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이영주 李映姝

2000년 문학동네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108번째 사내』 『언니에게』 『차가운 사탕들』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 『여름만 있는 계절에 네가 왔다』 등이 있음.

oistrak3@naver.com

 

 

 

소각장

 

 

앙드레 브르통은 초현실주의자의 왕이다. 왕이 현기증에 시달리는 밤을 지나 왕궁 뒤뜰에 죽어 있다. 뒤뜰은 폐허. 소각장. 오른팔이 타고 디아나는 잘 마른 장작을 계속 넣는다. 이런 게 몰락이라면 정말 쏘핫하군요. 나는 왕의 왼팔을 떼어 붉은 뒤뜰에 뿌린다. 개와 함께 자면 벼룩과 함께 깨어난다고 했지. 가렵고 개웃겨. 디아나의 불쏘시개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 세계는 길 잃은 아이의 악몽밖에 없다고 내가 말했잖아. 그치만요, 아이에게는 왕을 잘라내는 재미가 있어요. 디아나가 웃는다. 왕은 행복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을까요. 의학계는 개웃겨. 세계는 무질서일 뿐 세포분열이 전부잖아요. 나는 악취로 가득 찬 소각장에 있다. 불길 속에서 흔들리는 나를 보고 있다. 왕도 커다란 몸의 댓가를 치르겠지. 크기만큼 아프겠지. 행복은 나쁜 기억력 때문이니 나쁜 건 좋은 건가. 재의 분열이 펼쳐지는 왕의 뒤뜰에서 나는 흩어지고 있다. 디아나를 그리워한다. 꼭 무언가를 향해 전진해야만 세계의 일원인가요. 큰 것은 잘라내고요, 작고 약한 것이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있는지를 볼 뿐인데요. 훼손되지만 상처는 말하지 않아요. 우리는 화학반응의 집합일 뿐이고…… 왕의 친구 바셰는 자살했죠. 자살한 친구 옆에 자살한 친구, 그 옆에 또 자살한 친구. 뒤뜰은 불타오르고 있다. 왕의 몸통이 거센 불길을 만든다. 돼지 타는 냄새. 왕의 궁전은 아름다운 정육점. 나는 소리친다. 디아나! 거기서 나와! 훼손되는 것이 사랑은 아닌데…… 나의 몸을 관통하는 갈고리. 시간은 무질서를 향해 나아간다. 개웃겨. 선생님, 뇌세포는 바뀌지 않는대요. 왕에게는 안의 질서 같은 건 없는데, 바깥을 엉망진창으로 만든대요. 벼룩도 불타면 가렵고 개웃겨. 소각장은 세계. 세계라는 말 좀 쓰지 마세요.

 

 

 

우리

 

 

절벽에 있어요. 절벽에서 술을 마셨어요. 절벽에만 있는 뜨거운 라면. 그는 금지된 라면을 먹었죠. 불꽃 안에서 타올랐어요. 이미 떨어졌어요. 두개골이 부서졌죠. 영감님, 마음은 마르고 뼈만 남았는데,

 

미광이 번쩍여요. 여긴 절벽. 노스모킹존이 되었는데요, 염소들이 우글거리는 나와 나,의 공중. 그는 추락해서 괜찮습니다. 8월 늦여름,을 기다리며 잠혈. 고통이 정말 나를 키울까요? 그저 시 제작자로 만들 뿐일까요? 절벽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어요. 세상은 절벽에 서 있는 것들이 무연하게 떠다니는 악몽이고 그것의 재현일 뿐일까요.

 

내게는 세명의 아버지가 있어요. 모두 미쳐 있죠. 자기 자신에게 미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나를 자꾸 절벽으로 밀었어요. 절벽 끝에서 세명의 아버지를 버티느라 나는 검은 염소가 되었고요. 절벽에서 살아가는 일이 자연이 될 때까지요. 나는 라면을 먹지 않아요. 영감님,

 

이제 아무도 없는 디트로이트로 갈까요. 매일 절벽에서 서로를 죽이는 누아르 영화를 보던 때가 있었어요. 영감님, 난 망한 도시가 좋아요. 고통을 느끼는 동물에게는 도덕적 지위가 있다고 하는데요. 척추동물인 염소는 아픕니다. 부서진 공중에서 살고요. 차경주, 이송현, 김용희, 박현민, 김수진, 한예진, 성혜현, 배설주, 박재현, 이영주 그리고 흑연의 끝에 붙잡힌 대머리 노동자여, 고장 난 차가 있는 북쪽으로, 북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