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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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黃仁燦

1988년 경기 안양 출생. 201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구관조 씻기기』 『희지의 세계』 등이 있음.

mirion1@naver.com

 

 

 

화면보호기로서의 자연

 

 

푸른 하늘 은하수라는 말이 항상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어릴 적엔 은하수라는 말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와 내가 주고받은 말

 

나는 그에게 은하수를 직접 본 적이 있는지 물었고(무작위로 자연을 소환하는 윈도우 잠금화면 때문이었다)

 

그는 갑자기 푸른 하늘인데 은하수가 어떻게 보이느냐 운운하며 푸른 하늘 은하수 얘기를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식당에 혼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저 나무 멋지지 않아요?”

“무슨 나무요?”

“이따가 다시 말씀드릴게요”

 

얼굴 까만 남자애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자리에서는 고개를 돌려봐도 다 똑같은 나무뿐, 밥을 다 먹고 식당 밖으로 나가봐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화성으로 떠나 몇달째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오면 같이 천왕에서 살자는 둥 자기 고향인 수성이 좋다는 둥 그런 이야기도 했지만

 

그걸 다 믿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름이 온다거나 달이 밝다거나 태양풍이 어떻다거나

할 말이 없어서 하게 되는 이야기들뿐이니까

 

혼자서 멍청하게 앉아 있으면 화면에 무작위로 튀어나오는 자연이 너무 예뻐서 그걸 갖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굳이 옛날 윈도우 바탕화면(파란 하늘 아래 푸른 언덕이 그려진 그거)을 찾아 쓰는 타입의 사람이지만……

 

토끼 한마리나 계수나무 한 나무에는 관심 없겠지

 

그에게 서쪽 나라로 갈 것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다

 

푸른 하늘에는 하얀 반달이 떠 있을 뿐이었지만……

 

나는 저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알고 싶어서

식당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서로 전혀 다른 가지를 뻗은 나무들이 똑같은 나무들의 모습으로 늘어서 있었다

 

사람을 막지 말라고, 호버보드에 탄 사람이 내게 말했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어두운 밤, 저고도 인공위성들이 빛나고 있다 예전에는 은하수를 눈으로도 볼 수 있고 성좌를 지도 삼아 움직일 수도 있었다나

 

나는 이 시의 시점을 조금이라도 미래처럼 보이고 싶어서 약간 장난을 쳐본다 그러나 미래는 오지 않았다

 

 

 

시계가 없는 주방

 

 

왜 영혼 없이 말하느냐고 누가 물었기에

내 영혼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밤이었습니다

 

나는 내 영혼의 동반자와 영혼 없이 말하는 자들의 밤에 초대되었습니다

 

아는 얼굴들이 많아 다행입니다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먹던 음식을 나누며 극진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거기에 영혼은 없습니다

 

다들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느라 한창입니다

영혼 없는 닭고기 수프와 영혼 없는 잡채를 만들었습니다 영혼 없는 축사와 영혼 없는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영혼이 가출한 분이 영혼을 판 분과 영혼결혼식을 치른 것입니다 영혼 없는 주례사와 영혼 없는 박수 속에서 두 없는 영혼이 조용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내 영혼의 동반자의 손을 잡습니다

언젠가 우리도 함께할 날이 오지 않을까

영혼 없이 생각해봅니다

 

내가 놀란 것은 내 영혼의 동반자가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말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내 영혼의 동반자는 떠나갑니다

내 영혼의 동반자는 음식이 맛있다고 말했습니다

 

거기에 영혼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