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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명철 金明哲
1963년 충북 옥천 출생.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짧게, 카운터펀치』 『바람의 기원』 등이 있음.
gaugaun@hanmail.net
꽃은, 고양이는,
목덜미에 노란 깃털을 두른 작은 새가 꽃을 따 먹고 있다. 쉬잇! 너무 이뻐. 새가 놀라지 않게 까치발을 한 휴대폰 카메라가 두세차례 초점을 맞추고 떠난다. 앙증맞고 귀여운 새여서 꽃은 황홀했을까. 검고 구불텅한 벌레가 갉아 먹고 있었다면 끔찍했을까. 카메라마저 각도를 틀었을까.
고양이가 반려자의 가슴에 안겨 고요히 눈을 감고 있는 장면이 있었다. 반려자로부터 바이러스가 전염되었다고 한다. 박쥐나 아르마딜로나 또는 두개골이 크고 온몸에 털이 숭숭한 단백질 덩어리가 전염시켰다면 고양이는 치를 떨었을까. 보드라운 머릿결과 아늑한 가슴이어서 고양이는 행복했을까. 그래서 기꺼이 몸을 웅크려 맡겼을까.
먼지가 곧 연분홍 벚꽃이고 벚꽃이 고양이고 고양이의 수염이 사람이고, 차별 없이, 사람이 산허리 작은 돌들이고, 돌들은 바람이고, 바람은, 흙은, 하늘은, 책은, 또 사람은, 벌레는. 서로의 눈과 귀를 바꿔보는 날, 황은, 흑은, 백은, 유기질과 무기질은,
볕 좋은 공원 마당에서 한 아이가 마스크를 쓰고 자전거를 탄다. 돗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주위로만 빙글빙글 돌고 있다. 우리에서 멀어지면 안 돼, 경계를 벗지 마. 보도블록 위에 떨어진 하얀 날개를 까만 개미들이 부산하게 끌어가고 있다.
기침소리
물리적 거리 두기가 시작되고 난 후
부담 없이 사람들을 떠나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사물들과 친해지고 있다
늦은 오후의 들판에 쪼그려 앉아 돋아나는 잡풀들을 본다
바이러스처럼 맹목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농투성이 아버지는 무기질 같았다
열세살 이후로 나는 아버지에게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때부터 아버지와 심리적 거리도 생기기 시작했다
봄부터 가을까지 아버지가 치르는 풀과의 전쟁은
무기질과 유기질의 싸움 같았다
무기질은 유기질이 되려 하고 유기질은 무기질이 되려는
에로스와 타나토스
죽자 사자 뿌리를 뽑고
뿌리를 뽑히며 죽자 사자 매달리는
들판에서 돌아온 아버지에게서는 젖어 있는데도
목이 칼칼한 마른 먼지 냄새가 났다
핑계 없이도 사람들을 만나지 않을 수 있는 때이지만
사물과 친해지는 그 정도만큼씩
몸도 마음도 점차 어둑해지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