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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구경 朴丘璟
1956년 경남 산청 출생. 1998년 공무원문예대전으로 등단.
시집 『진료소가 있는 풍경』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국수를 닮은 이야기』『외딴 저 집은 둥글다』 『형평사를 그리다』 등이 있음.
omak0604@naver.com
형평사(衡平社) 3
칼의 길
백정의 길은
칼의 길이었지
도살은 백정들이 먹고사는 업이었지
양반들 길흉사에 쓸 단고기는
백정의 도법에서 생겨 나왔지
백정의 기술에서 비롯되었지
소 한마리를 눕혀놓고
108가지 맛을 오려내는
백정의 칼 기술은 붓끝에서 피어나는 문장 같았지
조선의 천운이 저물어가던 시기에
개화의 치맛자락이 짧아져갈 즈음에
백정들의 코뚜레도 느슨해지기 시작하였지
실속 없이 빈 곳간의 양반질보다야
소 돼지 짐승으로 취급을 받아왔던
백정의 칼 위에도 한줄기 빛이 들기 시작하였지
그러나 아직
천금 만금을 쌓아 올린들
백정은 백정이므로
기와지붕 안에서는 지낼 수가 없었지
비단옷은 걸칠 수가 없었지
자식들의 까막눈을 깨우칠 수가 없었지
아직은 피 묻은
칼의 길이
남아 있었지
백정은 숫돌 위에 칼의 길을 내었지
양반의 목을 자를 그런 칼도 있었으나
짐승의 고깃점만을 꿰는 활인의 칼을 부렸지
형평사(衡平社) 21
피맛골 박(朴)가 박성춘
피맛골 박(朴)가는 어디서 왔는지 부모가 누구였는지
이름도 성도 없이 잔뼈가 굵어온 사내
사람들이 그를 단지 박가라고 불렀다는데
선교사들이 들어와 학교를 세우고
가난한 집 아이들을 가르쳐
천민의 자식들에게도 글을 깨우치게 한 뒤로
기중의 학생들 가운데
드물게는 서양의사가 된 이들도 생겨나고
기독교 신학자가 되어 교회를 세웠던 이들도 있었는데
피맛골 박가 박성춘도
개화가 된 세월 속에서 신학을 접한
선지식의 한 사람이 되었더라
1895년에 그는 백정에 대한 처우 개선을
관계기관에 탄원하며 인권운동의 길에 들어서서
방방곡곡 현실을 개탄하는 방(榜)을 써 붙이고는 하였더라
자신의 손으로 패랭이를 벗고
망건에 갓을 쓰고 나타난
양의사 박서양의 아비이기도 한 인물이었더라
1898년 10월 29일 서울 종로에서
독립협회가 주최한 관민공동회에 시민 대표로 나서
평등사상으로 백정해방을 주장하는 이가 되었더라
오백년 만에 도포 입고 갓을 쓴 백정들이
종로 거리를 활보하는
일대 혁명의 순간을 맞이하게 하였더라
비록 일제 치하의 어둠 속에서였지만
제중원의학교 제1회 졸업생 박서양은
모교 교수로 채용된 선지식에 틀림없었더라
드물고도 귀한 사례이긴 하였으나
2대에 걸친 부자의 애민사상은
진주 형평사운동의 초석이 되었더라
형평의 사람이 되어 여기에 와서
붉디붉은 꽃씨 하나로 땅에 떨어져
형평의 꽃을 피운 기적이 되어주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