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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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휘 沈在暉

1963년 강릉 출생. 1997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그늘』 『중국인 맹인 안마사』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 등이 있음.

jhshim@daejin.ac.kr

 

 

 

여름의 색

 

 

거울을 보며 머리를 자르는 아침

어쩔 수 없지

더운 여름에는 긴 머리가 싫으니까

 

눈을 뜨고 뒷머리를 자르면

욕실의 거울은 궁색을 띠지

 

이런 계절은

오지 않을 줄 알았어

 

사실, 이 좁은 곳의 조명은

다른 색이 없다는 걸 알아야 돼

하지만 내 뒤를 보아줄래?

그러면 내 여름의 색이 궁색이어도 괜찮아

 

 

 

사과를 먹고 날아간 새

 

 

사과를 잘 씻어서 과도로 자릅니다

반은 아내에게 주고 반은 내가 먹습니다

접시에 남는 것은 꼭지와 속입니다

사과를 붙들고 키웠습니다

 

아침저녁 창가에 찾아오는 새는

잘게 썬 사과의 속을 잘 먹습니다

여섯번 두리번거리고 한번을 쪼아 먹는 새

흑연 같은 부리를 바람에 닦습니다

 

허공이 잘 불린 것들은 사라지기 바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