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희곡

 

 

김수려

김수려 金秀麗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4학년. 1999년생.

sonane149@gmail.com

 

 

 

질주1

 

 

배역

돼지(나)

 

돼지1

돼지2

돼지3

 

어린 T

T의 엄마

T: 분뇨 운반 기사. 30대 초반.

A : 축사에서 일한다.

A의 아빠

 

돼지(나)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돼지가 되기도 한다.

 

고속도로 위, 고속도로 아래 축사, 그리고 그 축사 아래 땅.

횡으로 구분된 세가지 공간에서 이야기는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1장. 냄새

 

돼지들이 무대 위에 있다. 돼지들은 각자 다른 음을 맡는다. 그 소리는 함께 커졌다가 작아지고, 또 개별적으로 커졌다가 작아지기도 한다. 그 소리는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차가 빠르게 달리는 소리 같기도 하다.

돼지들이 쌓은 소리 위에 돼지(나)가 있다.

 

1. 고속도로 위

 

돼지(나) 고속도로. 아마도 이곳이 고속도로, 맞을 거예요. 나는 고속도로 위에 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이 고속도로 아래에는 아주 축축한 땅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주 축축한 땅 아래에는 어머니가 계십니다. 나는 고속도로 위에 있는 돼지입니다. 어머니는 제가 자식들 중 가장 착한 돼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들 또한 제가 형제들 중 가장 착한 돼지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 혼자 고속도로 위에 있습니다. 사실 저는 항상 우리를 떠나는 상상을 했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우리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드넓은 초원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하늘의 별이 쏟아질 듯하고, 멀리서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땅. 강은 아주 넓어서 드넓은 초원을 가로지르며 뻗어 있고, 나는 강물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한발 한발 걷겠죠. 아주 멀리서 들리던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상상하는 겁니다. 그러면 아무 소리도 듣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어떤 돼지도 걷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 고속도로에서 별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차들은 아주 많습니다. 모두 창문을 굳게 닫고 절대 멈출 수 없는 속력으로 달립니다. 이런 곳에서 차를 멈춘다는 것은 위험한 짓이죠. 차창에 비치는 햇살이 반사되어 제 눈을 찌릅니다. 지나가는 차, 차 유리에 비치는 햇살, 이 모습도 멀리서 보면 흐르는 강처럼 보이겠죠.

 

어린 T와 T의 엄마는 고속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 안에 있다. T의 엄마가 운전하고, 어린 T는 뒷좌석에 앉아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T의 엄마 (전화를 받으며) 그래, 그래서 의사한테 갔더니 글쎄 뭐라는 줄 알아? 어머니, 제가 정확하게 말씀드려요? 아드님은 성병이에요. 그러는 거야. 이제 10살인데. 아니야. 물어봤어. 아니라고 그러지. 누구는 미쳤다고 하고 누구는 바이러스라고 하고. 가는 의사마다 말이 달라. 지금 고속도로 위야. 응. 그래도 일단 가보는 중. 할 수 있는 걸 해야 하니까. 도착하면…… 도착하면 뭐라도 알 수 있겠지. 적어도 성병인지 아닌지, 전염성이 있는 건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거야. 그래. 도착하면 연락할게.

창문 좀 닫을래?

어린 T 더워요.

T의 엄마 냄새나잖니.

어린 T 무슨 냄새요?

T의 엄마 창문 닫으면 더 시원할 거야. 에어컨 틀었어. 엄마, 창문 닫는다?

어린 T 무슨 냄새가 나요?

T의 엄마 비료 냄새야.

어린 T 비료 냄새가 싫어요?

T의 엄마 글쎄. 오늘 같은 날 맡기 좋은 냄새는 아니야. 아주 무덥고 잠깐만 시동을 끄면 차 안의 아이가 쪄 죽을 날씨에 말이야. 이런 날은 피톤치드 냄새가 필요해. 방향제도 던져버리고 싶다니까. 더군다나 이렇게 장시간 운전에 그런 냄새는 멀미를 유발할 수 있단다.

어린 T 나도 맡아보고 싶어요.

T의 엄마 너도 맡을 수 있어. 네가 어릴 때 너에게서 진동했던 냄새란다. 기억해봐.

어린 T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전 너무 어렸으니까.

T의 엄마 고작 몇년 전인걸.

어린 T 설명해주세요. 어떤 냄새인지.

T의 엄마 ……

어린 T ……

T의 엄마 나도 네 나이 때는 뭐든 상상할 수 있었지. 하늘이 빨간색이라고 믿으면 그렇게 보였어. 옷장에서 괴물이 튀어나오길 기대하며 매일 밤을 기다렸지. 배가 아프면 에이즈가 옮았다고 생각했고 집에 혼자 있는 시간엔 부모님에게 발생할 교통사고를 떠올렸다. 너는 나보다 상상력이 더 좋은 아이인 거야. 너를 임신했을 때 클래식을 너무 많이 들어서일까.

어린 T 저는……

T의 엄마 베토벤을 들었어. 태교로.

어린 T 저는 모르겠어요.

T의 엄마 나는 그런 상상을 계속하면 언젠가 현실이 될 것 같았어. 그래서 멈췄지. 너는 어쩌면 겁이 없는 아이일 수도 있어. 두려운 게 없는 거야. 아무도 널 공격하지 않고 모두가 널 위해 존재하니까. 세상은 네게 친절하고 또 널 필요로 해. 어쩌면 아토피 같은 걸까? 무균지대에 살아서 어딘가 고장이 난 거지.

어린 T 상상이 아니에요.

T의 엄마 그래. 나는 냄새를 못 맡는 널 위해 고속도로를 세시간째 달리고 있단다. 어쩌면 이미 멀미를 하고 있는 걸 수도 있고.

어린 T 저 너무 더워요.

T의 엄마 졸음쉼터가 나오면 쉬어 가자. 사실 난 한번도 졸음쉼터에 들러본 적이 없지만, 오늘 처음 해볼 수 있겠지. 이렇게 멀미가 심한 적이 없었어. 이게 다 차 안의 냄새 때문이야. 입맛이 떨어지는 냄새야. 머리가 아파. 우리가 가야 하는 곳은 어쩌면 더 심한 냄새가 날 수도 있어. 시골에 있는 치료원이니까. 축사가 있는 동네라고 했어.

어린 T 돼지요?

T의 엄마 모르겠다. 돼지도 있고, 닭도 있겠지.

어린 T 귀여울 것 같아요.

T의 엄마 아기 돼지는 그럴지도.

어린 T 그 동네에 가면 제가 나을 수 있어요?

T의 엄마 그러길 바라야지.

어쩌면 내 탓일까? 네가 먹기 싫다는 것을 억지로 먹여서 아니면 네가 입기 싫다는 옷을 억지로 입혀서?

도착해보면 알 수 있기를 기도해보자. 일단 잠깐 쉬어야겠어. 멀미가 너무 심해. 저 앞에 졸음 쉼터가 있어.

 

시간이 흐르고 여전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차 안.

 

T 그리고 그날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그날 이후로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렀어. 나는 어느새 자랐고. 나는, 어느새인가 내가 이해할 수 없던 모습으로 자랐고, 어렸던 나는 사라졌어. 그날을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반복해서 이야기했지만. 왜 그럴 때 있지 않아? 분명히 나한테 있었던 일인데 정말 남 일처럼 느껴질 때 말이야. 아득해지면서—그러니까 그 느낌, 뭐냐면…… 아, 뭐라고 해야 하지. 딱 맞는 말은 못 찾겠어. 아무튼 난 정말 싫어해. 그런 거. 그래! 안개 낀 거! 안개 낀 것 같다고 해야겠다. 나 안개 정말 싫거든. 앞이 보이지 않잖아. 운전자한텐 최악이지. 특히 고속도로 운전할 때 안개가 끼면 사고라도 날 것 같잖아. 긴장을 해야 하지. 그래도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어. 최선을 다해서 앞으로, 가고 있다고.

 

2. 고속도로 아래 축사

 

A는 땅에 잔뜩 깔린 비닐 위를 빗자루로 쓸고 있다. 아버지는 비닐 아래에 누워 고속도로를 바라보고 있다.

 

A 아버지.

A의 아빠 ……

A 또 잠을 설쳤어요. 아침마다 눈에 눈곱이 한가득 껴서 눈이 안 떠진다니까요. 악몽을 꿨어요. 계속 같은 꿈. 미쳐버릴 지경이에요.

A의 아빠 ……

A 아버지.

A의 아빠 ……

A 거기서 뭐 하세요?

A의 아빠 ……

A 거기서 뭘 보고 계신 거예요?

A의 아빠 ……

A 아버지,

A의 아빠 ……

A 뭐가 보이세요?

A의 아빠 멀리서 사람이 오고 있어.

A 사람이요?

A의 아빠 외부인 출입금지인데.

A 이런 외진 곳에 사람이라니. 축사 관련된 사람들하고 신부님들을 빼곤 다들 얼씬도 안 하잖아요.

A의 아빠 13년 만인가?

A 아! 오늘 신부님들이 오시나?

A의 아빠 우리 마을에?

A 네. 아버지가 꼭 우리 집에 들르라고 신신당부하셨잖아요.

A의 아빠 우리 집에?

A 우리 집에 들러서 같이 밥을 먹자고 하셨잖아요.

A의 아빠 밥을?

A 잊으시면 어떡해요. 신부님들이 오시면 준비를 서둘러야겠네. 닭도 잡고.

A의 아빠 닭은 어디에 있지?

A 닭은 서쪽에 있죠.

A의 아빠 서쪽은 어디에 있지?

A 서쪽은 오른쪽이에요.

A의 아빠 남쪽에는?

A 남쪽에는 강이 있고요.

A의 아빠 돼지들은?

A 돼지는 이제 없잖아요. 잊으시면 어떡해요.

A의 아빠 돼지는 이제 없잖아요.

A 네. 이제 한마리도 남지 않았어요.

A의 아빠 오늘 오면 돼지를 못 드시겠네. 조금 더 천천히 걸어오라고 말씀드려.

A 신부님들은 걸어오지 않아요. 차를 타고 오세요.

A의 아빠 그러면 저기 고속도로를 걷고 있는 사람은 누구니?

 

A는 고속도로를 바라본다.

 

A 고속도로는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곳이 아닌데요.

A의 아빠 분명히 봤는걸.

A 눈곱이 계속 껴서 헛것을 보시는 거예요.

A의 아빠 아니야. 저기를 봐.

A 아무것도 없다니까요, 글쎄. 하여튼 노인네, 고집은.

A의 아빠 네가 가보는 게 좋겠다.

A 오늘따라 왜 이러실까?

A의 아빠 ……

A 돼지 묻은 뒤로는 안개가 걷히질 않네. 눈곱에 귀지에 콧물에 기침에. 돌아버릴 지경이야.

 

3. 돼지 이야기

 

축사 아래 땅. 서로 엉켜 있는 돼지들.

 

돼지1 지금부터 잠깐 돼지 이야기.

돼지2 중년여성을 대상으로 돼지 태반의 경구 섭취에 따른 피부노화 개선효과 연구

돼지3 호흡기 질병이 있는 돼지 개체 식별 연구

돼지1 돼지 껍질 콜라겐 첨가량을 달리한 브라운소스의 품질 특성에 관한 연구

돼지2 돼지 발성음 분류에 관한 연구

돼지3 동물농장에 나타난 캐릭터의 상징성 연구

돼지1 꿀꿀꿀

돼지2 오잉크 오잉크

돼지3 그로와 그로와

돼지1 크로와 크로와

돼지2 히잉

돼지3 바우 바우

돼지1 야옹

돼지2, 3 그건 좀

돼지1 가열기구에 따른 조리 방법이 돼지고기의 품질 특성에 미치는 영향

돼지2, 3 그건 좀

돼지1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

돼지2 돼지감자

돼지3 그건 안 되지

돼지1 멧돼지

돼지2 돼지풀

돼지3 붉은 돼지

돼지1 흙돼지!

돼지2 도야지

돼지3 돼지 저(猪), 돼지 시(豕), 돼지 돈(豚), 돼지 해(亥), 암퇘지 차(猪)

돼지1, 2 올—

돼지2 우린 어떻게 돼지가 되지?

돼지3 동결 정액을 이용한 돼지 인공수정 현장 적용에 관한 연구

돼지1 돼지 인공수정 심부 주입

돼지3 모돈 발정 체크

돼지1 자연교배?

돼지2 엄마 보고 싶다.

돼지3 엄마는 어딨어?

돼지1 저기 밑에.

돼지2 첫째는?

돼지1 아마 첫째 밑에 엄마. 막내는?

돼지2 막내 보고 싶다.

돼지3 여긴 없어.

 

 

2장. 사고

 

1. 다시, 고속도로

 

돼지(나)는 여전히 고속도로 위에서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고 있다.

 

돼지(나) 고속도로 위로는 하루에도 수백 수천 수만대의 차들이 지나갑니다. 축축한 땅에 있을 때는 뭐가 이렇게 흔들리나 싶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땅이 꿀렁거렸습니다. 이렇게 고속도로 위에 서보니 이해가 갑니다. 저 같은 돼지 100마리는 한번에 태울 수 있을 기다란 차가 지나가고, 레미콘 차가 지나가고, 아주 무거운 액체를 싣고 달리는 차도 지나갔습니다. 그것도 아주아주 빠르게 지나갑니다. 말 붙일 생각도 못했습니다. 저런 차가 넘어지면 옆에서 달리던 차들은 어떻게 될까요? 그런 사고도 일어나곤 하겠지요. 아주 빠르게 달리는 차들은 줄지어 갑니다. 돼지 100마리를 한꺼번에 태울 수 있는 기다란 차 다음에 레미콘 차 그다음에 아주 무거운 액체를 싣고 달리는 차. 많고 크고 빠른 차. 어딘가를 향하는 차. 나는 기다리는 중입니다. 이 고속도로를 건너기 위해서.

 

T는 여전히 달리는 차 안이다.

 

T 이렇게 큰 차를 이렇게 빠른 속도로 몰 수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아? 나 같은 인간이 100명은 들어갈 거야. 뭘 싣고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이 길 위에선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어. 멈출 수는 없지. 누구라도 멈추는 순간 사고가 나고 말 테니까. 고속도로 위에서 누가 내 차를 들이받으면, 상상만 해도 웃기지. 똥을 뒤집어쓰는 거야. 얼마나 고약한 냄새가 날까. 누구는 똥을 가득 싣고 가는 내 차를 행운의 상징이라고 하던데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맘 편할 거야. 행운이라고 써 붙여놓으면 만사형통이지. 돼지, 닭, 소, 개, 사람 분뇨를 다 섞어. 그래야 내가 한번만 왔다 가도 되거든. 인건비를 줄여야지. 까딱하다간 다 인건비로 나가기 십상이니까. 분뇨 모아두는 통, 안을 본 적 있어? 도시에선 그런 거 못 보지. 돼지 키우는 축사 가면 분뇨 저장조라는 게 있거든. 거기에 200톤은 들어가. 돼지 똥이 200톤. 금방 쌓여. 그게 폭탄이야. 거기서 가스가 나오는데 사람이 그거 마시면 질식해서 죽어버려. 썩은 가스거든. 그거 만만하게 보면 안 돼. 내가 지금 싣고 가는 거, 폭탄인 거지.

 

돼지(나)가 끼어들어서 함께 말한다.

 

돼지(나) 지금?

T 아, 이 구간에선 꼭 악취가 나.

돼지(나) 실패합니다.

T 근데 매번 까먹고 여기서 창문을 열어.

돼지(나) 휘청거리는 차.

T 똥 운반하는 사람도 이런 냄새는 싫다고.

돼지(나) 저렇게 큰 차는 마치 고속도로 밖으로 튕겨나갈 것 같습니다.

T 이런 냄새는 싫고말고.

돼지(나) 돼지 100마리를 태운 차가 넘어지면 모두 고속도로 밖으로 탈출할 텐데.

T 저기 무슨 사고라도 났나?

돼지(나) 왜인지 웃기다.

 

T의 엄마와 어린 T가 말한다.

 

T의 엄마 왜 웃니?

어린 T (입을 막는다)

T의 엄마 왜 웃었어?

어린 T 엄마.

T의 엄마 왜.

어린 T 웃긴 걸 봤어요.

T의 엄마 뭔데?

어린 T 거짓말 아니에요.

T의 엄마 그래.

어린 T 진짜로.

T의 엄마 ……

어린 T 저기 뒤에 돼지들이 날아가고 있었어요.

T의 엄마 태오야.

어린 T ……

T의 엄마 또 거짓말이구나. 넌 정말 못 말리는 애야.

어린 T ……

T의 엄마 넌 정말 못 말리는 애야.

 

차는 졸음쉼터에 멈춘다.

 

T의 엄마 난 많이 참았어.

 

T의 엄마는 차에서 내려 어린 T가 타고 있는 뒷좌석 문을 연다.

 

T의 엄마 내려.

 

어린 T가 내리면 T의 엄마는 어린 T를 두고 출발한다.

멀리서 전화 연결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2. 다시, 고속도로 아래 축사

 

전화 연결음은 A가 전화를 받으면 멈춘다. A의 아빠는 여전히 비닐 아래 누워 있다.

 

A (전화를 받으며) 네. 네. 뭐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뭘 더 해야 하죠? 잘 안 들려요. 귀에 귀지가 가득 찼어요. 뭘 하라고요? 한번만 더 말해봐요. 네. 그런 건 몰라요. 시키는 대로 했어요. 네. 일단은요. 저희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아. 네. 오신다고요. 그래요. 안개가 너무 심해요. 눈곱도 계속 끼고. 네? (정적) 한번만 더 말해주세요. 알겠습니다.

A의 아빠 신부님?

A 아니요. 군인들요.

A의 아빠 숨어!

 

A의 아빠는 비닐 안에서 몸을 더 작게 웅크린다.

 

A 사람들이 민원을 넣었대요. 냄새가 난대요.

A의 아빠 항상 났잖아. 똥 냄새.

A 이제 안 나요. 돼지가 없잖아요.

A의 아빠 그럼?

A 죽은 돼지 냄새가 난대요. 강 따라 돼지 냄새가 진동한대요.

A의 아빠 강은 어디에 있지?

A 평상시엔 들여다보지도 않으면서. 돼지나 처먹었으면서.

A의 아빠 ……

A 아버지, 군인들이 왔을 때, 다들 돼지 똥 냄새 싫어했잖아요. 난 평생 맡은 거라 그런지 그렇게 사람들이 싫어하는 게 새삼스럽더라고요. 그런데 돼지가 없어지고 나니까 이제 알겠어요. 돼지 묻은 데에서 냄새가 올라와요. 계속 쓸고 닦아도 없어지지 않는 냄새.

A의 아빠 신부님들 오늘 와?

A 아버지는 괜찮으세요? 그 밑에서?

A의 아빠 따듯해.

A 저는 더 못 참을 것 같아요. 저도 못 참겠어요. 이젠.

 

A는 고속도로를 바라보며 말한다.

 

A 아버지.

돼지들요. 군인들이 말해줬는데, 그 차에서 전염된 거래요. 저 고속도로를 타고 와서는 분뇨 받아 가던 차요. 그 차가 축사들을 돌아다니면서 전염병을 옮겼대요. 그래서 병에 걸린 돼지건 안 걸린 돼지건 다 땅에 묻으라고 한 거래요.

A의 아빠 신부님들 오늘 와?

 

3. 사람 이야기

 

축사 아래의 땅.

 

돼지1 지금부터 잠깐 사람 이야기.

돼지2 질문. 사람은 왜 후회를 하는가.

돼지3 그러게, 후회할 짓을 왜 하냐.

돼지1 사람은 왜 사랑을 하는가.

돼지3 그러게, 후회할 짓을 왜 하냐.

돼지2 사람은 왜 자책을 하는가.

돼지1 어느날 한 인간이 무심코 평소처럼 주문한 배달음식 봉투를 열고

돼지2 아니. 배달 기사의 실수로 잘못 배달된 배달음식 봉투를 열고

돼지3 아니. 주문한 것보다 더 비싼 음식을 받게 된 한 인간이 배달음식 봉투를 열고

돼지1 마주한 통뼈가 든 족발

돼지3 냄새.

돼지2 내가 주문한 게 아닌데.

돼지1 김이 모락모락 나고 갓 삶은 것 같은 족발에서

돼지3 풍겨오는 느끼한 냄새에 질식할 것 같은 감정을 느끼는 다른 한 인간.

돼지2 어릴 적 고속도로에 버려져 뙤약볕에 구토감을 느꼈던 한 인간이 맡았던 비료 냄새—

돼지1 와 같은 냄새를 족발에서 느낄 한 인간.

돼지2 그리고

돼지3 한 분뇨 기사의 배달 실수로 인해 섞여버린 닭 돼지 소 말 개 인간의 똥.

돼지2 실수?

돼지1 실수는 아니지.

돼지3 분뇨는 비료가 되고 섞이게 된 바이러스.

돼지2 실수라고는 할 수 없잖아.

돼지1 이입하지 마.

돼지2 실수는 아니잖아.

돼지3 또 한건의 배달로 전국에 퍼지게 된 비료.

돼지2 억울해. 억울해.

돼지3 배달 기사가 고속도로를 지나다 맡게 되는 악취.

돼지1 비료 냄새와는 다른 악취.

돼지2 질문. 사람은 왜 고통을 느끼는가.

돼지1 전염병의 선제 조치로서 시행된 정책에 의한 부작용

돼지3 주변 강으로의 침출물 유입이 악취에 미치는 영향 연구

돼지2 엄마가 돈가스 사줄게.

돼지1 구토. 이물감. 어지럼증.

돼지3 뙤약볕 아래라서.

돼지2 다음에 이어질 한 인간의 고백에 대해 들어보자.

돼지1 그리고 이어질

돼지3 붕괴사고.

 

4. 어린 T 이야기

 

다시 고속도로 위.

 

T 원래는 그러지 않는데, 라디오를 틀었어. 괜히 그런 날 있잖아.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은 날. 라디오 주파수를 이리저리 맞춰봐. 지지직거리는 소리 사이로 목소리가 섞여서 들리다가 점점 선명해져. 웃음소리는 듣기 싫었어. 지나치게 밝은 목소리도 싫고. 어릴 때 엄마 차에서 자주 듣던 라디오가 있었는데, 뭐였는지 기억은 안 나. 뭐, 기억이 난다고 해도 아직 하고 있진 않겠지. 그렇게 장수할 것 같은 프로그램은 아니었거든. 클래식 같은 걸 내내 틀어줬어. 계속 주파수를 맞추다 그냥 뉴스에 정착하기로 해. 뉴스에서는 어떤 강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어. 유독 귀에 꽂히는 거야. 멀리서 보면 이 고속도로도 강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차 한대가 지나갈 때마다 가로등 불빛이 창문에 부딪치면. 뭐 그런 잡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어린 T 그다음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T 강물이 썩어서 악취가 진동한대. 근처 축사의 오염물이 강에 흘러 들어가고 있었나봐.

어린 T 시간이 아주 빠르게 지나가는 느낌.

T 그런 냄새는 아무래도 견디기 힘들지. 그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어린 T 저는 어느새 자랐고, 어느새— 내가 이해할 수 없던

T 풍경이 보였어.

어린 T 이해할 수 없던

T 와—

어린 T 모습으로 자랐고 어렸던 나는 사라졌어. 왜 그럴 때 있지 않아? 분명히 나한테 있었던 일인데 정말 남 일처럼 느껴지는. 그런 거. 그래도 최선을 다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모를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어. 앞으로, 가고 있다고.

 

5. 다시, 고속도로 아래 축사

 

A는 비닐 위에, A의 아빠는 비닐 아래에 누워 있다. A는 고속도로를 보면서 아버지와 대화한다.

 

A 아버지.

A의 아빠 ……

A 신부님들이 늦으시네요. 이제 자야 할 시간인데. 아직도.

A의 아빠 ……

A 이 동네는 정말 적막한데, 너무 시끄러워서 잠들기가 힘들어.

A의 아빠 ……

A 그나마 일할 때는 지쳐 쓰러져서 잠들기라도 했지만.

A의 아빠 ……

A 어디서나 저 고속도로가 보이고 들리니까.

A의 아빠 ……

A 이제 정말 우리 둘 남았어요. 다 떠나고.

A의 아빠 ……

A 아버지는 고속도로가 지어지기도 전부터 이 마을에서 사셨잖아요.

A의 아빠 모래도 나르고, 똥도 지고, 돼야지 이고, 흙 다지고, 붕대 묶고……

A 아버지가 이 마을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않고 사는 동안, 이제 저 고속도로가 전국으로 이어진대요.

A의 아빠 일을 했지.

A 이제 일 없어요. 일 안 해도 돼요.

A의 아빠 왜?

A 처음 아버지가 이곳에 오게 된 건 병 때문이었다고요. 전염병에 걸려서 격리된 거였다고. 이젠 약도 생기고 백신도 생겼지만, 아버지는 계속 여기에 계셨죠.

A의 아빠 돼지 키우면서 살지.

A 나라에서 몇마리 준 돼지 키우면서. 돼지들은 점점 불어났지만, 마을엔 새로 태어나는 사람이 없어요. 이제 이곳에 오는 사람은 없으니까.

A의 아빠 신부님들 오늘 와?

A 돼지 묻은 곳에서 나는 악취. 눈은 안 보면 그만이고 귀는 멀어지면 그만인데 냄새는 어디에 있든 쫓아와요.

A의 아빠 ……

A 돼지들이 꿈에 나와요. 꿈에 나와서 자꾸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줘요. 처음엔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었는데 이제 점점 다가와요. 떼로 달려와서 저랑 아버지를 구멍 속으로 미는 거예요. 우리 둘 다 필사적으로, 안 빠지려고 손에 잡히는 건 뭐든 잡죠. 손톱 사이에 흙이 끼는 게 느껴지고, 그렇게 버둥대다가 어느새 아무것도 잡히지 않으면 벌떡 깨는 거예요.

A의 아빠 ……

A 저 고속도로, 저렇게 가까이 있는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높고 빠르니까. 어떻게 해야 닿을 수 있죠?

A의 아빠 ……

A 군인들이 다시 와서 돼지 묻은 땅을 보고 갔어요. 땅이 움직이고 있대요. 너무 독한 가스가 나와서 땅이 그걸 못 버티는 거래요. 그래서 냄새도 나는 거래요. 비닐로 최대한 덮었는데 땅이 꿈틀꿈틀거려요. 거기에 돼지를 한마리 한마리 밀어넣으면서 제가 했던 생각이 있는데요, 그 돼지들, 그러니까 전염병에 걸린 아니면 전염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 선제 조치로 죽어야 하는 돼지들. 한마리 한마리 소리 지르는 돼지들.

A의 아빠 그만해.

A 그 구멍이 우리 마을인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이 마을에 그 구멍을 파고 있는 게 웃기잖아요. 우리가 시키는 대로 거기에 돼지들을 파묻고 있는 게. 저 고속도로 밑에, 묻힌, 우리가. 씨발.

A의 아빠 신부님들 오늘 안 와?

 

 

3장. 만남

 

T와 어린 T는 여전히 달리는 차 안이다. T의 차는 A가 누워 있는 땅 위를 달릴 예정이다.

 

어린 T 난 분뇨를 가득 실은 엄청나게 큰 차를 몰고 있어. 내 목적지는 분을 말려서 퇴비로 만드는 처리장이야. 난 축사들을 돌아다니며 분뇨를 모아. 그건 거의 온종일을 고속도로에서 보낸다는 뜻이기도 해. 처리장에 도착해서 모은 분뇨를 다 옮기고 나서야 나는 네가 기다리고 있는 아파트로 방향을 틀 수 있지. 오늘 저녁은 뭐야? 당신은 항상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들로 준비해놓잖아.

T 그런데

어린 T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T 눈앞에 보이는 풍경.

어린 T 저런 건 처음 보는데.

T 분명히 봤어.

어린 T 너와 함께 먹을 저녁.

T 그러니까 이건

어린 T 못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했어.

T 사고라고 해야겠지.

어린 T 사고라고 할 수 있을까?

T, 어린 T (함께) 거대한 소리가 들리고

T 잠시 pause.

어린 T 고속도로 한가운데였는데

T 잠시 pause.

어린 T 뒤차는?

T 모르겠어. 모든 게 멈췄어. 잠시 동안.

어린 T 그럴 수가 있나?

T 이다음에 어떻게 돼?

어린 T 돼지가 하늘로 떠올랐어.

T 내가 쳤어?

어린 T 응. 엄청나게 큰 소리와 함께.

T 피는?

어린 T 모르겠어. 고속도로 한가운데였는데, 돼지를 쳤어.

T 아니야. 내가 본 건. 그러니까,

어린 T 그러니까,

T 거짓말 아니야.

어린 T 응.

T 고속도로가 무너지고 있어.

어린 T 말도 안 돼.

T 말은 안 되지. 우리가 만난 것도.

어린 T 그래서 어떻게 됐어?

T 속도를 줄일 수도 없었어.

어린 T 날았어?

T 돼지와 함께.

어린 T, T (함께) 날아가고 있어. 지금.

어린 T 지금.

T 옆으로 보이는 철근들.

어린 T 잔해들.

T 엄청나게 기다란 차.

어린 T 가로등.

T 분뇨 처리 차.

어린 T 누구도 멈추지 못할 속도로 달려가던 모든 것들.

T 돼지.

어린 T 내가 돼지인가?

T 우리가 같이 떨어지고 있으니까.

어린 T 나는 어린 너인데?

T 이 순간이 영원하진 않겠지. 떨어지고 있으니까.

어린 T 아니. 날고 있으니까.

T 비료 냄새라고 하기엔 너무 독한 냄새가 코를 찔러.

어린 T 너와 함께 먹을 저녁.

T 아아—

어린 T 넌 내가 뭘 싫어하는지 항상 잊어버려. 엄마처럼.

A 아버지. 저거 보이세요? 고속도로가 무너지고 있어요.

 

고속도로가 무너지면서 돼지(나)를 제외한 모든 인물은 곧 축사 아래 땅에 닿게 된다. 모두가 완전히 닿으면 그 이후부터는 돼지들과 인간들의 대화가 섞여서 진행된다.

 

돼지1 그러니까 이건 한 사람이 고속도로에서 돼지 한마리를 치면서 시작된 악몽.

돼지2 시작된 추락사고. 급정지 주의. pause.

돼지3 고속도로가 땅과 만나기 일보직전.

돼지1 우리 모두가 함께 겹쳐질 때 pause.

돼지2 아니. 이건 한 사람이 자기가 키우던 돼지 753마리를 구멍 속으로 밀어넣으면서 시작된 악몽. 한 사람은 자신도 살처분 대상이란 걸 깨닫는다.

돼지3 그리고 가장 착한 돼지였던 막내.

돼지2 막내 보고 싶다.

돼지1 막내는 자신을 붙잡는 손길, 뿌리치고, 그 사람, 구멍 속으로 밀어넣었어.

돼지2 그리고 달렸겠지.

돼지3 달렸지.

돼지1 걘 항상 달리고 싶어했어.

돼지2 아니, 걘 걷고 싶어했어.

돼지3 걘 강을 보고 싶어했지.

돼지1 그리고 그 사람

돼지2 구멍 속으로 들어와서

돼지3 지독했지.

돼지1 다들 그 사람 위로 올라서서

돼지2 밟았잖아.

돼지3 디딘 거지.

돼지1 복수한 거지.

돼지2 통쾌한가?

돼지3 아마도.

돼지2 죄책감?

돼지3 아마도.

돼지2 죽었지?

돼지3 아마도.

돼지1 pause. 번식 효율 향상을 위한 돼지 사육 관리 연구

돼지2 돼지 품종의 교배조합 간 육질 특성 비교

돼지3 도체 특성, 사육환경, 출하 방법 관리가 돼지 도체 가격에 미치는 영향

돼지1 이입하지 마.

돼지3 pause.

돼지1 고속도로 기둥이 빨려들어오고 있어.

돼지2 땅이 축축해서 그렇지.

돼지3 땅이 끈적끈적해서 그렇지.

돼지2 우리가 썩은 땅이 고속도로를 집어삼키고 있었어.

A 아버지 조금 있으면 우리 머리 위로 떨어져요.

돼지1 한 분뇨 운반 기사의 실수로 섞여버린 분뇨.

돼지2 실수?

돼지3 인건비 절감.

돼지1 한 의사의 실수로 전염병이 되어버린 병.

돼지2 돼지 키우면서 살지.

A의 아빠 돼지 키우면서 살지.

돼지1 한순간의 실수로 아이를 두고 떠나버린 엄마.

돼지2 실수?

돼지1 한 시절의 실수로 모두 묻어버린 돼지들.

돼지2 실수?

돼지3 실수?

돼지1 돼지 묻은 데서 올라오는 곰팡이.

돼지2 썩은 땅.

돼지3 냄새.

돼지1 침출물.

돼지2 강으로 흘러들어가.

돼지3 냄새.

T 떨어진다.

돼지1 졸음쉼터에는 절대로 가지 않는 한 분뇨 기사의 졸음에서 시작된 악몽.

돼지2 아니. 시끄러운 고속도로 소리에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한 한 사람의 졸음에서 시작된 악몽.

돼지3 끈적해진 땅으로 빨려들어가는 고속도로.

T 거짓말 아니야.

돼지1 아무것도 모르는 채 너를 기다리고 있는 와이프.

아파트에서 시켜 먹을 저녁식사

돼지2 에서 맡은 냄새.

돼지3 침출물.

T 아니야.

돼지3 아니라고 하겠지.

T 내가 주문한 게 아닌데.

돼지2 아니라고 하겠지.

T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삶은, 족발,에서 풍겨오는 느끼한 냄새 같은 거

돼지1 질색하니까.

T 당신은 내가 뭘 싫어하는지 항상 잊어버려.

A 아버지, 조금 있으면 우리 머리 위로 떨어져요.

돼지1 괜찮아.

돼지2 이미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돼지3 자기가 키우던 돼지 753마리, 한명의 인간, 구멍 속으로 밀어넣은 한 사람.

A 아버지. 또 잠을 설쳤어요. 아침마다 눈에 눈곱이 한가득 껴서 눈이 안 떠진다니까요. 게다가 같은 꿈. 미쳐버릴 지경이에요.

돼지1 그런다고 끝나지 않는 꿈.

돼지2 사실은 우리가 짓밟았던 한 인간의 머리통에서 시작된 악몽.

돼지3 우리를 짓밟았지.

돼지1 땅에서 피는 곰팡이.

돼지2 침출물.

T 고속도로에선 아무도 멈출 수 없어. 누구라도 멈추는 순간엔

돼지1, 2, 3 다 튕겨져 나갈 테니까.

T 너랑 만난 적 있어.

돼지1 나도.

돼지2 나도.

돼지3 나도.

돼지2 막내는?

T 만난 적 있지.

돼지1 어디까지 갔어?

T 고속도로 위.

돼지2 고작?

돼지3 달렸어?

T 아니, 서 있었어.

돼지2 고작?

돼지3 강은?

A의 아빠 강은 어디에 있지?

T 강에선 악취가 났어.

돼지1 막내는 어디까지 갔어?

T 고속도로 위. 서 있었어. 아니, 달리고 있었어. 나한테 달려들었어. 그리고 날았어.

돼지2 날았대!

돼지3 날았대!

돼지1 고속도로는?

돼지2 무너졌지.

A 돼지들이 썩어서 땅이 물러진 거야.

땅이 꿈틀거렸어. 계속.

T 이건 내가 꾸는 악몽이야.

A 이건 내가 꾸는 악몽이야.

T의 엄마 졸음쉼터에서 아이에게 내리라고 했어.

A 아버지.

T의 엄마 태교로 클래식을 들었어.

A의 아빠 일을 많이 한 날이면 가위에 눌렸지.

T 졸음쉼터엔 가고 싶지 않아.

돼지1 질문. 인간은 왜 후회를 하는가.

A 이건 내가 꾸고 있는 악몽이야. 돼지들을 모두 묻고 위에 비닐을 여러장 새로 깔았어. 냄새가 덮일 때까지. 그런데 냄새는 계속해서 나. 땅은 계속 꿈틀거려. 계속 안개가 깔리고 계속 먼지가 날아와.

T 이건 내가 꾸고 있는 악몽이야. 엄마는 나를 데리러 다시 돌아왔지만, 숨 막힐 것 같은 더위와 냄새. 아지랑이.

돼지1 이건 내가 꾸고 있는 악몽이야.

돼지2 이건 내가 꾸고 있는 악몽이야.

돼지3 이건 내가 꾸고 있는 악몽이야.

돼지(나) 아니.

이건 내가 꾸고 있는 악몽이야.

우리가 함께 겹쳐졌을 때 그 순간에 꾼 악몽이야.

분뇨 기사의 차에 몸을 부딪치고 잠시 pause.

도저히 멈출 수 없을 것 같은 속도로 질주하는 그 차에 닿았을 때

그 차를 잠시라도 멈추게 했을 때 꾼 악몽이야.

내가 날았을 때 꾼 악몽이야.

내가 날았을 때 강을 봤어.

강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마치 큰 구멍과도 같았어. 너무 검었고 깊었고 넓었어.

아무 생명도 살지 않는 것 같아 보였어.

조용했어.

내가 날았을 때 밤하늘.

어두웠어. 아무것도 없었어.

마치 큰 구멍과도 같았어. 너무 검었고 깊었고 넓었어.

별도 없고 달도 없었어. 나만 있었어.

조용했어.

고속도로는 단단하고 절대 무너질 일이 없지.

살고 싶어졌어.

그 고속도로 위에서 차들은 어두운 밤을 달릴 거야.

고속도로 아래 냄새나는 축사에는 새로운 돼지들이 똥을 싸고

그 땅 아래에는 열심히 썩고 있는 돼지들이 있겠지.

살고 싶어졌어.

이건 강에서 나는 악취를 맡은

고속도로 위 누군가만이 되새길 이야기.

누군가는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고 또는 젊었을 어머니가 되지.

하지만

돼지는

결국 죽을 거야.

 

암전. 크고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막.

 

 

심사평

 

제22회 대산대학문학상 희곡 부문 응모작은 총 79편이다. 방송이나 영상 매체 중심적인 시대에 비춰볼 때 희곡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많은 관심과 애정에 비례하여 응모작들이 다루는 소재 또한—AI, 안드로이드, 생명공학, 기상, 환경 등의 문제부터 동시대에 활발하게 이슈화되고 있는 성소수자, 인권, 차별, 혐오 등에 이르기까지—폭넓게 다양해졌으며 극의 전개와 구성, 갈등 등을 다루는 표현방식도 전반적으로 안정적이며 구태의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자 원고지 100매 내외의 단막극(희곡)에 대한 장르적 이해도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단막극은 시간의 제약이 있는 만큼 선명한 갈등 구조와 최소한의 장면전환을 통한 밀도 유지, 정제된 대사를 통한 상징성과 함축성이 중요한 요소임을 밝혀둔다.

예심을 거쳐 4편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심의에 올랐다. 「누군가 바다에 대해 말할 때」는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사건을 이끌어가는 구성이 돋보였으며 극적 갈등과 긴장감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작가의 입심에 신뢰가 갔다. 하지만 환경파괴로 인한 기상이변과 해수면 상승이라는 극의 설정이 마무리 부분에서 의도적으로 강조되면서 일종의 교훈극 같은 인상을 준다는 점이 아쉽다.

「우리는 손가락을 걸어 맹세를 하지」는 트라우마를 독특한 스타일로 표현한 작품이다. 마치 한편의 그로테스크한 잔혹동화 같은 이 작품의 미덕은 간결한 대사와 호흡, 쉽게 접할 수 없는 매력적인 상상력에 있다. 하지만 다소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들이 극을 지나치게 난해하게 만들어 집중을 방해한다.

「엉덩이 없는 사람」은 무대에 대한 이해와 활용에 매우 신뢰가 가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좌변기를 무대 중앙에 놓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유니크한 설정과 발랄한 언어유희는 희곡의 연극성을 극대화해 역동적인 무대를 구현한다. 하지만 지나친 언어유희가 문제의식을 의도치 않게 공허하게 만들 수도 있음을 유념하기 바란다.

「질주」는 전염병에 걸려 살처분된 돼지들을 통해 문명과 환경 파괴를 묵시론적으로 고발하고 있는 작품이다. 무대는 3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3개의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엮인다. 이러한 구조적 희곡쓰기 방식은 이 작품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이 작가만이 가지고 있는 참신한 개성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명확한 주제의식과 시종일관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작가의 필력과 도발적인 상상력은 여느 작품들보다 월등히 돋보였다. 다만 희곡의 무대화 과정에서 작가의 도발적 상상력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는 숙제로 남는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참신한 개성과 명확한 주제의식, 도발적 상상력을 보여준 「질주」를 당선작으로 최종 선정하였다. 개성있고 패기 넘치는 젊은 극작가의 데뷔를 통해 우리 연극계가 한층 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아울러 젊은 극작가들의 건필을 빈다.

차근호 최치언

 

 

당선소감

 

이 작품에선 질주하는, 질주해야만 하는 세계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그 견고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무엇을 외면해왔는지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창문을 굳게 닫고 멈출 수 없는 속도로 달려온 우리가 잠깐이라도 멈춰볼 수는 없을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거대하고 공고해서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는 것들, 오랜 시간 이어져 내려온 것들 앞에 무력해질 때 일시정지를 시도해볼 수 없을까. 그 ‘pause’의 시간들이 쌓인 곳에서 작은 균열이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모든 변화가 시작될 균열을 함께 꿈꿔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악몽이라 할지라도요. 그리고 그 변화가 초래할 또다른 댓가와 희생을 이번엔 외면하지 말자는 다짐으로 마지막 문장을 적었습니다. 이 희곡이 소개될 수 있어서 기쁩니다.

 

하나의 희곡에는 하나의 세계가 있다고 알려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합니다. 전형을 마주하는 순간 뒤돌아 전력으로 달리면 원형을 만날 것이라는 말씀을 계속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포기하려 할 때마다 붙잡아주신 많은 손들과 기꺼이 품을 내어주는 정슨, 언제나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가족에 감사합니다.

 

좋아하는 작가를 꼽지 못하던 제가 이제는 망설임 없이 당신의 이름을 말합니다. 함께 연극을 만드는 동료들에게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짓고 부수기를 반복하는,

그러기를 마다하지 않는 ‘임시극장’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겁 없는 당신들과 함께 있으면 어느새 제가 상상하지 못한 곳에 도착해 있습니다.

 

앞으로도 정진하겠습니다.

김수려






  1. 곽수아의 ‘왕궁 프로젝트’ 스터디(2020)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다음의 여러 문헌자료와 기사, 인터뷰에서 도움을 받았다. 문선희 『묻다』(책공장더불어 2019),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사탄탱고』(조원규 옮김, 알마 2018), 수나우라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이마즈 유리·장한길 옮김, 오월의봄 2020), 이동호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창비 2021), 수전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이재원 옮김, 이후 2002), 최유미 『해러웨이, 공-산의 사유』(도서출판b 2020), 「생매장 돼지들의 절규」(한겨레TV 2011.2.25), 「돼지 살처분 서두르다 하천 핏물에 오염… 취수 중단 사태」(부산일보 2019.11.12), 「돼지 매몰지 주민들의 고통… 악취 어느 정도길래?」(KBS뉴스 2019.10.24), 「익산 왕궁축산단지 환경개선」(연합뉴스 2013.2.3), 「농가의 악몽, 가축 전염병」(투데이코리아 2022.10.31.~11.4), 「“분뇨에 묻혀…” 가축농장 정화조서 가스 질식」(SBS뉴스 2013.5.4), 장희경 「전염병 관리와 국가의 역할」(시민과세계 2021년 하반기호), 송승리 외 「여수국가산단 주변지역 악취발생 원인조사」(한국대기환경학회 2021), 정일영 「노동의 부정을 통한 최대효율의 추구」(역사연구 2022년 5월호) 등이다.

    ‘1장 3. 돼지 이야기’에서는 다음 논문의 제목을 인용 혹은 수정 인용했다.

    정은영·김영숙 「중년 여성을 대상으로 돼지 태반의 경구 섭취에 따른 피부 노화 개선 효과 연구」, 한국웰니스학회지 제18권 제3호, 2023.
    박진성·김상철·김형석 「호흡기 질병을 가진 돼지 개체 식별을 위한 데이터 수집 시스템」, 제어로봇시스템학회 자료집 2021.
    김세한·신경은 「돼지껍질 콜라겐 첨가량을 달리한 브라운소스의 품질 특성에 관한 연구」, 한국조리학회 제27권 제7호, 2021.
    민경진·이혁재·황현진 외 「Supervised learning에 기반한 돼지 발성음 분류에 관한 연구」, 전기학회논문지 제70권 제5호, 2021.
    최돈일 「<동물농장>에 나타난 캐릭터의 상징성 연구」,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제38호, 2015.
    전기홍·권기현·김은미 외 「가열기구에 따른 조리방법이 돼지고기의 품질특성에 미치는 영향」, 한국조리학회지 제21권 제1호, 2015.
    김인철·이장희·김현종 외 「돼지에서 동결정액을 이용한 인공수정시 종모돈의 품종, 인공수정 횟수, 정자농도, 농장 및 연도가 번식성적에 미치는 영향」, 한국가축번식학회지 제26권 제2호, 2002.

김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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