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리뷰
바로 여기 현실의 문제를
윤홍배 尹泓焙
법률사무소 큰숲 변호사. hbyoun@forestlaw.co.kr
“The Winner Takes It All.”(승자가 모든 걸 다 가져가버려)
1980년 발표된 아바(ABBA)의 노래다. 지금 이 시대 여러 고유한 영역과 다양한 가치를 황소개구리처럼 자신의 논법으로 포식해버린 이른바 ‘신자유주의’, 이 무서운 담론을 생각할 때면 애잔한 멜로디와 함께 절로 떠오른다. 『창작과비평』 2017년 가을호에 실린 윌리엄 데이비스의 「새로운 신자유주의」에서 구분한 첫 단계인 ‘전투적 신자유주의’(1979~89년) 초입의 이 노래가 암울한 서곡으로 들리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가을호 비문학 분야 글은 통시적으로 줄잡아 100년의 기간을 넘나든다. 신자유주의 기원격인 미제스가 활동한 1920년대부터(윌리엄 데이비스) ‘4차산업혁명’이라는 미명이 그럴싸하게 횡행할 가까운 미래까지(서동진 「지리멸렬한 기술유토피아」). 미시적으로는 지난 촛불시위부터 문재인정부 100일까지를 평가하고(대화 「문재인정부 100일을 평가한다」), 앞으로 민주주의의 온전한 실현에 필요한 시민의회까지 살펴봤다(오현철 「시민의회,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길」).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에 약자가 맞닥뜨리고 있는 양극화와 돌봄의 위기,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민생 문제를 젠더 시각을 포함하여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특집 ‘커먼즈와 공공성: 공동의 삶을 위하여’). 중국이 ‘신시기’(1970년대 말~80년대 초) 때 발란반정(撥亂反正)을 통해 굴기를 성취해냈다고 보는 주류 사조를 엄정히 비판한 글(허 자오톈 「중국의 굴기와 당대 ‘사상의 무의식’」)과 역사학자로서 올곧게 살아오신 고(故) 벽사 이우성 선생의 이야기(임형택 「벽사 이우성의 삶과 학문」)도 가을걷이에 한몫했다.
대뜸 필자가 변호를 맡은 소송 얘길 꺼내본다. 얼마 전 서울고등법원에서 1심 때처럼 ‘입증 부족’을 이유로 패소했다. 아파트 입주민 1158명이 단지에서 3미터 떨어진 도로 지하의 공사로 생긴 소음 따위로 입은 정신적 손해의 배상을 구하는 민사 건에서다. ‘공공사업 민영화’ 일환으로 MB정권 때 시작하여 무리하게 진행된 민간 지하철공사가 문제였다. 1, 2심 합하여 만 4년 넘는 기간 동안 상대방 건설사가 문서제출명령을 받고 법정에 제출한 ‘공사작업일지’는 두달 치가 다다. 법원은 수수방관하고 다른 증거신청은 채택하지 않았다. 카프카의 단편 「법 앞에서」와 장편 『소송』의 주인공 처지와 다를 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법원은 “전철이 건설되면 교통난이 해소되고 지역 접근성이 강화되는 등 인근 주민이나 상인도 어느 정도 이익을 향유하게 되므로, 원고에게도 그 혜택이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원고가 입은 다소간의 피해는 사회통념상 수인할 수 있는 정도로 봄이 타당하다”라고 판결했다. ‘주거권’과 ‘환경권’을 침해받은 억울한 사정은 머잖아 생길 ‘경제적 이익’이 상쇄해줄 테니 ‘꾹 참으라’는 거다. 과거 피해자와 미래 수혜자가 다른 점을 무시하고 피해이익과 가해이익의 질적 차이를 뭉갰기에 궁색하기만 하다. 법원 판단 언저리에는 가깝게는 벤섬의 ‘양적 공리주의’와 개발독재시대의 논리가, 멀게는 플라톤의 『국가』에서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 말한 트라시마코스의 강변이 맴돈다.
“‘지금’ ‘이곳’의 현실을 여하히 인식, 여하히 파악하느냐 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이 땅의 역사학도에게 주어진 가장 절실한 과제다”라는 벽사 선생의 일성은 모두에게 유효하다. 현실의 가장 큰 문제 두가지만 꼽자면 민생과 안보다. 지난호의 경우 민생 관련 논의가 지금 이곳의 어떤 문제와 구체적으로 접맥하는지 그 지점을 좀더 선명하게 드러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안보 문제는 사드 배치만 스치듯 다뤘는데 다음호에서는 다각도의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며칠 전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결과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각자 입장에 따라 갑론을박하고 학계에서는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우월성 논쟁으로까지 비화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국가가 선거로 구성된 국회를 통하여 시민 속으로 들어가고 헌법 개정이나 핵발전소 건설 같은 중요 사안에서 시민 의견을 적극 반영하자는 데에는 반대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지난호가 관련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덕에 이번 공론화 과정을 꼼꼼히 챙겨볼 수 있었다. 앞으로도 창비가 ‘바로 여기 현실의 문제’를 근기 있게 파고들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