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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정재율 丁才律
1994년 광주 출생. 201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wooduoo_@naver.com
축복받은 집
숲
숲이 나무를 흘리고 다녔다. 나는 그것을 주워 집을 만들었는데 이 집은 영원히 타오르지 않을 거야, 내가 말했다.
바람이 불었다. 창밖에서 창 안으로 눈들이 들어왔다. 집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문 앞에는 상자가 쌓여 있었다. 바닥이 금세 축축해지고 나는 남은 신발 하나를 문 쪽으로 두고 밖을 바라보았다.
지붕들은 모두 비슷한 모양이었다.
숲이 뾰족하듯이
줄지어진 손금처럼 행렬이 이어졌다. 누구도 선을 넘지 않고 앞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영원하다는 것은 영원히 죽지 않고 이곳을 걷는 것일까. 아니면 걷다가 이곳에서 죽는 것일까.
거리가 활활 타올랐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물건을 태웠다. 베개를 태우는 사람, 스웨터를 태우다 우는 사람, 의자를 태우다 말없이 돌아서는 사람. 모두 사랑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한날한시에 죽은 사람들도 있었다. 거짓말처럼 창밖에서 창 안으로 탄 냄새가 들어왔다.
쌓여 있던 상자처럼 집이 흔들렸다. 빛날 것이 없어진 것들은 한껏 가벼워졌다. 다시 바람이 불었다. 사람들이 앉았던 자리에 나뭇가지가 피어났다. 커튼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고
나는 꽃을 책상 앞에 두었다.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천장을 뚫고 자라는 생명에 대해 생각했다. 타오르지 않은 집에 누워 산 사람들을 생각했다. 아침이 올 것 같아서
창밖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이제 그만 가도 된다고 말했다.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욕조에 앉아 생각한다
둥둥 떠다니는 마음 같은 건
다 가라앉아서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벽에 머리를 대고
무리 밖에 혼자 떠도는
오리를 떠올린다
어린 내가 목욕을 할 때도
둥둥 떠다녔던 오리는
어쩜 이렇게 똑같이 만들 수가 있는지
정말 감쪽같아
감쪽같이 물총을 쏜다
총을 맞으면 아픈데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는
욕조에 앉아 오래 생각하면 된다
어떤 리듬이 계속 떠오르는 것처럼
물속에서 분명 들었던 음악 같은데
물 밖으로 나왔을 땐
아무도 없다
내가 잘못 들었어
맞아 내가 잘못 들었지
쉽게 인정하게 되는 것처럼
바디워시에는 “당신의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라고 적혀 있다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진다
언제 묻었는지 모를 자국과 함께
멍도 씻겨 내려간다면
하루에 열두번도 더 씻을 텐데
수증기로 가득하다
넘쳐흘러서 거울에 내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욕조에 갇혀
손끝이 쭈글쭈글해진 내가
물속에서도 문을 열 수 있다면
입 안 구석구석을 깨끗이 헹굴 텐데
들어오는 거품을 맞으며
노래를 흥얼거릴 텐데
두 다리가 붙어버렸다
생각하고
생각한 다음
물속에 얼굴을 넣어본다
물방울들이 다 달라붙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