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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곽재구 郭在九
1954년 광주 출생.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사평역에서』 『서울 세노야』 『참 맑은 물살』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와온 바다』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 등이 있음.
timeroad99@hanmail.net
목도장
마산 바다
못생긴
세개의 글자들이
목도장 안에 모여 있다
셋이 이마를 마주 대고
아귀찜을 먹거나
한 냄비의 홍합 국물을 마시는 것 같다
항구의 맨 끄트머리 작은 마을로 들어서는 1톤 타이탄 트럭 한대
짐칸에 실린 아이들 몇이 웃으며 내린다
멀구슬나무의 보라색 꽃잎들이 아이들의 웃음소리 곁에서 환하다
어쩜 이렇게 못생겼을까
볼수록 신기해
막내이모는 아토피를 심하게 앓았다
달이 환한 날 막내이모가 창가에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웃통을 벗고 달빛에 가슴을 말리던 막내이모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막내이모는 마산의 공장에 취직했다
어느해 추석 집에 온 이모는 마산에 바다가 있다고 했다
생일날에 아귀찜을 먹고 홍합 국물을 마셨다고 환하게 웃었다
막내이모 부마사태 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생의 아무런 좌표도 없이
우연히 마산에 들러
언덕배기 허름한 도장집에서 목도장을 하나 팠다
젊은 아낙이 도장을 새기는 동안
아낙의 아이가 젖을 달라고 칭얼거렸다
발그레한 아낙의 목과 두 뺨
막내이모의 옆모습이 보였다
목도장 안 못생긴 세 식구들이 나란히 누워 있다
글자들이 잠이 들기 전 아주 고요한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어디에서 마산으로 왔을까
천희라는 여자아이를 만난 시인은 또 어디로 갔을까
중강진 2
작은외삼촌이 큰외삼촌을 만난 건
스물한살 봄날이라고 한다
중강진에서 삼년간 벽돌을 굽다가
형을 만나러 봉천으로 왔다고 한다
봇짐 하나를 메고 왔는데
봇짐 속에서 말린 진달래꽃잎이 수북이 쏟아졌다 한다
조선 팔도에 진달래꽃 활짝 폈소
형이랑 진달래술 빚어 마시려고 꽃잎 말렸소
작은외삼촌도 큰외삼촌 따라 마적이 되었다 한다
말 타기를 잘하고 총도 잘 쏘았지만
외삼촌은 음악을 사랑했다 한다
마적 중에 호림(湖林)이라 부르는 털북숭이 한족이 있었구나
그에게 얼후(二胡)를 배웠지
줄 두개인 작은 만돌린 같은 악기란다
십촉 알전구 불빛 아래 어머니 목소리는 흐려지고
오른쪽 어깨에 총을 메고
왼쪽 어깨에 얼후를 메고 말을 달렸다 한다
원족 나가지 않는 밤이면
호숫가 나무 아래서 얼후를 연주했다고 한다
재스민꽃 속
당신 걸어오네
꽃향기 속에서
어젯밤 당신 생각만 해
동무들 목숨 하나라도 꺾인 밤이면
홀로 얼후를 안고 울었다 한다
진달래꽃 핀
달밤은 슬퍼
당신 얼굴 달 속에 있네
수수술 마시던 시간들
언제나 그리워
작은외삼촌은 비엔나에 가고 싶었다 한다
그곳에서 바이올린과 오페라를 공부하고 싶었다 한다
그곳이 작은외삼촌이 가고 싶은 세상의 끝인가요
아홉살의 나는 어머니의 눈물을 보고 말을 멈췄다
마적질 삼년 만에 작은외삼촌은 세상을 떠났다 한다
신한촌에서 온 독립운동하는 조선 사람들 만나러 나갔다가
매복 나온 일본군 총에 맞았다 한다
스물네살에 세상 끝을 찾아간 사내
그의 흙무덤엔 얼후가 함께 묻혔을 거야
그의 흙무덤엔 봄마다 진달래가 활짝 피어날 거야
오른쪽 어깨에 총을 메고
왼쪽 어깨에 얼후를 메고
말을 달리던 조선 사내의 모습이
아홉살 내 기억에서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