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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 다시 읽고 싶은 책

 

 

『박영근 전집』(전2권), 실천문학사 2016

‘박영근’을 살았던 희망과 사실

 

 

송종원

宋鐘元 / 문학평론가 renton1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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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학생들에게 몇편의 시를 나눠주고 함께 읽는 자리였는데, 기형도 시를 타이핑한 종이에 박영근의 유고시집에 실린 시 몇편이 의도하지 않게 들어가 있었다. 시인들의 이름을 표기하지 않아서일까, 학생들은 그 시들을 구분 없이 읽었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소하게는 ‘사내’나 ‘개’의 등장이 유사했고, 무엇보다 두 시인의 시에 공통적으로 드리운 짙은 어둠의 색채가 착각을 불러왔을 것이다. 나중에야 확인한 사실인데 기형도(1960~89) 박영근(1958~2006) 두 시인은 거의 동년배이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두 시인의 작품이 섞여 있다고 밝히며 엉겁결에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한 시인이 대학생 내지 사무직 노동에 종사하는 사회초년생 화자를 통해 자신이 세웠던 수많은 ‘마음의 공장’을 말하며, ‘길 위’라는 다소 추상적으로 보이는 공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기형도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이라는 끝간데없는 비관을 이야기했다면, 공장 노동자로 시작(詩作)을 출발한 다른 시인의 시에는 화장실이라는 비좁은 공간에 맞닿아 있는 육체와 희망이 있었다고. 당시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학생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화장실 같은 곳에서나 어쩌다 쉴 수가 있어요/희망 같은 것을 생각해도 좋을까요”(박영근 「비로소 떠나갈 곳조차 없는 이곳에서」).

최근에 구매한 『박영근 전집』(박영근전집 간행위원회 엮음)이 여전히 1쇄에 머무는 것을 보면 이 책은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듯하다. 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작시인이며 노동자 시인으로 뚜렷한 족적을 남긴 박영근의 전집은 시인의 10주기에 맞춰 2016년에 출간되었다. 전집은 시를 다루는 1권과 산문을 다루는 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산문 전집에는 흥미롭게도 기형도의 「빈집」에 대해 박영근이 쓴 글(「기형도___빈집」)이 실려 있다. 그 산문에서 시인은 기형도를 여러번 읽었다고 밝힌다. 그리고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라는 「빈집」의 구절에 대해서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출구를 찾지 못한 생각들이 도리어 마음의 장애가 되고, 그래서는 그것을 쓰는 일 자체가 공포”(2권 285면)가 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데, 지금에 와서 보면 이 말은 박영근 시의 어떤 대목들에 돌려줄 수 있는 말로도 보인다. 시의 제목을 곧 글의 제목으로 삼은 산문 전집 제2부의 글들, 시평으로 분류된 그 글들에는 사실 묘하게도 그 자신의 작품에 돌려줄 말들이 상당히 자주 발견된다. 가령 김수영 「이 한국문학사」에서 그가 “문학의 정신이 싸구려로 팔려가는 한국 사회의 문화적 현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여 더 나은 단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자리”(2권 170면)를 읽어낼 때 그 ‘자리’는 상업문화에 휩쓸려가는 일을 심려하는 자신의 산문 가까이에 있고, 최민 「첫 수업」과 이문재 「금강경」을 읽으며 분단의 역사가 빚어낸 “허기진 내면”(2권 213면)을 들여다보거나 신경림 「묵뫼」를 읽으며 “현실의 갈등과 대립을 화해로 끌어내기 위한 시적 개입”(2권 173면)을 발견할 때는 자신의 시가 가닿을 현실의 구조를 더듬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 근현대사에 강력하게 개입하는 자본주의와 분단을 사유하며 한국문학사가 다져놓은 자리에 그가 자신의 마음과 말을 비추어보고 더하면서 일종의 협업을 시도했다는 점을 드러낸다. 산문 전집에 실린 내용에 기대어 보면 저 협업의 가치를 박영근은 아마도 노동문화운동 속에서 발견했을 것이다.

다섯개의 부로 구성된 산문 전집에는 따로 책으로 엮인 적이 없는 글들도 다수 실려 있다. 그중에서도 ‘문화시평·기타’로 분류된 제5부에는 노동문화운동을 지속해온 사람의 통찰력 있는 시선이 담겼다. 여기에는 민중문화운동협의회와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한 것은 물론 동료작가들과 함께 인천 5·3항쟁에 참여하고 이후 부평지역 민중문화운동을 지속한 시인의 이력이 튼튼한 근거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1984년과 1985년에 쓰인 네편의 글(「삶으로서의 문학」 「노동문화의 실상과 가야 할 길」 「문학소집단의 진정한 운동성 확보를 위하여」 「문화운동이 시대적 배경」)에서 박영근은 노동자들의 의식을 위협하는 자본주의의 문화적 공세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엔고(円高) 시대와 더불어 한국경제가 도약을 이루던 시기, 컬러 티브이가 보급되고 소비문화가 활개를 펴던 그때 시인의 눈에 비친 것은 노동자의 감수성을 위협하는 여러 증상들이다.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멸시와 그에 따른 노동자의 분노, “상업문화와 ‘새마을문화’(2권 653면)의 연합공세 속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기에 이르는 과정, “계층파괴적인 계층출세욕구”(2권 667면), 노동사회를 빠져나와야 할 곳으로 묘사하는 각종 매체 등등. 저 증상들을 불길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공동의 문화적 활동을 통해 민주적 관계를 체험하고 새로운 세계상을 떠올리는 사람들을 현장에서 관찰했으며, 상호 간의 협동적인 관계 속에서 억눌린 자기표현을 이루어내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던 경험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동시에 그가 언제나 “민중사실”(2권 681면)에 대한 이해와 체험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노동문제를 깨닫고 싸우는 과정은 언제나 노동자의 생활과 정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그는 “생활매체”의 필요성도 예민하게 감각했는데, 이 감각에는 “전문 지식인의 굳은 ‘틀’”을 탈피해, “현실과 현장의 이야기 속에서 반성·재구성되”(2권 675면)었던 1970년대 월간 『대화』나 계간 『창작과비평』 그리고 대학사회의 자체 간행물들에 대한 시인의 기억이 작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0년대에 들어서 시인은 자신에 대한 반성적 회고와 함께 당시 위축된 노동문화운동의 지형을 그려내는데, 이 작업은 읽는 이의 마음을 쓸쓸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때부터 시쓰기에 대한 시인의 고백적 서술이 자주 등장한다. 가령 「진정한 고통과 희망」에 실린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그렇다. “문학, 특히 시쓰기란 어쩌면 현실의 패배에 대한 반어(反語)인지도 모른다. 패배의 전 과정을 창작 과정 속에 끌어들여 그것과 싸울 수 있는 전망과 대립시키고, 그 긴장을 시의 공간 속에서 정서적으로 한껏 고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과 역사가 지리멸렬해졌을 때, 비로소 시가 있다.”(2권 703면) 이 말들은 90년대 중반 이후의 그의 시를 다시 읽게 하는 면이 있다.

시 전집 제4부에는 90년대 막바지에 출간된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창작과비평사 1997)의 시편들이 묶였는데, 이 시기 시인은 공장 울타리 바깥을 떠돌고 있다. 강가나 갯벌 혹은 숲을 마주하고 있는 몸은 흡사 무언가를 자주 놓치는 꿈속에 있는 듯이 말한다. 그러자 정말 꿈속에서처럼 되살아나는 것들이 있다. 강물에 비친 나무들이 시인의 눈에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거꾸로 선 꿈 같고(「빗속에서」), 구름 속 얼굴을 가리고 있는 달은 “떨리는 마음이 머리띠를 묶는” 모습으로도 보인다(「내가 나에게 묻는다」). 또한 ‘길’이라는 평범한 제목의 시에서 그는 “나의 시간은 여전히 대치선 뒤에서 떨고 있다”고 적는다(「길」). 이 시들 속에 그려진 강가는 농성장과 다르지 않고, 시인이 침묵과 함께 들어섰을 숲은 자기 스스로를 심문하는 재판정처럼도 보인다. 어쩌면 시인은 이 시절 하늘에 흐르는 구름에서도 자신의 몸을 싣고 갔던 호송차를 보지는 않았을까. 이 시들은 침묵과 비참의 기운을 자주 노출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어떤 진실을 정직하게 불러오려는 시의 ‘반어’로 읽었어야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시 전집 제5부에는 2002년에 출간된 『저 꽃이 불편하다』(창작과비평사)가 담겼다. 이 시기에 오면 ‘몸’이란 단어의 출현 빈도가 꽤 높다. 또 무엇인가를 끊어낼 것 같은 ‘칼날’이 날카롭게 드러나기도 한다. 아마도 이때부터 시인의 몸이 정말로 아팠던 것 같다. 그런데 아픈 몸이 몰고 온 것은 울음이 아니라 “또 다른 생”(「절정」)에 대한 꿈인데, 이것은 불현듯 찾아온 과거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80년대와 90년대가 두서없이 찾아왔고/아 지긋지긋한 불립문자, 임시/막사의 희극, 찢어진/얼굴/나에게는 현실이 없었다/다시 시간이 흘러간다”(「나는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1980년대, 박영근은 작업복 속에 품었던 꿈과 작업복 속에서 눌려 죽임을 당한 몸들의 비명을 함께 적어내려가는 데서 시를 쓰기 시작한 시인이었다. 또한 그는 신작로가 우리에게 인도한 세계가 어떤 곳인지, 고향에서 공장으로 건너온 사람들의 삶이 어떤 폭력과 마주하는지를 그리면서도 당당히 대열을 이룬 노동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말할 수 있던 시인이기도 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세계사적으로는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국내에서는 민주화 이후 보수적 경향의 사회가 형성되고 있을 때 변하지 않은 꿈을 되감아 보여준 이도 박영근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왜 ‘현실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나에게는 현실이 없었다”는 구절에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80년대적 현실’ ‘90년대적 현실’에 대한 반문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즉 변화하는 현실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그것이 가치있는 변화였는가를 되묻는 것이다. 이 물음은 지나온 과거를 지긋지긋하고 임시적이고 희극적이라고 평가하는 목소리를 겨냥한다. 저와 같은 평가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짜 깨달음이나, 농성 막사를 강제로 철거하듯 현실의 얼굴을 찢어 폐기하려는 세력에 대한 분노가 시의 언어를 짧게 끊고 요동치게 했을 것이다. 시인이 꿈꾸는 ‘다른 생’은, 변화한 현실에서 새로운 모색을 요구할지는 몰라도 절실한 희망의 측면에서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시인은 간절하게 지속된 그 희망 자체를 살고 쓰고 싶어했다. 심지어 자신보다도 그것이 오래 살기를 바랐던 것도 같다. 시 전집 제6부에 실린, 동료들이 엮어준 유고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창비 2007)에서 그는 자주 ‘형체 없음’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슬픈 말이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환영의 테두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힌다. 환영이 사라지면 무엇이 남나. 「물소리」의 일부를 옮겨 적는다. “생의 어디쯤에서 나의 사랑도/썩을 대로 썩어/온갖 수사와 비유를 벗고/저렇게 낮은 목소리로/세상의 캄캄한 구멍을/울릴 수 있을까//간절하게 나를 부를 수 있을까”.

사람들의 삶이 그렇듯이 작가의 작품 역시 이 방향으로도 가보고 저 방향으로도 가보는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전집을 읽으며 작가의 전모를 알고자 하는 기대는 배반되기 쉽다. 전집 읽기가 오히려 작가와 작품에 대한 혼돈을 불러오는 경우도 빈번하다. 하지만 박영근의 경우는 달랐다. 곧고 굳은 일관성이 산문과 시를 관통하고 있어, 산문은 그의 시세계에 논리를 부여하고 시는 그의 산문에 작동하는 섬세한 시선을 감지하게 한다. 그러니까 박영근은 분명 그의 전집처럼 두껍게 읽어야 할 시인이다. 마지막으로 이 전집은 우리 시단과 관련한 어떤 불균형을 다시 감각하게 한다. 서두에 꺼낸 이야기와도 조금은 관련이 있다. 복잡한 마음과 복잡한 현실은 하나의 뿌리를 지닌 것이 보통일 텐데, 여전히 복잡한 현실은 건너뛰고 복잡한 마음으로 비약한 작품들이 우리에게는 적지 않고 또 그런 작품들이 사람들 손에 쉽게 가닿는 질서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아야 한다. 기형도는 알지만 박영근은 모르는 세계는 어딘가 수상한 구석이 있다. 박영근과 기형도를 함께 읽는 세계에 더 구체적으로 열린 시(詩)와 미래의 모습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