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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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 愼鏞穆

1974년 경남 거창 출생.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아무 날의 도시』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나의 끝 거창』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 등이 있음.

97889788@daum.net

 

 

 

수요일의 주인

 

 

신은 화요일에 하늘을 만들었다. 자신의 집을 텅 빈 허공에 띄워놓고

캄캄한 우주, 지구라는 고리에 인간을 거울로 걸어놓았다. 그가 자신을 비출 때마다

신의 슬픔으로 잠에서 깨어나는 우리가 보인다.

 

수요일에 바다를 만들었다. 우리가 태어난 것은 토요일. 금요일을 지나 목요일을 거슬러 우리는 바다에 왔다. 거기 비친 신의 작업실을 엿보기 위하여

 

수평선은 우리가 놓은 사다리의 첫번째 칸이었다. 우리는 나란히 뒷모습으로 앉아

서로를 향해 긴 못을 박아 그 사이 수평선을 가로질렀지.

밀물이 그 한칸을 들어올리고

우리는 다음 칸을 놓기 위해 일어섰는데, 몸으로는 모자란 높이가 있어서 서로에게

박혀 있던 못이 빠지고, 수평선이 물 아래로 떨어지고

 

그때 우리는 연인이 아니라 연인의 초상화 같았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비명을 지르고 있을 평온한 뒷모습으로

 

바다를 보자 나는 알아버렸네. 저 색을 만들기 위해 신은 바다가 필요했다.

거기 비친 하늘이 너무 맑았다. 짐승의 배를 가르고 꺼내놓은 순한 색처럼

 

고래가 온다고 했다. 목요일을 지나고 금요일을 넘어서 마침내 다다른 해변의

일요일이 헤엄치는 것처럼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 시인은 인생을 쓰기 위해 늙어갔고 유령을 알기 위해 죽어갔어.

그리고 슬픔을 보기 위해 고래를 찾아갔지. 그것은 바다에서 왔다가 바다로 돌아간 이야기.

 

고래를 보자 나는 알아버렸네. 슬픔은 신이 자신을 그리다 망친 그림이었다.

화요일을 월요일로 만들기 위해 수요일의 바다를 찢으며 헤엄치고 있었다.

물 밖에서만 숨 쉴 수 있는 고래는

물 안에서만 먹을 수 있는 고래는

우리 사이에서 뽑혀 나간 못 자국을 두 눈으로 뜨고, 한칸의 부러진 사다리처럼

 

바다를 떠다니고 있었다. 물에 젖은 종이와 물에 풀린 물감과 마침내 물에 불은

자화상이 가라앉는 것처럼

 

많은 이야기를 잊었지. 신을 예배당 첨탑에 가두고 쉬는 날에만 깨워서 일을 시켰어.

그리고 기도라는 언어를 발명했지. 그것은 토요일의 시인이 일요일에 신이 된 이야기.

 

서로를 보자 나는 알아버렸네. 사랑을 만들기 위해 신은 인간이 필요했다.

그에게는 늘 이별이 부족해서 여전히 자신의 전능이 인간의 슬픔인 줄 몰랐다.

사랑 안에서만 믿을 수 있는 우리는

사랑 밖에서는 믿을 수 없는 우리는

수요일에 끝나는 이야기가 있어서 썰물을 등지고 돌아섰다. 비명을 기도 속에 남기고

 

인간에게는 늘 기적이 부족해서 누구나 자신의 삶이 슬픔의 종교란 걸 알았다.

 

사랑해. 다른 사람에게 말해도 같은 목소리가 재생된다. 세상의 모든 전화기는 전염병을 앓고 있고 지금 그것은 우리 손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