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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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명

1965년 서울 출생.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왜가리는 왜가리놀이를 한다』 『붉은 담장의 커브』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마치』 『물류창고』 등이 있음. smlee712@gmail.com

 

 

 

확실한 것은 아니야

 

 

어제보다 한층 더 높이 올라간다.

어제는 4층 오늘은 5층이다. 확실한 것은 아니야

5층이 확실한 것은 아니야

 

여기서 떨어뜨릴까

가방을 떨어뜨릴까

가방을 열어 책들을 우르르 쏟아낼까

자리를 뜨지 않고 서 있는 나무들이

길 한가운데 하나 둘 셋 보인다.

지루한 논쟁을 끝낸 듯이 지루하게

 

확실한 것은 아니야

더 많은 나무가 나무들 밑에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많은 나무를 붙잡아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나타나 춤을 추고 있다.

한 나무에서 한 나무로 비틀거리며

그 옆에 한 사람이 춤을 출 수 없다 하고 있다.

한 나무에서 한 나무가 떨어져 있어서

 

오늘은 조금 더 높이 올라간다.

6층이 텅 비어 있는 것 같다.

5층도 비고 4층도 비어 있다. 더 많은 층이 있는 것 같다.

확실한 것은 아니야 이렇게 많은 층들을 어슬렁거린다.

모든 층이 똑같아서 계속 어슬렁거리도록 하자

 

누가 이 층들을 한번에 공개하고 있는 걸까

나는 가끔 춤을 춥니다

나는 가끔 춤을 출 수 없습니다 라는 말도 없이

 

나는 모든 층에 서 있게 된 걸까

세상이 텅 비고

세상이 없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고개를 들어 멀리 하늘을 보면 무엇이 지나간 걸까

하늘에 금이 간 것이 보인다.

확실한 것은 아니야

 

 

 

비가 내리는데

 

 

비가 내리는데

차를 몰고 나간다.

얇은 건물들 사이로 비가 내리는데

건물 청소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고 보니 비가 내리는데

그 건물은 개조되어 있다.

 

비가 내리는데

어떤 사람은 원룸에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옆에 똑같은 원룸에 있고

어떤 사람은 원룸에서 나와 죽어간다.

 

비가 내리는데 계속 차를 몰고 갈 거예요?

 

빗속을 돌아다니는 차들이 슬퍼요

돌아다니다가 공평하게 원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슬퍼요

 

차를 몰고 싶지 않은데

그 무엇도 이제는 몰고 싶지 않은데

벼랑 끝으로 몰고 가고 싶지 않은데

 

비가 내리는데

 

차를 그만 도중에 버리고 싶은데

 

문을 조금만 열어두지 않겠니

빗소리를 들으려고

빗속으로 읽던 책을 던져버린다.

 

차츰 거리에 차들이 많아진다.

언제부터 나온 차들인지 모른다. 조용히

나란히 움직이는 차들 속으로 끼어든다.

깜빡이를 켜고

빨간 차와 검은 차 사이로 끼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