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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영광 李永光
1965년 경북 의성 출생. 1998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직선 위에서 떨다』 『그늘과 사귀다』 『아픈 천국』 『나무는 간다』 『끝없는 사람』 『해를 오래 바라보았다』 『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등이 있음.
leeglor@hanmail.net
내일에게
너는 내 눈앞에 또 나타나서
너를 믿어달라고,
웃으며 말한다
너인 것 같은 어떤 것을
믿는 일에 무슨 끝이 있겠느냐고 다정히 웃는
얼굴로 말한다
보이는 것을 못 믿을 순 있어도
안 보이는 것까지 믿지 않을
도리는 없지 않겠냐고,
너는 내 팔뚝을 바퀴벌레처럼 기어가는 네가 아니라
내장 속을 바이러스처럼 떠다니는
너를 보라고 한다
네가 아닌 것 같은 어떤 것을
메스를 쥔 안과의사 앞에서 떨고 있는
아이의 짓무른 눈망울 같을 때가
많았던 나에게 아니,
아이의 짓무른 눈망울 앞에서 메스를 쥐고
부들부들 떠는 안과의사 같을 때가 더
많았던 이에게,
끝은 없다고 끝이 뭐냐고
코로나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려면
인간으로부터 코로나를 보호하려는 것과 같은
수고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냐고,
흘린다,
끝없는 웃음을
너는 모든 시한부 세계의 해맑은 노예,
급소로 무기를 치는 것들이
무기로 급소를 치는 것들을
이기게 하라고?
그런 웃음은 어떻게
웃지?
나는 죽은 채로 걸어 다녔던 오늘,
보이는 것은 보면 되는 것이며
안 보이는 것은 믿을 수밖에
믿을 수 없는 것은 믿는 수밖에
없다는 헛소리에, 무엇보다도,
그치지 않는 웃음에
녹는다
녹아간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너를, 아니
없는 그대로의 너를 본다
네 얼굴은 매일 뜨는 해처럼 티 없이
환하기만 하구나,
한번 깨끗이 씻어본 적도 없이
언제나 한밤중의 너에게,
한밤중의 한밤중에
사랑을 당한다
사랑당한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