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촌평

 

 

변재원 『장애시민 불복종』, 창비 2023

두려움 없이 세계를 만나려면

 

 

조형근 趙亨根

동네 사회학자 remineur21@gmail.com

 

 

201_443

『장애시민 불복종』은 저자 변재원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정책국장으로 활동한 500여일에 대한 기록이다. 코로나19 유행 때 시작된 시설 코호트 격리(의료기관 봉쇄 조치)에 맞선 투쟁부터 근년의 이동권 투쟁, 그리고 단체의 구성원들과 내부 상황에 이르기까지 장애인운동단체의 상근자로서 체험한 사건들을 돌아보고 있다. 당연하게도 이 투쟁기는 장애인권운동, 장애해방운동의 시선을 통해 한국사회의 모순과 부조리함을 폭로하는 고발장이기도 하다.

책 속에는 공적인 삶을 꾸리고 싶던 ‘모범 장애인’이 어느새 거리를 배회하는 투사가 되어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정책과 싸움 사이에서, 가족과 동지 사이에서, 싸움의 당위와 질병에 고통받는 몸 사이에서 고민하고 좌절하고 나아간다. 그러니까 이 책은 막 세상에 나선 젊은이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성장기라는 표현이 너무 범속하다면, 변화의 이야기라고 해도 좋다. 그 변화의 서사를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혹시 청도대남병원이라는 이름이 기억나는가? 2020년 2월 19일, 국내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이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 거주하던 정신장애인이었다. 곧이어 두번째, 세번째 사망자가 나왔다. 그리고 한국사회는 코호트 격리라는 낯선 용어를 접하게 된다. 거리두기가 최선의 예방책이라면서 이 정책은 오히려 사람들을 좁은 공간에 가두고 최대한 밀집시켰다. 환자가 속출했다. 2월 25일까지 7명의 정신장애인이 사망했다. 정부는 오히려 코호트 격리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했다. “죽음은 불평등했다. 재난의 빗장은 단절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 고립된 이들, 힘없고 약한 이들에게 먼저 열렸다.”(52면) 이후에도 코호트 격리는 전가의 보도처럼 남발됐다. 방역마스크 지급, 코로나19 강제검사 행정명령, 재난지원금 지급, 집회 및 시위의 자유 제한 등 중요한 정책 실행과정에서 공공연하게 ‘차별’이 행해졌다. 청도대남병원 사태는 이른바 K-방역의 신화가 장애인과 노숙자, 이주민 등 가장 취약한 이들의 희생 위에 쌓아올린 모래성 같은 것임을 보여주는 전조였다.

장애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시선과 태도는 때로 섬뜩할 정도여서 그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무서워지기도 한다. 여기 그런 사례 하나가 있다. 2019년, 중증장애인 일자리 시범사업에 참여했던 1994년생 장애인활동가 설요한씨가 실적 압박에 시달리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뇌병변장애인인 그가 맡은 일은 동료 중증장애인을 설득해서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시키는 것이었다. 한달에 66만원을 받는 댓가로 매달 새로운 장애인 참여자 4인을 발굴해야 했고, 1인당 5회의 상담 및 8건의 서류를, 4인 기준 각 20회, 32건의 실적을 이행해야 했다. 실적이 모자라면 미리 준 월급을 회수하겠다는 위협을 받았다. 결국 그는 “실적이 부족하다”는 메모와 “미안하다. 민폐만 끼쳤다”는 말을 남기고 투신했다. 누군가를 설득해서 일하게 만드는 건 애당초 어렵다. 심지어 중증장애인을 설득해서 일자리를 알선하는 업무는 “노동정책을 전담하는 고용노동부 직원도 해낼 수 없는 난제”(199면)다. 그걸 동료 중증장애인에게 고작 한달 66만원에 외주를 주고 해결하려 했고, 그마저 회수하겠다고 협박했다니.

이제 장애인운동의 ‘불법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됐다. 저자는 라디오에 출연해서 “왜 규칙을 어기고 법을 어기냐”는 질문을 받고서 설명하거나 항변하지 않는다. “현재 장애인 이동권 운동은 시민 불복종의 형태입니다. 그 탓에 시민 여러분께서 많이 불편하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여러분의 인내 덕분에 이 사회가 여기까지 바뀔 수 있었습니다. (…) 장애인들끼리 정치인을 찾아가서 ‘엘리베이터, 저상버스 설치해주세요’ 얘기하는 것만으로는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감하는 시민께서 함께 불편함을 호소하고 빨리 처리하라고 요구하는 순간부터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 시민 여러분이 불편함을 감수해주신 덕분에 한국 사회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감사의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223~24면)

책에는 이어서 논리적인 주장들이 덧붙는다. 그저 발랄한 해시태그 달기 운동 정도로는 성과를 얻을 수 없다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제도를 만들려면 현재 법제도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법체계에 순응하는 인간은 그 너머의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당당한 반론들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라디오에서는 한마디 자기변호도 없이 미안함과 고마움만 전한다. 그 어찌할 수 없음에 마음이 울컥하게 된다.

이 책을 한 젊은이의 성장기로 읽을 때 가장 인상적인 일화 중 하나가 저것이었다. 억울하고 분한데 자신을 낮출 수밖에 없게 되는 이야기. 저자가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장애를 극복하고 멋진 성취를 이루는 ‘슈퍼장애인’이 되는 길을 걷던 사람이라고 보아도 좋다. 그는 “장애인 차별의 문제를 구조가 아니라 개인의 관점에서 이해했다. 나에게 주어진 고난을 이겨내는 노력이 있다면, 성장과 성공이라는 보상이 주어진다면, 자기계발이라는 업적이 인정된다면, 나는 나의 장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때껏 살아왔다.”(128면) 명문대 대학원까지 마쳤고, 장애인에 대한 부당한 차별에 대해서는 맞서 싸울 줄도 알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싸움이었다. “구조적 차별에 저항한다기보다는 나까지는 입장시켜달라는 호소에 가까운 갈등”(249면)이었다.

불평등한 세상을 살다보면 억울하고 화나는 일을 겪기 마련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불평등한 세상의 윗자리로 올라가서 세상을 고치라는 게 세상의 교훈이다. 나를 포함한 소위 ‘86세대’ 대다수가 선택한 길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해법이다. 그 길로 가고 있던 한 젊은이의 행로가 우연히 바뀌는 과정에 박경석 이규식 박옥순 같은 여러 활동가들의 이름이 계속 등장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만남’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두려움 없이 다른 세계를 만난 이야기, 아니 다른 세계를 만남으로써 두려움을 이겨낸 이야기 말이다. 이렇게 만남 속에서만 우리는 개인적인 해법을 넘어 사회적 연대로 나아가게 된다.

조형근

저자의 다른 계간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