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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남성현 『위기의 지구, 물러설 곳 없는 인간』, 21세기북스 2020

인류의 생존을 위한 플랜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최형섭 崔亨燮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hchoi@seoul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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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위기에 처해 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삶을 영위해온 인간은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위기의 지구, 물러설 곳 없는 인간: 기후변화부터 자연재해까지 인류의 지속 가능한 공존 플랜』은 해양학을 전공한 과학자의 시선에서 인류가 처한 급박한 현실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 설명한다.

유례없는 규모의 지진과 태풍,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등 최근 빈발하는 이상현상은 지금 인류가 보유한 과학적 지식으로 어느정도 설명해낼 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의 방향이다. 지구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플랜을 제시하는 일은 과학이라는 확실한 토대에 바탕을 두어야겠지만 과학자들만의 몫일 수는 없다.

인간이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인류사의 상당 기간 동안 지구란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활한 공간이었다. 유럽의 선원들이 배를 타고 대양을 건너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오륙백년 전이다. 광활하기는 대륙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인들은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이래 원주민들이 활보하던 대륙 전체로 영역을 확대해갔다. 1893년 미국의 역사학자 프레더릭 잭슨 터너(Frederick Jackson Turner)가 미국의 성격 형성에 있어서 변경(frontier)의 중요성을 강조했을 때는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의 변경(서부 개척)이 닫히고 있었다. 끝없는 광활함의 종언은 20세기 들어 생겨난 사고방식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유한하다는 인식이다.

인류, 특히 서양인들의 영역 확대는 급격한 인구 증가와 그에 따른 경제활동의 팽창과 궤를 같이했다.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땅을 파헤쳤고, 나무를 베었으며, 물고기를 잡았다.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은 손쉽게 무시됐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인류가 보다 빠르게, 보다 거대한 규모로 삶의 영역을 확대할 수 있게 해주었다. 과학지식과 기술능력의 향상은 인구 폭증에 따른 식량 부족이라는 인류사의 근본적인 딜레마조차 넘어서고 말았다. 그 결과 2020년 현재 세계 인구는 78억명에 달하게 되었다.

1970년대 미국 지식인들은 당시와 같은 추세로 경제성장이 지속된다면 인류가 곧 벽에 부딪힐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구라는 닫힌계(closed system) 안에서 성장은 결국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로써 인간은 어떻게 지구상에서 지속 가능하게 생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직면했다. 나아가 최근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에 대한 과학자들의 논의에 따르면 지난 수백년간 인간의 활동으로 앞으로 지구에 비가역적 변화가 생겨난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해 지구온난화 현상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오랫동안 일정한 범위 내에서 유지됐던 기후에 변화가 생긴다. 이렇게 인류는 비좁은 지구에서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구석에 몰리게 됐다.

이 책의 특징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설명할 수 없는 것을 현 단계의 과학지식으로 동시에 지적한다는 점이다. 지구는 78억 인구의 경제활동을 담기에는 이미 비좁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구상에는 인간이 손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영역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접근이 제약된 심해에 대한 이해는 한정되어 있고, 극지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는 인류가 그동안 축적한 지식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의 총체를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반영한다. 이른바 ‘뉴노멀’ 시대를 맞아 과학활동의 의제를 재고해야 하는 이유다.

나아가 저자도 잘 지적하고 있듯이 인류가 위기에 빠진 지구와 “지속 가능한 공존”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연과학과 공학, 인문사회과학 지식을 모두 활용하는 “융복합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40면) 최근의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지구적 문제들은 개별 학문 분과의 각개약진으로 해결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복합적이다. 호기심을 추구하는 과학이나 잉여산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기술은 세부적인 학문 분과에서 탐구하는 것으로도 어느정도 충족될 수 있었다. 하지만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상황에서는 기존 학제를 넘어서는 열린 자세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는 19세기 중반 근대 학문 분과가 성립된 이후 등장한 여러차례의 위기상황(대표적으로 전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저자가 역설하고 있는 “융복합과학적 접근”의 구체적인 내용을 적극적으로 채워나가야 한다. 이 책에서 설명하듯이 바다에 대한 다각적인 관심이 하나의 방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상에서 인간의 급격한 활동 증대로 인해 생겨나는 문제들은 한가지 키워드로 수렴되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기후변화와 아프리카 동부의 메뚜기떼, 인구 대가속과 세계화, 코로나19 팬데믹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직면한 거대한 문제의 특정한 단면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현상의 전모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행동 방향을 찾을 수 없다. 인류의 생존플랜으로 과학자와 공학자, 인문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은 어떤 해답을 내놓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