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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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구 『편집자의 시간』, 나의시간 2023

보슬비 편집론

 

 

이하나

편집자,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smallgreenthing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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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 주소를 유심히 살피는 편이다. 그 사람에 대해 상상해볼 수 있는 힌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서다. 오랫동안 동경해온 출판사에 입사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사내 메신저 계정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쩐지 무작정 닮고 싶은 선배들에 가까워질 작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바람으로 찾아본 메신저 목록에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메일 주소가 있었다. ‘editkim@ changbi.com’. 갓 첫발을 내디딘 신참 편집자로서 우러러볼 수밖에 없었다. 주소의 주인은 김이구 선생이었다.

애석하게도 내가 입사했을 무렵 선생은 이미 일선에서 물러나셨던 터라 곁에서 보고 배울 기회가 흔치 않았다. 그럼에도 이따금 멀리에서 넌지시 전해주시는 가르침은 어김없이 자상하고도 정확했다. 어느 분야 책이나 살뜰히 눈여겨보셨고, 실무자에게 긴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편집자’라는 직업을 한권의 책에 빗댄다면 ‘김이구’라는 이름은 그 정본(定本)에 가까울 것이다. 『편집자의 시간』은 ‘김이구’라는 정본을 펼쳐볼 기회를 누리지 못한 후배 편집자들에게 그의 육성이 들려오는 듯 반갑고 귀한 책이다. 1984년 창작과비평사에 입사해 일생을 편집자로 지낸 선생이 『대산문화』 등에 연재했던 유고를 모은 이 책에는 편집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기는 물론 자부심과 애환, 고민과 실수까지 진솔하게 담겼다. “판권에 저자와 역자, 편자만 이름을 올렸을 뿐이어서” 편집자는 “머리말이나 후기에 ‘편집부 아무개의 노고에 감사한다’ (…) 등으로 ‘데뷔’했”(33면)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대체로) 판권에 담당자 이름을 밝히거니와, 편집자가 저자로 나서 저마다 편집론을 적극적으로 펼치기도 한다. 누구보다 책에 애정이 깊은 이들인 만큼 편집자들이 쓴 책에는 두루 귀담을 이야기가 많지만, 1980년대에서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 세대에 걸친 출판 풍경을 통사적으로 망라한 편집론, 어린이·청소년문학과 성인독자 대상의 한국문학을 통섭하여 살핀 편집론은 이 책이 유일하리라 생각한다. 출력한 종이 대신 PDF로 교정지를 주고받고, 빨간 펜 대신 터치펜으로 교정사항을 적는 오늘의 편집자들에게 사료로서도 가치가 크다. 활판인쇄의 시대가 저물며 이제는 본뜻과 멀어져 어원을 모르는 경우가 흔한 ‘조판(組版)’의 유래, 마찬가지 연유로 고유한 쓰임이 사라져 ‘돼지꼬리 두개’와 혼용되는 ‘돼지꼬리 하나’의 본래 역할, 판권에 적힌 인쇄일과 발행일의 차이까지, 편집자라면 일상적으로 쓰면서도 무심히 넘겼을 출판 상식이 빼곡하다.

이 책은 교정 지식과 어문규범뿐 아니라 편집자가 새겨야 할 자세 또한 조목조목 짚는다. 흠모하는 저자의 신작을 맡는 것도 물론 설레는 일이지만, 아직 아무도 모르는 신인작가를 제 안목으로 발견하는 순간은 손에 꼽힐 기쁨 중 하나다. 첫눈에 다소 질박했던 투고작 뭉치에서 ‘공선옥’이라는 ‘신인’을 발굴해낸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저릿한 감동이 있다. 황석영 대하소설 『장길산』(초판 현암사 1984, 개정판 창작과비평사 1995)을 다시 펴내며 이전 판본에 누락되었던 신문 연재 한회분 원고를 찾아낸 일화에서 역시 빈틈없는 편집자의 눈이 빛난다. 곳곳에 스며 있는 은근한 유머는 특히 선생답다. 공지영 소설집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창작과비평사 1999)가 “‘존재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로 졸지에 정반대 뜻의 제목으로 바뀌어”(41면) 실린 에피소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도 살며시 웃음이 나기도 한다.

큰 족적을 남긴 편집자의 글을 읽고 나니, 그 길을 따라 걷는 일원으로서 나라면 이 책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헤아려보게 된다. 2013년에 출간된 선생의 평론집 『우리 소설의 세상 읽기』(작가)에 실린 글 중 평론가인 동시에 편집자로서 면모가 배어 있는 「매개 지식인으로서 편집자의 즐거움과 괴로움」 「어린이청소년문학상 공모, 과연 ‘내가 제일 잘나가?’」 등은 『편집자의 시간』을 펴내며 재수록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글의 성격상 이 자리에 어울릴뿐더러, 예상 독자가 얼마간 제한적인 평론집에 비해 출판, 편집에 관심을 지닌 이들과 폭넓게 만날 수 있는 지면이 주어졌다면 더 좋았을 법하다.

책의 저자 소개글에 고인의 약력이 소상히 실려 있으나, 집필하고 엮은 책만 언급된 것은 아쉽다. 백낙청 선생이 뒤표지 문안을 보고 칭찬 한마디를 건네셨다는 신출내기 시절의 추억이 어린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Ⅱ』(창작과비평사 1985)를 필두로, 한국출판문화대상을 수상한 ‘재미있다! 우리 고전’ 시리즈 등 선생이 아꼈을 대표 편집 도서를 연보처럼 수록했더라면 한결 뜻깊지 않았을까. 그가 기획·편집한 책의 목록은 그 자체로 우리 출판 지형의 주요한 흐름을 일람할 수 있는 하나의 계보이기도 하다. 유년에 기원한 과학소설을 향한 애정으로 제정한 한낙원과학소설상, 청소년문학 분야에서 ‘소설’만이 아닌 ‘시’ 창작을 독려하고 개척한 ‘창비청소년시선’ 시리즈 등은 비평작업을 병행한 선생의 평론가로서의 공로이기도 하지만, 오랜 편집자 생활로 터득한 현장감각과 실무 추진력 덕분에 실현 가능했다.

1980, 90년대 출판사 풍경, 2000, 2010년대 어린이·청소년문학 출판 동향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귀한 가치이지만, 그런 한편으로 수록 글 중 가장 오래된 글은 2002년, 가장 최근의 글조차 2016년에 쓰인 터라 2024년인 지금 시점에서 보기에는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로 읽히는 대목들도 있어 안타깝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우리말 클리닉’에 나날이 갱신되는 표준국어대사전의 표제어와 용례가 반영되지 못한 것이 사뭇 그러하다. 늘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았던 선생이라면 연재했던 글을 엮으며 최신 출판 경향, 바뀐 어문규정에 대해 가필했음직하다. 아무리 훌륭한 ‘편집자’라고 해도 채울 도리가 없는 ‘저자’의 빈자리를 애틋하게 실감한다.

사내 메신저에서 눈에 띈 ‘editkim’이라는 아이디에 동경의 마음을 품었던 신입사원은 훗날 그의 개인 계정으로 메일을 받게 되는데, 그 아이디는 ‘boslbi’였다. 그러고 보면 ‘보슬비’는 ‘edit’를 선생의 어법으로 달리 말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편집자의 시간』에서 선생은 “하급 편집자는 문장 전체를 뜯어고치는데, 중급 편집자는 문장 절반을 뜯어고친다. 상급 편집자는 지시 대명사 하나를 추가하거나 조사를 바꾸거나 문장부호 하나를 수정해, 필자의 문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오문을 바로잡고 의미를 명확하게 한다. (…) 상급 편집자의 수정은 편집자가 실토하지 않는 한 심지어 필자가 수정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다”(48~49면)라고 쓴다. 여기에서 말하는 좋은 편집자란 보슬비 같은 편집자가 아닌가. 오는 듯 안 오는 듯 예사 알아채지 못할 여린 빗줄기여도 보슬비가 내리고 나면 세상은 분명 전과는 달라져 있다. 시야는 선명해지고, 신록은 생기를 띤다. 장대비처럼 자기 이야기를 큰 소리로 앞세우고 싶어하는 시대이지만, 첫봄에 씨앗을 싹틔우는 것은 여전히 보슬비다. 작은 목소리로 세상에 새로운 가능성 하나를 밝히는 큰 힘을 보슬비의 편집론에서 배운다.

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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