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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에이미 거트먼‧조너선 D. 모레노 『죽기는 싫으면서 천국엔 가고 싶은』, 후마니타스 2021

실험대에 올라간 생명이 사회에 던지는 질문들

 

 

최은경 崔銀暻

경북대 의과대학 교수 qchoie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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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거트먼(Amy Gutmann)과 조너선 D. 모레노(Jonathan D. Moreno)는 미국의 생명윤리학자로서 오바마정부 대통령 직속 생명윤리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이들이다. 기독교적 도그마와 밀접한 주제인 배아와 인간 복제 문제 등에 집중했던 부시정부와 달리 오바마정부의 생명윤리위원회는 뇌과학 연구나 전장유전체 분석(whole genome sequencing),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 에볼라 유행 등 현대 의료가 마주한 복잡하면서 중요한 문제이자 일상에서 파급력이 높은 주제들을 다루면서 사회 각계각층이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원회의 활발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생명윤리학이 답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이 저자들로 하여금 『죽기는 싫으면서 천국엔 가고 싶은: 생명윤리학의 쟁점들』(Everybody Wants to Go to Heaven but Nobody Wants to Die, 2019, 박종주 옮김)을 저술하게끔 한 동기로 여겨진다.

원서의 부제는 ‘생명윤리학과 미국 보건의료의 전환’(Bioethics and the Transformation of Health Care in America)이다. 보건의료 전환이라는 사회적 배경을 각별하게 염두에 두며 저자들은 미국 보건의료체계의 문제를 제기한다. 오바마케어의 도입이 보여주듯 오바마정부는 높은 비용의 현대 의료 혜택이 전체 인구에게 평등하게 분배되지 못하며 효율적이지도 못하다는 문제에 응답해야 했다. 2차 세계대전 후 발전한 생명윤리학은 현대 의학의 권위에서 벗어나 환자의 자율성과 선택의 가치를 지켜내는 데 성공적이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구조(救助)의 문제’에서 현대 의료는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의료 자원의 정의로운 분배 문제, 자원이 한정된 가운데 누구를 살릴 것인지, 모두에게 길고 건강한 삶이 가능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출생에서 사망까지 삶의 모든 단계와 영역에 의료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오늘날, 생명윤리학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무척 많다.

책이 망라하는 주제는 광범위하며, 독자들에게 생명윤리학이 다루는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입문 수준의 지식을 제공한다. 전통적인 생명윤리학의 주제라 할 수 있는 임신중지와 죽을 권리부터 의료 자원의 분배와 최근 부각되는 공중보건윤리, 그리고 유전자 의학, 뇌과학, 배아 연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섭렵한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모든 주제들이 같은 층위에서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 임신중지가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뜨거운 주제라 한다면 공중보건에 대한 투자나 정신보건의 문제, 모두의 건강에 대한 집단적 책임은 너무나 쉽게 무시되기도 한다. 저자들은 이러한 주제들 모두 민주주의적 숙의의 지평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여긴다. 임신중지와 같은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쟁점들에 대해 공통된 지반 위에서 상호 존중을 통해 합의점을 찾을 수 있길, 많은 이들의 건강과 안녕에 직결된 주제이나 관심이 적은 공중보건과 같은 주제들은 투명한 의사결정을 통한 집단적 성취가 가능하길 바란다.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은 고전적인 이론이나 단일하면서 견고한 입장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해 경합하는 가치 속에서 결론을 도출해내는 집단적 숙의 과정이다.

저자들은 개인과 사회의 경험을 통해서 이러한 집단적 숙의에 참여할 수 있음을 믿으며, 스토리의 힘을 중시한다. 그리고 유려한 문체로 현대 의학이 마주치는 난제들에 대해 생명윤리학이 그간 성취한 지점들을 짚어내며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제시한다. 책의 1장에 생명윤리학이 걸어온 역사를 다루고, 서문에 저자들의 개인적인 경험을 언급하면서 이 문제가 절실히 논의되어야 할 필요를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거트먼은 의사가 다리 절단수술에 대한 동의를 가족이 아니라 당사자인 할머니에게 직접 구하도록 고집을 세웠던 어머니의 기억을 상기한다. 모레노는 연골 육종 때문에 팔을 절단했어야 하나 담당 의사로부터 직접 그 얘기를 듣지 못했던 어머니의 사례를 떠올린다. 이들 사례를 둘러싼 성찰은 의료에 대한 의사결정을 의사가 독점해왔던 전통에서 환자가 같이 참여하는 의사결정으로 전환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환자는 더이상 의료행위의 의미를 물을 수 없는 비전문가나 논외자로 취급될 수 없다. 수천년 동안 의사는 환자의 진실을 유예시킬 수 있고 함구해도 괜찮다는 전통을 따랐다. 그러나 환자가 스스로의 몸에 대해 알고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의사는 이에 응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받아들여지면서 생명윤리는 전환되었다. 새로운 생명윤리를 이끌어낸 힘은 의료가 더이상 의사의 독점적 영토가 아니라 환자와 그 가족, 돌봄을 주는 수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장이라는 인식의 전환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이 가능했던 것은 개인의 자율성과 참여를 중시하고 개인들의 이해가 사회와 어떠한 관련을 맺어야 할지 논쟁해온 미국의 지적·사회적 풍토도 바탕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보건의료 전환’이라는 길목에 놓여 있는 미국의 맥락과 한국의 맥락을 등치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이해도 면에서도 미국과 한국은 많은 차이를 드러낸다. 그러나 공중보건의 중요도 및 보건의료 비용의 상승과 비인간화 등은 한국 역시 유사하게 경험하고 있다. 보건의료에 대한 환자들의 요구와 고려사항이 점점 더 많아지고 다각화되고 있으나 의사들은 그에 대해 바람직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생명윤리학이 보건의료의 과제에 유의미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갈수록 난항을 겪는 것으로 보이는 의사-환자 관계의 윤리적 전환을 생명윤리학이 도모할 수 있을까. 어쩌면 저자들이 적었듯이 그간 생명윤리학이 걸어온 길에서 지혜를 길어 올릴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것이든 발견한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해결책을 찾지 않는다면 집단적·개인적 동의 없이 대리로 결정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26면). 생명윤리학은 의학기술의 지혜로운 활용을 위한 집단적 길 찾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