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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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 崔智恩

1986년 서울 출생. 2017년 창비신인시인상으로 등단.

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 등이 있음.

choi_ce-@naver.com

 

 

 

계속해서 겨울 이야기

 

 

불을 끄고 이불을 덮는 사이

 

아홉번의 겨울이 지나갔다고 했다

 

불을 끄고

이불을 덮으면

더 또렷해지는 지난 일 때문에

 

자야지, 불을 꺼야지,

이불을 덮어야지,

여기까지 오는 데

아홉번의 겨울을 보내야 했다는 너의 이야기를 듣다

나는

 

깜박 잠에 들었다

 

열린 창문으로 부드럽고 가벼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나는

어리둥절하게 깨어

 

여기까지 오는 데

아홉번의 겨울이 지나갔네,

 

여린 바람을 맞으며

혼자 말했다

 

꿈이 꿈으로 남을 때까지

꿈이 꿈인 줄 알 때까지

꿈을 꾸고 다시

꿈을 거기 두고

 

아홉번의 아흔아홉번이라 해도

겨울을 보내고 다시 보내기

 

문득 내가 기다리던 것이 이게 아닐까

 

계속해서 나는

내가 계속하기를

 

음악 같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겨울을 모르지만

계속해 혼자

말했다

 

아홉번의 겨울을

 

지나왔다고

 

 

 

너는 담에 기댄 작은 목련나무처럼

 

 

건넛방

할머니 성경책 넘기는 소리

약포지 뜯는 소리

놓친 알약이 굴러가고

되감는 묵주

다시,

성경책 넘기는 소리

밤늦도록 성경책

넘기는 소리

간간이 중얼거리는

긴 숨소리

건넛방 할머니

몸 긁는 소리

밤이면 더 붉어지는

소리 가려운 소리 미치는 소리

푸른 봄밤 어둠을 찢는

소리

건넛방

가려워 가려워 너무 가려워

같이 긁고 있는 소리

문지방이 가렵고

벽이 가렵고

가려워 너무 가려워

창밖의 어린 목련나무처럼 듣고 있는 어린 네 숨소리

오늘 밤

아무도 너를 찾지 않고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오늘 밤

건넛방

돌아가신 할머니 성경책 넘기는 소리

한장 한장

봄을 움직이는 소리

글을 모르던 할머니 성경책 넘기는 소리

네가 되어버린 소리 너를 보여주는 소리 그러니까 너보다 너를 더 잘 아는 사람의

오늘 밤

네 안에서 또렷해지는 소리

너를

일으키는 소리

한번 더 너를, 살리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