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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성우 朴城佑
1971년 전북 정읍 출생.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웃는 연습』 등이 있음.
ppp337@hanmail.net
어떤 편지
참, 오랜만이었다
사십여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간
안도현 시인의 집을 찾아갔다
그가 태어나고 자랐다는
까치구멍집을 떠올리며 논둑길에 닿았다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 구리실,
집 앞에 나와 있던 팽나무가 먼저
손을 높이 들고 알은체를 했다
시인은 텃밭 고랑에 들어 있다가
내게 걸어오고 있었는데
손에는 한줌 풀이 들려 있었다
농사가 쉽나요, 시가 쉽나요?
싱겁게 웃던 시인은 언덕 아래
벌개미취와 구절초를 보여줬다
시인은 그새 닭을 식구로 들였고
작은 비닐하우스도 하나 두고 있었다
배추 농사가 제법이었고
두둑에 줄지어 선 무도 머리가 굵었다
잘 먹고 잘 쉬었어요
벌써 가려고? 잠깐만 기다려,
이내 아쉬워하던 시인은 급히
뭔가를 꺼내와 내밀었다 흰 봉투였다
새삼스레 웬 봉투?
시인이 내민 편지봉투에는
아주까리며 금화규,
범부채와 방아 씨앗이
이름표를 달고 들어 있었다
비 그치고 해가 났다고 말하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 맑고 따순 봄날,
서랍에서 씨앗 편지를 꺼내 든 나는
내가 따르는 어르신의 꽃밭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