받을 나이가 되었지만
날개를 붕붕거리는 수벌을 꽃술로 불러들이는
물봉선의 작고 예쁜 성기를 보면
가슴이 콩당거린다
가을비 내려 더욱 깊게 가라앉는 밤
마음의 계곡 깊은 곳에 묻었던
후회를 다시 만날 때마다
그때 그 나이의 젊은이가 된다
바위에 제가 가진 것을 다 던지며
좌르르 무너지는 파도
바다에 자식을 묻은 엄마들의 합창은
내 안에 격랑이 일게 한다
노란 머릿수건 손목을 감은 팔찌의 동그랗고 노란 곡선
단원고 2학년 교실
비극적인 너무나 비극적인
거대한 설치미술 앞에서 나는 자주 운다
눈물은 사람을 젊게 한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소녀들의 나이를
중학교 몇학년인지 헤아려보다가
어금니를 문다
그럴 때마다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할 것 같다
친일 한국사 교과서 곳곳에 형광펜으로 줄을 치고
질의를 하다
주어진 칠분의 질의시간이 끝나고
상임위장 마이크가 꺼졌을 때
수직상승하던 목소리도 제지당했을 때
나는 분노 한가운데 앉아 혼자 눈물을 흘리곤 했다
권력이 패악을 저지르는 걸 보고도 어찌하지 못할 때
몰상식과 물대포와 뻔뻔함과
국산 매카시즘을 이기지 못하고 있을 때
나는 다시 청년이 된다
누구든 그러지 않으랴
가슴이 뛰고 펄펄 끓는 동안은
모두들 다시 청년이리라
저문 바다를 덮는 황홀한 저녁 하늘 밑에서
저절로 입이 벌어지게 하는
광활한 노을은 우리를 젊게 한다
칭다오(靑島) 제7중학교 이층 외벽에 걸려 있는 교훈처럼
구진(求眞) 상선(尙善) 치미(致美) 하는 동안은
우리도 청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