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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미상

2018년 웹진 『비유』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이중 작가 초롱』 등이 있음.

 

 

 

옮겨붙은 소망

 

 

사는 모양새들로 보아 혼인은 한물간 제도인 듯하지만 부부 이야기는 여전히 아니 오히려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니 나도 내가 아는 부부에 대해 한번 말해볼까 한다. 내 생각에 부부는 이기는 쪽과 먹히는 쪽이 있는데 앞으로 이야기할 부부는 다행히 아내가 삶의 원칙을 정했고 남편이 먹혔으며 먹히다 못해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남편이 죽고 열흘 후 아내 n&n’s가 중단했던 쇼핑을 다시 시작했다. 나도 그의 활동 재개에 동참했다. 우리는 같은 빌라 주민이고 나는 1년째 n&n’s의 집을 드나들며 그의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n&n’s 남편의 장례식은 열흘이 지나도록 열리지 않았다. 병사, 사고사 심지어 살해를 당했어도 장례식은 무자비할 만큼 제때 치러지지만 이 집 남편의 죽음에는 여러 일이 끼어 있어 장례식이 미뤄지고 있었다. 정부—내가 알아들은 유일한 곳—와 어떤 곳과 어떤 곳의 진심 어린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고 어떤 일의 재발 방지가 약속되지 않아서였다.

n&n’s의 남편의 죽음과 관련된 사회단체의 활동가가 나타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쓰셔야 해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n&n’s의 집으로 막 들어갔을 때, 처음 보는 여자가 현관에서 n&n’s에게 말했다. “추도사, 쓰셔야 해요.” 활동가는 그 말을 하면서도 현관에 널려 있는 박스와 신발을 정리했다. 그 모습에 나는 왠지 울컥해 신발을 신은 채로 거실로 직행해 거기서 신발을 벗어 저장강박증 태동기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현관으로 던졌다. 신발 한짝이 컵라면 그릇에 박히고 다른 한짝이 “아니오, 남편의 죽음은 숭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박스 무더기에 처박혔다. 집의 위생상태가 집주인의 정신상태를 말해주느냐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겠지. 지난주에 우리 집에서 구더기가 나온 것은 분명 내 정신상태와 관련되지만, n&n’s의 11평 남짓한 빌라로 들어가기 위해 박스 무더기를 헤쳐야 하는 것은 남편의 사망 때문이 아니었다. 거긴 원래 그랬다.

내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한권은 소설책이고 한권은 어려운 책으로 각각 『어느 열사 부부 이야기』(김소철 지음, 하는데까지만하는출판사)와 『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 한국저항운동과 열사 호명구조』(임미리 지음, 오월의봄)였다. 나는 죽은 남편이 어떤 사람이었나 궁금해 책을 빌렸지만 평소대로 스무 페이지쯤 읽고 말 것이었다. 한때는 나 자신이 뒤가 흐린 사람, 책을 완독할 줄 모르는 사람, 실을 옹골차게 매듭짓지 못하고 엉성하게 묶어 결국 구슬이 알알이 추락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못난 마음을 품지 않는다. 어찌나 매사에 흐지부지한지 나는 나를 싫어하는 일에도 금세 질렸다. 자기혐오라는 아늑한 둥지에서조차 오래 뭉개지 못했다. 한마디로 나는 집요함이 심각히 결여된 바람에 본의 아니게 속 편히 사는 스타일이었다.

내가 두층 위에 사는 n&n’s에게 고용된 것은 빌라 반장으로부터 쓰레기 좀 버리라고 꾸중을 들은 날이었다. “대답하지 마세요.” n&n’s와 나의 대답과 함께 반장이 말했다. “차라리 대답하지 마시라고요. 제가 다시는 이러지 마세요 하면 그냥 가만히 계시라고요.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하고 또 그러잖아요. 대답이라도 하지 마세요.” “예! 알겠습니다.” 반장은 정신을 차리려고 자기 따귀를 때리면서도 번번이 마지막 구호를 외쳐 사람들을 단체 기합으로 몰아넣는 골칫덩이, 정신이 공포에 좀먹힌 그 가여운 바보를 바라보듯 낙망하여 우리를 보더니 그대로 지나쳐 골목으로 사라졌다.

대답만 하고 하기로 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 말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 n&n’s와 나는 그런 부류에 속했다. 그러나 하고자 하는 마음은 충만하나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책임과 의무를 내팽개친 나와 달리 n&n’s의 불이행은 의도적이었고 평생에 걸쳐 올곧게 지키는 신조로 보였다. 내가 n&n’s의 밑에서 일하며 가장 자주 들은 말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였다. 아침이고 밤이고 샤워 가운을 입고 퍼질러 사는 n&n’s는 말을 던지고는 바로 이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고 취소함으로써 앞서 뱉은 말의 피부, 가장 기초적이고 정직한 의미를 뜯어버렸다. 그리하여 나를 가혹한 해석의 미로로, 눈치 보기의 지옥으로 빠뜨렸다. 진심과 농담과 예언과 명령이 섞인 n&n’s의 말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기 어려웠다. 그와 붙어 있으면 하여간 기분이 나빠 몇번이나 분필을 쥐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사방치기를 하고 올라와야 했다. 그러나 태평한 성격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나는 그의 어려운 말 따위에는 신경을 끄고 즐겁게 살고 있었다.

반장에게 동반 꾸중을 들은 나와 n&n’s는 차를 마시기로 하고 n&n’s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나는 n&n’s의 ‘클릭 도우미’가 되었다. 정확히는 터치 도우미라고 해야 옳지만 n&n’s가 나를 고용하게 된 바로 그 이유, 자신이 제대로 다뤘던 마지막 신식 기계의 용어를 쓰는 중년 기계치 특유의 경향 때문에 마우스를 사용하지 않는데도 클릭 도우미로 불렸다.

내가 하는 일은 n&n’s를 대신해 인스타그램 라이브방송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물건이라 함은 앤티크와 빈티지 장신구로, 만들어진 지 100년이 넘은 앤티크와 20년이 넘은 빈티지와 20년이 되지 않은 모던으로 물건의 계급을 정교히 나누는 데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진지함이 드러났다. 빈티지 주얼리의 구매층이 넓지는 않지만 스무명가량의 하드코어한 마니아들이 매주 정규방송 시간에 모여 치열한 ‘저요+가격’ 다툼을 벌여 에이본의 하트 목걸이와, 미리암 하스켈의 섬세한 선조 세공이 돋보이는 모조 바로끄 진주 목걸이와, C자형 걸쇠 바깥으로 핀이 길게 삐져나와 찰 때마다 손이 찔리는 19세기 스털링 실버 브로치를 사들였다.

구입 방법은 간단했다. 빈티지 주얼리 숍의 사장이 정해진 시간에 라이브방송을 켜고 준비한 물건을 하나씩 선보인다. 중고 상품이기에 사소하게나마 흠집이 있기 마련이고, 더군다나 구매자가 직접 보고 사는 것이 아니기에 진행자는 물건 하나하나 정성스레 설명했다. 목걸이를 직접 착용하고, 도금과 진주가 벗겨진 부분을 꼼꼼히 클로즈업해 보이고, 그러고도 매번 ‘상품 컨디션에 민감하신 분은 구입하지 마시라’고 경고했다. 기나긴 설명이 끝나고 마침내 진행자의 입에서 물건의 가격이 발표되면 구입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재빨리 ‘저요’와 함께 진행자가 부른 가격을 채팅창에 썼다. “3만원” 하고 말하면 ‘저요 3’ 하고 쓰는 식이었다. 인기가 좋은 물건에는 댓글이 여럿 달렸다. 진행자의 핸드폰 화면에 가장 먼저 올라온 댓글을 적은 사람이 물건을 차지했다. 그렇게 구입 기회를 얻은 후 돈을 입금하고 진행자에게 입금 내역을 캡처해 보내면 물건을 발송하는 시스템이었다. 한마디로 누가 가장 먼저 채팅창에 ‘저요+ 금액’을 적어야 하는 인터넷 속도 싸움이었다.

문제는 n&n’s가 ‘저요’의 지읒을 쓰기도 전에 다른 사람이 ‘저요 6.5’를 쳐서 모조 루비 눈과 모조 사파이어 코를 가진 6만 5천원짜리 똬리 튼 뱀 반지를 채간다는 것이었다. 히피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은 1960년대 나비 문양 팔찌도 그렇게 뺏겼다. 빈티지 개체는 오직 하나뿐이기에 구입 경쟁이 거셌다. 그리하여 내가 클릭 도우미로 고용되어 시급 9,860원을 받고 라이브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n&n’s의 집에 머물며 그가 가리키는 목걸이와 브로치와 듀엣 핀을 빠른 손놀림으로 사들였다. n&n’s가 눈치를 챘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그럭저럭 괜찮은 성공률은 빠른 터치 실력 덕이 아니라 그 집 와이파이 공유기를 바꿨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구한 앤티크 까메오 브로치를 샤워가운 양 가슴팍에 열개씩 달아 온몸으로 2천년을 해치우고도 모자라 코코 샤넬처럼 목에 진주 목걸이를 휘감은 n&n’s는, 소파에 모로 누워 흑백영화를 보다가 라이브방송에서 원하는 물건이 나오면 내 어깨를 두드려 신호를 보냈다. 나는 n&n’s에게 신호를 받기 위해 그가 누운 소파 바로 아래 앉아 눈으로는 영화를 보고 귀로는 방송 진행자가 언제 가격을 말할지 신경을 쓰며 새벽까지 머물렀다. 사고 싶은 물건이 나오지 않거나 진행자의 설명이 너무 길어지면 우리는 냉동 떡을 녹여 먹으며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우리의 인생과 무관한 두개의 상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n&n’s는 진행자가 길게 설명하는 것을 싫어했다. 진주 까짐, 에나멜 벗겨짐, 박편이 죽어 광채가 흐려진 라인스톤 같은 물건 손상에 관한 실용적인 설명이 아니라 역사 강의가 시작될 때면 특히 인상을 쓰며 소리를 줄이라고 했다. 내가 그러다 가격을 못 들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의해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독일의 점령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유리 세공 숙련공들이 1940년대 미국의 코스튬 장신구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나중에 집으로 내려가 검색해야 했다.

n&n’s의 남편이 죽기 한달 전쯤 희한한 일이 있었다. 대단히 절묘해 거의 계시처럼 느껴진 일이었는데, 그날 우리는 한쪽 눈을 라이브방송에 느슨히 걸쳐두고 나머지 감각은 「세이사꾸의 아내」(마스무라 야스조오 감독)에 퍼붓고 있었다. 영화는 아내가 남편을 지독히 사랑한 나머지 남편이 전장으로 떠나려 하자 그의 눈을 찔러 자리보전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아내가 마당에서 우연히 발견한 대못으로 자기 손바닥을 꾹 누르며 생각에 잠기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조그마한 손바닥 중앙이 못에 눌려 움푹 파이고 그 주변으로 주름이 방사하듯 퍼져나갔다. 뒤이어 대못에 눈이 찔려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뛰어나오는 남편이 비쳤다. 그런데 바로 그때 라이브방송에서 진행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영어로 해트 핀(hat pin)이라고 불리는 모자 핀은 에드워드 시대에 유행한 여자들의 거대한 모자를 고정하기 위해 만든 길고 뾰족한 머리 장식인데요. 길어봐야 비녀만 하겠지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40센티미터에 달하는 것도 있어서요. 미국에서는 법으로 모자 핀 길이를 제한하기까지 했다고 하는데요.”

진행자가 모자 핀을 꺼내 보였다. 그것은 소파 밑으로 들어간 리모컨을 꺼낼 때나 쓰는 긴 자만 한 바늘이었다. 길이만 봐서는 두개골을 관통시키기 위해 만든 물건 같았다. 대못을 얇게 깎은 듯한 그것의 끝 부분에 물결치는 인어 머리카락이 장식되어 있었다.

“『시카고 트리뷴』지에 따르면 1898년에 새디 윌리엄스양이 차를 타고 가다가 강도에게 기습을 당했다고 해요. 윌리엄스양은 자신을 때리고 밀치는 강도에 맞서 모자에서 모자 핀을 뽑아 단검처럼 들고 강도의 가슴을 마구 찔렀다고 하는데요. 그런가 하면 병원에서는 아내의 길고 뾰족한 모자 핀에 눈이 찔린 남편들이 아우성을 쳤고요. 3월 8일” “꺼.” “여성의 날을 맞아” “꺼.” “아껴두었던 영국산 앤티크 모자 핀 컬렉션을 보여드리려고 해요. 실사용은 어려우세요. 하지만 하나쯤 소장할 가치가 있을 것 같고요. 모자 핀 홀더는 서비스로 나갈게요.” “끄라고.” “역사를 알고 빈티지 장신구를 차면요. 우리 몸에 단순히 쇠, 구리, 은이 걸쳐지는 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스러진 이들의 혼령이 다시 일어서 우리의 어깨를 주무르고 등을 두드리고 두피를 마사지하며 힘내라고 응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한때 우울했던 저는 100년 된 앤티크 진주 목걸이를 차고……” n&n’s가 내 핸드폰을 가져가 베란다에 두고 왔다. 나라고 모든 유형의 치유 이야기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치유의 계기를 먼 데서 끌어올수록—예컨대 우울증을 낫게 한 진주 목걸이라거나—군침이 도는 것은 사실이다. n&n’s가 약간 겸연쩍어하며 웅얼거리듯 말했다. “그러게 듣기 싫다는데 왜 계속 틀어놔.”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어떻게 이런 고귀한 우연성을 무시할 수 있지? 큰 화면에서는 아내가 남편의 눈을 찌르려고 대못을 들고 설치고, 작은 화면에서는 목걸이로 우울증을 극복한 여자가 팔뚝만 한 바늘을 휘휘 돌리며 펜싱의 찌르기 동작을 흉내 내는데, 그런 일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n&n’s는 남의 핸드폰을 함부로 베란다에 두고 옴으로써 사실상 전원을 꺼버린 것 같은 의미 없는 짓만 하고, 천지를 울리는 듯한 계시는 모른 체할 수 있지?

나는 그때 이미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대못과 모자 핀이 우리에게 무시무시한 미래를 알리고 있었다. 세이사꾸의 아내가 증오가 아니라 사랑 때문에 남편의 눈알을 터뜨렸듯, n&n’s도 남편과 사이가 나쁘기는커녕 긴밀해서, 부부로 사는 내내 다른 사람은 모르는 둘만의 은밀하고 달콤한 게임에 도취되어 있어서 본의 아니게 남편을 죽게 하리라는 끔찍한 예언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일어날 비극을 모르는 n&n’s는 평온할 따름이었다. 소파에 모로 누워 팔걸이에 발을 올리고 눈이 먼 남편을 대신해 가장 노릇을 하며 밭을 가는 세이사꾸의 아내를 볼 뿐이었다. n&n’s의 발에 밀려 팔걸이에 높이 쌓인 책들이 소파 너머로 떨어졌다. n&n’s는 책을 줍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가 그대로 다시 누웠다. 그때 그의 목덜미에서 흘러내리던 벨 에뽀끄와 양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가슴팍에 따개비처럼 달라붙은 역사-브로치의 사용감이 적은 까닭은 궤양에 수은을 바르던 주인이 드레스에 브로치를 몇 번 꽂지도 못한 채 죽었기 때문일까.

나는 베란다에서 n&n’s가 숨겨둔 핸드폰을 찾은 뒤, 그가 내 것을 마음대로 만졌다는 것에 항의하기 위하여 가짜 기침을 연거푸 하고는 주차장으로 내려가 사방치기를 했다. 사방치기는 내 영혼을 달래고 분노를 잠재우는 정화의식이었다.

 

*

 

n&n’s와 그의 남편을 설명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테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많은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것이다. 아파트에 살다가 빌라로 내려간 부부.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하방을 택했다.

두 사람은 아이 없는 맞벌이—인사 부장, 마케팅 팀장—부부로 40대 후반에 아파트 대출금을 모조리 갚았고 5억에 샀던 아파트가 매매가 10억을 넘기자 팔고 나와 2억짜리 빌라로 이사해 직장을 그만두고 돈이 떨어질 때까지만 목숨을 부지하기로 맹세하고 현금을 까먹으며 살았다. 대략 한달에 300만원 안 되게 쓰면 70대까지 살 수 있을 듯했고 이후의 일은 닥쳐서 생각하기로 했다. 그사이의 일도. 예컨대 구급차에 길을 내주려다가 지나가던 아이를 치어 구급차에 아이까지 실어 보내는 일—선의라는 웃돈을 얹어 불행을 배로 불리는 소설적 비극—같은 건 일단 계산에 넣지 않기로 했다. 그런 데 들어갈 돈까지 계산하다가 다들 마추픽추에 못 오르고 모기지론을 못 지르고 어영부영 요양시설로 떠밀려 뿌연 섬망 속에서 안개에 싸인 잉카의 땅을 구경하는 걸 테니까. 어쨌든 당장은 손바닥에 놓인 시간의 묵직한 압감과 그것이 선사하는 가벼운 해방감을 누릴 일이었다. 시세차익과 시간을 맞바꾸자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n&n’s였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아, 나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였는데!’

성공적인 삶을 구태여 뿌리치고 대안적 삶이라는 자발적 몰락의 길을 걷는 부부의 일상을 담은 휴먼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게임 회사에서 수억대의 연봉을 받다가 깊은 산골짜기로 들어간 사례 같은 것 말이다. 얼핏 보면 어떻게 저렇게 영혼의 짝끼리 만나 결혼했을까 감탄하게 되지만, 그들의 투 숏을 가만히 보다보면 누가 일을 꾸민 주동자고 누가 뒤따른 추종자인지 알 수 있다.

주동자는 차분한 미소를 띠지만 자신이 아니었다면 본래의 삶에 만족했을 배우자의 눈치를 살피며 오히려 자신이 그의 열렬한 추종자인 양 어색한 다소곳함을 내비친다. 그러나 그의 살짝 웃는 입꼬리에는, 배우자에게서 삶을 뺏은 대신에 그에게 부부생활을 주도하는 이미지라도 챙겨주어야 뒤탈이 없다는 지혜로운 계산과 강력한 통제력이 야릇하게 걸려 있다. 그런가 하면 추종자는 추종자대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 지금 삶의 가치와 보람과 기쁨과 깊이를 과장되게 찬양하며 표고버섯 종균을 접종한 묵직한 통나무를 마치 누군가의 머리를 박살내려는 듯 사납게 바닥에 쿵쿵 내리찍을 뿐이었다. 우리는 이 언행 불일치의 퍼포먼스에서 다음과 같은 소리 없는 절규를 들을 수 있다.

‘내 다리 내놔, 내 허리 내놔, 내 위스키 바와 LP 바와 과소비와 사무직의 경미한 손목 관절염과 여름밤 냄새를 맡으며 캔맥주를 사러 가던 편의점 산책길을 내놔, 내 도시적 삶을 돌려놓으라고, 이 미친 인간아!’

어쨌든 위의 분류법에 따르면 n&n’s가 주동자고 남편이 추종자다. 겉보기에는 그랬다. n&n’s가 ‘올해는 반드시 굴을 잘못 먹고야 말 거야. 그래서 노로 바이러스에 걸리고 말 거야. 그래서 못 가고 말 거야’ 말만 하고 시가에서 추석연휴를 보낼 짐을 꾸리는 사이, 남편이 집 밖으로 쏜살같이 달려나가 생굴을 잔뜩 먹어치우고 응급실에 실려 가 귀성을 막았다. 두 사람은 브레인과 행동대장이라는 전형에 들어맞는 듯 보였지만 n&n’s가 남편을 조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남편에 의해 자신의 소망이 실현될 때마다 n&n’s는 세상을 향해 ‘봤지?’ 하고 턱을 드는 것이 아니라 망가진 세상을 재건해야 하는 히어로의 피곤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n&n’s는 세상물정에 어두운 사람이 전혀 아니어서 아파트를 팔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앞으로 집값이 더욱 크게 오르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다. ‘나, 살면서 한번은 돈을 이겨보고 싶어.’ 그때 n&n’s의 남편은 주식에 코인에 유행하는 잡다한 것은 다 하는 흔한 사람들, 부르면 1, 2분 뒤에 ‘응? 왜?’ 고개도 돌리지 않고 주식 차트에 코를 박고 대답하는 인간 대열의 당당한 일원이었다. 그럼에도 아내가 돈을 이겨보고 싶다고 말하자 바로 다음 날 부동산으로 달려가 집을 팔아달라고 난리를 피웠다. 시세보다 수천만원을 깎은 끝에 몇시간 뒤 중국 주재원에서 근무 중인 젊고 부유한 부부와 계약을 맺었다. 그들은 집을 보지도 않고 샀는데 알고 보니 부동산 사장의 조카였다. 집을 팔아치우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온 남편에게 n&n’s는 예의 그 대사를 읊었다. ‘아, 나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였는데!’

n&n’s가 시세차익과 시간의 맞교환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때는 대한민국의 집값이 폭등하던 시기였다. 그해 여름 아파트 상가 통닭집 파라솔 아래는 맥주를 들이켜며 인생이 이보다 좋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젖히고 웃는 집값 오른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고개를 들다 우연히 보게 된 시커먼 나무에 줄줄이 기어 올라가는 바퀴벌레를 마주하고 문득 앞으로 일어날 일, 집값 하락뿐 아니라 상승까지 포함하는 어쨌든 변동이라는 정신을 뒤흔드는 요소에 몸서리치며 이 짓거리를 언제까지 해야 할까 돌연 지긋지긋해했다. 그러곤 10년 뒤에는 20년 뒤에는 돈에 대한 정신적 종속을 떨치고 자유의 몸이 되어 세계여행, 즉 세계에 세워진 호텔이라는 단기 셋방을 탐험하겠노라고 급작스레 맹세했다. 어찌 보면 n&n’s도 그런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쏜살같이 달려나가 몽상으로 남았어야 할 소망을 현실로 만들었다.

희한한 일은 n&n’s가 남편의 돌발행동에 경악하기는커녕 오히려 잘됐다며 자신이 씨를 뿌리고 남편이 성급하게 이룬 자충수 속으로 열정적으로 돌진했다는 것이다. n&n’s는 분명 자신의 소망이 그냥 한번 해본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으나 부동산 계약을 파기하지 않았고 일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는 남편에게 질세라 옷의 3분의 1, 책의 3분의 2, 양문형 냉장고를 내다 버리고 이사할 빌라의 평수에 알맞은 폭 좁은 가구를 사러 광명 이케아로 달려갔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자충수를 넘어 적극적인 자학 행위였다.

결혼생활 내내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아내가 명하면 남편이 받들었다. 아내가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키면 남편은 이미 거기 가 있었다. 아내가 꿈을 품으면 남편이 그 꿈을 거의 낚아채듯 잽싸게 이뤘다. n&n’s의 입술에서는 새로운 소망, 새로운 목표, 새로운 삶의 비전이 끝없이 터졌고, 지난 것이 성취되기가 무섭게 새로 돋아나는 그 꿈들을 남편이 미식축구 선수처럼 옆구리에 끼고 세상을 싸돌아다니며 깡그리 이뤘다. 비유하자면 n&n’s가 모빌이 멈추기가 무섭게 두 발을 버둥거려 헝겊 사자와 헝겊 코끼리가 다시금 움직여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성질 급한 아기라면, 그의 남편은 n&n’s가 발끝을 까딱이기가 무섭게 멀리서, 아주 멀리서, 예컨대 세렝게티에서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여보, 나 여기 있어, 당신도 어서 와!’

n&n’s는 이전의 삶을 파기하고 그것과 다르기만 하면 어떠한 일관된 방향도 원칙도 없이 아무 삶이나 붙잡는, 싫증을 잘 내고 입이 방정인 사람이었다. 그는 결코 자신의 소망이 실현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꿈이 실현되는 순간 천장에서 진짜 코끼리가 떨어져 깔려 죽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n&n’s는 지극히 보수적인 사람이었고 그러므로 그들 부부의 앞길은 약간의 탈규범적인 아이디어로 꾸며진 탄탄대로였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한 고집 하는 남편이 자꾸만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여보, 나 여기 있어, 당신도 어서 와!’

그렇게 두 사람의 삶이 관념이 아니라 현실의 궤도를 벗어났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습성을 버렸더라면. n&n’s가 소망을 품지 않거나 남편이 그 소망을 이루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아직 남편은 살아 있을 것이다. 살던 집에서, 하던 일을 하고, 마시던 맥주를 마시며, 이 수준까지 삶을 변혁하지 않은 채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음새가 전혀 만져지지 않는 징그러운 결합체처럼 한덩이로 세상을 굴러다니며 축복받은 삶을 사정없이 뒤틀어버리다가 결국 내가 사는 빌라까지 흘러 들어와 휠체어 경사로와 승강기의 부재가 이동권과 장보기에 미치는 영향을 관절 쑤시게 경험하다가 급기야 한쪽이 죽고 만 것이었다. 이 무슨 난리법석이란 말인가! 정말이지, 아내들이란! 남편들이란! 나는 내가 아는 부부를 떠올리며 깔깔대다가 갑자기 기운이 쭉 빠지면서 사방치기를 하고 싶어지곤 했다. 분필을 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가 빠져나간 자리에 웅크린 고양이를 발로 밀어내고 네모와 대각선을 그려 사방치기 판을 마련하고는 몇분이고 몇시간이고 홀로 깡총, 반드시 깡총—깡‘총’이 표준어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깡‘충’은 나의 성미와 색채와 취향과 기갈에 맞지 않는다. 칙칙하고 둔탁한 어감의 ‘껑충’은 말할 것도 없고—요정처럼 뛰면서 칸을 옮길 때마다 이렇게 외치고 싶어지는 것이다. 나 (깡총) 가 (깡총) 죽 (깡총) 어 (깡총) 라 (뒤를 돌아) 얍! 나 (천천히) 가 (힘없이) 죽 (슬프게 또는 분노로 딱딱하게 굳어) 어.

점프 한번에 한음절씩. 전진하는 5음절과 회귀하는 5음절. 그렇게 사방치기를 실컷 하고 다시 천천히 집으로 돌아올 때면 대차게 울고 난 것처럼 후련한 기분이지만 언제나 정화의식 끝에는 이런 비린내 나는 의문이 달라붙어 있었다. 분명 나가 죽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 것 같은데 어째서 내가 나가 죽어야만 할 것 같은지.

 

*

 

“쓰셔야 해요. 추도사를 쓰셔야만 해요.”

n&n’s의 남편이 죽은 지 보름째 되는 날, 활동가가 다시 찾아와 말했다. 그때 우리는 「그림자 없는 남자」(W. S. 밴 다이크 감독)와 라이브방송을 동시에 시청 중이었다. 동명의 원작소설(대실 해밋, 황금가지)을 읽어서 그런지 나는 영화가 시시하게 느껴졌다.

영화와 소설 모두 전직 탐정 닉(Nick)과 그의 아내 노라(Nora)가 살인사건을 함께 해결하는 내용이었다. 닉은 골치 아픈 범죄현장에서 벗어나 평온한 은퇴 생활을 누리려 하지만, 노라가 그에게 다시 살인사건을 맡으라고 은근히 종용한다. 남편을 통해 자신도 범죄수사에 간접적으로 개입하여 삶에 스릴이라는 반짝 가루를 뿌리기 위해서다.

예상했겠지만 n&n’s는 노라와 닉 부부 이름의 앞 글자에서 각각 따왔다. 그것은 n&n’s의 인스타그램 아이디이자 타투 도안으로, n&n’s의 손목에는 싸고 어중 띤 맛의 대중적인 초콜릿 m&m’s의 폰트를 그대로 베낀 n&n’s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

어떤 장면에서 n&n’s가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 전 남편을 잃은 사람 치고 n&n’s의 태도는 지독히 태연했다. 그 바람에 나까지 죄를 짓는 기분이었고 활동가를 보기가 민망했다. 그러나 활동가는 바닥에 앉아 걸레질할 뿐이었다.

“남편분을 영웅이나 열사로 만들려는 게 아니에요. 거짓말을 하시라는 게 아니에요.”

그는 청소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참담한 일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도 하기 어렵군요, 하고 말하는 대신에. 무너진 정신이 아니라 그 정신의 투영인 집을 돌보는 사람. 심지어 그는 내 머리카락에 붙은 구더기를 떼어주며 나에게도 집을 ‘한번 들었다 놔주겠다’고 제안했다.

“추도사를 어떻게 쓰시든 관여하지 않아요. 저희를 욕하셔도 괜찮아요. 남편분을 욕하셔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쓰기는 쓰셔야 해요.” 활동가가 말했다.

“아니오, 저는 쓸 수 없어요. 왜냐하면 남편의 죽음은 저희 두 사람의 일이니까요. 제가 남편을 죽였으니까요. 그러니 그 일에 대해 다른 사람이 사정을 알 필요는 없어요.” n&n’s가 말했다.

“하지만 사모님, 저는 봤어요. 남편분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제 눈으로 봤어요. 남편분은 사모님이 죽인 게 아니에요. 경찰이 죽였어요. 쓰셔야 해요. 추도사를 쓰셔야 해요.”

“아니오, 남편은 저 때문에 죽었어요. 그 일은 저희 두 사람의 일이에요.”

“하지만 사모님.”

“아니오. 남편은.”

“하지만 사모님.”

“아니오, 남편은.”

두 사람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한 사람의 비극적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두 사람의 비이성적인 관점과 의미 없는 논쟁이 방의 공기를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나는 제삼자로서 두 사람을 지켜보며 속으로 누구의 말이 맞는지 판정하고 있었다.

n&n’s의 남편에게는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 n&n’s에 따르면, 그날도 남편은 ‘태어나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만 하기로 작정하고 집을 나섰다. 그리하여 태어나 한번도 가보지 않은 바다에 갔고, 거기서 태어나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 사이에 끼어 태어나 처음으로 인간띠의 사슬이 되어보았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활동가가 속한 시위대가 외치는 구호를 따라 외쳤다.

그러다 활동가를 비롯한 단체 사람들은 인간띠잇기 시위를 멈추고 해상시위를 이어나가기 위해 하나둘 포구에서 바다로 뛰어내렸다. 연결되었던 손들이 끊어졌고, 아마도 남편은 그런 사소한 단절에도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고 n&n’s는 말했다.

처음에는 n&n’s의 남편도 사람들을 따라 바다로 입수하려 했다. 하지만 태어나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험한 바다 수영을 할 용기까지는 없었기에 다이빙 직전에 멈췄다. 그 대신 육로로 시위대를 쫓아갔다. 시위대는 바다를 직선 코스로 헤엄쳐 반대편 방파제로 가려 했다. 그곳에서는 소규모의 또다른 시위대가 고립된 채 깃발을 흔들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n&n’s의 남편은 바다에 떠 있는 시위대의 작은 머리통을 쫓아 쉴 새 없이 달렸다. 물속에서 자유로운 시위대와 달리 그는 육지에서 먼 길을 돌아 반대편 방파제에 닿아야 달리기를 멈출 수 없었다. 바다에서 멀어지자 시위대의 머리통이 사라졌다. 그는 더러운 주차장과 호객꾼이 달려드는 횟집 거리를 달려야 했다. 돌아가야 한다고, 비록 잠시 손을 잡았던 낯선 사람들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들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왠지 마음이 완전히 무너진 채 미친 듯이 달렸다. n&n’s에 따르면, 그는 외로웠다.

바다가 거의 보이지 않는 기나긴 길을 달리며 그는 상상했을까. 방금까지 손을 잡고 있던 사람들, 한손에 깃발을 들고 헤엄쳐 자신을 기다리는 친구들을 향해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그들을. 깃발은 물에 반쯤 빠져 구호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얼마나 수영을 잘하던지. 마침내 방파제에 다다른 그들은 육지로 올라가 친구들과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하루의 마지막 빛을 반사하며 거침없이 빛을 쏟아내는 바다가 그들의 재회를 아름답게 꾸며줄 것이다. 비록 그들은 절망하고 화가 나 있었지만, 그리하여 절실한 염원과 정결한 저항을 분출하였지만, 그럼에도 행복해 보였겠지. 반면에 n&n’s의 남편은 혼자였을 것이다.

그에게도 애증으로 엮인 직장 동료들, 텔레그램으로 주식 정보를 물어다주던 사기꾼들, 자전거동호회 사람들, 사진동호회 사람들, 클래식면도동호회 사람들, 매일 밤 맥주를 사러 들르는 편의점의 오래 일한 직원과 그의 러시아인 여자 친구, 그리고 그들과 나누던 담소가 있었다. 그러나 직장을 그만두고 이사를 오면서 대부분의 관계가 끊어졌고 그에게 남은 것은 우울증에 걸려 더이상 소망을 발신하지 않고 집에 누워만 있는 아내뿐이었다.

그는 계속 달렸다. 사람들에게 돌아가려고, 다시금 그들의 뜨끈한 손을 잡아보려고, 더는 외롭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세상에 달라붙으려고, 그는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바다가 점점 가까워 오면서 방파제의 테트라포드에 평화로이 누워 몸을 말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정말 재회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도착하면 누군가 그를 소개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인사해. 오늘 처음 오신 분이야.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시위 끝나고 뒤풀이 가실 거죠?’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뒤쪽에서 밀려온 수십명의 시커먼 경찰들 사이에 있었다. 그리고 활동가에 따르면 시위를 진압하던 경찰의 손에 밀려 n&n’s의 남편이 바다로 떨어졌다. 해양경찰 측의 설명은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바다에 뛰어들려는 시위자를 구하려 하였으나 손이 닿기 전에 시위자 스스로 균형을 잃어 테트라포드에서 추락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니오, 남편은 저 때문에 죽었어요. 그 일은 저희 두 사람의 일이에요.”

“하지만 사모님.”

“아니오, 남편은.”

“하지만 사모님.”

“아니오, 남편은.”

“하지만 저는 봤어요.” 이제 활동가는 냉장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 뒤돌아 앉은 그에게서 독백 같은 말이 줄줄 새어나왔다. “남편분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봤어요. 저는 그 자리에 있었어요. 그 일은 두분 사이의 일이 아니에요. 우리에게는 그분을 단지 발을 헛디뎌 운 나쁘게 죽은 사람이라는 결론에서 구할 책무가 있어요. 영웅을 만들자는 게 아니에요. 열사로 숭상하자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그분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세상이 알아야 해요. 저는 그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요. 하나도 없어요. 죽는 순간을 보았을 뿐이에요. 죄송해요. 이런 말씀을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쓰셔야 해요. 추도사를 쓰셔야만 해요.”

“우리 저거 사야 할 것 같아.” n&n’s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사자, 저거.” 라이브방송 진행자가 뚜껑을 열 수 있는 목걸이 펜던트를 선보이고 있었다. 뚜껑을 열자 안에 새까만 것이 보였다. 결국 내가 100년 묵은 벌레의 꼴까지 보게 되는구나 참담해하고 있는데 진행자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도 주얼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은 빅토리아 시대였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부군 앨버트공이 죽은 후 그를 기리기 위해 그의 머리카락을 엮어 만든 목걸이와 반지를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지금 소개해드릴 로켓 펜던트도 애도 장신구로, 빈티지 장신구 마니아라면 누구나 탐내는 구하기 매우 힘든 개체입니다. 로켓 펜던트를 열면 그 안에 죽어서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은 사람의 머리카락이 들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가격만 쓰시면 안 되고요. 반드시 ‘저요’ 하고 나서 가격을 쓰셔야 인정이 됩니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네요. 그럼, 준비하시고요. 이제 가격 나갑니다.”

n&n’s가 남편의 죽음을 독점하려 했느냐고? 죽은 자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것처럼, 남편의 사회적인 죽음을 오로지 부부의 일로, 그 협소한 단위로 완강히 쪼그라뜨려 자신의 소유물로 삼으려 했느냐고? 그럴 수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n&n’s는 오래된 사물의 역사적 의미를 지운 채 오로지 그것을 소유물로만 여기려고 했으니까. 이번에도 경찰의 과잉진압, 신공항 건설, 배를 까뒤집고 죽은 채 파도에 떠밀려올 물고기 떼, 데모 신참내기의 비극적인 죽음, 죽음을 값지게 할 최소한의 의미부여 같은 것과의 끈을 죄 끊어버리고 배우자라는 자격으로 남편의 죽음을 소유하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남편이 죽은 자명한 이유를 무시하고 그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고 고집함으로써 스스로의 힘이 닿지 못하는 곳에서 죽어간 남편을 다시 자기에게로 되돌리려는 부질없는 노력일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징글징글했다.

정말이지, 부부란, 아내란, 남편이란, 헤테로들이란. 머리끝까지 짜증이 나서 사방치기를 하러 가려는데 n&n’s가 궤변을 늘어놓아 나의 정화의식을 방해했다. 그리고 그것이 n&n’s가 자살하기 전, 내가 들은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날 이름 모를 망자의 머리카락으로 장식된—10k 골드, 금 함량 분석 완료, 매우 좋은 컨디션—애도 주얼리(mourning jewelry)는 나의 재빠른 손놀림 덕분에 n&n’s의 소유가 되었다. 45만원이라 높은 가격 때문에 어차피 경쟁자도 없었다.

 

*

 

“아니오, 제가 남편을 죽였어요. 남편과 저는 집을 팔아 시간을 샀는데 시간이 넘쳐나자 집에서 잠만 잤어요. 하루 종일 잠이 밀려와 시도 때도 없이 잤어요. 저는 침실에서 잤고, 남편은 거실에서 잤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둘 다 코를 심하게 골기 때문에. 제가 침대에서 남편에게 ‘돌려’ 외치면 남편이 몸을 돌렸고, 남편이 거실 바닥에서 저에게 ‘뒤집어’ 문자를 보내면 제가 욕창을 방지했어요. 하지만 가끔 거실에 나가보면 남편은 혼자 일어나 노는 아이처럼 안 자고 있었어요. 그는 잠이 오지 않았던 거예요. 저 때문에 하루 종일 자는 척했던 거죠. 가끔은 저에게도 활력이 생겨 남편에게 나가자고 속삭였어요. 집 밖으로 나가 태어나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 돌아다니자고 꼬드겼어요. 그렇게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맨 먼저 할 법한 상투적인 행동, 외딴 별장에 모여 채찍질의 전 단계로서 파트너를 옷걸이로 때리는 일 같은 걸 했어요. 우리는 같은 활동은 두번 다시 하지 않기로 정했기 때문에 우리를 아낌없이 환영해주었던 선배들, 일상복을 벗고 라텍스 의상으로 갈아입기 위해 허벅지에 오일을 바르던 친절한 그들을 실망시켰지요. 점차 우리는 색다른 듯 진부한 일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독창적인 선별로 나아갔어요. 태어나 한번도 해보지 않은 무수한 일 중에서 우리에게 맞는 것을 잘 고르게 되었어요. 이상하게도 그것은 갈수록 눈물과 관련되었어요. 우리는 자식을 죽인 부모의 공판에 갔어요. 거기서 나는 국화를 던지다 울었어요. 우리는 계룡산을 네발로 기어올랐어요. 거기서 나는 절벽 너머로 빠진 발톱을 던지다 눈물을 터뜨렸어요. 초콜릿을 김에 싸 먹다가 목 놓아 울었고 계란을 부치다가 오열했어요. 나는 점점 눈물이 많아져 노상 하던 일도 울면서 했고 그러니 모든 일이 새로운 일이 되어 굳이 밖에 나가 찾을 필요가 없어졌어요. 계란은 부쳐봤지만 울면서 부쳐본 적은 없으니까요. 우울증에 걸리면 모든 일이 그토록 새로워져요. 나중에는 입원을 요할 만큼 병이 깊어져 팔에 올라가라 명해도 팔이 들리지 않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게 되었어요. 남편도 우울증을 얻었다면 그래서 무기력이 기운을 다 빼놨다면 우리는 사이좋게 집에 누워 겨우 ‘돌려’ 중얼대고 ‘뒤집어’ 문자를 보냈을 거예요. 남편은 밖에 나가지 못했을 거고 그 바람에 죽지 못했을 거예요. 반대로 내가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다면 나는 변덕스러운 성격이기에 삶의 방향을 줄기차게 바꿔댔을 거예요. 지금쯤 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묘지기를 하고 있거나 시간으로 돈을 사는 시절로 돌아가 쓰리잡을 뛰고 있을 거예요. 그러나 나는 팔을 들 수도 없었고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도 없었고 남편에게 이것저것을 하자고 속삭일 수도 없어서 남편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우리가 마지막으로 하던 일을 하고 돌아다닌 거예요. 태어나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겠죠. 그러니 모르는 사람의 발가락을 빠는 일이나 러시아대사관 담을 넘는 일, 올리브오일 한병을 마시는 일이나 에어컨 설비 교육을 받는 일, 그리고 시위에 참여했다가 방파제에서 떨어져 죽는 일은 모두 같은 층위예요. 남편과 내가 정한 규칙이 그 모든 세세한 일을 내려다보고 있어요. 당신들은 얼핏 중요해 보이지만 남편의 죽음에서 곁가지예요. 당신들이 끼어들 틈은 없어요. 남편의 죽음은 우리 부부의 것이에요.”

 

*

 

남편이 죽은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어느날 n&n’s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식이 없던 그는 죽기 전에 여러 모르는 사람에게 재산을 증여했다. 언젠가 TV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자립준비청년 세명에게 2천만원씩 주는 식이었다. 집을 판 돈으로 미래를 샀던 n&n’s에게 미래가 사라지자 현금만 넘치게 남았던 것이다. n&n’s는 옥상에서 돈다발을 뿌리는 사람처럼 세상 구석구석 필요한 사람에게 수억을 쏘느라 자살을 차일피일 미뤘으나 결국 죽음이라는 나쁜 방식을 통해 n&n’s는 남편과 재회했다. 죽음이 부부의 재회 수단이었다는 것은 나의 추측이 아니라 n&n’s가 유서에 분명히 적어놓은 바다.

n&n’s의 유서는 여러 사람에게 남기는 짧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에게도 몇마디 남겼으나, 그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사실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다. 내가 받은 것은 3천만원이 아니었다.

나는 빈티지 주얼리를 물려받았다. 생판 모르는 남에게 2천만원을 줬으면서 어떻게 매일 보다시피 한 나에게는 차도 아니고 장신구 따위를 넘길 수 있지? 나는 변색 방지를 위해 앙증맞은 지퍼백에 담긴 장신구를 폭력적으로 잡아 빼며 광분했다. 그러다 이것을 모두 팔면 1, 2천만원은 건질 수 있음을 깨닫고 n&n’s를 용서했다. 현금을 물려받은 자립준비청년들과 달리 나는 현물을 물려받았고 그것을 현금화하려면 일을 해야 했다. 나는 라이브방송을 시작했다. 그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나에게는 수천번의 라이브방송 시청 경험과 수만번의 ‘저요+가격’ 채팅을 통한 빈티지 주얼리 시세에 대한 데이터가 이미 내장되어 있었다. 미니 삼각대를 사서 방송을 시작하기만 하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집에서 구더기가 나온다고 하면 인생이 갈 데까지 갔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구더기 발생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의욕이 바닥났을 때보다 삶에 대한 과욕이 샘솟았을 때 구더기 발생의 싹이 마련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평생 편의점 도시락만 먹고 살다가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해 한겨울에 얼어붙은 계곡물을 깨고 입수하는 운동선수 영상을 접하고는 불현듯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각오에 휩싸여 감자를 사서 베란다에 던져놓는다. 그러다 온 세상이 녹아내리는 늦봄에 역시 마구 던져놓은 파카 아래서 까맣게 잊은 감자 봉투 밖으로 기어나온 반짝이는 구더기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즈음에는 그들을 박멸할 기운 따위 사라진다. 가끔 온몸에 벌레가 우글대며 기어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면 이웃집으로 가 흑백영화를 보며 눌어붙다가 집 계약 만료일이 당도해 도망칠 날만을 기다리며 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n&n’s가 물건을 넘긴 탓에 그것을 팔아야 했다. 하루에100만원 이상 써재끼는 큰손 손님이 택배 상자를 열었다가 우윳빛깔 캠퍼 글라스(camphor glass) 귀걸이를 놀이터 삼아 타고 노는 구더기를 발견해서는 안 되었기에 범죄현장을 수습하는 범죄자처럼 집요하게 집을 청소했고, 그것이 n&n’s가 나에게 남긴 유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장신구를 파는 사람이 되자 놀랍게도 나의 내면에서는 원대한 야심이 폭발했다. 그것은 그동안 보아온 라이브방송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진행자들과 돌아가며 싸웠다. ‘어떻게 장신구를 자신을 꾸미는 데에만 사용할 수 있죠?’ 내가 채팅창에 쓰자 한 진행자가 물건을 팔다 말고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혹시 장신구의 뜻을 모르시나요? 몸치장을 하는 데 쓰는 물건, 그게 장신구의 사전적 정의예요. 그럼 목걸이를 사람 모가지 꾸미는 데 쓰지 어디다 써요?”

그런 식이었다. 그들은 시간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했다. 만일 그들이 전쟁과 기아와 히틀러와 항생제가 개발되지 않아 발톱 거스러미만 잘못 뜯어도 픽픽 죽어나가던 시대를 건너 우리에게 와준 목걸이에 일말의 존경심이 있다면, 지금 당장 백화점에서 살 수 있는 스와로브스키의 노골적인 휘광이 아니라 백내장 환자의 안구처럼 희뿌연 빛을 발하는 이 낡고 슬프고 지치고 상실을 간직한 사물에 대한 조금의 애정이라도 있다면, 어떻게 그것을 오로지 우리의 존재를 조금 더 낫게 만드는 데에만 사용할 수 있을까? 적어도 우리의 존재를 ‘조금’이 아니라 완전히 탈바꿈시킨다는 것을 보일 멋진 무대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첫 라이브방송을 하던 날, 나는 온 힘을 다해 n&n’s에게 물려받은 주얼리를 소개했다. 각 피스마다 그에 걸맞은 메이크업과 의상을 준비해 목걸이 하나, 귀걸이 하나, 브로치 하나가 한 인간을 얼마만큼 변화시킬 수 있는지, 우리 안에 갇힌 또다른 우리를 얼마나 손쉽게 끌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려 했다. 한마디로 나는 귓불 끝을 겨우 가리는 작디작은 귀걸이가 한 인간에게 끼치는 영감의 최대치를 드러내려 했다. 내가 방송을 준비하며 레퍼런스로 삼은 사람은 가수 콘치타 부르스트와 구찌의 새 시대를 견인한 전(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껠레와 예수 그리스도였다. 나도 한때는 구더기가 발견되기도 한 머리카락을 그들처럼 어깨까지 내리고 인중과 턱을 수염으로 뒤덮고 고불고불한 가슴 털 위로 목걸이 열두줄을 낭만적이고 난잡하게 드리우고 눈가에 까보숑과 보색 대비를 이루는 아이섀도우를 칠하고 n&n’s가 내게 남긴 선물을 세상에 열렬히 소개했다.

나를 탈진 직전까지 몰아간 방송이 끝나고 나는 ‘MZ_vintage_lover’라는 아이디의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았다. ‘님, 그냥 드랙이 하고 싶으면 하세요. 메이크업하는 드랙퀸은 많지만 아직 주얼리 코디네이션을 하는 드랙퀸은 없답니다. 블루오션을 노려보세요. 파이팅. 사랑하고 응원합니다.’

이제 n&n’s가 나에게 남긴 유언에 대해 말해야겠다. ‘지층에 사는 click 군에게’로 시작하는 유언은 바로 이어 호칭을 갑작스레 바꾸어 나를 당황하고 슬프고 화나고 웃음 짓게 만들었다.

‘아가씨!’

이 아줌마야, ‘아가씨’는 내가 나를 부를 때는 쓸 수 있지만 당신이 나를 부를 때는 쓰면 안 되는 호칭이야, 나는 속으로 말했다.

‘선물이야. 진짜 보석은 하나도 없지만. 시집갈 때, 예물로 써!’

그렇게 나는 남편을 따라 죽은 여자에게 578개의 빈티지 주얼리를 미래의 예물로 선물받았다. 한쌍의 부부가 죽었고 혼인율은 곤두박질치고 있으며 나, 드랙 click은 결혼할 생각이 추호도 없고 여남 쌍이 씹다 버린 한물간 제도를 나는 아직도 누리지 못한다는 현실이 어이가 없고, 그렇지만 n&n’s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하트 로켓 목걸이가 가슴을 아프게 칠 때면 나는 두리번대며 남편감을 찾는다.

키가 170센티미터 이하이고 오리 엉덩이에 짧은 다리로 힘차고 야무지게 걷는 내 식성의 남자들의 굵은 목에 불가리 목걸이를 휘감아주고, 오동통한 검지에 까르띠에 반지를 끼워주고, 아프게 사랑하다 드라마틱하게 이혼하는 꿈을 꾸다가 깨닫는다. n&n’s의 남편이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n&n’s의 소망이 나에게 옮겨붙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