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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안미옥 安美玉
1984년 경기 안성 출생.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온』 등이 있음.
myugi3@empas.com
하우스
이 집은 1978년에 지어졌다
2층은 지금 비어 있고 1층은 이달 중으로 이사할 거예요
마음에 드는 곳으로 고르시면 돼요
나는 1층도 보고 2층도 본다
1층엔 두 딸만 있었고 불을 켜지 않고 있어서
불 켜지 않은 채 집을 보았다
낮의 어둠이 벽에 잘 붙어 있었다
큰딸이 난처한 얼굴로 내내 현관 앞에 서 있다가 말했다
다음에 집 보여주실 땐 미리 연락을 주세요
제가 집에 있어요
지금은 2020년이고 변기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
2층은 넓고 햇빛과 먼지가 가득하고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모를 다락방 나는 또
문을 열었다 문을 보았으니 열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내가 살아왔던 집과 내가 찾고 있는 집 사이,
통로는 무슨 색으로 되어 있을까
계단을 내려오면서 뒤에서 하는 말이 들렸다
옛날 집이라서 그래요
1978년은 일요일에 시작되었다
세종문화회관이 개관하고 고려대장경 초조본이 발견되었다
집을 보는 사람은 집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마당엔 나무 한그루가 창문 쪽에서 자라고 있었다
옛날 나무가
썬캐처
매일 밤 자기 전 내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오늘은 어떤 형체로 살았던 걸까. 표면이 거친 돌로 된 심장으로 뛰고 있던 걸까. 막다른 벽. 컵 속에서 깨진 물의 파편처럼 놓여 있었나. 도로 위 뒤집힌 검정 우산 속으로 비가 쏟아진다. 어려움이 지속된다.
오늘 나는 어떤 발로 서 있었나.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왜일까. 유리발로는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단단하고 투명한 눈동자. 내일은 다른 발이 되어도 좋다. 발을 깨뜨려야 한다고 해도 좋다. 내가 어디에 서 있던 것인지는 아무도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소중하게 다뤄야 해. 무엇을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 걸까. 잠드는 일과 깨어나는 일 사이에서, 아니 깨어나는 일과 잠드는 일 사이에서. 그때 만난 모든 사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구별해볼 수 있다. 한뼘의 사랑과 한발자국의 위로가 얼마나 커다랗고 깊은지.
깨어나선 내가 무엇이 될지 생각해. 내 마음대로 되진 않는다. 알고 있다. 내가 넘어가보려고 할 때, 불에 탄 자국만 남은 문틀을 보게 되지만. 지금 얼굴에 닿은 빛은 얼마나 먼 시간으로부터 쪼개져 나온 태양의 손끝일까. 결국 닿게 되는 것이라고.
오늘은 여러 방향으로 찢어져 좀더 넓은 곳까지 펄럭이는 천. 마음도 손도 최대치로 길어져 기울어진 웅덩이까지 가닿는 끝. 듣는 사람의 두 귀는 말린 귤을 닮았다. 축적된 시간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