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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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화 李謹華

200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칸트의 동물원』 『우리들의 진화』 『차가운 잠』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뜨거운 입김으로 구성된 미래』 『나의 차가운 발을 덮어줘』 등이 있음.

redcentre@naver.com

 

 

 

모래알의 반란

 

 

이근화 시집을 샀다

제목은 모래알의 반란

내가 쓴 것이 아니다

품절이다

온라인 중고서점에서 주문했다

책값과 배달비가 거의 같았다

이근화가 이근화 시집을 사다니

 

시문학사 시인선 19번이다

1991년 3월에 발행되었다

내가 중3 때다

행당동 빨간집에서 떡볶이 사 먹을 때다

이근화가 열심히 떡볶이를 먹는 동안

 

이근화 시인은 모래알과 반란을 꿈꿨구나

시를 썼구나

열여섯살의 이근화는 시를 쓰게 될 줄 몰랐다

국어선생님에게 노동가를 배웠을 뿐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의

도가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시인이 될 줄 몰랐는데 시인이 되었고

또다른 이근화 시인이 궁금했다

시집에 연락처가 있었지만

지금은 바뀌었을 것이다

연락을 해볼 생각은 없고

 

가만히 시만 읽었다

모래알들은 왜 들고일어났을까

시인 이근화와 이근화라는 우연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래알들을 쫓아갈까

 

함께 반란을 도모할까

휩쓸려가다 넘어지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나

이근화 시인이 이근화 시인에게 전화해서

이근화 시인 안녕하세요

이근화 시인입니다

 

시를 읽었어요 이근화 시를

혹시 이근화 시를 읽으신 적이 있나요

자디잔 이야기를 해볼까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근화는 아직 제정신이다

 

프로필 사진을 곰곰이 들여다본다

이근화 시인이 이근화 시인을 보고 있다

그런데 내 얼굴은 누가 들여다볼까

미래의 이근화는 혁명을 꿈꿀까

시를 쓰며 이근화들을 만날까

이근화들은 다정하게 속삭일까

 

아직 대답이 없는 이근화들

이근화 시가 여기에 있고

이근화는 시인이니까

제 그림자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모래알도 비웃을 이야기

반란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