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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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원 姜普遠

1990년 서울 출생. 2016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완벽한 개업 축하 시』 등이 있음.

lian_s@naver.com

 

 

 

의인화되지 않은 나무나 돌에게 하고 싶은 말

 

 

의인화되지 않은 나무에게: 찌르르 찌르르 소리가 들리자 아야가 말했다. “봄이 오니까 찌르레기도 오고 좋네.” 내가 물었다. “그런데 저게 찌르레기 맞아? 어떻게 알았어?” 아야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소리를 들어봐…… 이게 찌르레기가 아니면 뭐야? 찌르레기일 수밖에 없잖아.” 그건 그랬다. 찌르레기가 아니라면 뭔가 잘못일 것만 같았다. 찌르레기 소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나무에게: 나는 틀렸을 수는 있지만 좋거나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 생각들을 많이 하는데, 그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다. 그냥 나무에게: 나무는 아래서부터 자라고 풀은 위에서 이어져 자란다. 말하자면 나무는 발돋움을 하고 풀은 손을 뻗는다. 그리고 돌들에게: 돌들은 좀처럼 놀라지 않지만 나는 까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세상에, 여자친구의 동생의 교회 언니의 아는 사람의 남편이 영화감독이었다니!

 

 

 

점심시간이 끝날 때 쓰기 시작하는 시를 위한 지시문

 

 

그러니 이해해야 할 것을 남기지 않아도 좋다. 이 시는 본문(이 시가 어떻게 쓰일지 제시하는 부분)과 시와 상관없는 부분으로 구성된다. 구체적으로는 시의 본문을 먼저 제시하고, 뒤에 이 시와는 상관없는 이야기 두개를 덧붙인다. (그러니까 이 부분이 시의 본문이다.)

희수에게 얼마 전에 엄청난 할아버지를 만났다고 하자, 희수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얼마나 엄청난 사람이었길래?” 나는 대답했다. “그게 아니라, 물론 그분이 대단한 분이시긴 한데, 내가 말한 건 굉장히 나이가 많고 굉장히 할아버지적인 사람이라는 뜻이었어……” (이 부분은 시와 상관이 없다.) 시를 쓰려고 까페에 앉아 밤크림라떼를 주문해 마셨다. 나뭇잎이 조금씩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부는 날씨다. 길에는 커다란 솜뭉치 같은 것이 떠다닌다. 조금 앉아 있다보니 어디서 습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외국어를 연습하는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외국인이 속삭이며 말하는 소리였다. (이 부분은 시와 상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