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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용출 『청화 전기』, 한울 2023
단절된 한국 ‘염불선’의 재건
정혜정 丁惠貞
동국대(WISE) 연구교수 jhjnim@hanmail.net
김용출 작가의 『청화 전기: 위대한 스승』이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본질을 돌아보게 하고, 불교계의 “위대한 스승”을 다시 만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저자는 수년 동안 청화스님(1923~2003)의 800여개 법문과 저서, 역주서와 편지 등을 모아 정독했고 청화와 관련된 여러 작가의 책들을 기초자료 삼아 전기를 완성했다. 또한 청화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도 진행하면서 그의 생애와 사상을 탄생에서 열반까지 시기별로 정리했다. 저자의 노고가 녹록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한국불교가 깨달음과 수행을 단박에 완성한다는 돈오돈수, 간화선 일색이던 상황에서 청화스님은 고려시대 이후 단절된 한국 정통의 ‘원통불법(圓通佛法)’과 ‘염불선(念佛禪)’을 재건했다. 그 영향으로 2009년 조계종이 염불수행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스님의 업적은 불교사적 의의가 크다. 청화는 법문에서 자주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먼저 할 일은 진리를 구하는 일’이라 하였고, 그것은 곧 ‘진여불성(眞如佛性, 우주 모든 존재의 근원)이 나의 자성(自性)이자 우주 근원이며 우주 전체의 생명임을 깨닫는 일’이라 하였다. 그리고 그 깨달음에 이르는 방편이 다양함을 힘주어 말했다. 지금도 도봉산 광륜사에서는 청화스님의 가르침과 염불선 수행결사를 이어가고 있고, 사찰 입구에는 맑게 미소 짓는 청화스님의 사진이 걸려 있다.
저자는 청화스님을 한마디로 ‘수십 년 동안 일종식(하루 한끼)과 장좌불와(長坐不臥), 토굴수행을 감행하며 원통불교의 중흥과 염불선의 대중화를 이뤄낸 위대한 수행자’로 묘사하고 있다. 저자가 청화의 업적을 ‘원통불법의 중흥’과 ‘염불선의 대중화’로 짚어낸 것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원통불법의 중흥이란 붓다 석가모니를 비롯해 중관, 유식, 기신론 등의 핵심적인 불교철학과 혜능, 원효, 의상, 보조 지눌, 태고 보우 등 여러 선지식들이 펼쳐온 ‘정통불법(正統佛法)’의 부흥을 말한다. 청화는 이러한 정통불교를 바탕으로 교(敎)와 선(禪)의 회통,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회통, 여래선과 조사선의 회통을 말했고, 더 나아가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간 회통과 대화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원통종교’를 제창했다.
청화의 원통불교를 이루는 근간은 ‘삼신일불(三身一佛)’ 사상이다. 이는 청화의 스승 금타스님이 『금강심론』 「보리방편문」에서 말한 ‘삼신사상’을 계승한 것이고 그 근거를 혜능의 『육조단경』 「귀의일체삼신자성불」에서 찾은 것이다. 청화는 처음에 스승의 「보리방편문」이 용수의 『보리심론』에서 설명된 공부 요령을 간추린 것이라 하였지만 말년에 가서는 혜능의 『육조단경』에 근거한 것으로 수정했다(284면). 이 수정 사실을 밝힌 것 역시 저자의 공로라 할 것이다. 원래 불교에서 삼신이란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神)을 말하는데, 이는 종파마다 개념이 다양하다. 다만 청화의 삼신일불 사상은 매우 중요하고 특히 독창적이라는 점에서 부연설명이 필요한데 책에서는 이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아 아쉽다. ‘혜능-금타-청화’로 이어지는 삼신사상은 모두 일맥상통하면서도 각각 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혜능이 말한 삼신(청정 법신불, 원만 보신불, 천백억 화신불)은 금타에 의해 기신론의 관점에서 재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법신은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의 체대(體大), 보신은 원융무애지(圓融無碍智)의 상대(相大), 화신은 진망(眞妄)화합인 용대(用大)로 개념 지어진 것이다. 그리고 청화에 이르러서는 ‘마음의 본체로서 공성(空性)의 청정 법신’ ‘지혜와 자비가 원만한 성품의 공덕으로서 원만 보신’ ‘드러나는 현상의 일체 존재가 모두 화신’이라는 ‘삼신일불의 아미타불’로 제시되었다. 청화는 삼신일불의 관계를 달, 달빛, 그림자로 비유했다. 염불이란 이러한 삼신이 하나 된 아미타불을 생각〔念〕하는 것이다. 여기에 청화의 삼신사상과 더불어 염불선의 독창성이 드러난다.
청화가 제창한 염불선은 ‘실상염불선(實相念佛禪)’으로 호명되었다. 실상이란 ‘불생불멸’과 ‘생멸’을 아울러 가리킨다. 불생불멸은 공성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보이는 생멸의 현상만을 볼뿐 일체 존재의 본성은 알지 못한다. ‘현상만 보고 근본 본질을 모르는 사람들, 물결만 보고 물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들, 현상만 보고 현상의 본체인 진여불성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청화는 우주만유가 모두 진여불성이고 그 본성이 밝게 비추는 반야의 지혜를 견지할 것을 촉구하였다. 나와 우주만유의 본질이 진여불성이라는 것을 확철하게 체득하여 믿고, 그 진여불성의 지혜와 우주만유가 나와 하나인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 그리하여 반야의 지혜를 생각마다 여의지 않고 염불을 수행하는 것이 실상염불이다. 이는 진여불성인 부처와 내가 본래 하나인 자리로 돌아가는 공부이고, 자신과 우주만유의 본래 성품을 찾아가는 공부이며, 자신의 진여불성을 체득하여 그 자리를 지키는 공부이다.
한편 실상염불선은 청화의 미국 전법활동을 계기로 ‘실상염불의 생명화’라는 과제도 안게 되었다. 기독교가 “하나님을 생명으로 구하는 간절한 흠모심”을 갖는 것에 비해 우리는 붓다를 생명으로 신앙적으로 잘 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332면). 이에 그는 진여불성을 생명으로 신앙적으로 구할 것을 제창했고, 진여불성의 “그 근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자 부처님”이며 ‘그 마음자리를 지키는 것이 수행이요 참다운 신앙’이라 하였다(344~45면). 청화는 우리 사회가 혼란을 면치 못하는 것도 인간의 근본 문제, 즉 근본 무명을 다스리지 못한 데서 온다고 했고, 남북통일 과정에서 우주만유가 모두 진여불성뿐이라는 진리의 견지에서 남북이 서로 마음을 열게 하는 데 불교가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기라는 생각을 버리고 우주라는, 민족이라는 공통된 입장을 취할 때 우리는 통일을 열어갈 수 있다는 것이 청화의 지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