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시
곽문영 郭文榮
1985년 충북 청주 출생. 2018년 창비신인시인상으로 등단. ansdud2002@naver.com
오랫동안 아름다운 것을 쓸수록 나는 못생겨졌다
한군데를 긁으면 가려움이 온몸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내 몸인데 내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고개를 들면 베란다가 보였다 안도 바깥도 아닌 곳 그곳에 내놓은 식물들을 한번도 돌보지 않았는데 매일 키가 자라고 잎이 늘어났다 그러나 내가 그 곁을 살짝 스쳐가기만 해도 몇개의 잎이 너무 쉽게 떨어졌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베란다마다 많은 것을 꺼내놓고 있었다 깊은 밤마다 자주 사람이 걸어나오는 베란다도 있었다 멀리 떨어져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그와 눈이 마주친 적 있다 서랍 속에는 함께 찍은 사람을 오려낸 사진이 많았다 남기지 않고 오려낸 얼굴일수록 오랫동안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사진 속의 나는 혼자서는 지을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벼운 눈물이 오래 눈에 맺혀 떨어지지 않았다 오래 앉아 아름다운 것을 쓸수록 나는 못생겨졌다 거울을 한번에 오래 바라보지 못했다 잠깐씩 자주 쳐다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김없이 옮겨 적고 난 밤에는 아무도 나오지 않는 꿈을 자주 꾸었다
밤 바둑
밤마다 너와 바둑을 두었다 멀리서 소리만 들어도 방금 누가 돌을 놓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는 소리 없이 돌을 내려놓았다 멀리서 소리만 들으면 한 사람이 오래 고민하며 두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내가 세게 돌을 놓을 때마다 그 곁에 이미 놓인 너의 돌들이 작게 떨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바둑판 위에는 수를 둘 수 있는 곳이 너무 많아서 가끔은 모든 곳이 길 같았고 또 가끔은 놓는 돌마다 모두 길을 잃었다 돌이 마구 엉킬 때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길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마음에 든 바둑을 내일 다시 두고 싶었지만 매일 조금씩 달라졌다 우리가 함께 보낸 모든 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모든 돌이 놓인 순서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곳에서는 우리도 얼마든지 큰 집을 가질 수 있었다 빈틈없이 껴안는 것으로 여러번 죽을 수도 있었다 돌을 쓸어 담고 접이식 바둑판을 접으면 뒷면에 숨어 있던 장기판이 나타났다 마음대로 그릴 수 없는 것은 두지 않았다 가끔 바둑이 길어지면 바둑판 위에 어지럽게 놓인 모든 바둑알 위로 햇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죽은 돌들마저 반짝였다 아침이 되면 매미 우는 소리가 들렸다 짧게 열번 울고 길게 한번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