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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미령 金美怜
200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파도의 새로운 양상』 『우리가 동시에 여기 있다는 소문』이 있음.
potzzi@hanmail.net
안개공단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누가 그렇게 물었을 때 기계들이 웅웅거리는 소리만 거리에 가득 찼다.
내가 왜 이제야 거기서 나왔는지 묻지 않는 게 나는 더 이상했는데
그러고 보니 거기서 좀더 자주 나왔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든다.
거기서 가져온 것을 함께 나눠 먹으면서 우리는 같은 사람이 되었고 그곳은 다시 알려지지 않게 되었다.
한 사람이 골목 안으로 들어와서 우리가 서 있던 문 앞을 지나 다른 문으로 들어갔다.
이 문이 아니고 저 문인 게 놀랍진 않았지만 저기로 들어간 그는 평범한 사람은 아닐 거라고.
잠시 후에 나온 그는 흰 이를 드러내며 말없이 웃었고
우리 쪽은 아니겠지 생각했지만 그가 고갤 숙이고 웃는 방향이 우리 쪽인 것 같았고
그의 뒤로 닫힌 문은 벽과 함께 다시 단단히 결합했다.
건물 뒤편에 우거진 덤불이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부러진 액자들의 어긋난 네모가 달아나려는 빛을 가두었다.
우리 세 사람은 어둑해진 길에 나란히 서 있었다.
길 건너편에 머리가 뒤로 젖혀진 사람을 보고 있었는데
재채기를 하려는 것 같진 않았지만 그는 그 자세로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열리려고 하는 목의 흉터를 향해
네가 왜 거기서 나와?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니었지만 내가 그 말을 해주려고 아직도 거기 서 있는 것 같아
이제 그만 돌아오고 싶어졌다.
보훈병원
이 동네엔 귀 뒤에 점 있는 사람이 산다.
배꼽에 점 있는 사람과 검지와 중지 사이에 점 있는 사람, 눈 흰자위에 점 있는 사람도 이 동네에 산다.
한 사람이 길 잃은 노인을 부축해 파출소로 들어간다. 커다란 수박을 내려놓고 잠시 쉬는 여자도 있다.
이쯤이면 아—아—아— 소리치며 달려 내려오기 좋은 언덕이 나오고 그 위에 교회가 있어야 하는데
그리고 곧바로 아—아—아— 소리치며 달려 내려오는 아이와 겁에 질린 엄마가 갈퀴손을 뻗으며 따라 내려오는 장면이 보여야 하는데
아직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가면
“언젠가 우리 여기서 본 적 있지 않나요?” 하고 묻는 사람과 “글쎄요. 오늘 하루 임산부를 세명이나 보긴 했지만……” 하고 갸웃거리는 사람을 만나고
원하는 대답을 못 듣고 한참이나 머릴 긁적이고 서 있는 사람 저 멀리
토성의 고리를 돌던 돌멩이가 불꽃을 내며 튕겨나간다. 행성 하나쯤 돌아오지 못해도 이상할 게 없는 거리에서
맴돌기 좋은 자리에 좀더 머물다 돌아갔으면 하고 생각했을 때
“다들 여기 모여 있었구나.”
반갑게 인사하면
돌아보는 얼굴들 입가에 수박 물이 뚝뚝 흐른다.
그중 한 사람의 턱에 예전엔 몰랐던 점이 있다는 것을 계속 생각하던 그해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