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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전욱진 田旭鎭
2014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여름의 사실』 등이 있음.
wukjin22@gmail.com
피부와 마음1
나는 바짓단을 접고 맨발로
한 손에 신발 한 손에 여행가방
눈이 녹으면서 드러나기 시작한
사람들을 주우러
손으로 툭툭 털거나 입으로 후 불어
얼굴을 확인한 다음
쥐고 있는 손을 펴면
내 마음이 들려 있고
그걸 입안에 넣고 잠잠히
녹기만을 기다린다 십오분 정도
몸에 좋은 것이 입에는 쓴 법이다
어른들의 말을 되새기면서
줄어든 사람의 몸은 이제 볼 일 없지만
두고 떠난다면 쓰레기 무단투기이므로
여행가방 안에다 차곡차곡 쌓아두고
집으로 가 종량제봉투에 다시 담아 배출한다
아예 처음부터 쓰레기봉투를 손에 들고
땅만 보며 다니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뭐 그렇게 자랑할 거리라고
대부분은 나처럼 여행가방을 이용한다
그런데 이렇게나 작아지는 걸 보면
마치 사라지기를 바랐던 거 같은데
왜 아주 사라지지는 않을까
그게 나는 항상 의아하고
누군가의 손에 들린
사소한 내 모습도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이
자주 나를 웃게 하고
전망 좋은 방2
그때 나는 벽에 붙어 사는 꽃처럼
여름이 필요했고
영혼 없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높은 데 위치한 방을 하루 빌린
어느날 밤에 있었던 일
창문에 무언가 세게 부딪혔고
살짝 금이 간 자리 주변으로
새까만 깃과 털 붉은 핏자국
시절이 불러 여기까지 날아온
새가 그렇게 머물렀다
단순한 도형으로 남은 새는 어쩌면
저기 구름 위 흰 수염을 단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알리기 위한
계시의 한 종류일지 몰랐지만
그 무렵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기로
스스로 굳게 마음먹은 상태였고
좋은 전망을 위해 높이 지은 건물에
새가 날아와 부딪혀 죽어서는 안 돼
생각도 했지만 다음은 어찌해야 할까
이미 땅에 떨어진 새의 주검에게
봄노래를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아예 모르지 않았다
아침에 눈떴을 때 불이 난 줄 알았다
피가 옮아 묻은 빛에 객실이 새빨개서
그저 커튼을 치거나 얼른 방을 나서거나
다시 눈 감고 잠을 더 청할 수도 있었지만
이제 조금씩 까맣게 타들고 있는 이곳이
내 마음에 든다, 바깥에서 말하던 그것을
다만 나는 내 영혼이라 믿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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