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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성규 金聖珪
1977년 충북 옥천 출생.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너는 잘못 날아왔다』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 『자살충』 등이 있음.
lamp2630@hanmail.net
검은 돼지와 흰 꽃이 열리는 나무
흰 꽃이 피고, 나무에서 검은 돼지가 열렸다
꽃이 진 자리에서 열린 돼지
지지 못한 꽃송이를 따 먹으며 눈을 뜨는 돼지
제가 발명한 돼지가 자라는 나무입니다!
과학자는 시민들 앞에 게걸스럽게 꽃을 먹는 돼지를 보여준다
여름 내내 잎사귀를 따 먹으며 살이 오르는 돼지
뿌리에서는 돼지코를 닮은 감자가 자라고
여름 내내 돼지가 열린 나무 사이로 비가 내리고
무거워, 나뭇가지가 휘어지고
가을이 오자 익은 돼지가 나무에서 떨어졌다
나무에서는 돼지가 자라고 뿌리에서는 감자가 자란답니다!
뿌리에서 자라는 감자를 먹고 돼지는 스스로 살찐답니다!
킁킁거리며 흙을 파헤치는 검은 돼지
겨울 내내 돼지가 열린 나무 위로 눈이 오고
허기진 돼지는 먹을 것을 찾아 뿌리를 파헤치기 시작했네
돼지야 내년 봄까지 기다려
뿌리에 혹처럼 매달린 흰 감자를 씹어 먹으며 웃는 돼지
어린 돼지가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 아래서
과학자는 생각한다
꽃을 피우고 싶다면 배고파야 하고
배 부르고 싶다면 꽃을 먹어야 하고
말라 죽은 나무 아래서 흰 꽃을 바라보는 돼지
검은 돼지를 바라보며 창백하게 말라가는 과학자
구름이 거대한 감자처럼 뭉쳐져 하늘을 덮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