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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근 金根
1973년 전북 고창 출생.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뱀소년의 외출』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당신이 어두운 세수를 할 때』 『끝을 시작하기』 등이 있음.
hartani@hanmail.net
거기, 없는
쏘아붙이듯 벽을 향해 누군가 컵을 던졌어 거기
가지런히 쌓여 있던 얼굴들 얼굴들이야 다시 이어
붙일 수 있겠지만 컵은 어쩌지 지나온 거리의 불빛들
집 안까지 흘러왔어 흘러흘러 몸 안에서 출렁거렸어
불빛들마다 누군가가 하나씩은 서성이고 있었는데
몸은 컵이 아니야 내가 말하자 그중 누군가 나를
쏘아보았어 휘황하게 빛날 거란 생각은 버려 몸은
언젠가 던져져버릴 운명이야 이내 깨져버릴 테지 몸은
얼굴도 이름도 없이 조각난 살점들 살점들엔 나방떼
몰려들겠지 나방떼에 뒤덮이듯 사그라드는 불빛들
누군가는 입을 다물고 마치 아무도 없었다는 듯이
집 안에 조금씩 채워지는 어둠 추워 누군가 어둠의
물기를 죄다 빨아들이고 있나봐 내가 말하자
점점 더 되직해져가는 어둠의 밀도 딱딱해지지는
않고 하릴없이 무거워져가는 집 안 아무리 팔다리
휘저어도 도무지 허우적거려지지 않을 것만 같은 잠
속으로 가라앉기만 가라앉기만 하는 컵 아직
부서질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느려지는 힘겹게
느려지기만 하는 해도 멈춰지지는 않는 떠, 떠,
떠다니듯이만 잠 속에서 어쩌지 아직 곁에 있었나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켜켜이 깃든 누군가인지
말캉한 시간이 누군가에게서 건너오고 누군가에게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말들 아니 소리들 아니 녹진하게
흘러내리는 아니아니 누군가 입으로 들어왔다 입으로
나가는 나방의 냄새 구역질 나는 누군가들의 살아보지
않은 어쩌지 벽에게도 컵에게도 물을 수 없어 느닷없는
누군가 이어붙인 얼굴을 뒤집어쓰네 눈도 코도 입도
지우고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모르는 집은 제 무거움
못 이겨 어쩌지 허물어지네 결국 컵은 깨졌을까 잠은
어쩌지 추워 누군가가 아니면 그 누군가도 아닌 누군가
끔찍해 쨍그랑 끔찍한 밤의 행렬 속으로 누군가 어쩌지
어쩌지 휩쓸려가고 던져지지도 못한 채 나 그만 산산이
깨어져버리네 얼굴도 이름도 알아볼 길 없이 흩어지지 못한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들만 남아 떠다니네 추워 어쩌지
영상
골짜기로 뼈만 남은 흰빛, 찌르듯이, 둘러선 가파른 산들로, 휘몰려가는, 헤아릴 수 없이, 찌르듯이, 뼈와 흰으로 쪼개지며, 흰만 남은 뼈빛, 두껍게 얼어붙은 저수지로, 아무도 건너가지 않은, 너머, 아무도 넘어오지 않는, 산들의 끄트머리, 끄트머리로, 너머로는, 깊어지는, 깊어져봤자 훤히 드러나는, 드러나고야 마는, 골짜기로, 이슥하지도 않은, 깡마른 나무들은 모두 흰, 빛으로 숨고, 흰, 흰, 물기 없이만, 바람에 베일 듯이, 빛, 빛, 뼈만 남은, 아득하고, 너, 온통 긁히는, 흰빛에, 흰에, 빛에, 살갗, 찢기는, 흰, 붉은, 피, 배어 나오지 않는, 흰만 가득한 빛, 뼈만 조각조각, 바늘처럼 쪼개지는, 가늘게, 눈 속에, 흰, 네, 눈 속에서, 쓰러지는, 흰, 아스라이, 너머, 너머, 너, 흰, 뼈만 남은, 빛, 검은, 흰, 골짜기로, 저수지 건너, 저수지로 깊이, 보이지도 않는, 두꺼운, 흰, 검은, 얼음, 아래, 아래로, 나에게로, 흰에게로, 뼈에게로, 낮고 낮게, 내려앉는, 하늘에게로, 빛, 남은, 검은, 에게로, 나, 에게로, 죽어서, 살아서만, 에게로, 사라지는, 검은, 흰, 거뭇거뭇, 희끗희끗, 간데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