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소설

 

 

구병모 具竝模

2008년 『위저드 베이커리』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

소설집 『고의는 아니지만』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단 하나의 문장』 『있을 법한 모든 것』, 장편소설 『파과』 『네 이웃의 식탁』 『상아의 문으로』, 중편소설 『단지 소설일 뿐이네』 등이 있음.

 

 

 

엄마의 완성

 

 

백보 양보해서 아궁이 연탄 갈던 시절의 조부모 세대까지라면 그런 가치관이 통했으려나. 아빠의 어떤 점이 좋았냐고 물은 어느날 엄마는 오래 뜸들이지 않고 세가지를 읊었던 적 있는데, 하나는 집 안에 들어온 모든 작은 생물 가운데 쥐나 바퀴며 거미를 비롯하여 인간보다 다리 개수가 월등히 많은 절지동물에 이르기까지 이름 석자만 부르면 부리나케 달려와 척척 잡아주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불이 나가면 알아서 조명 덮개를 열어 형광등을 교체한다든지 삭아서 새는 수도관 따위도 부속을 구해다 수리를 해냈다는 것, 마지막으로 반찬투정이라곤 해본 적 없이 제 앞의 그릇을 석석 긁어 비웠다는 것이다. 팔십대 아니고 그래도 아직은 사십대, 배우자를 향한 기대 수준이 인간적으로 그 정도보다는 높아도 되지 않나 싶은 연배와 세대에 속한 엄마가, 돌아가신 할머니 때나 그랬을 법한 사고—사내가 식솔들 세끼 밥 착실히 벌어먹이고 계집질 노름질 손찌검만 안 하면 최고 일등이지—와 함께 살아온 것은 요즘 추세로 너무 이른 나이에 나를 낳고 생계와 살림에 치여 호사의 마지노선이 낮아서인지, 아니면 시절을 막론하고 그만한 조건을 올 클리어하는 남자가 드물다는 뜻인지, 그건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지금은 그런 일을 박씨 아저씨한테 부탁하면 되는 거지? 물었을 때 전화기 너머에서 엄마는 코웃음 치기를, 걔는 나보다 더 겁내더라 벌레, 이랬다. 형광등은? 물으니 걔가 집에 들렀을 때 불 나간 적 없다, 했다. 나는 직접 본 적 없는 엄마의 남자친구를 우리끼리의 대화에서 언급할 때면 꼬박꼬박 아저씨라고 부르기를 고수했다. 너는 걔 사진을 봐놓고도 아저씨 소리가 나오냐고 엄마가 퉁바리라도 놓으면, 아이고 내 또래한테 그 연세는 완전 아저씨지 그나저나 엄만 좋겠네 연하 남친도 생기고 동안이기까지, 정도로 마물렀다. 그런 거 할 만한 분 아니면 엄마, 엄마도 손대기 힘든 일 같으면 동네 중고거래 앱에서 사람 찾아봐, 팁도 주었다. 간단한 문제를 도와달라고 글 올리면 용돈벌이 한다고 와주는 동네 사람도 있고, 좀 기술이 필요한 일 같으면 아예 본인 장비를 정식으로 들고 여기저기 출장 다니면서 수전 갈아주는 사람 열쇠 따주는 사람, 다들 재능마켓 같은 명목으로 등록되어 있더라. 나 어릴 때 우리 현관 철문에 분기마다 붙어 있던 거, 동네 생활정보지 쿠폰북 기억나지. 그게 다 앱으로 옮겨 간 거야. 그러자 엄마는 조심스레 묻기를, 그 앱이라는 거…… 아무런 허드렛일해줄 사람도 구할 수 있나? 나는 허드렛일의 정의와 범주를 나나 엄마가 각자의 회사에서 맡은 일과 비슷한 걸로 여겼으므로 당연히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동네 편의점 알바도 하루 이틀 일하다 말 거 아니니까 이력서를 받거나 면접을 보는데, 사무보조직이라면 정식으로 공고를 내는 게 좋지 않을까? 나의 반문에 엄마는 조금 꾸무럭거리는 투로 말하기를, 그러니까 저기…… 나 병원 좀 같이 가줄 사람도 그런 데서 구할 수 있나?

눈꺼풀에 묻은 잠의 무게에 깔려 허우적거리던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았다. 엄마 어디 아픈데? 못 움직여? 으응 뭐 아니 전혀 그런 건 아니고…… 말꼬리를 흐리는 엄마의 음성에서 나는 그야말로 별일 아니며 또 내가 스스로 말려들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엄마가 매사 이런 식인 걸 알면서 눈 뜨고 당한다. 입구가 좁은 가방을 열고 쓸데없는 서류부터 한장씩 천천히 뽑아다가 상 위에 늘어놓는 화법. 팔다리라도 못 쓰게 다쳤다면 급한 대로 같은 회사 직원이면서 남자친구인 박씨의 도움을 받는 게 빨랐을 텐데 진실로 원하는 바—사소한 진료인데 박씨와 가기는 좀 애매하고 딸이 동행해줬으면 좋겠어—를 입 밖으로 제대로 내는 게 아니라, 내게서 경악과 우려의 반응이 나오기를, 전혀 그런 거 아니라니 그럼 뭔데 무슨 일인데? 하고 내가 관심 가져 물어봐주기를, 자발적으로 동행해주기를 바라며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의미심장한 듯한 말투와 완만한 저속의 주저로 유도하는 것이다. 그냥 원하는 걸 똑바로 말을 해, 엄마 좀, 나 진짜 바빠, 매일같이 정신없다고, 하루에 네시간이면 많이 자는 날이라고 그랬지 내가, 행간의 의도를 알아서 캐치하기를 바라지 말고, 뭐가 필요한지 뭘 해줬으면 좋겠는지, 말로 하라고! 되면 된다, 안 되면 어렵다 나도 말을 할 테니까, 제발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왜 늘 내 부탁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나중 가서 사람 힘들게 만들어? 경기도의 본가를 뒤로하고 서울 자취방을 얻은 첫째 명분은 밤낮없이 불문곡절인 사무실의 호출에 조금이라도 기민하게 대응하여 근로계약을 부지하기 위함이었지만, 얼굴 맞대고 이런 대화를 매일같이 반복했다간 내가 얼마나 광포해질지를 예감해서이기도 했다. 이성으로는 분명,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아기 시절 엄마도 나를 아기띠로 둘러업고 무시로 병원에 다녔을 테고 내가 입원이라도 하면 사람 하나 눕기도 힘든 보조침대에서 디스크 탈출 증상을 참아가며 쪽잠을 자는 틈틈이 나를 병구완했을 것을 고려하여 엄마의 유사시에 나도 최소한은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없지 않았건만, 그건 어디까지나 엄마가 전후 맥락과 목적어 혹은 서술어가 생략되지 않은 말로 내게 분명하게 요청해올 때지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아무려나 혼자 가기는 조금 겁나는데 사귄 지 얼마 안 된 이성에게 동반을 부탁하기는 더욱 망설여진다면 그건 대장 내시경 검사나 치질 진료 계통이겠지 싶어 나는 통화 중 상태로 달력 앱을 열고 스케줄을 점검했다. 젓가락 한짝 꽂을 틈 없이 촘촘하게 잡힌 촬영 일정이 검정 빨강 파랑 글자와 각종 실선 및 화살표로 나타나 있었다. 한숨을 삼키고, 나한테 여러번 외근 대타를 부탁했던 선배가 빈말이라도 언제든 신세 갚겠다고 장담했던 걸 상기하며, 엄마는 언제 월차 낼 수 있어, 나도 날짜 맞춰볼게…… 하기가 무섭게 돌아오는 말은 이랬다.

그게 없다, 내가 지금.

 

의사를 만나기에 앞서 들어간 상담 간호사의 예진실에서 엄마는 옆에 앉은 내 손을 꼭 붙들고 있었다. 당장 뭔가 미심쩍어서 MRI를 찍거나 조직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아니고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우리 모두 알고 있었는데, 더는 상소의 여지가 없는 선고를 받기 직전이나 되듯 과장하는 엄마의 제스처에 나는 실소를 터뜨릴 뻔했다. 대충만 검색해봐도 별것 아님을 알 수 있는 일에 이러고 나오니 기가 막힌다는 말은 입속에 가두었다. 별것 아니라는 말은 좀 심하다 쳐도, 살아 있는 웬만한 여자에게라면 늦든 빠르든 언젠가는 닥쳐오는 일 아닌가. 고작 이 정도의 일에 선배 찬스를 소모하기 아까웠지만, 안 쓰고 아껴봤자 이 업계 이 포지션의 평균 근속 연한을 이미 넘긴 선배가 어느날 갑자기 퇴사라도 해버릴 가능성을 고려하면 지금 쓰는 게 나았다. 그래도 고작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내내 뇌리를 가로지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엄마 그거 중병 든 거 아니고 그냥 자연스러운 거래, 어디서 구글링한 지식을 읊어보았자 아직 어린데 네가 뭘 아니 소리나 듣고 본전도 못 찾을 터였다. 그런 바에야 이미 함께 가겠다 먼저 말 꺼낸 이상 철회하기도 뭣하여 엄마와 밥도 먹고 산책도 하면서 휴일을 즐기자는 생각으로 왔다. 이런저런 정보성 혹은 홍보성 블로그들을 둘러보면 이 시기의 극심한 기분 변화에 우울감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나왔으니, 이런 식으로 엄마와 하루를 흘려보내는 것도 한동안의 부채감 청산에 도움 될 터였다.

아무려나 엄마도 인터넷을 쓸 줄 모르지 않고 조그마한 회사도 다니며 사회생활이라는 걸 계속해온 사람이 그만한 의학 정보를 못 찾았을 리 없으므로, 오늘 나를 부른 건 다만 물리적으로 떨어져 지내는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흔히 아쉬워하며 타박하는 보편의 안건, 집에 안 오냐 뭐가 그리 바쁘냐 얼굴 잊기 전에 밥이나 한번 먹으러 오라는 뜻이었을 텐데, 이 대수롭지 않은 일에 나까지 같이 예진실로 끌고 들어올 필요가 있나 싶었다.

나로서는 이론으로만 알 뿐 실상은 어림도 못할 마멸과 모멸의 시기를 이미 겪어냈을 것으로 짐작되는 얼굴의 간호사가 내 쪽을 흘낏 보고는 가볍게 눈웃음을 지었다.

아이구 어머니, 이제 함 봅시다, 여기는 따님이세요?

얼어붙은 엄마 대신 내가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요즘은 엄마나 따님이나 다들 젊어 보이시니 혹시 몰라서요, 친구랑 같이 왔나 싶고. 두분 눈가 요기랑 입 요기, 닮은 데 없으면 딱 친구인 줄 알겠어. 근데 뭐 겁난다고 그렇게 따님 손을 꼭 붙들고 그러세요. 자 봅시다. 마지막 생리일이 언제였다고요?

엄마는 머뭇거리다 느린 동작으로 휴대전화를 열었는데 그건 나처럼 생리주기 앱을 사용해서가 아니라, 탁상달력에 일일이 수기로 표시한 걸 메모장 앱에 옮겨 와서였다.

어 그러니까, 10월 19일요.

지금 그럼 47일 지났는데 아직 없으신 거구나. 그전에는요?

9월…… 보자, 21일이네요.

엄마가 날짜를 읊을 때마다 차트에 수기로 적어 내려가며 간호사는 계속 물었다.

그전은?

어…… 8월 6일요.

오, 잠깐 늘어났네요. 그 앞은?

음, 7월 14일.

7월 14일 다음에 8월 6일이면 이건 또 갑자기 빨라진 거다. 그렇죠? 그 앞은?

6월 18일, 5월 24일.

네, 거기까지. 지금 보시면요. 뭐 25일 만에 한 적도 있고 23일 만에 시작되기도 했고, 갑자기 또 46일 만에 시작하기도 했네요. 흔히 있는 생리불순. 그런데 이게 흔히 있어서 좋을 일이 결코 없고. 여자 몸이 말이지요, 그죠. 아주 전형적으로 우리가, 갱년기 증상 올 때 이렇게 생리주기가 점점 짧아지다가 양이 줄어들면서 점차로 없어지는 분들도 계시고, 찔끔찔끔 아니라 단번에 깔끔하게 끊기고 그대로 끝, 이런 분도 계시고요. 이제 완전 끝인 줄 알고 그냥 외출하셨는데 갑자기 다시 확 쏟아지는 것처럼 그래버려서 깜짝 놀라갖고 오시는 분들도 계셔요. 이거 말고 다른 불편하신 데는요?

어 그러니까, 얼굴에 열도 좀 많이 오르고…… 집에 불 안 때도 자는 동안 괜히 덥고……

엄마는 평소 나와 통화하면서는 그런 얘기를 한 적 없었다. 통화시간 자체가 길지 않기도 했고, 대화 중 몸에 대한 세부 언급이 늘어나는 건 어찌 보면 불건강의 증거라고도 할 수 있었으므로, 밥은 먹고 다니냐 잠은 좀 자냐 외에 서로 몸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일이 별로 없기도 했다. 열이 오른다든지 덥다든지, 그게 정말 지금 진행되는 신체 변화가 맞기나 한 건지 아니면 간호사의 질문에 뭐라도 대답을 해야겠어서 기분에 불과한 것을 부풀려다가 증상이라고 끼워 맞추는 중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러시구나. 어지럽기도 하고?

그건 워낙 오래된 거라서, 관계있는지 모르겠어요.

심장이 좀 빠르게 뛰신다든지.

그렇지, 그거예요, 맞아요.

간호사의 말에 맞장구치는 엄마의 모습은, 사주를 건네받은 무속인이 당신 성격 이렇다고 슬쩍 던져주면 그렇지 정확해요 소름 돋네, 덥석 물어다가 공연히 더 많은 정보를 상대방에게 흘려주곤 본질적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언어를 들을 확률을 높이기 위해 복채를 내밀 준비가 된 손님 같았다.

갱년기에 흔한 자율신경 증상인데 이게 어느날 갑자기 두꺼비집을 확 내린다, 그런 식으로가 아니라 조금씩 서서히 왔을 거거든요.

그럼 저 갱년기가 맞는 거지요? 갱년기라서 끊긴 거고.

글쎄요, 그래서 끊긴 건지는, 이제 우리 선생님이 초음파 한번 봐주시고, 피 검사 해봐야 나오는 거고요. 그런데 그에 앞서서 원래 생리불순이 좀 있으셨던 편인지, 때가 아닌데 했다든지, 그런 적이 얼마나 자주 있었는지.

전혀요. 자랑은 아니지만 주기 하나만큼은 칼 같았어요. 28일에서 32일, 그 교과서적인 주기를 벗어나본 적이, 평생을 걸쳐서 없어요. 얘를 갖고 낳고 하는 기간을 제외하면요, 얘 태어나고 딱 여덟달 지나서 다시 시작한 뒤로도요. 그래서 실은 지난번 23일 만에 했을 때도 이게 뭐지 왜 벌써 나오지 싶긴 했는데, 전조 증상이었던가봐요.

23일이 정상 주기라고 보긴 어려운데, 그래도 사람 몸이 스트레스도 받고 예외라는 게 있기도 하거든요. 일시적인 거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고, 보통 주기보다 짧다고 다 비정상은 아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요. 지금 우리 어머니 연세가 사실은, 폐경이 오기 시작하는 시기가 맞긴 한데요, 정반대 경우도 있을 수 있는 때거든요. 혹시 임신 가능성은 없으신지.

푸하학.

웃음을 터뜨린 건 내 쪽이었는데 어쩐지 조용해서 돌아본 엄마의 표정이 굳어 있었고, 간호사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래도 모르니까 우리 어머님, 검사 하나만 먼저 넣을게요. 이런 건 명확하게 해야지 나중에 실수가 없으니까.

 

소변을 받아서 종이컵을 제출하고 둘러보니 대기실 소파가 거의 만석이었고, 전광판에 뜬 대기 환자 명단은 뒤늦게 발견된 중세의 경문 두루마리인 양 길게 펼쳐져 있었다. 앞 환자들이 들락거리는 빈도나 진료실 체류 시간의 패턴을 대충 보니 이대로라면 의사를 만나기까지 한시간은 족히 걸릴 터였고, 엄마가 앉아서 초조해하는 걸 그리 오래 보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로부터 10분쯤 지났을 때 데스크를 지키는 내 또래 간호사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 죄송합니다만 혹시 결과 좀 빨리 알 수 있을까 해서요.

간호사는 눈을 한번 치뜨고 보더니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오늘 예약 없이 오신 거여서 차례 맞춰 호명해드릴 거고요, 이따 선생님 뵙고 결과 들으실 거예요.

예, 그게 좀, 당연히 기다렸다가 진료는 진료대로 받을 거긴 한데요, 아까 제출한 소변검사 결과만 먼저 들을 수 있을까 해서요.

선생님 뵙고, 결과 들으시고, 진료 받으실 거예요.

직전과 같은 말을 끊어 반복하는데 뵙-고 , 들으시-고 , 억양에 맞춘 고갯짓으로 간호사는 나직하게 그러나 강경한 입장을 나타냈다. 뭐, 나도 안 되는 거 알면서 물었다. 한 사람이 무슨 결과든 먼저 받아보겠다고 나서면 너도나도 절차를 건너뛰려고 하며 체계가 없어진다. 그 과정에서 검사 결과가 잘못 전달되거나 사소한 혼선이라도 빚어지면 의료진의 책임이 된다. 그런 무질서를 나 또한 견디기 힘들면서도 공연히 치신머리 없이 예전에 엄마 하던 짓을 흉내 내보았다. 우리 아이가 41도인데 먼저 좀 안 될까요. 어머님, 여기 안 아픈 아이들이 없어요. 그러니까 애가 너무 축 처져 있는데 해열진통제라도 우선 좀…… 어머님, 정 급하시면 1층 약국에서 일반의약품 사서 일단 먹이시든지요…… 열살쯤이었을 나는 고열과 혼몽 간에도 엄마 왜 저래 엄마 제발 쪽팔려 죽겠어, 입술을 달싹였을 것이다. 나고 자라는 동안 미래에의 전망이나 진취적 기상 대신 상대적 박탈감부터 자연스럽게 체득하며 넘을 수 없는 벽의 아득한 높이를 체감하고 사회생활이니 조직문화 같은 명분으로 VIP한테는 알아서 기는 스킬을 습득한 이들은—일단 VIP는 우리가 다니는 이런 건물 한층을 차지한 개인병원에 몸소 찾아오는 대신 병원을 자기 저택으로 불러들일 테고, 설령 온다 한들 우리와는 다른 출입문과 통로를 쓰겠지만—반드시 그 반대급부라고만은 할 수 없겠으나 평범한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런 사소한 불공정을 눈감지 않으며, 어쩌면 사안이 사소할수록 불의를 응징하는 투사처럼 떨치고 일어난다. 이틀이 멀다 하고 도시락 쓰레기 하나 제 손으로 못 버리는 VIP들을 따라다니는 나부터가 그랬다. 그러니까 언제였더라, 문득 떠오른 어느날의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 예를 들면 촬영장에서 육두문자를 듣고, 로드매니저가 끼어들어 피사체를 진정시키지 않았다면 귀싸대기라도 날아갔을 법한 상황에서 놓여난 뒤, 협력처에 반납해야 할 의상을 양어깨에 싸 짊어진 채로 은행 문 닫기 전에 지시받은 잡무 처리를 위해 기다리던 중, 번호표도 뽑지 않은 50대 여자가 이제 막 빈 창구로 천연덕스럽게 다가가 말을 시작하는데 창구 직원이 지금 이 간호사처럼 딱딱거리며 번호표 차례대로 기다려주십시오, 정의봉이라도 평등하게 휘둘러주는 게 아니라 거기 문제를 먼저 해결해주는 모습을 보고, 그쪽이 은행 입장에서는 VIP라는 걸 알 리 없었던 나는 뚜껑이 열려 이게 지금 차례가 맞는 거냐고 드잡이를 하고, 이 과정에서 타폴린 소재의 보따리가 찢어져 옷이 바닥에 다 쏟아진 다음, 내 월급으로는 블라우스 한장 사기 힘든 브랜드의 옷이 바닥에 흩어지는데 몇벌은 육중한 유리문이 열리고 닫히는 바람결에 링크 위의 스케이트처럼 미끄러지다 마침 들어오던 손님들의 발에 밟혔던 기억 같은 것…… 아무튼 이러고 망연자실 기다릴 바에는 결과의 정밀도가 떨어지더라도 그냥 약국에서 스틱 사다가 두줄 나오는지 먼저 확인하고 올 걸 그랬다.

엄마, 약국 가서 그거 사올까? 기다리는 동안 한번 더 해볼래?

엄마는 목소리를 한껏 죽이고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이중으로 돈을 왜 써, 정신머리 없는 것 좀 보라지.

아, 그거야 엄마가 답답할까봐 그렇지. 그럼 계속 불안해하면서 기다리든지.

아까 다 내보내서 지금 나올 것도 없다.

알았다고. 아무 일 없을 거야.

없지 그럼.

그렇게 말하는 표정은 암만 봐도 없지 그럼 같은 게 아니었다. 그러게 걱정될 일을 애초에 왜 만든담, 소리는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호명될 때까지 각자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엄마라고 그러고 싶어 그런 것도 아닐 테고, 위험한 날이 아닌 줄 알았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애매한 날이었을 수도 있고, 엄마는 만날 칼 같다 칼 같다 입에 달고 살았지만 시나브로 몸속의 칼날이 무디어지지 않았으리란 법 없는데, 나는 그 모든 경우를 제쳐두고 마지막으로 헛소동일 가능성에 걸었다. 위험한 날에 피임을 확실히 했지만 손톱이나 반지에 긁혀 뚫리는 바람에 백 퍼센트 방어는 실패했을지 모른다는 망상에 불과하리라는 거였다. 그래야만 했다. 그거여야만…… 나는 생리주기 앱 화면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는 그런 걸 다 적어두냐고, 모든 여자들이 너처럼 하느냐고 물었던 남자는 앱에서 한눈에 보여주는 기록에 따라 귀찮은 단계를 생략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나중엔 자기가 더 열심히 챙겼다. 몸의 규칙과 주기에 의존하는 완전무결하지 않은 피임법을 허락했던 이유라면…… 그는 매번 혼잣말인 척, 이걸 끼면 기분도 전혀 안 나고 불편하다고 했는데, 설령 내게 압박감이나 죄책감을 줄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한들 그 말이 내 몸을 존중하지 않는 쪽에 가깝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는 이 부분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기 위해……보다는 그저 낄 때마다 불편이니 기분 타령만이라도 반복 좀 안 했으면 좋겠어서, 사전 설명 없이 우리 이거나 같이 보자고 유튜브 동영상을 하나 틀어서 들이댔었다. 산부인과 의사가 구독자들의 질문 가운데 몇개를 뽑아서 대답하는 영상이었는데, 그중 한 구독자의 질문이 이랬다. 위험한 날을 포함하여 그 앞뒤로 사흘씩만 끼면 안전할까요? 의사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여러분 우리가요, 무엇을 위험이라고 일컫는지 그 의미부터 규정을 좀 폭넓게 할 필요가 있는데요. 일단 물어보신 것만 대답해드리면 뭐든 백 퍼센트 완벽한 건 없지만, 피임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 날짜를 사수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최소한이라고 꼭 염두에 두시고요. 그런데 그냥 제 소신이라고 해야 할지, 입장을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본격적으로 딱 맘먹고 임신해야겠다, 그 이외의 나머지 날들은 예외 없이 다 착용하시라고 권장합니다 저는. 의학적 이유가 몇가지 있긴 한데 알기 쉽게 가봅시다. 우리가 살면서요, 계획에 없던 임신만 위험해요? 잡다한 병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것들은 어떡할 건데. 그러면 우리 여자분들 어떻게 하느냐. 끝나고 잘 씻으면 되겠지, 이러고 너무 막 청결하게 거품 내서 씻다가 유익균 다 죽이고 면역력 깨지지, 오히려 염증 생겨서 병원 오신다고. 염증으로 인한 결과가 다 같지 않아서요, 무증상자는 방치해서 큰 병 키우지요? 유증상자는 보통 불편감 가려움 냄새 다 같이 오니까, 그거 없애보겠다고 더 자주 씻어서 더 병나. 그런데 이렇게 무한의 굴레에 빠지는 여성분들의 경우는 보통, 그 파트너분들도 무지해요. 제가 만나본 환자분들만 기준으로 할 경우, 여성분들 말씀하시는 파트너라는 게 대부분은 남성들인데요, 이분들은 모르면 알아볼 생각을 하든지 최소한 가만히 입이라도 다물고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는데, 잘 안 씻어서 생기는 병 아니냐, 또 여자 탓한다고. 그러는 자기들은 관계 직전에 꼭 목욕재계도 완벽하게 하고 멸균 상태로 눕는 것도 아니면서. 조금 전까지 핸드폰 만지작거리던 손가락을 익스큐즈도 없이 상대방 몸속에 넣는 사람들이 태반이야. 그럼 이 전후 포함한 과정에서 누가 내 몸을 지켜줄 건데요. 그는 건성으로 곁눈질하면서 이 아줌마는 쌍꺼풀 수술을 했네 코도 좀 높였네 젊어 보이려고 기를 쓰는 모습이나 화장 방식 같은 게 의료인으로서의 믿음이 가지 않는 얼굴이라고 훈수를 두듯이 구시렁대다가 끝내는 아 뭐 이런 걸 보냐며, 더 참지 못하고 영상을 꺼버렸다. 그즈음에는 나도 휴일이 따로 없던 근무에 더해 야근에 치여 그와 만나는 빈도 자체가 줄기도 했고, 감정 소모도 줄이려 더는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언제 마지막으로 만났더라, 두달은 넘지 않았을 텐데, 그때도 아마 서로 휴일이 매번 안 맞다가 간신히 만났는데 그 만남의 무게가 예전 같지 않았고,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고, 다만 세시간짜리 대실 공간에 범람하던 값없는 말들과 식어빠진 배달 음식의 기름 냄새가 떠올랐다. 너는 연예인 자주 만나니까 이제 별 느낌 없겠네. 걔는 그렇게 얼굴이 조막만 하다며. 걔는 실제로 만나보면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안다더라, 머리는 텅텅 비어가지고. 걔는 스폰이 어마어마하다지. 어? 안 만나보고 어떻게 아느냐고? 커뮤니티 게시판 같은 거 한 페이지만 훑어봐도 다 나오는데 뭐. 오락이나 스포츠에 가까운 험담 사이사이로 이제 관계의 종말을 암시하는 듯한 몸짓들, 표정들도 떠올랐는데, 내 마음을 빙점 이하로 떨어뜨린 건 대충 이런 말이었을 것이다. 너는 허구한 날 모델이랑 배우랑 뒤쫓아다니면서 시중들다가 괜히 헛바람 들고 그럼 안 된다? 그때 나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 말을 들은 즉시 겉옷과 가방을 챙겨 자리를 떠나거나, 최소한 사람을 뭘로 보는 거냐고 반박했어야 했다. 화보 촬영장의 패션 어시스턴트 일을 하는 건 맞는데 보조노동이라는 말을 두고 굳이 시중든다는 말로 표현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어야 했다. 나 스스로 내 업무가 전근대의 대감댁 몸종 이하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얼마나 잦든 간에. 헛바람 들기는커녕 숨 쉴 틈이나 있나 싶게 일하는데 별말을 다 한다며 웃어넘기곤 헐거운 관계의 이음매를 더듬으려는 노력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단춧구멍만큼 그어진 칼자국으로 새어나가는 마음을 수습하려는 시도를 접었어야 했다. 곧바로 지방촬영 몇군데를 돌고 당분간 다시 시간 내기 어려울 텐데 만나는 동안 좋은 낯으로 우호적인 시간을 보내는 게 낫다고 믿으며, 매순간 선명히 드러나는 경멸과 내장을 흔드는 환멸 위로 뚜껑을 덮고 지내온 결과가 이거다.

그게 없다, 나야말로 지금.

 

마침내 만나본 의사도 예진실의 상담 간호사와 비슷한 연배로, 평생 숨통을 틀어막아온 계절에서 진작 벗어난 자의 온화한 여유 같은 게 엿보였다. 우리가 앉자 병원용 키트를 먼저 들어 보이며 미소와 함께, 예, 음성입니다. 임신 안 하셨어요. 나에게 들려주는 결과도 아닌데 일차로 안심이었다. 나머지는 갱년기 증상에 맞추어 호르몬제를 처방받든지 알아서 할 일일 테니 그럼 나는 이제 먼저 대기실로 나가보아도 되느냐고 물을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아무리 한칸 더 안쪽 진료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해도, 이제 곧 엄마가 검사대에 올라가 눕는데 그 과정을 미닫이 한짝 사이에 둔 채 밀착 마크하고 싶은 딸은 없지 않을까. 아마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할 것이다. 여자라면 누구든 임신과 무관하게 평생에 걸쳐서 몇번은 눕지 않을 수 없는 검사대, 너를 낳기 위한 과정에서 허구한 날 올라가 누워본 자리이며 의사 간호사는 물론 실습 나온 학생들한테도 아랫도리를 활짝 벌리고 드러냈다고, 여자는 애 한번 갖는 순간 그 몸이 공공재야 가족한테건 의사들한테건, 같은 소리나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 얘기를 듣게 된 건 내가 수능시험을 앞두고 전에 없던 생리불순으로 고생하면서 병원 가기를 망설이던 때였다. 나는 모의고사 답안지를 맞춰보다 말고 벌컥, 공공재는 엄마 때나 공공재였지 지금 내 또래 여자들 중에 그거 용납할 여자 없고 예전보다 실습 동의서 같은 것도 제대로 되어 있다고, 엄마는 무슨 시아버지가 손주 밥 잘 먹나 보겠다고 모유 수유하는 안방까지 따라 들어오더라 같은 시절 이야기를 하지 않나, 나한테 왜 이러느냐고, 아랫도리니 활짝이니 품위 없는 소리 좀 하지 말라고, 지금 우리가 집에 있으니 망정이지 바깥이었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고 창피해 죽겠다고, 필요 이상으로 성질을 냈을 것이다. 일 핑계로 집 떠나 서울 자취방을 얻기 전까지, 엄마는 시위하자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수시로 그런 식이었고 그때마다 나는 듣기 싫다는 제스처에 있는 힘껏 과잉의 억양과 포즈를 실었다. 그래, 엄마는 젊은…… 지금으로 치면 어리다고 할 만한 나이에 나를 낳고 내 치다꺼리에 치인 상태 그대로 지금까지 와버렸다는 거잖아, 알았어 알았다고, 그만 좀 하라고, 내가 몸을 가누게 되고부터는 도대체가 얻을 수 있는 일자리 하나 없어서 알음알음으로 작은 사무실에 다니며 소박한 월급으로 식구 입에 풀칠했다는 얘기를 앞으로 몇번이나 더 해서 나한테 죄책감을 가지라고 요구할 건데? 최소한 지금보다는 책 한줄 읽을 시간이라도 낼 수 있던 재작년, 대학에서 초청한 작가의 강연을 듣고 온 어느날, 책 안에 담긴 해외 배낭여행과 차곡차곡 쌓아나간 커리어를 비롯하여 여러 건강한 에피소드와 용기를 심어주는 말들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한번 움직일 때 강연료만 기백인 그 스타 에세이스트가 내 엄마와 꼭 같은 나이라는 사실이었다. 강연이 끝난 뒤, 아르바이트로 푼푼이 모아왔던 적금을 부분 인출하여—이 지출로 인해 집 탈출 시기가 조금 늦어졌다—엄마에게 손가락만 한 샘플이 아닌 백화점의 화장품 일습을 안기며 아무 소리 말고 아침저녁으로 바르라고 했다. 이듬해 각 용기를 다 비운 엄마의 피부에 광채가 조금 도는 듯싶은 플라세보효과는 얻었지만, 명문대를 졸업하고 3개 국어를 자유로이 하며 자신을 위해서만 소비하고 스스로만을 돌보면 되는 독신의 인플루언서에 비해 엄마에게 부족했던 것이 외모 문제 바깥에 자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삶은 간결체가 아니었고, 삶이라는 문장은 명료하고 담백한 주어와 동사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서로 다른 주의와 가치를 지닌 자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태어났으니까 그냥 사는 것, 먹고 싸고 노동하고 돌보다 죽는 게 전부인 것을 삶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없었다면 엄마가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것들, 형용사와 부사를 비롯하여 질박하지 않은 장식들이 붙은 문장을 향한 조바심으로, 나는 몰아댔을 것이다. 엄마, 책도 좀 읽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아보고, 사무실 사람들하고 시시한 잡담이나 뒷담화만 할 게 아니라 시민 강좌 같은 것도 좀 찾아다니면서 듣고, 피트니스라도 끊든지…… 엄마 연세가 너무 아깝지 않느냐고, 티브이에 나오는 저 세상 연예인들 얘기가 아니라 그냥 아무 길거리 지나가는 엄마 또래 사람들이 어떤지 아느냐고, 지금보다 열살은 젊게 살 수 있는데, 젊음이 얼굴뿐 아니라 정신에서 오는데……까지 말했을 때 엄마는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전문대 나왔다고 네가 엄마를 괄시하는구나,를 시작으로 예의 레퍼토리를 읊기 시작했을 것이고, 나는 나 태어나기 전 시대의 방송 3사 드라마에서도 민망하다든지 구태의연하다고 안 쓸 법한 대사를 뱉었을 것이다. 아 그러게 누가 나 낳으랬냐고 또 내 탓이냐고!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헤매던 내 사고가 현실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엄마가 미닫이 안쪽의 진료실에서 할 거 다 하고 나온 다음이었다.

난소 크기를 재보니까 지금 생리를, 어떻게든 하셔야 하는 시기로 보이거든요.

난소의 크기라는 의학의 언어를 부드럽게 구사하는 의사가 일차 판정을 내려주니 엄마는 이제 완전히 불안에서 놓여난 듯 보였는데 그렇다면 결국 갱년기 운운했던 건 엄마의 몸이 잠깐 일으킨 착란일까, 아니면 정말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길목 어디쯤이라 간과되기 일쑤인 증상인 걸까. 그러나 태어난 이상, 삶을 중단하지 않은 이상 우리는 모두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길목 어디쯤에서 헤매는 거 아닐까.

그러면 우리는 이런 경우에 신체 노화로 인해 난소 기능이 좀 떨어졌다, 예전 같지는 않다는 걸로 보고요. 이 부분을 좀더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 피 검사를 실시해야 하는 거고요. 특히 에스트라디올 수치라는 걸 주의해서 보아야 하는데요. 그건 여포기, 배란기, 황체기에 따라 정상 범위가 다릅니다. 그 수치가 확연하게 기준점 이하로 떨어지면 폐경기라고 간주할 수 있고요. 그렇지 않다, 수치가 정상 범위에 속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생리가 시작되지 않는다 하는 경우에 속하면, 프로게스테론 성분의 생리 유도 주사를 맞아서 자궁내막이 탈락하라고 도와줘야 하는 거예요. 무슨 얘긴지 이해가 잘 되셨을까요?

솔직히 에스트 뭐라는 데서부터는 나도 의사의 설명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갱년기라고 확정된 건 아니며 오늘 채혈부터 하고 사흘 뒤 검사 결과를 들으러 와야 그다음 진료 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절차만은 알게 되었다. 그 주사라는 거, 맞으면 부작용은 없나요? 뭐라도 거들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여서 내가 묻자 의사는 살짝 미소 지었다. 따님분처럼 젊은 친구들도 몇달 건너뛰고 하면 맞는 주사인데요, 저는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지만 사람에 따라 오심이라든지 피로라든지, 개개인의 기분상 다를 수는 있다 하는 정도네요. 설령 무슨 자잘한 부작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궁내막이 두꺼워지게 방치하고 나서 찾아오는 결과보다는 백배 낫다, 이 사실만큼은 명백합니다. 이어서 탁상달력의 숫자 칸을 손가락으로 쓸어가며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폐경기 수치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을 때는,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생리 주사를 맞으시는 게 아니고요. 우리가 보통…… 여기요, 이 날짜까지는 한번 기다려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있어요. 이 정도 날짜면 우리 어머님께서 마지막 생리를 하신 지 60일이 넘는 거거든요. 이 시기가 지났는데도 시작이 안 된다, 그러면 호르몬제를 투약해서 나올 것 나오게 도와줘야 한다는 거예요. 엄마는 의사의 설명을 다 이해했는지 모르지만 고개를 주억거리고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채혈실로 이동했다.

 

어쩌지 엄마, 나 오늘 휴가도 어렵게 낸 거라 다음번 진료는 같이 못 올 거 같은데. 누군가와 수시로 카톡을 주고받는 모양이던 엄마는 문득 고개 들고 흔쾌히 대꾸했다. 어, 그렇지, 일해야지. 한번 왔으니 이젠 혼자 알아서 올 수 있다. 나도 연거푸 월차 내긴 눈치 보이고 금방은 못 와. 일단 좀 있어봐도 된다니까, 여러번 오가느니 아예 60일 지나서 예약 잡고, 그때 피검사 결과도 같이 듣고 주사는 필요하면 맞든지, 한꺼번에 하지 뭐. 엄마는 이제부터가 오늘의 본 목적이라는 듯 말을 이었다. 걔가 퇴근길에 자리 잡아놓았단다. 저녁 먹고 가라. 오늘 아니면 그 친구랑 언제 얼굴 보고 인사 나누겠니.

박씨와 둘이 제도권의 계약을 체결하자는 뉘앙스로 간이라도 본 게 아닌 다음에야 왜 내 얼굴을 그쪽과 터야 하는지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지만 오늘 하루는 엄마 비위를 맞춰주기로 작정하고 왔으므로 잠자코 따라갔는데, 엄마가 앞장서서 들어간 곳은 집 근처 무한리필 고깃집이었다. 인당 19,800원으로 갈빗살 무한 제공에 볶음밥이 포함되는 대신, 갈비 아닌 다른 부위의 살을 먹고 싶다거나 냉면 혹은 찌개가 필요하면 추가 지불하는 방식으로, 나나 엄마의 평소 식사량을 생각했을 땐 가성비가 떨어지는 곳이었다. 불판에서 기름 튀는 소리와, 그 소리에 지지 않기 위해 사람들이 한껏 높이는 목청이 뒤엉켜 식당 안은 아비규환이었다. 여기서…… 사람을 만나? 인사를 나눠? 아니 뭐 만날 수도 나눌 수도 있긴 한데, 편안하고 오랜 친구들 같으면 오다가다 술 한잔하게 모이자든지 망년회를 제안할 만한 곳이긴 한데…… 당혹감의 세목을 따질 겨를도 없이 구석 자리에서 박씨가 일어나 손을 흔들어 보였고, 엄마는 웃으며 그리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엄마가 전에 보여준 사진은 대체 얼마나 보정 필터를 씌웠던 건지, 동안이네 엄마 사람 잘 잡았네 말치레로 때웠던 일이 무색하게 박씨는 그 나이에 맞는 얼굴이었다. 초면인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안녕하세요, 입을 열긴 했지만 피차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을 터라 결국 눈인사에 가까운 묵례가 되었다. 그뒤로는 딱히 할 말이 없었으므로 나는 두 사람이 나누는 회사 이야기나 흘려들으며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아유 이런 걸 오자마자, 제가 할게요, 박씨가 나서는 시늉을 했지만 엄마는 손을 내저으며, 됐네요, 우린 놀다 왔고 자긴 일하다 왔잖아. 그리고 이런 건 여자가 잘해. 나로선 입 대신 손을 움직이는 게 어딜 봐도 나은 자리였으므로 처음부터 끝까지 맞는 데라곤 ‘자긴 일하다 왔잖아’뿐인 그 말에 딱히 토 달지 않고 고기를 구웠는데 그다음 박씨가, 일 얘기 나왔으니 말이지만 저도 내년이면 서른여덟이다보니 슬슬 제 일을 찾아보고 싶고요…… 그러자 엄마의 대꾸, 아이고 내 앞에서 나이 얘기하네 이 사람이, 그럼 회사 일은 자기 일이 아니냐? ……나도 언제까지나 옷 보따리 싸들고 종종거리면서 화려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피사체의 비위만 맞추고 살 게 아니라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패션기사도 수록하고 싶고 포트폴리오도 만들고 나 자신의 일을 해보고 싶은 건 맞으며, 남의 돈을 받아먹고 사는 젊은 노동자 가운데 그만한 포부 전혀 없는 사람 찾기가 더 어렵겠지만, 박씨의 말은 어딘가 좀 석연치 않았다. 제 일을 ‘해보고’ 싶다 아니라 ‘찾아보고’ 싶다고, 열여덟도 스물여덟도 아닌 서른여덟에. 제 일을 찾아보고 싶어요. 제 일을 (할 방도를) 찾아보고 싶어요. 세밀히 따지자면 최소한 뭘 하고 싶은지는 안다는 의미에서 후자가 그나마 나을지 모르나 그건 최악과 차악 외에 다른 선택지라곤 없는 투표용지 같았고, 그는 아무래도 지금 몸담은 회사에서 월급 받아가며 사는 게 그나마 안전할 듯싶었다. 누구든 언젠가는 한손에 다 쥘 수 없는 크기의 열망과,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현실 사이의 각도를 재는 날이 올 것인데, 그에게는 지금이 그때여야 할 것 같았다. 그나저나 아무리 열심히 구워도 도대체 불판에 고기가 남아나지 않아 고개 들어보니, 살점이 익기가 무섭게 박씨가 냉큼 집어다 먹고 있었다. 그의 볼살이 떨리는 걸 보면 아직 입에서 우물우물 씹고 있는 모양이라 3인분의 고기가 다 끝장나기 전에 엄마도 한입은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엄마는 박씨가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더니 기껏 한점 집어다가 파 마늘과 함께 상추에 싸서는 아예 그의 얼굴 앞에다 내밀어 대기하고 있었다. 쌈도 좀 싸서 먹어, 고기만 먹으면 대장에 안 좋대. 우물거리고 끄덕이고를 동시에 하느라 그의 볼살은 두배로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따님도, 제가 아직 뭐라고 불러야 마땅한지 모르겠는데요, 굽지만 말고 앉아서 좀 드시지 그러세요, 하고 박씨는 불판에 남아 있던 마지막 두점 가운데 한점을 집어 먹으면서 말했다. 나는 고기를 뒤집던 손을 잠깐 멈추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는가 싶더니 그는 말없이 자기 앞의 소주잔을 비웠다. 그에게서 시선을 천천히 거둔 뒤 탈칵 소리 나게 집게를 내려놓고 리필 요청을 하려는데, 엄마가 또 시작이었다.

얘, 근데 여기 갈빗살밖에 안 파나.

눈 감고 명상 중이라면 모를까 선명한 한글 볼드체의 메뉴판을 빤히 올려다보면서 그리 말하는데 그러니까 제발, 이번에는 갈비 말고 다른 걸로 시키자고 요청이나 제안을 명시할 수 없을까. 그러면 나도 사정을 설명하기가 한결 나은데.

엄마. 정해진 거 말고 다른 부위는 추가요금이 발생하는데?

아 그런가, 그치만 먹을 때 잘 먹어야지 언제 또 우리 만나서 먹는다고.

추가요금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줄 알았는데, 엄마는 의견을 완전히 접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통 크게 지갑을 여는 것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말로 또다시 결정을 내게 미루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내가 물어봐주기를 바라는 건가, 그보다는 처음 만나는 아저씨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도록 내가 선뜻 나서주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 오늘은 딸이 한턱 쏠 테니까 걱정 말고 팍팍 시켜요…… 그러나 나는 아직 능력이 없었고, 회사를 다니면서 포트폴리오로도 쓰기 힘든 경력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기만으로도 이미 한계에 이른 참이었는데, 그런 형편을 솔직히 드러냈다간 돈도 안 되는 회사 그만 때려치우라든지 반지하 월세방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와서 다니라든지 같은 소리나 돌아올 것 같아 담아두고만 있는 처지였다. 내 코가 석자인데 언제까지 엄마의 이런 마음 계산까지 대신해주면서 소통이라는 이름의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나는 엄마가 기대할 것 같은 반응은 쏙 빼고, 엄마가 병원비나 키트 한개 값마저도 아까워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엄마. 아까 나 약국 간다 할 때는……

아유 됐어 얘! 뭔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앉았어 정신없게.

역시 그 일에 대해서는 박씨에게 아직 혹은 언제까지나 말하고 싶지 않은 건지, 그런 일 자체를 남사스럽다고 여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름 끓는 소리에 섞인 내 한숨 소리도 못 들었을 것이다.

그럼 어쩔까요? 뭘 더 시켜, 말아? 원하는 걸 말씀하세요.

글쎄, 모르겠네 나도, 그냥 좀 비싸지 않은 걸로 네가 알아서 시켜보든지.

엄마. 고기든 질 좋은 채소든, 우리한테는 비싸지 않은 게 없다? 19,800원이라는 테두리 너머에 있는 건 뭐든 예산을 초과하는 거라고. 이 아저씨가 드시는 소주도 다 별도 요금이야…… 같은 소리는 하지 않았다. 시켜보든지(말든지), 아니라 시켜줘, 분명하게 말해달라고 하기도 지쳤다. 엄마가 모른다면 나도 모른다 이제. 어차피 딱 보아하니 돈은 박씨가 낼 것 같지는 않고, 술도 들어갔겠다 그는 엄마 집에서 자고 갈 테지. 테이블당 규정 이용 시간이 100분이어서 술과 고기를 더 많이 해치울 시간이 부족하고 깊은 대화를 단정히 나누기도 어렵다는 점이,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안심되며 동시에 비참해지는 포인트였다.

 

결국 술이 그리 센 편도 아니었던 박씨를 우리 둘이 부축해서 거실 카펫에 뉘어놓았다. 엄마가 결혼 전부터 쓰던 거라는 카펫은 색도 다 바래고 털은 다 주저앉아서 카펫으로서의 모양도 기능도 부재하나 아직까지 깔려 있는 이유는 순전히 폐기물 처리비용이 아까워서일 거였다. 박씨의 가방과 외투를 안방 옷걸이에 걸려고 엄마를 따라 들어왔는데, 스위치를 올리자 바 형태로 된 형광등 세줄에서 맨 끝 한줄이 깜박이는가 싶다가 이내 빛의 살갗이 벗어져버렸다.

엄마. 이거 오늘 나간 거야?

이 정도라면 수시로 전조 증상이 있었을 법했는데, 엄마는 등 돌리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내 쪽은 보지 않고 얼버무렸다.

어, 안 그러더니 갑자기 저러네. 됐어, 불은 아직 두개나 들어오는걸. 퇴근하면 집에서 씻고 자기 바쁜데 뭐 환할 필요 없다.

조명 덮개는 무거운 유리 소재이며 사방의 나사를 돌려서 풀고 끼우는 방식이었다. 부엌 의자를 갖고 와서 받치면 혼자서 형광등을 갈기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자면 유리 덮개를 빼고 끼우는 과정에서 의자를 여러번 오르내려야 하니, 가뜩이나 무릎이 안 좋은 엄마 혼자서 하기보다는 내가 올라가든지 한명은 밑에서 보조하든지 하는 게 나을 터였다.

형광등 여분 안 사놨어? 지금 나 있을 때 갈자.

저 사이즈 요즘 잘 안 나오더라. 나중에 마트 가야지 집 근처 슈퍼엔 없던데.

집 근처 슈퍼를 한번 살펴서 재고를 확인했을 정도라면 이 형광등은 언제부터 깜박거리기 시작한 걸까. 나는 열린 안방 문 밖으로 카펫에 드러누운 박씨의 발을 한번 바라보고, 브래지어 끈이 파고들어 위아래로 출렁이는 엄마의 겨드랑이와 등살을 바라보고, 이제 두번째로 깜박이기 시작하는 가운데 형광등을 올려다본 뒤 배 속 깊은 어딘가에서 길어올려지는 한숨의 우물을 가까스로 목구멍 부근에서 인사로 변환하여 토해냈다.

그럼 엄마, 나 갈게. 푹 쉬어.

자고 가지, 시간도 이런데.

엄마는 끝내 이게 내 딸이라고, 무슨 대학을 나왔고 지금은 멋진 패션 잡지 일을 하며 영화배우들의 사인도 여러장 갖고 있다고 박씨에게 맑은 정신으로 제대로 인사시키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나는 저런 상태의 박씨가 깨어나 나를 보면 민망해할지 모르는데다 어리지 않은 자식의 존재를 말로만 들었을 때와 눈으로 볼 때가 또 달라서 현실의 질량에 휘청거릴 수도 있다고, 두 사람의 시간을 좀더 단단히 땋아올리지 않은 상태에서 내 실물을 너무 일찍 상대방에게 오픈한 것은 그리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며, 나이 차든 환경이든 무엇을 구실로 삼든 간에 언제 해체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두 사람 관계의 끝을 오히려 좀더 빨리 앞당기는 요인이 될지 모른다고 얘기하는 대신, 가장 간편한 핑계를 댔다.

오늘 휴가 냈잖아.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해서, 준비할 게 좀 있어.

남은 형광등 두개 중 하나가 또 한번 깜박거리며 빛의 살비듬을 털어냈을 때, 옷을 다 갈아입은 엄마는 손사래를 쳤다.

그래, 얼른 가라. 저놈의 형광등도 고물인데.

형광등이 나의 체류 여부를 결정하는 건 아니었지만, 더 머물다간 그 신경질적인 점멸의 무게에 짓눌려 내가 절멸하고야 말 것 같았다.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공연히, 아직 그렇다고 결정 나지 않았는데도 휴대전화로 ‘완경 선물세트’ 같은 것을 검색했다. 좋든 싫든 또다른 계절의 길목에 진입하는 시기가 엄마에게 온 거라면 뭐라도 깜짝 선물을 해줄까 싶은 마음 정도는, 효심의 유무와 관계없이 나한테 디폴트로 장착되어 있었다. 초경 선물세트는 그 구성품의 종류와 성능이 어떻든 간에 검색 결과가 다양하게 나왔는데 완경 선물세트는 국내 중소기업에서 제작하는 선물박스를 포함하여 한손으로도 꼽을 수 있을 만큼 극히 한정적이었고, ‘갱년기 엄마를 위한’까지 입력해야 단품으로 석류 추출 영양제 같은 자질구레한 결과가 떴다. 이제 시작하는 몸,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 비유의 적절성 여부와 무관하게 ‘수확’이 가능하다고 간주되는 몸과, 그 반대로 이제 닫혀가는 몸, 필수 기능을 잃었으며 소위 시장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인식되기를 넘어 수지가 맞지 않는, 심지어 일종의 파산 상태로 치부되기까지 하는 몸에 대한 관심 유무 차이일까. 사회문화 맥락을 제거하고 경제논리에만 집중하자면 앞으로는 완경기 인구가 초경기 인구를 넘어설 텐데, 조만간 기업 입장에서는 완경 쪽이 더 돈이 될 것임에도 그 시장을 섣불리 개척하기 어려운 건 사람 따라 증상이 천차만별이어서겠지. 초경을 시작하는 여자아이들을 위한 선물세트는 그나마 합당한 비용으로 실용적인 박스를 구성할 수 있었다. 최소한 그들에겐 무엇이 필요한지가 명료하니까. 순면 생리대부터 예쁜 디자인의 요일별 주니어 속옷 세트나 생리통을 완화하는 하복부 찜질팩, 생리대를 휴대하는 데 쓰이는 귀여운 캐릭터 파우치. 그런데 갱년기 여성을 위해서 요일별 요실금 전용 방수 팬티 같은 걸 박스 구성품으로 삼기는, 내가 업체 대표라도 좀 망설여질 것 같았다. 대중적 보편적 증상이야 있겠지만 그게 예외 없이 모두에게 나타난다고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절대적으로, 예외 없이 피를 흘리게 되어 있는 초경과는 다른 일이, 몸에 벌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패키지를 개봉했는데 안에 든 것이 요실금 팬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환한 미소를 짓는 엄마를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몇 페이지를 넘기고 나니 팬티니 영양제니 무엇 하나 총체적으로 미감이 떨어지지 않는 게 없었다. 내가 이런 거 꼴도 보기 싫은데 엄마가 퍽이나 좋아하겠다. 더하여 나는 실제의 내 삶, 입에 들어가는 것이나 몸에 걸치는 것이 얼마나 부실하든 간에 눈으로는 하루 종일 고급스럽고 찬란한 것들을 보는 업무 덕분으로, 조금이라도 조악한 건 물론 그저 그런 정도의 디자인까지 용납하지 못하는 눈이 되었다. 지극히 제한된 선택 범위 안에서 그래도 상자 디자인이 모던 심플하여—실은 무슨 금붙이라도 넣어 이렇게 비싼가 궁금해서—클릭해본 선물세트의 구성품은 이랬다. 기본적으로는 갱년기 여성이 주로 맞이하는 증상과 그 원인, 그 시기의 적응과 통과 요령에 대해 의학적인 설명을 최소화하고 알기 쉽게 조언하는 얇은 미니 책자가, 구시대의 임신 출산 보조 책자나 산모 아기 수첩 느낌으로 들어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얼굴에 열이 오르는 엄마를 위한 알루미늄 쿨러는 평소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갖다 대는 둥근 바 형태로, 모델들이 메이크업 전에 부은 얼굴을 가라앉힐 때 쓰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가만히 있어도 식은땀이 줄줄 나는 엄마를 위한 손수건은 플라워 타입과 스퀘어 타입 두가지 디자인 가운데 택일할 수 있었는데, 그 어느 쪽도 상자 안에 함께 구성된 상품인 괄사의 색상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았다. 향기가 오래가는 비누로 만들었다는 파스텔 톤의 장미 한송이도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은은한 향수를 담았다는 보디샤워젤은 용기 디자인이 작고 세련되어서 향수와 착각할 법하며, 용량이 적으니 몇번만 써도 바닥날 것 같았다. 이럴 바에는 그냥 빈 상자를 사다가 내가 이것저것 디자인도 하고 알아서 채워 넣는 게 나을지도 몰랐는데, 이 세트가 내세우는 독보적인 가치는 다음부터였다. 이제 삶의 다른 단계로 나아가는 엄마에게 전하는 위로와 응원의 문구—인생의 문이 닫힌다고 생각지 마세요. 또다른 문을 여는 시기가 된 것입니다. 완경은 곧 완성과 같습니다. 하나의 인생을 완성하신 당신께 바칩니다 기타 등등—가 기입된 그림엽서 세트(10매)는 오로지 이 선물세트 프로젝트를 위해 프로 일러스트레이터가 직접 참여하여 각기 다른 그림을 담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세개의 음원이 담긴 CD 한장, 1번과 2번 트랙은 나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지만 아무튼 기성 시인이 완경을 맞이하는 엄마를 위해 쓴 시를 전문 성우가 낭독한 것이고, 3번은 아마도 이제 막 시작하는 레이블의 신인가수가 엄마를 사랑하고 격려하는 노래를 부른 것이었다. 아이템 하나하나에서 저작권…… 저작권…… 부르짖는 메아리가 에밀레종의 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고, 눈으로 보이는 구성품의 규모나 퀄리티에 비해 가격이 왜 높은지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이런 종류의 선물세트란 생필품이라기보다는 기분상의 문제와 관련된 사치품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차라리 같은 값으로 여성용 유산균이나 사다가 향수니 꽃이니 포장도 없이 민무늬 재생 종이가방에 넣어 안기는 게 엄마한테는 합리적인 소비로 여겨질 것이었다.

계약직 어시스턴트에게는 법인카드가 주어지지 않으니 매달 미리 개인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교통비와 식대 등의 촬영경비, 월급이 입금되는 즉시 방세와 통신비와 카드값으로 녹아버리고도 마이너스를 기록할 숫자를 헤아리면서, 나는 예산 최대치를 점점 떨어뜨리다 그대로 휴대전화를 쥔 채 잠에 떨어졌다.

 

검색어 알고리즘 덕분에 며칠 내내 SNS나 웹사이트에 들어갈 때마다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갱년기 영양제 광고가 떴다. 나의 망설임을 타박하고 판단력을 무디게 하는 종용의 언어들이 휴대전화 화면 구석구석을 수놓았다. 완경을 맞이한 엄마에게 인생의 2막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넣은 주문제작 데코 케이크와 투명 비닐에 싼 돈다발이 뽑혀나오는 꽃바구니를 선물한 인스타 인플루언서의 쇼츠도 떴다. 꽃바구니 옆에는 출산과 가족 돌봄을 비롯한 그간의 전적인 희생에 대해 고마움의 뜻으로 아버지가 준비했다는 핸드백이 놓여 있었는데, 방방곡곡 아웃렛에 대거 유통된 몇 시즌이나 지난 재고였지만 내 월급으로는 단 한개도 못 사는 이딸리아 제품이었다. 그 옆으로는 중년 대상의 기초 화장품 세트가 비추어졌는데, 군대에서 휴가 나온 남동생이 용돈을 모아 사준 것으로 가격이나 브랜드 상관없이 그 마음이 기특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딸이 직접 쓰고 낭독해주는 감사와 위로의 편지에 눈물이 맺히는 엄마……라는 자막과 의미 모를 BGM이 잔잔히 흘러가는 뒤편으로, 그 어머니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댓글창에는 쇼츠 제작자가 최상단에 고정한 본인 코멘트가 있었다. 결코 큰 비용이 필요하지 않아요. 정성을 담은 편지 한통으로도 마음을 전할 수 있답니다. 말 한마디로, 글 한줄로, 태어난 순간부터 엄마에게 진 천냥 빚을 갚아보세요…… 명품 핸드백만 안 보였어도 나는 그 입바른 말을 믿을 뻔했고, 실은 믿었던들 내가 살가운 언어로 편지를 쓴다든지 그럴 성격도 못 되었다. 해당 영상의 댓글창은 어머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머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어머님의 완경을 축하합니다……로 도배되었다. 다들 남의 집 어머니 완경을 경사스럽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축하할 일이 맞긴 한 건지, 뭘 축하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이 되었다. 병마와 싸워 이겨낸 사람에게는 회복을 축하하고, 아기를 낳은 사람에게는 출산을 축하하고,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에게는 성취를 축하하는 일에 익숙한데, 생리가 없어지고 몸이 좀더 늙고 골다공증과 우울증을 비롯한 신체 안팎의 고통이 늘어나는 것 외에는 그전과 현격히 달라진 점 없는 존재의 무엇을 축하하는 걸까? 댓글창에 아낌없이 뿌려진 축하와 덕담은 자식을 낳아 키워낸, 일종의 임무를 완수했다고 간주되는 어머님을 향한 것이었다. 확고한 결단까지 내렸다곤 할 수 없으나 지금 같아선 일생 누군가의 어머님이 될 의향이 없는 나 같은 사람도 25년 뒤 이날을 맞이했을 때 동일한 축하를 받을 수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축하의 목적어는 무엇이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이를 낳지 않은 친구들끼리 파티룸을 빌려다가 누군가의 완경을 축하하며 샴페인을 터뜨리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는데, 브라이덜 샤워와는 달리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엄마는 내가 다녀간 뒤로 여태 소식이 없고, 이미 지난주에는 혈액검사 결과가 나왔어야 하는데, 정말 다음번 월차를 쓸 수 있을 때까지 두고 볼 셈인가 싶었다. 왠지 엄마 쪽 문제가 어떻게든 결론이 나야 내 문제로 돌아올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러자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일, 즉 두줄이 뜬다면 어떻게 할지로 고민의 바통이 넘어갔다. 그걸 염려하기보다 테스터부터 사는 게 빠르다는 걸 모르지 않은 채로 그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지, 알리기나 해야 할지 여러 경우의 수가 머릿속에 빽빽하게 수놓아졌다. 오로지 수술비 때문에, 이미 부식되어 녹슨 관계의 문고리를 붙들고 매달리는 순간을 피할 길 없게 되는 장면 같은 것. 반반 부담하자고 하면 그쪽이 어찌 나오려나, 세상에 흔히 널린 여느 파렴치한 빌런들처럼 그거 내 애 맞아? 이러고 나오기라도 하면. 혹은 메시지를 읽은 즉시 차단을 박아버리면 어떻게 대응해줄까, 그보다 수술을 위해 사실을 감추고 단순 병가나 낼 수 있을지 같은 사소하면서도 현실적인 걱정에 이르기까지.

 

사무실에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치프 에디터의 명을 받고 협력처에 사죄하러—무슨 건인지는 사건 개요와 앞뒤 맥락을 간략하게 들었으나 도무지 내 담당이 아니라 영문을 모르겠고 일단 사무실에서 그런 일들 포함 궂은일은 막내 몫이며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암만 생각해보아도 내가 간다고 그쪽이 수긍하기는커녕 성의가 없다든지 높은 사람 불러오라고 더 길길이 뛸 것 같은데, 사회초년생인 나도 할 만할 예상을 치프가 안 한다는 점이 의아했다가 곧 알아차린바, 치프는 어쩌면 그냥 나한테 엿 한번 더 먹는 경험치를 쌓아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뛰쳐나가는 길에 엄마의 카톡이 왔다. 본문 없이 덩그러니 전송되어 온 사진은 혈액검사 결과 용지를 찍은 것 같았다. 뭔가 고대 사원소 마법의 주문을 외우는 것 같은 알파벳과 숫자 조합으로 이루어진 여덟자리의 보험 코드가 여러개 떠 있었고, 그 옆으로 무엇의 약자인지 알 길 없는 FSH, LH, TSH 등의 대문자와 ECLIA라는 단어가 여러개 나열되어 있었으며, 소수점 숫자들이 잔뜩…… 이걸 내가 왜 보고 있어야 하는지, 도대체 내가 이걸 보고 무엇을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지, 검색이라도 해서 알려달라는 뜻인지, 안 그래도 신산스러운 마음을 있는 힘껏 동여매어야만 협력처에 가서 퍼부어질 한바가지의 모욕을 견딜 수 있을 것인데 이 마당에 한가롭게 스무고개라도 하자는 셈인지 화가 솟구치기 직전, 또 하나 문자가 도착했다.

기다려보길 잘했지 오늘 막 시작했다 괜히 주사 맞을 뻔했네 결과도 죄다 기준 범위 내 수치란다 혈액검사비가 아깝네

세상에 구전 설화나 미신처럼 전해 내려온 수많은 개인의 느낌과 주관적 경험의 열거가 아니라 과학과 의학의 논리가 지시하는 명확한 숫자 덕분으로 비록 임시라곤 해도 일단의 결론이 내려지기는 한 듯했다.

응 축하

안심한 바람에 반사작용 수준으로 툭 던지듯 짧은 답장을 보냈는데, 나는 이번에는 또 무얼 축하한다는 걸까 모르겠다는 심정이 되어서 곧바로 딴소리를 이어 붙였다.

형광등은? 여전함?

엄마는 안방 천장을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저번 날 네가 알려준 대로 앱에서 사람 구해서 갈았어 근데 마트에도 형광등 재고가 하나밖에 없더라 완전 죽은 것만 갈아주고 계속 깜박이는 건 아예 빼주고 갔어 그래서 결국은 여전히 두개야

박씨는 뭐 하고 앱에서 사람을? 묻는 대신 나는 이렇게 전송했다.

잘했네

나는 박씨가 뭐 하는지 궁금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궁금해하지 않으며 그가 엄마와 언제까지 교유할 사람인지 또한 가늠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의 관계 속에 나열된 현실적인 숫자의 의미와 무게를 판독하지 않을 것이었다. 둘 사이에 펼쳐진 카펫을 어떤 몸짓과 단어로 채울지는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었고,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내가 얼마나 엄마 몸 밖의 타인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더 길게 대화를 주고받을 시간은 없었으므로 전화를 가방에 넣고, 전철역으로 통하는 상가로 뛰어 들어갔다. 그때 문득 계산대와 진열대를 오픈해놓은 약국이 보였다. 조금 멈칫거리다가 다음번 열차 시간을 확인한 뒤 약국 앞으로 다가가는 내 발걸음에 문득 리듬이 실렸다.

엄마의 완경은 아직 오지 않았고 엄마는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완성되어가는 길목 어딘가에서 서성이는 사람이었으며 환한 광채를 발하는 불빛은 아직 두개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