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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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李鎔勳

201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잡역부

 

 

분진 막으로 포장된 라성빌라는 서 있어라 최후의 목도1를 증언하는 사람으로서 초대받은 자가 들어간다

기운은 무뎌져서 빙글빙글 도는데 휘- 사라지지 않네

돌더미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들이 다가온다 만찬장으로 이동하면 편의점 그늘 아래 기름때 흐르는 가락들 고춧가루 깃든 가락들 발성이 다른 언어들이 원곡동을 휘젓네

라성2에 도착하면 편지를 보내라 했던가 사내는 종이 상자에 돌멩이를 담아 보내야겠다 하네

뜯겨져 내쳐진 양변기는 뜨끈하다 빛바랜 색 바랜 가루먼지 뒤집어쓴, 무심코 미련없이 던져진, 앨범 속 얼굴들 오물 얼룩 듬성듬성 도장한, 이불들 어금니 꽉 깨물지만 썩어서 이빨 으스러진다 잇몸 턱주가리에 힘 들어간다 목구멍으로 마른 침 넘어간다

낡아빠진 약해빠진 바람빠진 찢겨진 꽉 눌린 짓 눌린 억 눌린 공들과 휘어진 문틀 버려진 모든 것들은 홀연히 사라진 사람들의 안부를 더이상 묻지 말자 행여 묻거든

흙먼지 고여 있는 콧물 시원하게 풀어버리고 말자

물웅덩이 꿈틀대는 진흙은 라면 스프 끓어오르는 매운맛인가 순진한 맛인가

연장 챙겨 담고 다리 끝에 각반 풀면 사람들은 해체되겠지 흩어지겠지 철거되면 기억나는 사람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으려나

라성의 흙더미는 서글퍼라 공터에 가락은 퍼져라 구석에나 박혀 가라앉도록 흘러가도록 그렇게 숨쉬도록 살아보도록 내버려둬라 투박한 손은 탁상 조명의 단추를 찾고 갑자기 찾아온 어둠에 돌멩이는 움츠리네

파란색, 분홍색, 빨간색 갈라진 플라스틱 양동이 광장 되어버린 재개발 현장 위에 UN-기념탑 쌓고 세워지고 잡스러운 일들이 많아서 하루떼기는 끝없어라

 

 

 

밀가루 시멘트

 

 

나를 에워싼 거푸집 껍데기 때려 박는 시멘트 땅속으로 흐른다 삽 든 인부 물 호스 끌어다 되직이 해라 좀 지직하다 뻑뻑하다 질게 하지 마라 물 더 넣어라 누긋누긋 잘 싹인다 묽어서 처진다 질벅하다 반죽을 빚다 힘드냐? 고작 이거 했다 힘든 건 아니지? 탕바리 이곳서 무너지면 너는 어디서도 쓰레기 인생으로 살 거다 쓰레기, 죽을 것 같다 못 참겠다 더럽게 쓰린데 쑤시는데 치사하다 미치겠어서 들통에 응어리 확 풀어, 버리고 싶다 한마디 말도 못했다 모두 떠난 껍데기 거푸집 서서히 굳어가는, 차마 굳지 못해 무너지는 건가 땅속에서 나는 거푸집 탕바리 벗겨진 내 피부 두드러기 박박 긁으면 쎄멘 독 씻어도 세척해도 덕지덕지 시멘트 숟가락 들어 올리면 돌가루는 밀가루 탕바리 벗겨진 내 피부 파고드는 시멘트 한포대 나르고 좀 쉬자 싶으면 눈치 보는 일도 품삯이다 싶었다 쌓여가는 포대자루 푹 꺼진 어깨 아래 어깨 꺾인 허리 옆에 허리 검게 그은 피부 위에 고운 가루 손에 담아 비비면 밀가루 반 모래 반 거기에 자갈 같이 저으면 콘크리트 돌가루 공그리라 불렀다 더이상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했지만 피부 고름 깨알 박힌 시멘트 작업복을 벗어도 묻어났다 앉은 자리 일어나면 묻어났다 집으로 돌아갈 때 현장으로 들어갈 때 인력사무소를 기웃거리다 돌아설 때 돌아서 갈 때 훌훌 털면 털어도 묻어났다 밀가루 나를 덮는 시멘트 따갑고 따끔따끔 목구멍 마디마디 부러져 마디마디 못 박아 겨우 집에 왔는데 그들은 단지 웃기만 했다 묵직한 덩어리 들통에 응어리 고운 가루 손에 담아 비비면 밀가루는 돌가루 굳은 채 굳은 듯 꿈쩍 않는 콘크리트 시멘트 깰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바닥이라 이 바닥이 호락호락한 바닥은 아니라며, 그들은 단지 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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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목도는 돌을 나르는 일이다 목도채를 사용해 목도질을 한다 목도꾼은 이제 공사 현장에서 잡일을 한다 건설 안전보건증을 소지한 사람들은 현장을 목도한다

     

    독수리가 머리통 채 간다고 보호구 착용하라는 소장님 한 말씀
    확성기에서 뱉어내는 방송 차곡차곡 쌓여간다
    분양광고 글씨 박힌 빨간 풍선 뜨는 날 내 몸뚱이 부풀어올라
    붕붕 떠오르지 않도록 땀에 흠뻑 젖은 작업복을 겹겹이 걸친다
    발등을 찍어 쇠줄을 끌어다 발목도 엮어본다
    시멘트 알갱이는 빈터를 헤맨다 모래먼지 뒤섞여 엎어지고 자빠지고
    알갱이는 회색 풍채를 드러내고 산과 산을 가리는 데 온 힘 쏟겠지
    기생하는 크레인 박박 기어올라 얼마나 더 희망차다 골백번을 감탄만 해야 하나
    흐르는 땀, 가래침에 섞여 먼지들 자라도록 삽질은 멈추질 않는데
    작업종료 방송도 안전 당부도 소장님 부리에서 나오는 늦은 오후
    맨 뒷줄 흰색 보호구 담뱃불 끄라고 확성기가 쪼아대면
    안전모가 보호하는 사내는

     

    폐기물들아 시멘트 뿌리박히면 퇴장해야지
    뺑기통들아 네 몸속 모든 걸 게워냈으면 퇴장해야지
    키레빠시 똥가리 하빠리 남은 것들 모조리 퇴장해야지
    빨레뜨에 남겨진 것들 반품되면 퇴장해야지
    퇴장했으면 퇴장해야지
    미련 두지 말고 옮겨가야지
    찾아봐야지
    너희들이 쌓이고 방방곡곡을 가리는 동안 찌꺼기들은 내 몸을 질소 충전한다

  2. 라성호텔 라성식당 라성양꼬치 라성설비 라성게임장 라성통신 라성택배 라성슈퍼 라성복권방 라성당구장 라성 라성 라성, 라성은 안산이 아니다 원곡동은 더이상 불야성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