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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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화 李謹華

1976년 서울 출생. 200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칸트의 동물원』 『우리들의 진화』 『차가운 잠』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등이 있음.

redcentre@naver.com

 

 

 

망치론

 

 

운동장에 서서 국민체조를 하다 쓰러진 적이 있지. 하늘은 샛노랗게 기울고. 허리가 펴지지 않을 때까지 고구마를 캐본 적이 있지. 장례식 직후였다. 그때 물은 다 어디 있었을까. 너의 눈물을 핥을 수 없었네. 슬픔으로 바닥을 기어본 적이 있지. 나는 내가 아니라는 너의 빛나는 발견. 내게는 빛이 없다. 내게는 소득과 생산이 없다. 햇볕도 공평하지 않고, 손가락은 빛을 모른다. 무거운 땡볕 아래 누가 나를 사랑해줄까.

 

떡집에는 동그랗고 반질한 떡들이 좌판 가득 펼쳐져 있다. 말랑한 떡들이 입속 가득 뭉개지는데 친구야 네 굳은 얼굴은 떡을 모르는구나. 네 검은 입술은 말을 잊었구나 친구야. 못 먹을 떡을 함께 바라본 적 있었지. 목이 막힌 적 있었지. 힘차게 걸어왔는데 이제 떡은 주먹과 같아서 사방에서 달려든다. 아무 데나 쓰러져 울었던 친구야. 더이상 일어날 무릎이 없는 친구야.

 

아 오뎅이여. 사람들의 나란한 등. 사이사이 희미한 김이 피어오르고. 그것은 무엇일까. 저 등과 등 사이, 그것은 오뎅도 옛날도 아니고. 로댕도 생각도 아니고. 8시에 11시에 16시에 꼬박꼬박 떠나는 기차. 14시의 나는 대합실에 앉아 오뎅하고 나하고, 그러고 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의 등에 기대고 싶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지. 추위 때문도 아니지. 저 동그랗게 말린 등에 눈물 콧물을 바를까. 무엇도 누구도 찔러본 적 없는 사람들을 누가 기억할까.

 

 

 

척추압박골절

 

 

모잠비크 베냉 부룬디는 어디 있나

허리에 긴 칼을 차고 춤을 추는 사람들과 함께 밤을 지새울까

바닥을 기어가는 어머니 어딜 가시려나

과거의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가능한 몸짓들

허리는 왜 부러지셨나 중얼거리는 기도는

부끄러움으로 길게 이어지고

지느러미가 없어서 호흡이 불안정해진다

물속의 어머니는 나와 닮았나

3번과 4번 사이, 팔다리가 헤매고 다니는 사이

방바닥을 긁다가 뜨겁게 흐르는 이것은 무엇인가

칼날처럼 튕겨져 나가는 이것은 무엇인가

쌀밥을 눌러 억지로 태운 누룽지처럼

타다 말고 불어터진 그것처럼 희미하게

내 어머니가 허연 비듬을 떨어뜨린다

곧 인어공주처럼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환하게 웃을 것이지만

물속은 차고 어둡고 뻑뻑하다

눈물이 세계인 그곳에서 부지런히 헤엄을 쳐봐도

슬픔은 늘어난 개미처럼 잡기가 어렵고

물속에 빠져도 죽지 않는다

상투메프린시페 부르키나파소는 어디 있나 기니는 에리트레아는

어둠 속에서 우는 물고기들은 피를 흘리나 달을 잡아먹나

갈 수 없는 나라에서 돌을 굴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