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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마이클 왈저 『운동은 이렇게』, 후마니타스 2021

모든 시민활동가들을 위한 헌사

 

 

이승원 李勝源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i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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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세계 곳곳에서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위해, 어떤 대의를 위해 살아가는 모든 시민활동가들을 위한 헌사이다.

1935년생인 미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가 『운동은 이렇게: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박수형 옮김)를 쓴 1971년은 공화당의 닉슨 대통령이 캄보디아를 침공하던 때였다. 미국, 아니 냉전시기 1970년대는 이렇게 시작했다. 이것은 당시 미국의 모든 시민활동가가 바라던 1970년대가 아니었다. 어쩌면 가장 무기력하게 받아들여야만 했던 시절이었을지 모른다. 1955년 로자 파크스의 저항에 수많은 시민의 연대가 이어질 때만 해도, 1963년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유명한 연설이 함께한 워싱턴 행진이 가능했을 때만 해도 그들이 믿었던 1970년대의 모습은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믿었던 민주당이 미국사회를 베트남전쟁의 늪에 빠뜨리고, 1968년 킹 목사가 암살당하고, 공화당의 닉슨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과정에서 그들의 믿음은 그들 머릿수만큼 갈라져 서로를 급진이나 개량, 배신이나 타협 등으로 비판하면서 다른 신조와 다른 행동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거대한 행진과 감동이 함께했던 시민운동은 조용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많은 시민활동가들은 승리도 패배도 선언할 수 없는 어정쩡한 상황에서도 가던 길을 계속 가야 했다. 분명한 답을 찾는 것은 어려웠지만, 지나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사회문제는 여전히 그들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다시 시작해야 할지 혼란스럽고 지친 활동가들에게 청년 왈저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것으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전략적 선택’ ‘이슈 정의하기’ ‘지지층 찾기’ ‘연합’ ‘리더’ ‘모금과 지출’ ‘여성 문제’ ‘사무국 스태프’ ‘운동 속 인간관계’ ‘분파주의’ 등 사회운동(혹은 정치행동)과 관련한 총 25개의 소재에 대한 왈저의 단상은 얼핏 보기엔 관찰과 글쓰기를 잘하는 어느 청년 활동가가 쓴 시민운동 길라잡이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길라잡이치고는 책 속의 내용이 마치 사적인 일기장처럼 상당히 주관적일 수 있고, 오늘날에는 그리 새롭지도 않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청년 왈저와 같은 수많은 이름 모를 청년 사회운동가들이 땀을 흘리며 고뇌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 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저 25개의 목록은 길라잡이용 필수 암기 지침들이 아니라, 당시 사회운동가들이 처절하리만큼 고민하던 현장의 깊은 상처들로 다가온다. 누구를 만나서 지지를 호소할까 하는 걱정, 활동비는 물론 생계비도 마련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다가오는 집회를 준비해야 하는 현실, 조직 내 비민주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 밤새 기획안을 쓰거나 장부를 정리하다보면 내가 속한 조직이 기업인지 운동단체인지 혹은 내가 노동자인지 활동가인지 헷갈리는 상황 등 그들을 둘러싼 끝없는 피곤함과 번뇌가 조금씩 떠오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머릿속에선 그들이 우리가 되어 함께 시위를 조직하고 모금 활동을 한 옛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전국 곳곳 산업재해, 인권유린, 환경파괴, 부패권력 등 수많은 부정의한 현실 속에서 절규나 저항은커녕 신음조차 낼 수 없는 약자들을 위해 생을 던지는 무명의 시민활동가들이 생각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운동은 이렇게 하면 좋다’라는 길라잡이로 시작하는 것 같지만, ‘운동은 이렇게 힘들지만 소중하고 위대하고 아름답다’라는 헌사와 위로로 끝을 맺는 듯하다.

왈저는 한 집단의 특수한 도덕적 원칙과 문화적 관습이 갖는 무게감에 주목하는 다원주의적 공동체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이런 왈저에게 누군가 혹은 작은 집단이 자신들의 두텁고 짙은 정치사회적 목표와 가치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이것을 사회에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사회운동은 분명 매우 복잡하고 인내심이 필요한 실천이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사람을 하나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거리로 불러들이는 것은 오랜 시간 인내심을 가지고서, 때로는 대의보다는 절박하고 즉각적인 관심사에 따라 움직이고 때로는 타인도 자신과 같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단 한번의 완벽한 승리에 대한 환상을 벗어나야 하면서도, 어쩌면 타협이나 배신처럼 보이는 결과일지라도 기존 지지자를 잃지 않고 제도권 내에서 거점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책을 읽다보면 분명 박수를 보내게 되는 부분도, 아쉽거나 답답한 부분도 적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하나하나가 이 책에 대한 평가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이 책은 모든 시민활동가에 대한 헌사이기 때문이고, 당장 조직적 실천에 옮길 구체적인 컨설팅 정보보다는 여러모로 너무 지쳐 있는 그들을 위한 어떤 따뜻한 위로를 더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작은 일도 무시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曲能有誠)”로 시작하는 『중용』 23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唯天下至誠爲能化)”라는 마지막 구절에서 그 ‘정성을 다하는’ 아름다운 자들이 오늘날 시민활동가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정치’에 포섭되는 듯하면서도 정치를 전복시키려는, 혼란스러우면서도 역동적인 우리 사회운동의 힘에 이 책이 주는 지침은 분명치 않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적어도 원제목인 ‘정치 행동’(Political Action)처럼, ‘운동’으로서의 정치가 의회, 정당, 사법부, 행정부 중심 제도정치 이상으로 얼마나 복잡하고 정교하며, 그래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운동을 시작할지에 대한 사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