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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서효인 徐孝仁
1981년 광주 출생.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등이 있음. seohyoin@gmail.com
수도권은 돌풍주의보
비행기는 병 걸린 개처럼 몸을 떨고
어른들은 지난 죄를 건져 올리며 호들갑
아이들은 저희들 마음대로 놀이공원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던 개의 이름이
뭐더라 한때는 우리도 애틋했는데
유원지에서 개를 더운 차에 가둬두고
생각해보니 녀석은 심장사상충이었던 것
같다 어버버 떠는 녀석을 두고 놀이공원에서
구식 바이킹을 탔다 공중에서
무서워 벌벌 떨었다 중력은 죄를
사할 마음이 없어 무엇이든 끌어당길
것이다 기억까지도 망각까지도 밑으로 땅으로 죽을
때까지 곤두박질치며 다시 죽기
전에 솟구치며 제주에서 눈 붙인 데 가까이 해군기지가
있는데, 반대 운동이 한창일 때 뭐더라,
필요 이상으로 온건한 데모였음에도 나는
빠졌다 제주 면세점에서 감귤 초콜릿을
샀다 개는 초콜릿을 먹으면 안 되는데
샀다 비행기는 여전히 고개를 젓고 아이들은
공포와 재미 사이에서 자유롭다 중력은
아이들을 자라게 하고 끌어당기고 내팽개치고 그때
김포에서 만나 조금 걸으면 됐는데 중력 때문에 허리가
아프다고 빠졌다 비행기가 착륙하면 아이에게
초콜릿을 주기로 약속했다 어머니가
키우던 개의 이름은 모르겠고 비행기는
이제야 안정적인데 아이가
경련을 일으키고 어버버 떤다
여기 승객 중에 의사가 있나요
여기 승객분 중에 의사가 있습니까
개는 반뼘 열린 차창에 코를 박고 눈을 뒤집은 채
컹컹 짖어댔지만 우리는 해가 저물고야
바이킹에서 내렸다 중력이 묻는다
그 개의 이름은 너의 이름은 너의 병명은 가족관계는 끌어안은 아이의 이름은 그때 너의 행방은 그때 너의 생각은 지금 이 바람은 이 바람 속에서 너는 의사는
대답하는 사람 하나가 돌풍 속으로
낙하한다
추돌
나는 이제 다 산 것 같다
클래식 FM보다는 시사 팟캐스트를 들으며
출근하는 게 편안한 걸 보니까 내일
죽어도 보험금은 나올 것 같다 나라
걱정에 골똘하다가, 끼어드는 차에 준엄하게 호통
칠 줄도 알고 쌍시옷 발음도 잘하고 아는
형에게 전화 오면 형님이라고 받을 줄도 알고 아는
누나는 별로 없고 뭐라 불러야 할지 애매하고 나는
이제 다 산 것 같지만 아마도 한참을 더
살겠지 징그럽게 살 것이다 애도 낳고 살도
찌고 맛있는 것도 먹고 마, 다 할
것이다 설명할 게 떠오른다 깐풍기의 기는
닭, 냉면은 원래 겨울 음식, 홍어의 끝은
애, 먹태는 명태가 멍든…… 진행자가
버럭 소리 지른다 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겠지 멍든
사람이겠지 다른 사랑은 다음에 하면 되겠지 나는
한참 더 살 것 같다
지금 할 것과 다음에 할 것을 썩 잘 구분하고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을 꽤 잘 분류하며
깐풍기와 냉면과 홍어와 명태도 잘 안다
시사평론가와 전직 국회의원은 서로의 말을 가로채며 어제의 사건을 설명하고 별것도 아닌 것들이 더럽게 시끄럽군
그건 다음에 하면 되고!
그건 별로 안 중요하고!
아는 형한테 전화 온다
긴박한 전화 같다
앞차가 별안간 가깝다, 나는 지금 이제 한참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