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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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성 尹銀晟

1987년 전남 해남 출생. 2017년 『문학과사회』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주소를 쥐고』 등이 있음.

yescjdms@naver.com

 

 

 

남은 웨하스 저녁

 

 

하우스. 쌓인 눈이 텅텅 미끄러져 내려오는 비닐. 사람이 지나치는. 교회에서 기도하고. 돌아오는 집 앞에. 비닐. 거둬가는 사람.

하우스.

 

언니, 웨하스 먹어. 강아지가 긁어.

문 닫자. 여기서 나간 후의 빛. 도착한 후의 빛. 다른 거리와 건물의 것.

멀리 갔다가 오지 말자. 사람을 강아지처럼 따라다니지 마.

 

빛이 없어도 보이게 된 밤의 눈과

빛이 없어도 열리는 어둠의 옷가지들이.

잠 너머로부터 빠르게 깨어날 때의

눈앞 텅 빈 공기가.

공기 가르는 기척 없이 그저 멀리 있는 작고 오래된 별들이.

따뜻하지 않아서 옳다고 느껴졌다 했지.

언니, 웨하스 먹어. 부서져서 잤어.

 

하나도 아프지 않은 얼굴로 동생이 운다.

여기서 나가는 거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고 엄마가 말하네. 장화를 엄마가 신었네. 크고 흐물거리는 장화가 널브러져 있었는데. 엄마가 장화를 신었네.

엄마가 전화를 먼저 끊지는 않고. 엄마, 나는 눈이 지워져가는 것 같아. 엄마는 전화를 끊지는 않고. 내가 귀가한다.

귀가한다. 목이 마르고.

오늘 본 건 뭐냐고 엄마가 내게 묻는데 엄마는 귀가 아픈데

왜 또 이어폰을 꽂고 설교를 듣고 있는지 애가 탄다.

목이 마르고.

엄마 무엇을 확인하고 싶어?

 

아픈 귀에

들리지 않는 한쪽 귀에

들리는 소리가

남아 있는 세계에

집 앞에

강아지가 계속 돌아다녀서 나만 보면

엄마 먹을 걸 달라고 하는데 그냥 웨하스 다 줘도 되나.

나는 시도 쓰잖아. 엄마가 안 쓰고. 엄마가 안 울고. 저 강아지는 어디까지 혼자 갈 줄 알까. 안 울고. 안 짖고. 발견되지 않고.

찾지 못했다고 할게. 안 들리나보다 할게.

발견되지 마. 먹어. 멀리 갔다가

엄마가 잠에서 안 깨고. 부서져서 자고.

엄마 무엇을 확인하고 있어?

 

엄마가 자꾸 귀가 아프다 하고.

괜찮아. 우리가 읽은 게 서로의 입술이 아니어도. 문 닫자. 엄마. 아직 안 끝났을 뿐이라서.

웨하스 다 부서져서. 털자. 우리가 들은 게 숨소리뿐이라서.

괜찮아. 잠도 다 깨버렸어.

겨울엔 비닐하우스 남은 철골 사이 먼

동생이 운다. 엄마가

부드럽게 빛나고 있었다.

언니.

먹어 언니 우리가 같이

남긴 웨하스.

 

 

겨울과 털 공과 길고 긴 배웅과

 

 

들려오는 성가(聖歌)가 있었다. 하나의 악기로만 반주되는

마음이 깨끗한 발자국 같았다. 눈이 더 쌓이지 않아서 눈이 더 오라고 빌었다.

노래가 향하는 곳이 정말로 하늘일 것 같아서

내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게 좋아서

그러면 언니나 선생님이나 애인을 찾지 않아도 되어서

 

*

 

또 겨울이야. 찾아갈 새 극장은 아직 문 닫지 않았어. 우린 이미 닮은 얼굴이려나. 닫힌 노래. 반복되는 확인. 나는 내가 눈에 파묻힌 적이 없단 것만 알았는데. 눈이 없는 길에서는 언니를 매번 놓쳤더라.

 

혼자라는 걸 믿지 말라고도 하고

혼자라는 것만이 단 하나의 진실이라고도 해. 언니는 무엇을 들었어? 바닥에서 천천히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게 종교 비슷한 거라며.

우리는 같이 그걸 들었다고 할까?

 

나는 저수지와 큰 풀과 강아지와 예배를

농담을

맞는 매와

아무도 한마디 간섭하지 않는 무방비한 호흡들을

기도의 이상한 응답들을

나누고 싶었는데.

껴안고 자고 싶었는데.

 

나는 이상해지고 말았지? 나를 누군가에게 봐달라고 할 수가 없어서. 그래도 같이 기억해주면 안 돼? 우리가 맞을 때의 어둡거나 밝은 단 두개의 명도라든가 차가운 대리석 계단들

누가 살지 않는 교사(校舍)와 아이들을 부르는 어른들

 

*

 

풀린 옷으로 만든 털 공이 아무 데로나 굴러가. 막연하고 즐거운 기분도 흘려보내는 믿음 비슷한 거라며.

맞는 사람도 돌아서는 사람도 숨어서 우는 사람도 퍼부을 욕을 알지 못해 안고 있던 접시들을 놔버리는 사람도

쓰러지고 사라지려는 언니도

내가 아직 다 듣지

못한 노래인 거야?

 

*

 

언니가 편안하기를 바란다는 말로부터 시작하면

내가 잃어버리기로 작정한 언니가

나의 침대로 돌아와 잠들어 있단 걸 알게 돼. 그러면 나는 언니를

더 밝고 따뜻하게 껴안고 성가처럼 부르려고.

막연하고 즐겁게 같이 잃어버리자 말하며

한번 더 데려다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