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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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안보윤 安寶允

1981년 인천 출생. 2005년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 『소년7의 고백』 『밤은 내가 가질게』,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 『오즈의 닥터』 『사소한 문제들』 『우선멈춤』 『모르는 척』 『알마의 숲』 『밤의 행방』 『여진』 등이 있음.

namakwa@hanmail.net

 

 

 

그날의 정모

 

 

나는 정모를 여러번 때렸다. 어릴 때부터 정모는 내 물건을 망가뜨리거나 나를 자주 놀렸다. 그래서 밉거나 얄미웠고, 미워하거나 얄미워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한대씩 때렸다. 그래야만 때릴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을 때는 당연히 때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정모를 때린다. 아무 곳이나 쥐어박고 함부로 잡아 눌러 팔을 비틀어놓는다. 정모는 시멘트 바닥에 이마가 갈린 적이 있다. 어깨가 빠지고 손가락이 골절된 적이 있다. 정모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때문이다. 중얼거리며 누군가의 주위를 맴돌기 때문에, 화장실도 아닌데 바지 속에 손을 넣어 사타구니를 긁어대기 때문에 사람들은 정모를 때린다. 아무렇게나 때린다.

 

정모는 열한살, 140.1센티미터에 34킬로그램, 발 사이즈는 210밀리미터.

작고 비쩍 말랐고 비틀어 따는 음료수 뚜껑은 잘 열지 못한다.

 

정모는 밤마다 식탁 주위를 맴돈다. 눈꺼풀이 퉁퉁 부은 채로 자기 방에 개가 있다고 말한다. 꼬리가 희고 긴 개라고, 어쩌면 여우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정모는 여우개가 침대 발치로 파고들어 잠을 잘 수 없다고, 여우개의 얼굴을 보려고 이불 속을 헤매다보면 땀이 뻘뻘 나고 숨이 차서 도저히 잠들 수가 없다고, 이불 속에 여우개만 아는 통로가 있다고 말한다. 정모의 잠옷은 땀에 젖어 깃이 돌돌 말려 있다.

—꿈을 꿨나보다.

아빠가 정모의 등을 쓰다듬는다.

—그런 건 전부 꿈이야. 눈 꽉 감고 잠들면 다 사라져.

아빠가 시범을 보이듯 눈을 꽉 감고 말한다.

정모의 방에 가보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정모와 함께 이불을 꽉꽉 밟아 여우개만 아는 통로를 부순다. 이불 속을 샅샅이 뒤져 여우개의 희고 긴 꼬리를 찾는다. 정모와 나란히 누워 여우개를 기다린다. 삶은 계란 냄새가 나면 여우가 온 거야. 정모가 속삭인다. 희고 긴 꼬리를 가지고 삶은 계란 냄새를 풍기는 여우개는 아침이 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정모의 꿈이 아니다. 어릴 때 내 발치에는 검은 개가 있었다. 짧고 억센 털을 가진 개였는데 목덜미에서 늘 젖은 흙냄새가 났다. 내 발가락을 핥는 혀가 놀랍도록 뜨거웠다. 나는 그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정모는 낮에도 어딘가를 맴돈다. 한낮의 놀이터를 서성이거나 상가 건물 비상계단을 끝없이 오르내린다. 어느날의 정모는 태연한 얼굴로 수학 문제를 푼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 정모는 수학 신동이라 불렸다. 학교 대표로 어려운 대회에 몇번이고 나가 상장을 받아 왔다. 어느날의 정모는 가랑이 사이에 손을 끼워 넣고 다리를 덜덜 떨며 일곱시 삼십이분 이조경분의 일초, 일곱시 삼십삼분 삼조경분의 사초, 같은 것을 되뇐다. 아무도 정모 곁에 가지 않는다. 정모가 누구에게 달려들거나 욕설을 퍼붓는 게 아닌데도 그렇다. 정모의 반 아이들은 정모를 이상한 애라고, 정신 나간 애라고 부른다. 걔 있잖아, 살짝 미친 애. 누군가 그렇게 말하면 아이들은 틀림없이 정모를 돌아본다. 수학 신동에서 정신 나간 애가 되기까지는 반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정모는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작은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해 몇십분씩 멈춰 있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이차선 도로라 신호를 지키는 사람이 드문 곳이다. 정모는 바짝 굳은 얼굴로 신호등 아래 서 있다. 파란불이 되어도 건너지 않는다. 빨간불이 되고 다시 파란불이 되고 맞은편 상가에서 나온 사람들이 신호와 상관없이 우르르 길을 건너도 정모는 꼼짝 않는다.

[니 동생 또 고장 났다]

나는 그런 내용의 메시지와 정모의 사진을 받고 아파트 앞 횡단보도로 뛰어간다. 정모 옆에 나란히 서서 파란불이 되기를 기다린다. 정모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너려 하자 정모가 울먹이며 손을 빼낸다.

—나는 안 돼.

걸음을 물러 다시 정모 옆에 선다. 정모가 신호등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발을 구른다. 파란불이 깜빡이기 시작하자 숨을 몰아쉬며 수를 센다. 열둘, 열셋. 정모가 자리에 쪼그려 앉아 흐느낀다.

—또 열세번이야, 열다섯번이 내 건데.

파란불이 열다섯번 깜빡이는 순간에만 길을 건널 수 있다고, 그게 자신의 신호라고 정모는 말한다. 늦었는데 신호등이 자기만 보내주질 않는다며 운다. 맞은편 상가에는 정모가 다니는 태권도학원이 있다. 정모는 태권도를 몹시 좋아한다. 열다섯번 깜빡이는 걸 다 세고 나면 빨간불로 변하니까 어차피 건널 수 없다고 설명해도 정모는 계속 자신의 신호에 대해서만 말한다. 나는 정모를 일으킨다.

—열다섯번 깜빡여야 건널 수 있는 게 아니야. 네가 건널 때만 신호등이 열다섯번 깜빡여주겠다는 거야.

파란불이 되자 나는 정모를 힘껏 떠민다.

—누나가 몇번 깜빡이는지 세어줄게.

정모가 눈을 꽉 감고 달린다. 나는 정모가 그랬던 것처럼 턱을 쳐들고 신호등을 바라본다. 맞은편에 선 정모가 이번에는 신호등이 아닌 나를 쳐다본다. 빨간불로 변한 뒤 나는 열다섯! 하고 외친다. 정모가 팔을 들어 머리 위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좋아한다.

정모는 개미들의 움직임을 노트 가득 적어둔다. 아파트에는 개미가 별로 없어 주변 공터와 도로 옆 풀숲을 매일같이 뒤지고 다닌다. 개미를 찾으면 몇시간이고 뒤쫓으며 구부러지거나 곧거나 배배 꼬인 선들을 노트에 그려 넣는다. 나한테 보내는 암호야, 이건 나만 풀 수 있어. 정모가 말한다. 이걸 풀면 어떻게 되는데? 정모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한다. 지구 종말을 막을 수 있어.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엄마에게 하지 않는다. 아빠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말을 흘리면 엄마 아빠는 심각한 얼굴로 정모를 살피고 의도와 행적을 의심하고 주변에 사과한 뒤 정모를 데리고 사라질 것이다. 정모는 또 이주일, 한달, 두달 동안 완전히 사라졌다가 물에 젖은 털짐승처럼 축 늘어진 채 비린내를 풍기며 돌아올 것이다. 그럴 때 정모는 생기도 식욕도 말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정모가 된다.

 

*

 

태권도학원은 정모가 수시로 사라진다고, 분명히 학원에 온 걸 봤는데 어느 틈엔가 사라지고 없다고 집에 알린다. 애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해요, 어머님. 그런데 ADHD 검사는 받아보셨나요? 수학학원과 영어학원에서도 정모가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아이라고, 바쁘시겠지만 아이에게 좀더 집중해달라고 권한다. ADHD요? 애들이 뭐만 했다 하면 그거라고 말하던 때가 있었죠, 이런 것도 다 유행을 타니까요. 정모의 경우에는 논리성과 추론능력이 떨어지는 게 문제예요. 이런 아이들에겐 사고력수학이 맞춤인데 어떠세요? 이번에 특별강좌가 열리거든요.

아빠와 엄마는 등하원 도우미를 구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면접을 보러 온 도우미들은 더없이 깍듯한 태도를 보이다가도 정모의 몇몇 행동을 목격한 뒤엔 손사래를 치며 돌아간다. 도우미가 아니라 간병인을 구하셔야죠. 마지막 면접자가 쏘아붙인 말에 아빠는 화를 내고 엄마는 숨을 참는다.

의논 끝에 엄마와 아빠는 할머니에게 연락한다. 할머니는 집에서 차로 두시간쯤 떨어진 소도시에서 혼자 살고 있다. 작은 정원이 딸린 집이지만 할머니는 정원에 아무것도 심지 않는다. 그러니 돌볼 것도 없다. 할머니는 손쉽게 그곳을 떠나 우리 집으로 온다. 커다란 트렁크를 세개나 가져와 거실 복판에 부려놓는다. 아빠가 피아노가 놓인 손님방에 트렁크를 들여놓자 심기가 불편해져 저녁을 먹는 내내 화를 낸다. 사람 구할 때까지 한두달만 도와주세요. 엄마가 공손히 부탁하고, 그럼 저 피아노라도 빼버려라, 할머니가 대답한다. 저 방은 안 되는데. 정모가 겁에 질린 얼굴로 거실을 맴돈다.

손님방은 금세 할머니 물건들로 가득 찬다. 할머니는 피아노를 복도로 빼내고 그 자리에 새하얀 화장대를 들인다. 옷과 스카프를 걸어둘 수 있는 행거를 벽면마다 설치한다. 할머니의 방은 아름답고 조잡한 물건들로 가득하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연약한 것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할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에서 보낸다.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켜둔 채 소파에 누워 잠든다. 텔레비전도 소파도 우리는 쓸 수 없다. 복도에 놓인 피아노 때문에 현관으로 나가려면 게걸음을 쳐야 한다. 정모는 피아노 앞을 지날 때마다 눈을 꽉 감는다. 자신의 방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정모 때문에 함께 지내게 되었지만 할머니는 정모를 몹시 성가셔한다. 어떻게든 싫은 내색을 숨기지 않는다. 너 때문에 다 늙은 내가 고생이다. 할머니는 틈날 때마다 정모에게 불평한다. 할머니의 일과는 정모 없이도 바쁘다. 아침마다 러닝머신을 뛰고 유튜브를 보며 한시간씩 요가와 스트레칭을 한다. 아침으로 그릭 요거트와 곡물빵을, 점심으로 차가운 면 요리를, 저녁으로 단백질 150그램이 포함된 뜨거운 음식을 먹는다. 차와 커피를 수시로 마시고 스틱형 꿀과 저분자 콜라겐을 매일 한포씩 짜 먹는다. 할머니는 이곳에 벌써 친해진 사람들이 있다. 옷에 맞춰 스카프를 골라 매고는 마땅한 신발이 없다고 투덜댄다. 자주 외출하고 자주 정모의 마중을 놓친다.

할머니는 아빠 앞에만 서면 정모 때문에 밥 한술 제대로 뜰 시간이 없다고 불평한다. 몸도 예전 같지 않고 갑자기 나와 살려니 부족한 물건투성이라고 화를 낸다. 아빠는 소 연골에서 추출한 콘드로이틴과 방목한 염소로 만든 흑염소즙과 뉴질랜드산 녹용을 바쁘게 사다 나른다. 엄마는 할머니와 함께 백화점에 간다. 그러면 할머니는 아주 잠시만 정모에게 살갑게 굴다 금세 또 정모를 놓친다. 나는 횡단보도 앞에서 상가 비상계단에서 공사장 입구에서 정모를 데려온다. [야, 이거 니 동생 아님?] [비전프라자 지하주차장에 정모 출현] [수거 바람] 친구들의 메시지는 조금씩 과격해진다.

정모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처럼 할머니는 거침없고 제멋대로다. 할머니는 엄마와 아빠가 다니는 은행 중 어느 쪽이 더 크고 좋은지, 누구의 직위와 연봉이 더 높은지 알고 싶어한다. 정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애가 누굴 닮아 저 모양이냐.

할머니는 엄마를 똑바로 쳐다보며 그렇게만 말한다.

 

할머니한테서 나는 냄새가 싫다고 정모는 말한다. 냄새가 왜? 내가 묻는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할머니한테서는 좋은 냄새만 난다. 대체로 향긋한 냄새다. 코끝이 쌉쌀해지는 매큼한 냄새를 풍길 때도 있고 희미한 풀냄새를 풍길 때도 있지만 기분 나쁜 냄새를 풍기는 일은 없다. 백화점 냄새잖아. 정모가 말한다. 백화점 1층 냄새. 거기선 개미들도 코를 막고 다녀야 돼. 안 그럼 더듬이가 녹아버려.

—그거 알아, 누나?

정모가 낮은 목소리를 낸다. 그러더니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중얼댄다. 말할 수 없어. 아직 말하면 안 돼. 내가 바로 옆에 있지만 내게 하는 말은 아니다. 그런 일이 점점 더 잦아진다.

 

어느 밤이다. 정모가 소파 옆에 우두커니 서 있다. 엄마 아빠는 함께 저녁을 먹다 급히 나간 뒤 소식이 없다. 삼촌이 죽었다고 했는지 죽어간다고 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엄마가 예민하게 차림새를 살피던 모습만은 기억에 선명하다. 작은 리본이 달린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보여선 안 된다며 옷을 갈아입었다. 흰 셔츠에 검은 바지, 어두운 먹색 카디건을 입은 뒤엔 옆모습과 뒷모습을 거울로 신중히 살폈다. 그런 뒤 할머니에게 우리를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정모와 나는 늘 그랬듯 각자의 방에 머문다. 거실에서 할머니가 틀어놓은 텔레비전 소리가 어지럽게 들린다.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번갈아 들렸는데 어느 쪽이든 기분 나쁜 허덕임이 함께다. 정리되지 않은 호흡과 돌연 튀어나오는 큰 소리들이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내게 주어진 일을 한다. 문제를 푸는 일은 견고하면서도 단순하다. 논리체계나 수식만 따라가면 어떻게든 답이 나온다. 정답인지 오답인지 바로바로 알 수 있다. 나는 그런 세계에서만 살고 싶다.

거실로 나가자 정모가 서 있다. 할머니는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다. 입을 다물고 턱을 앞으로 쭉 내민 얼굴이 고집스러워 보인다. 할머니는 목에 주름이 진다며 베개도 베지 않지만 입을 꾹 다무는 습관이 있어 팔자주름이 깊다. 그런 할머니를 정모가 들여다보고 있다. 소파 머리맡에서, 작고 길쭉한 병을 손에 든 채다.

—뭐 해?

—누나, 사실 이건 할머니가 아니야.

정모가 나를 돌아보며 말한다. 바짝 긴장한 얼굴이다.

—누나도 몰랐지? 꼼짝없이 속았지? 버뮤다 개미가 다 알려줬어. 암호를 푸느라 세시간이나 걸렸거든. 나만 아니까 내가 빨리 처리해야 돼.

—뭘 처리해?

—이걸.

정모가 한걸음 뒤로 물러선다. 손에 들고 있던 것의 뚜껑을 열어 할머니 얼굴에 쏟아붓는 건 순식간이다. 강한 식초 냄새와 함께 할머니가 비명을 지르며 일어난다. 지독한 재채기와 구역질을 연이어 쏟아내며 욕실로 뛰어 들어간 뒤엔 고함과 물소리가 엉망으로 뒤섞인다. 이제 껍질이 벗겨질 거야. 정모가 어깨를 들썩거린다.

—저게 엄마를 죽이려고 했어. 엄마를 죽이려고 할머니인 척 우리 집에 숨어든 거야. 어서 본색을 드러내! 오늘도 엄마를 죽이려고 했지? 내가 다 봤어, 손바닥에 독침을 숨기고 살금살금!

정모가 어쩐지 들뜬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방금 내가 엄마를 구했어, 누나!

 

*

 

엄마는 화장실에서 오래도록 심호흡을 한다. 거울을 노려보면서 심호흡하는 엄마를 몇번이고 본 적이 있다. 엄마는 물 끓는 소리를 내면서 구겨진 미간을 펴고 비뚤어진 입술과 턱을 바로잡는다. 차가운 물에 적신 손으로 뺨과 목덜미를 누른다. 평평한 이마와 반듯한 표정으로 돌아온 다음에야 화장실에서 나온다. 엄마는 늘 평온한 태도로 정모를 대한다. 그러기 위해선 심호흡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점점 더 자주, 점점 더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엄마는 틀림없이 해낸다.

엄마는 울지 않는다. 가족 중에 그걸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엄마에게는 울 시간이 없다. 그건 아빠도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항상 시간이 없다. 이 도시에 소아정신과는 손에 꼽을 만큼 적고 대학병원 진료예약은 반년 후에나 가능하다. 가까스로 약을 처방받아 오면 정모가 부작용으로 부풀어 오른다. 눈에 비닐을 씌운 것처럼 세상이 희뿌옇다고, 입안이 바싹 마르고 손발이 덜덜 떨린다고 놀라서 운다. 다시 병원을 알아보고 진료를 잡고 약을 바꾼다. 해파리처럼 흐늘대며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정모를 보며 또다른 의사를, 또다른 약을 찾는다. 정모에게 맞는 약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아빠와 엄마는 상담 때마다 복잡한 이름의 약들을 줄줄 읊으며 말한다. 리스페리돈도 아빌리파이도 자이프렉사도 전부 써봤어요. 클로자핀은 아직, 그런데 그걸 벌써요? 이 모든 건 엄마 아빠의 몫이다. 아빠는 줄담배를, 엄마는 심호흡을 거듭하며 주어진 일을 한다.

할머니는 애가 마귀에 씌어 날뛴다고, 오염된 영혼 때문에 뇌에 독이 차서 저러니 그걸 빼내야 한다고, 성수에 애를 푹 담그다시피 하는데 육백만원이면 비싼 것도 아니라고 아빠를 다그친다. 그날 자신이 뒤집어쓴 게 2배 사과식초가 아니라 염산이었으면 어땠겠냐고, 꼼짝없이 죽었을 거라고 소리친다. 빨리 구마하지 않으면 저 애가 가족을 잡아먹는단다, 불을 질러 모조리 다 죽여버린단다! 할머니는 저주에 가까운 말들을 퍼붓는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아파트 관리실에서 이웃들에게서 의심 섞인 질문과 과격한 조언과 은근한 협박들이 이어진다. 그것들을 모두 물리치는 것도 엄마 아빠의 몫이다.

정모는 약을 토하거나 잇몸에 붙여놨다가 몰래 뱉는다. 부작용은 두렵고 작용은 힘겹기 때문이다. 정모가 불안한 얼굴로 약을 받아 삼킨다. 때로 삼키는 척만 한다. 정모에게 약을 먹인 뒤 입을 벌려 그 안을 살피는 건 내 몫이다. 나는 가끔 손가락을 집어넣어 정모의 입천장과 윗니 뒷부분, 어금니 안쪽 잇몸을 샅샅이 살핀다. 정모는 구역질하는 시늉을 하지만 내 손가락을 깨물진 않는다.

약을 먹어도 먹지 않아도 정모는 더이상 예전의 정모가 아니다. 약을 먹은 정모는 가끔 몸을 긁고 침을 흘린다. 무겁고 시무룩하다. 그래도 약을 먹은 정모는 할머니에게 식초를 들이붓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이지 않는다. 어깨가 빠지거나 뺨을 얻어맞지 않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누군가 술을 마시고 누군가 처절한 울음소리와 함께 하소연을 하고 누군가 욕을 하며 집을 뛰쳐나가고 누군가 베란다 난간을 부여잡고 아득한 아래를 내려다보며 멈춰 있을 시간이, 비탄에 빠져 스스로를 가여워할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 엄마 아빠는 어떤 방식으로든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정모가 깨어 있으니까. 정모가 잠들지 않는 한 아무도 잠들지 못한다. 정모가 잠들어도 우리는 잠들지 못한다.

 

—누나. 나는 미친 새끼야 병신 새끼야?

정모가 묻는다. 약 때문에 눈꺼풀이 푸들거린다.

—반 애들이 그랬어. 몸이 아프면 장애인이고 머리가 돈 거면 정신병자라고. 근데 둘 중 어느 쪽이든 우리 반에 있으면 안 된대. 나는 정신병원에 가야 된대.

—그런 거 아냐.

—왜 아냐? 할머니가 맨날 나한테 하는 소리잖아. 이런 미친 거를 낳아놓고 니 엄마가 뻔뻔하게 미역국을 먹었다, 자식이 병신이라 니 아빠가 어깨도 못 펴고 다닌다, 맨날 그러잖아.

—그건.

나는 이를 꽉 문다.

—할머니가 병신이라서 그래.

할머니가? 정모가 충격받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할머니는 금방 죽어.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금방 언제?

—두달 뒤.

두달? 정모가 황급히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울상을 한다. 12월엔 내 생일이 있는데.

 

종합병원에 간 날에는 나도 진료실에 들어간다. 정모가 내 귀를 붙들고 매달렸기 때문이다. 야무지게도 쥐었네. 간호사가 웃으며 내 겉옷을 대신 벗겨준다. 옷을 벗은 뒤에야 겨드랑이와 뒷목이 땀투성이라는 걸 깨닫는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부터 정모는 지긋지긋하다, 지긋지긋하다를 지긋지긋할 정도로 외쳐댔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자 점점 큰 소리를 내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면서도 내 귀를 놓지 않았다.

차들이 가득 찬 주차장에서 아빠는 빈 공간을 찾아 헤맨다. 엄마는 접수와 수납을 하고 초진 환자 사전 문진을 받느라 이곳저곳을 누빈다. 나는 정모와 함께 대기실에 앉아 순서를 기다린다. 정모를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다.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미쳤거나 미치는 중이거나 미쳤어도 미친 줄 모르는 사람들일 텐데 정모가 소리치는 것만 보고는 여기서 정모가 제일 심하게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짜증이 난다. 정모는 덩굴처럼 나를 감고 칭얼댄다. 좀처럼 지치지 않는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의사가 하이고야, 이상한 소리를 내며 탄식한다.

—정모가 12월생이네요?

—네.

—하이고, 어쩌다가.

—네?

의사는 겨울에 태어난 아이들이 발병 위험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말한다. 햇볕을 충분히 쬐질 못하니 비타민 합성이 잘 되겠어요? 비타민D 결핍증이 뇌 발달에 영향을 미쳐 발병률을 높이거든요. 이거 모르셨어요? 의사가 엄마를 책망하듯 말한다. 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엄마 탓을 한다. 엄마만 바라보고 엄마에게만 모든 것을 묻는다. 아빠에게는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사전 문진 내용 보니까 원인이 여기 다 있네. 보호자분 삼촌이 환자셨다니 가족력도 있고, 출산할 때 자연분만하려고 17시간을 시도하다 결국은 제왕절개를 하셨다, 하이고, 애가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겠네요. 임신 중에 다른 문제는 더 없었어요? 임신성 당뇨를 앓았다든가 심각한 저체중이었다든가.

—그게 문제가 되나요?

—모든 게 다 문제가 되죠.

엄마가 가만히 물 끓는 소리를 낸다.

의사가 정모에게 몇개의 질문을 던진다. 정모는 의사 쪽으로 얼굴도 돌리지 않는다. 내게 달라붙어 의사가 말을 걸 때마다 뒷발질을 한다. 아빠가 억지로 떼어내려 하자 으르렁대며 손을 문다. 엄마와 아빠가 정모의 증상을 설명할수록 의사의 얼굴이 굳어진다. 엄마가 한참을 머뭇대다 할머니 얘기를 꺼낸다.

—정모가 갑자기 할머니가 할머니가 아니라는 거예요.

의사가 등을 곧추세우며 묻는다. 그럼 누구라고?

—저를 죽이러 온 왕개미래요. 그래서.

—그래서?

—정모가 할머니한테

—할머니한테?

—식초를 뿌렸어요.

의사가 잠시 침묵한다. 지금까지와 사뭇 다른 태도다.

이런 건 정말 흔치 않은데. 이 정도의 조기 발병 케이스는 나도 처음 보거든요. 그러고는 의사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쪽이 정모 누나죠?

너는 몇월생이니? 의사가 묻는다.

—여름에 태어났어요, 얘는.

엄마가 변명하듯 답한다.

보호병동 얘기가 나오자 어른들은 서둘러 나와 정모를 진료실 밖으로 내보낸다. 이건 결국 뇌가 고장 나서 생기는 병증이니까 뇌파검사와 MRI부터, 제일 중요한 건 임상관찰이라 최소한 한달은,까지 들은 뒤 문이 닫힌다. 정모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매달리기도 발버둥도 멈췄지만 나는 서둘러 정모를 화장실로 데려간다. 정모는 어디서든 바지 속에 손을 집어넣고 어디서든 성기를 주물럭거린다. 나는 이 이상 시선을 받고 싶지 않다. 손도 꼭 씻고 나와. 나는 손 씻는 시늉을 하며 정모를 안으로 들여보낸다. 남자화장실 앞에 서서 정모를 기다린다. 그리고 궁금해한다. 엄마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

 

—엄마, 엄마!

정모가 비명을 지르듯 외친다. 보호병동에 입원시킨 뒤 2주 만에 연결된 첫 통화였으므로 우리는 스피커폰을 켜고 머리를 맞댄 채 앉아 있다. 정모야. 아빠가 다정한 목소리로 부르지만 정모는 비명을 지르느라 듣지 못한다.

—왜 나를 버렸어요?

정모가 울부짖는다.

—내가 미쳐서 나를 버렸어요?

우리는 울지 않는다. 기를 쓰고 울지 않는다.

 

*

 

그럼에도 당연히 우리에겐 즐거운 날들이 있다.

우리는 틈틈이 웃는다.

 

입원 후 몸에 맞는 약과 적정 용량을 찾아낸 정모는 대부분 괜찮고 가끔만 괴롭다. 일상은 조금씩 안정되어간다. 평범한 일상에 이르렀다기보다 특별한 일상에 익숙해지는 정도지만 그 정도도 충분하다. 우리는 정모를 살피고 주의할 것들을 주의하고 간혹 정모의 입을 벌려 정모가 숨겨놓은 약을 찾는다. 땀에 흠뻑 젖은 정모의 이불을 세탁하고 정모의 입과 턱에 번진 침을 모르는 척 닦아준다. 씻는 방법을 잊은 채 멍하니 서 있는 정모를 아빠가 데리고 들어가 세수하는 방법부터 귀 뒤를 닦는 방법, 머리를 감고 나서 물기를 터는 방법까지 하나하나 가르친다. 깨끗해진 정모와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같이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귀여운 것을 귀여워하고 엉뚱한 것을 흉내 내며 즐거워한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다. 우리의 일상은 피곤하지만 비극적이지 않다. 정모는 조금씩 우리의 정모로 자리 잡아간다.

우리를 괴롭히는 건 정모가 아니다. 엄마는 10년 넘게 함께해온 기도 모임 사람들과 심하게 다툰다.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주최하던 기도회 때문이다.

—괜히 무리할 필요 없어, 정모 엄마 사정 우리가 뻔히 다 아는데.

우리 집에서 진행한 기도회가 끝난 뒤 사람들은 앞으로의 순서에서 정모네를 빼겠다고, 정모 엄마는 편안한 마음으로 참석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한없이 너그럽고 온화한 표정으로 호의를 베푼다. 엄마가 거절하니 더 큰 선의의 목소리들이 우렁우렁 떠들어댄다. 직장 다니랴 애들 건사하랴 정모 엄마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지, 우리가 아무것도 도와주질 못해서 그간 얼마나 미안했는데. 정모 돌보는 게 어디 보통 힘든 일이야? 나라면 못하지, 어휴, 못해. 정모 엄마 참 대단해.

—왜 나만 정모 엄마예요?

엄마가 마구잡이로 자신의 손을 끌어가고 어깨를 보듬어 안는 사람들을 밀쳐내며 묻는다.

—여기 권집사님, 이간사님은 다 제대로 부르면서, 왜 나만 정모 엄마라고 불러요? 왜 나한테만 반말해요?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간다. 이제 막 내놓은 다과는 손도 대지 않았다. 향이 진한 차와 밤양갱. 엄마는 맛있는 수제 양갱점을 찾아냈다며 들뜬 얼굴로 다과를 준비했었다. 마지막으로 신발을 신고 나서던 사람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엄마에게 소리친다.

—사실 자기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어딨어? 지금은 애한테 바짝 붙어서 병 고치는 데만 집중해야지 남들처럼 쇼핑할 거 다 하고 취미생활 종교생활 다 하면 애는 대체 어쩔 셈이야? 정신 차려, 저런 애들 뉴스에 나오는 거 순식간이야.

끝끝내 엄마를 권사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할머니는 좀처럼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정모를 배웅도 마중도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엄마 아빠를 괴롭히는 데만 집중한다. 아빠가 휴직과 퇴사 중 어떤 걸 선택할지 고민하는 소리를 훔쳐 듣고는 길길이 날뛴다. 일을 그만두려면 저년이 그만둬야지! 할머니가 먹고 있던 만두를 엄마에게 집어 던진다. 저년이 낳은 애새끼 때문에 왜 니가 은행을 그만둬? 그 좋은 직장을? 정모가 잠들어 있어 다행이라고, 약을 먹고 혼곤해진 상태라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었다면 이번에는 끓고 있는 만두전골을 왕개미에게 들이부었을지 모른다.

—일단 휴직했다가 정모 괜찮아지면 복직해도 되고, 퇴사했다가 재취업해도 돼요. 거래처 사장님들이 안 그래도 여러번 스카우트 제의를 하셨으니까.

—정신병이 낫겠니? 저거 불치병이다, 안 나아. 평생 저렇게 거머리처럼 부모 등골 뽑아 먹으며 살 거다.

어머니! 아빠가 식탁을 내리친다. 만두전골이 냄비 밖으로 흘러넘친다. 나는 엄마를 일으켜 거실 반대편으로 간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엄마를 끌어안는다.

—어머니 손주한테 그런 말을 하고 싶으세요? 세상 누구보다 어머니 하는 말이 제일 모질고 독해요. 사람이 어떻게, 어떻게 그래요?

—내가 아주, 속이 썩어 문드러져서 그런다. 저년이 애만 똑바로 낳아놨어도 이 지경은 안 났지.

—말씀 함부로 하지 마세요. 애 엄마가 무슨 잘못이라고.

—잘못이지! 의사도 그러지 않던, 쟤가 문제라고! 나도 다 찾아봤다, 인터넷 검색도 하고 유튜브도 찾아보고 다 했어! 보는 것마다 그러더라, 정신병 유전자는 다 엄마한테서 오는 거라고. 집안에 정신병자 있단 얘기 쏙 빼놓고 시집온 거부터가 사기 결혼이야. 남들 다 낳는 애 하나 똑바로 못 낳고 온갖 유난을 떨더라니 이제 남편 직장까지 때려치우게 해? 얘, 니가 그만둬라, 더러운 건 다 니가 줘놓고 왜 내 아들이 백수가 되니?

—작작 좀!

아빠가 소리친다.

—제발 작작 좀 하세요! 정모가 언제까지고 애일 것 같으세요? 남자애니까 금세 자랄 거고 힘도 세질 거고 2차성징도 올 거예요. 그걸 애 엄마가 어떻게 감당해요.

—왜 못해? 너보다 쟤가 훨씬 뚱뚱한데. 억척같기는 또 얼마나……

엄마를 손가락질하던 할머니가 엄마를 꽉 안고 있는 나를 보더니 말을 멈춘다.

—저거는?

할머니가 분노를 감추지 않은 채 묻는다.

—저거는 정상이라니?

 

엄마가 엄마를 노려본다. 거울 밖 엄마가 거울 속 엄마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이 미친년아. 엄마가 억눌린 소리를 낸다. 야 이, 미친, 너가 정말 어쩌자고. 엄마가 아는 욕은 그게 다다. 어쩌자고 애를, 겨울에, 이 생각 없는 년이. 엄마는 제대로 된 욕 하나 뱉어내지 못하고 쪼그려 앉아 운다. 비로소 운다.

아빠는 할머니를 집에서 쫓아낸다. 할머니 방의 행거가 무너지고 새하얀 화장대가 엉망이 된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정모는 깊이 잠들어 있다. 나는 정모 입안에 알약을 두개 더 밀어 넣었다는 사실을, 고요하고 평온해지고 싶은 날에는 간혹 그래왔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은 것이 또 있다. 나는 ‘괴물출현방’의 존재를 가족들에게 끝끝내 숨긴다.

시작은 호의였을 것이다. 정모가 자주 사라졌으니까, 우리 가족이 애타게 찾아다니는 걸 목격한 사람이 여럿이니까, 겨우 찾아낸 정모는 누군가에게 얻어맞거나 욕을 먹고 있었으니까. 정모가 어딘가에서 맴돌고 있거나 어떤 소란에 휘말렸다면 꼭 나한테 알려줘. 나는 내게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친구들에게 그렇게 부탁했다. 곤란에 빠진 정모의 좌표를 단톡방에 찍어줄 때마다 보답으로 편의점 과자나 음료 기프티콘을 보내줬다. 그 덕분에 나는 누구보다 빨리 정모를 찾아낼 수 있었다.

단톡방 인원은 이제 50여명에 달한다. 누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

프로필 사진도 말투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온종일 떠들어댄다. 그들은 끊임없이 정모를 찾아낸다. 정모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학교를 향해 걸어가고만 있어도 정모의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올린다. 급식실에서 식판을 고르는 정모와 복도에서 어리둥절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는 정모와 교실 책상에 엎드려 있는 정모와 신발을 갈아 신고 있는 정모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정모와 화장실에서 막 나오고 있는 정모와 상가 계단참에 쪼그려 앉아 있는 정모. 정모의 얼굴은 의아함이나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단톡방에서 나오지만 다시금 끌려 들어간다. 단톡방은 정모 사진으로 끝없이 차오른다. 그들은 사냥꾼처럼 정모를 뒤쫓는다.

[괴물 출현! 비전프라자 괴물 상습 출몰 지역!]

[병신 새끼 저기서 뭐 처먹는다]

[긴급 수거 바람!]

[가까이 가지 말 것 정신병 옮음]

[제보 왜 씹?]

[깊콘 내놔]

[내놔]

[내놔]

그곳에서는 누구도 정모를 정모라 부르지 않는다.

정모는 학교 가는 걸 점점 두려워한다. 누군가 자신을 뒤쫓고 있다고, 감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내가 개미의 언어를 알아냈기 때문이야. 정모는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목이 졸린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얼굴이 새파랗고 이마에 핏줄이 바짝 서 있다. 침대 안으로 파고들어가 이불로 꽁꽁 몸을 감싼다. 내가 들어갈 수 없도록 이불 귀퉁이를 완전히 막는다.

약을 먹여야 하는데. 나는 정모의 약을 손에 들고 전전긍긍한다. 가까스로 파고든 이불 속에서 나는 길을 잃는다. 이불 속에는 정모만의 통로가 있다. 아무리 찾아 헤매도 정모는 나타나지 않는다. 땀이 뻘뻘 나고 숨이 차올라 더는 견딜 수가 없다. 머릿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다. 입안이 바짝 마른다. 나는 끝내 정모를 놓친다.

이불 밖으로 나오자 땀에 젖은 셔츠 깃이 돌돌 말려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펴지지 않는다. 약을 먹지 않은 정모는 이곳저곳을 헤매고 여기저기를 얻어맞고 사방팔방에서 항의와 협박을 받는다. 정모가 약을 먹지 않으면 엄마와 아빠가 근심 걱정에 가득 찬 얼굴로 정모를 어르고 달래고 윽박지르고 애원하고 화를 내다 마지막에는 주저앉는다. 제발, 제발 약을 먹어, 정모야. 제발 우리 좀 살려줘, 정모야. 그러면서 엉엉 운다. 그러면 정모는.

엄마와 아빠를 의심한다.

왕개미가 변신해 엄마 아빠인 척하는 거라고, 자신을 세뇌시킬 개미알을 숨겨 와 먹이려 한다고, 진짜 엄마 아빠를 구하러 가야 한다고, 그러려면 여기 있는 가짜를, 지금 당장…… 나는 작고 둥근 타원형의 알약을 입에 넣고 삼킨다.

 

정모가 겨우 잠든다. 엄마와 아빠는 조용히 나를 불러 식탁에 앉힌다. 내가 좋아하는 컵에 우유를 데워 꿀을 한 스푼 타준다.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 단단하다. 화장실에서 아주 오래 심호흡을 한 얼굴이다. 고등학교는 다른 지역에서 다녀보지 않을래? 아빠가 묻는다. 나는 쉽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사를 결심할 만한 상황이 너무 많이, 너무 자주 있었어서 조금도 놀랍지 않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지는 엄마의 말은 조금 놀랍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지?

우리 집은 내게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엄마는 말한다. 이모가 살고 있는 지역에 평판 좋고 시설 좋은 기숙형 고등학교가 있는데 지방이라 학생 수가 적어 입학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나중에 농어촌특별전형으로 대학도 갈 수 있다고 말한다.

—한달에 한번은 집에 올 수 있어. 우리가 널 보러 가도 되고.

—나를 버리는 거야?

내가 묻는다. 정모를 돌보려고 나를 버리는 거야? 내가 다시 묻는다. 나는 늘 노력해왔다. 매일매일 필사적으로 노력해왔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뜯겨나가는 사람이 나라니 어째서? 내가 아직,

—미치지 않아서 나를 버리는 거야?

엄마가 심호흡을 한다. 엄마는 이제 거울을 보지 않고도 표정을 고를 수 있다. 아빠가 나를 꽉 끌어안고 미안하다고,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는 동안 엄마는 숨을 멈췄다가 내쉰다. 아주 오랫동안 물 끓는 소리를 낸다.

—우리가 너한테 너무 기댔어. 네가 어른스럽다고 잘 참는다고 정모가 너한테만 의지한다고 핑계 대면서 너무 힘든 일들을 너한테 떠맡겼어. 너도 아직 어린애인데. 우리 연수가 이렇게나 작은데.

아빠가 내 구겨진 옷깃을 펴준다. 머리칼을 쓰다듬고 뺨을 어루만진다. 그 손이 이상할 만큼 차가워 몸을 빼내고 싶어진다. 잠에서 깬 정모 때문에 우리의 이야기는 잠시 멈춘다. 정모는 땀을 줄줄 흘리며 거실로 나와 목이 마르다고, 목이 붓고 따갑다고, 어지럽고 메스껍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금세 시무룩해진다. 무거운 몸을 어쩌지 못하고 바닥으로 줄줄 흘러내린다. 나를 안고 있던 아빠가 정모에게 간다. 정모를 부축해 소파에 누이고 빨대컵에 담은 물을 가져다준다. 엄마는 더이상 물 끓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식은 우유에서 비린내가 올라온다. 나는 우유를 싱크대에 쏟아버리고 세제를 조금 풀어 컵을 닦는다. 우유를 담았던 컵은 서둘러 닦지 않으면 비린내가 눌러앉아버린다. 잠시 담아두었던 것만으로 컵은 금세 오염된다.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

 

내가 짐을 싸는 동안 엄마는 나를 지켜본다. 이것저것을 들추고 한눈을 팔고 넣었던 것을 도로 끄집어내 다른 방식으로 접어 넣었다가 끝내 빼버리는 모습을 답답해하지 않고 지켜본다. 적어도 짐을 싸는 일 정도는 충분히 망설일 수 있도록, 가져갈 물건 정도는 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나의 비효율적인 행동들을 묵인한다. 그런 거 아니야. 택배 상자에 박스 테이프를 붙이고 있을 때 엄마가 입을 뗀다. 언젠가부터 엄마의 목소리는 잔뜩 주눅 들어 있다. 작고 피로한 목소리가 테이프 뜯는 소리에 뭉텅뭉텅 잘려나간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엄마는 네가, 잠깐이라도 온전히 네 삶을 살았으면 해서 이러는 거야.

나는 듣지 못한 척한다. 잡동사니만 남은 책상 서랍 속에서 곰돌이 키링을 끄집어낸다. 투명한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작고 반짝반짝한 것. 옛날 생각나네. 나는 말한다. 옛날 생각에서 웃을 만한 대목은 아무것도 없지만 나는 일단 웃으며 말한다. 반짝반짝한 것을 손에 들고 가능한 무구해 보이기를, 몹시 무구하고 무해한 시절을 건너온 아이처럼 보이기를 바라며 말한다.

—엄마가 얼른 자라고 불 꺼놓고 나가면 엄청 무서웠거든. 그때마다 얘가, 내가 이름도 지어줬지, 깜깜한 데서 조금만 빛이 새어 들어와도 사방으로 번져 반짝반짝해지니까 그게 예뻐서 빛곰이라고, 빛곰이가 나를 달래줬어. 엄마 몰래 자장가도 불러주고 이야기도 들려주고.

—언제?

엄마의 기겁한 물음에 나는 웃음을 멈춘다.

—그게 언젠데? 엄마한테 왜 말 안 했어? 언제부터 목소리가 들렸는데?

엄마가 내 어깨를 꽉 그러쥔다. 나는 더이상 모르는 척할 수가 없다. 엄마가 뭘 두려워하고 있는지, 나를 볼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 때문에 내 말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고 의심하고 다그치고 마는지에 대해서. 나도 정모와 똑같은 형질의 유전자로 이루어져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식습관과 생활 패턴을 가지고 살아왔으니까. 나 역시, 겨울에 태어난 아이니까.

—그건 그냥 상상이었어, 엄마. 어릴 때 누구나 떠올리는 상상 속 친구.

—정모도 그랬어.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사춘기가 일찍 오는 모양이라고 반항기엔 다들 저런다고 방심하고 있다가, 걷잡을 수 없는 순간이 돼서야 겨우……

—아니야, 엄마.

나는 엄마의 말을 끊는다. 듣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았던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모두가 상처받는 말을, 나는 결국 하고야 만다.

—난 아니야, 엄마. 난 정상이야.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엄마는 내 짐을 차곡차곡 이모 집으로 보낸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이모네 집에서 남은 겨울을 보내고 기숙사로 들어가는 일정이다. 학교와 기숙사에 대한 얘기를, 능선이 아름다운 산과 거대한 인공호수, 지역축제 때에만 띄운다는 열기구 얘기를 질리도록 듣는다. 새롭고 낯선 것들의 목록을 듣다보면 나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가족과 완전히 무관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정모에 대해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는 그런 날들을 보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괴물 발견]

[시민 여러분 다솜공원 비석 옆 피해 가십쇼]

[뭐 하냐 저거]

[개미 퍼먹음]

이모 집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카카오톡부터 삭제해야지. SNS 계정도 전화번호도 전부 없애고 바꾸고 지워버려야지. 누구도 내게 정모에 대해 말할 수 없도록 모든 통로를 밟아 없애야지. 나는 거듭 다짐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곳에 있고 단톡방에 줄지어 올라오는 정모의 사진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정모가 있는 곳으로 정모를 데리러 간다.

정모는 몸을 작게 웅크리고 앉아 있다. 공원 표석 아래는 정모가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다. 거대한 크기의 개미굴을 찾아낸 뒤 정모는 매일같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 엉망으로 파헤친 다음 콜라를 들이부어 개미굴을 완전히 부숴놓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후로 개미들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멀찌감치 서서 정모를 바라본다. 정모를 선뜻 끌어오지 못한 채 망설인다.

언젠가 할머니가 그랬다. 너네 집이 부자라 다행이라고. 엄마 아빠 사이가 좋고 눈치껏 부모를 돕는 손위 누이가 있고 좋은 집과 차가 있어서, 말 그대로 여력이 있는 집이라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정모를 애지중지, 내로라하는 병원 의료진을 찾아다니며 그렇게 돌볼 수 있었겠냐? 결국은 다 돈이지, 돈. 할머니는 이상한 모양으로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비아냥댔다. 너네 집이 서로 유난히들 돈독하니 이만큼 버티지, 그 가당찮은 가족애로.

하지만 할머니는 이런 말도 했다. 그래서 너네 가족은, 특히 너는 정모한테서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거다. 할머니는 악의에 사로잡힌 얼굴로 온갖 말을 쏟아냈다. 부모 죽고 나면 너 혼자 독박 쓰는 건데 네년 말년이 나보다 나을 거 같냐? 마지막에는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경고했다. 너는 절대 애 낳을 생각 마라, 상상도 하지 마.

그건 정말 왕개미가 아니었을까?

누가 더 위험하지? 누가 더 끔찍하지? 대체 누가 더? 나는 정모를 바라본다. 정모는 그냥 그곳에 있다. 표석 아래 흙바닥에 구부러지거나 곧거나 배배 꼬인 선들을 그려 넣으며 자신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 저러다 집으로 돌아가 약을 먹고 침을 좀 흘리며 잠들 것이다. 푹 자고 일어난 정모는 보통의 정모, 그날의 정모, 일상 속의 정모일 뿐이다. 정모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누구도 무시하지 않고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 병에 걸린 것은 더러워서가 아니다. 정모를 돌보는 일이 부끄러울 까닭도 없다. 수치스러워해야 할 사람은 할머니이고 남을 해치는 건 단톡방 사람들인데 도망치는 사람은 왜 나지?

나는 돌아선다. 정모야, 하고 부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정모를 부른다. 흙바닥을 더듬고 있던 정모가 나를 돌아본다. 나는 목이 잠긴 채로 정모에게 손짓한다. 이리 오라고, 내 옆에 있으라고 말한다.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보호병동에 입원하기 전날 정모는 방에서 한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 물 한모금 마시지 않았고 방문을 두드리면 비명을 질렀다. 나는 억지로 방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불 속에 꽁꽁 숨은 정모를 손으로 더듬어 끄집어냈다. 울고 있는 정모에게서 쉰내가 났다. 정모가 눈을 희번덕대며 나를 밀쳤다. 들어오면 안 돼! 도망쳐, 누나! 나는 정모를 꽉 끌어안았다.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날뛰는 몸을 소중히 끌어안았다. 마구 휘두르는 팔다리에 얻어맞은 몸이 아프고 괴로웠다. 나는 비명을 참고 심호흡을 했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비뚤어진 미간을 바로잡고 가능한 한 평온한 얼굴로 정모를 마주 보았다.

—들켰어, 아저씨한테 다 들켰다고!

정모가 울부짖었다.

—아저씨가 누나를 봐버렸단 말이야!

정모가 머리를 마구 흔드는 통에 턱을 얻어맞은 나는 그대로 정모를 놓쳤다. 정모는 튕겨나가듯 방구석에 서서 천장을 노려보았다. 이제 어떡해, 저 아저씨가 쫓아다니면 누나도 정신 나간 애가 돼, 미친 새끼가 돼, 숨도 못 쉬고 아무랑도 못 놀아, 그게 얼마나, 얼마나 힘든 건데. 정모가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다 황급히 다가와 내 머리를 끌어안았다. 좁은 어깨와 가슴과 가느다란 팔로 나를 꽁꽁 감싸 숨겼다.

—절대로 아저씨랑 눈을 마주치면 안 돼, 누나.

정모가 눈을 꽉 감고 말했다.

—이건 다 꿈이야. 눈 꽉 감고 잠들면 다 사라져. 다 괜찮아져.

나는 그렇게 했다. 정모와 똑같이 눈을 꽉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