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목소리
정치와 문학의 조합을 생각하다
▶ 지난호 특집은 사회의 총집합인 세계를 우리가 어떻게 인식해왔고 앞으로 어떻게 인식해야 할지에 대한 타당한 논리와 방향성들을 제시한다고 느꼈다. “기후위기를 어떻게 서사화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서동진의 글(「지구화 이후의 세계 그리고 서사」)은 세계화를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하며 특히 정치와 문학의 조합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주어진 세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허무주의에 맞서,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는 변혁의 서사를 절박하게 요청하는 구절이 호소력 짙었다. 개인의 경험이 사회적 총체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지적 또한 인상적이었고, 아직 그 형태를 알 수 없는 세계의 모습들이 앞으로 어떻게 구체적으로 서사화될지 기대를 품게 된다.
『창작과비평』을 읽다보면 문학과 정치의 조합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와 관련해 최선교의 문학평론(「갱신하는 말, 다시 쓰는 미래」)은 주민현과 변윤제 시인의 작품을 예시로 문학과 정치, 그리고 우리 삶이 영향을 주고받는 모습을 훌륭히 개괄한다. 세월호참사나 이태원참사 등 사회적 참사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대처를 지적하고, 피해자 권리보장과 더불어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문학이 해야 하는 몫을 탐색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현재와 과거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사유하며 미래를 향한 질문을 발견하는 주민현의 작품과 말이 스스로를 갱신하며 권력에 저항하는 힘을 길어올리는 변윤제의 작품에 대한 해석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시대가 바뀌어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뚫어지게 바라보고 고뇌하기를 권고하는 문학의 몫은 분명하다. 언어를 통해 투쟁하고 저항하는 일은 계속해서 시도되어야 한다.
서현서 hshseo0920@naver.com
무엇이 K인가
▶ 정약용론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소설비평을 읽은 적이 있다. ‘요즘 우리 사이에선 정약용이 유행’이라는 논지의 서문이 있어 한층 더 인상 깊었는데, 논단 연속기획 ‘K-담론을 모색한다’(백민정 「왜 귀신의 공공성인가?」)에서 정약용의 이름을 또다시 마주치게 되어 내심 놀랐다. 애도와 유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귀신에 대해 개인적으로 늘 관심을 두는 편인데, 다만 나는 주로 무속의 측면을 고찰해온지라 ‘귀신의 공공성’이라는 개념은 생소하면서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정약용이 천주교인으로서 “조상 제사를 지내면서도 상제를 섬길 수 있는 길”은 없을지 고민했다는 대목에서는 이를 여성학적 관점으로 본다면 달리 생각할 수 있을지, ‘유행’하는 정약용을 어떻게 확장해 사유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게 되었다.
소설란의 작품들도 모두 좋았는데, 인상적이었던 건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성해나)였다. 최근 팬덤 및 익명 커뮤니티를 다루는 소설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듯한데, 이 작품은 특히 팬덤의 윤리를 깊이있게 다루는 점이 좋았다. ‘좋아함’이라는 행위에 무엇이 바쳐지는지를 적확하게 지적하는 어려운 작업을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인상이다. 「여기는 서울」(전춘화)도 기억에 남는다. “자아성찰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도는 주인공, 그러나 조선족이라는 희미한 정체성과 서울이라는 공간성이 부조화하는 설정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은 한국청년들이 ‘오히려’ 부러워할 만한 스펙을 가졌다는 소리를 들으며 한국에서 살아갈 테지만, 한국인이 아닌 ‘손님’으로 남을 것임을 감지하는 장면이 서글프다.
지난호를 읽고 나니 ‘무엇이 K인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세계서사 모델들의 작동 중지, 패권 부재의 시대, 국제적 무질서 속에서 안 그래도 혼란한 대한민국은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지금 사회는 경제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위기에 처한 것 같다. 그래서 세계서사 속에서 한국을 묻는 지난호 글들이 더욱 와닿은 듯하다.
이원희 summercasket@naver.com
가능성은 시민에게 있다
▶ 지난호 문학평론 「이토록 문제적인 ‘인간’」(황정아)은 켄 리우의 포스트휴먼 소설들을 들여다보며 소설 속에 나타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포스트휴먼 되기의 기만성과 폭력성에 대해 질문한다. 특히 켄 리우의 소설 속에서 “알고리즘으로 환원되지 않는 ‘싱귤래리티’(단독성)의 성취”라는 과제를 발견한 점이 흥미롭다. 포스트휴먼 소설은 ‘인간’이 무엇인지를 물음으로써 인간 ‘되기’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복잡한 질문에 답을 내리기 위해 깊이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작가조명란에서는 『니들의 시간』을 출간한 김해자 시인의 육성을 들을 수 있어 반가웠다(유병록 「천의무봉의 웃음」). 화석처럼 굳지 않기 위해 웃는 ‘생존형 웃음’들을 알아보는 시인에게 ‘희망’이란 발굴해내려 노력해야 하는 투쟁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시인은 비극과 참극 속에 울고 있는 사람에게 ‘내 탓이 아니다’라고 말해줄 있는 반대의 거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시의 귀는 심장 가까이 있어야만 한다는 시인의 뜻이 고요하고 낮은 곳을 향하는 구절들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하다.
박래군의 현장글 「4·16운동 10년, 무엇을 바꾸었는가」 역시 의미있었다. 박래군은 4·16운동이 이전의 사회적 운동들과 구분되는 이정표로서 갖는 의미들을 발견하는데, 유가족들이 피해자의 위치에 머물지 않고 운동의 주체가 되었다는 점, 운동의 우선순위가 보상이 아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었다는 점, 또한 기억의 중요성을 일깨워 수많은 기록물들이 축적됐다는 점, 나아가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이 다른 재난 참사 피해자들과 모여 ‘재난참사피해자연대’를 구성했다는 점 등이다. 기후위기와 결합된 재난들이 예정된 시대이다. 생명존중과 안전사회를 공공의 의제로 만들기 위한 선결조건으로 후진적인 정치, “재난참사를 지우려고만 하는 국가”와의 결별을 고하는 외침이 자못 귀하다. 희생자들에게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보여줄 책임은 시민들에게 있다.
홍성희 tosilence1123@gmail.com
시가 어울리는 계절
▶ 따뜻한 시들을 읽으며 맞이하는 봄이 작년만큼 춥지 않다. 시가 어울리는 계절이다. 고명재 「하와이안피자」를 읽기 시작할 때는 웃음이 나왔다. 시 속에서 하와이안피자는 “범죄다 이것은 멀쩡한 이태리 사람을/순식간에 울부짖게 만들 수 있다”고 표현되는데, 그렇게까지 범죄인가 싶어 하와이안피자를 변호하고픈 마음이 들 때쯤 이어지는 “김치피자” “인삼피자” “고등어피자”에 웃음을 터뜨리다가 시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자 급작스레 미소를 거두게 되었다. 부모를 모르는 하와이 출신 엄마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자연스러운 흐름 앞에 음료 없이 퍽퍽한 피자를 먹는 것처럼 속이 아팠다.
김이듬의 시 「블랙 아이스」는 입양된 “제니스”가 부모를 찾으러 나서는 이야기이다. 배경은 눈이 오는 차디찬 겨울. “태어나려면 거쳐야 하는 통로 같”은 “미끄럽고 거무스레한 길”은 마치 엄마를 찾으러 가는 길목 같다. 화자의 운명에 마음 졸이고 속상해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케이크 레시피로 연해주를 표현한 임유영의 시 「연해주」 역시 인상적이었다. “불타는 이구아나 모양의 덩어리”로 완성된 연해주는 따끈하다기보다 뜨겁게 느껴진다. 어릴 적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5와 3을 나란히 쓰고 가운데 선을 긋는 식으로 한반도를 그렸다. 그러면 손으로 땅을 쥘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연해주를 이구아나로, 그것도 불타는 이구아나로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어떨까. 상상력이 빼어난 시를 접하고 나면 그전과는 다른 세계에서 다른 시각으로 살아가게 되는 듯하다.
임혜리 wowllow@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