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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허유미 許有美
1979년 제주 출생. 2016년 『제주작가』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우리 어멍은 해녀』 등이 있음.
eojini104@daum.net
소라 통조림 공장
엄마가 소라를 한짐 캐면
나는 통조림공장에 져 나르고
공장 마당에 나온 언니는 화상 입은 손으로 소라를 받는다
언니가 양철 깡통 위에 앉아
펄펄 끓는 소라 솥을 지켜보며
녹슨 파이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왈츠 리듬으로 세는 동안
나는 의자만 생각했다
왜 바다에는 의자가 없을까
왜 통조림공장에는 의자가 없을까
누가 길에서 소라색을 물었을 때
이렇게 길게 되물어 대답을 했다
색은 빛이 희미하게 비출 때 진해지려 하고
찌그러진 깡통을 펴려고 이마를 찌그러뜨리고 웃는
아이들 발가락에서 왈츠는 시작되었다며
언니는 빈 소라 구멍 속에 노래를 넣어주고 사라졌다
소라를 한짐 내어주는 엄마에게
이것이 희망인지 절망인지 물었을 때
절망이라도 다 건져내면
바다에 희망이 남지 않겠냐 말하고 사라졌다
뜨거운 공장과 차가운 바다 사람들의
한쪽 눈에서 아침이 나오고
다른 한쪽 눈에서 밤이 나왔다
돌고래, 엄마
스크루에 머리가 잘려나가도
돌고래는 안다
지느러미에 업힌 게 제 새끼라는 걸
무리에서 뒤처져 혼자 세상 먼 거리를 알아야 해도
돌고래는 안다
업힌 새끼가 숨을 쉬고 있지 않다는 걸
물결보다 높이 새끼를 올리다
떨어지면 아래로 내려가 다시 받쳐 올리고
떨어지고 올리고 떨어지고
돌고래는 안다
바다도 푸른 눈물 동동 구르고 있다는 걸
엄마는 숨비 소리 작게 내쉬고
파도는 조용히 철썩인다
돌고래가 새끼 돌고래 숨 쉬며 놀고 울던 자리
찾아다니다 죽을 거라는 걸 안다
살기 위해서 죽기 위해서 매달리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