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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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黃仁淑

1958년 서울 출생.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 놓고』 『슬픔이 나를 깨운다』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자명한 산책』 『리스본行 야간열차』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아무 날이나 저녁때』 『내 삶의 예쁜 종아리』 등이 있음.

rana58@naver.com

 

 

 

맑은 날

홍세화 선생님께

 

 

서쪽 나라도 서쪽으로 해가 진다고

해의 붉은 알몸 바라보며

생각하다 피식 웃었습니다

싱겁기도 싱거운 생각……

 

이 말 저 말 하다가

시간 다 됐네,

그냥 끝낸 느낌인 나날입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맑은 바람이 솨솨 불어오는

화한 달

지금도 꽃 피고 있는 마로니에에

달빛 칠칠히 서늘하겠지요

오래전 선생님 노랫소리가

무심코 흘린 허밍에 맥놀이 집니다

 

낮에 선생님 소식을 들었습니다

 

 

 

녹슨 카트

 

 

손잡이도 등판도 짐받이도 바큇살도

그만하면 빈틈없이

녹슬어 있는 철제 카트

며칠째 담벼락에 기대어 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개, 여덟개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가스계량기 아래

어느 집에서 내다놨을까

녹을 아름답다 하는 세계에서라면

찬탄 불러일으킬 절세가인 카트

녹으로 덮여 있지만 튼튼해 보인다

쌀 한자루는 거뜬히 나를 터이다

어쩌면 한번도 쓰이지 못하고

세월 보냈을 카트

아무도 가져가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