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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석영 金錫霙
2015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밤의 영향권』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가 있음.
mjoyee@naver.com
과학적 관심
거인은 접혀 있는 지도와 같다
펼쳐야 비로소 볼 수 있는 것처럼
펼쳐야 비로소 접을 수 있는 것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너무 커서
너무 접혀 있다
주머니가 불룩하다
손을 넣었다 뺐을 뿐인데
그 발과는 무관하다
신발을 담았던 주머니는 신발주머니
단 한번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
신발의 크기로 가늠할 수 없는 것
지진과는 아무 상관 없는 것
해변에 떠밀려온 범고래와도 무관한 것
천둥과 번개를 싫어하는 것
밤에 잠을 자는 것
나는 신발과 함께 넘어진다
신발 없이 넘어지는 게 힘들다
신발과 함께 땅이 조금씩 커진다
그의 눈으로 원근법을 배운다
언젠가 그의 셔츠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날
종이 안에서 수많은 점이 목격된다
확대하고 확대해서
나는 겨우 발견된다
내가 모르는 장면
창문은 작아지려고 한다. 방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해.
어디서나 제 몸을 따르려 한다. 흐르려 한다. 천장이 기울고 바닥이 튀어오르려 한다.
창문은 가끔 사시가 된다. 풍경과 방 안을 동시에 바라보려고 한다. 바람이 자신을 통과하기를 자신이 바람을 통과하기를 둘 다이기를 바라고 있다. 누군가 속삭였을 때 창문은 흔들린다. 대체로 창문이 흔들리는 이유는 그것뿐이다.
노을이 질 땐 노을이 붉게 물드는 것을 지켜본다. 사라지기 전이다. 어두워지기 전이다.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을 바라본다. 사라지는 것은 사라지는 것 속에 들어 있어서. 사라지기 전에 창문을 닫는다. 창문은 감정과 상관없이 움직인다. 하루에 한번은 뜨겁고 하루에 한번은 차갑다. 열면 닫히고 닫히면 열린다. 반대로도 움직인다.
창문은 늘 흐르고 있다. 창문은 상태다. 부드러운 물결. 물고기를 담지 않는 수족관이다. 투명하고 불투명하다.
눈을 뜨고 있어도 눈을 감고 있다. 눈을 던질 곳이 없다. 눈이 마주치니까. 보는 눈과 보이는 눈 사이를 창문은 본다.
창문은 놓여 있다. 창문은 펼쳐져 있다. 창문은 궁금하지 않다. 열려 있으면 열린 것이고 닫혀 있으면 닫힌 것이다. 반대는 없다. 풍경은 훼손되지 않은 채로 전달되어야 한다. 아무 의미 없는 구멍처럼. 지금 열린 그것은 꼭 얼린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