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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현장 | 가자사태가 던지는 질문들
오슬로 해체하기
알베르또 또스까노 Alberto Toscano
사회이론가이자 철학자. 런던대 골드스미스칼리지 사회학과 교수. 저서 『광신』 등이 있음.
* 이 글은 2024년 3월 22일 『뉴레프트리뷰』(New Left Review) 블로그 사이드카(Sidecar)에 게재된 “Undoing Oslo”를 번역한 것으로, 원문은 newleftreview.org/sidecar에서 볼 수 있다. Ⓒ Alberto Toscano 2024/한국어판 Ⓒ 창비 2024
** 각주는 모두 옮긴이의 것임을 밝힌다.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 작전—산부인과 병동 폭격부터 라파엘 렘킨(Raphael Lemkin)이 한때 ‘인종차별 급식’이라 불렀던 것1까지 식민지 폭력의 총합—이 시작된 지 5개월째 접어든 지금, 비판적인 논평이 끊이지 않았다. 이스라엘 바깥의 유대인 지식인들은 시온주의의 하즈바라(hasbara)2에 대항하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의 발언을 청할 때는 대개 잔혹함과 박탈감을 증언하라는 것이지 정치적 처방을 내려달라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말에 출간된 하이다르 이드(Haidar Eid)의 『팔레스타인 정신의 탈식민화』(Decolonising the Palestinian Mind)는 이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개입이다. 이 책은 ‘오슬로3 이후 팔레스타인의 (인식적) 정치 지도’를 다시 그리는 동시에 각종 ‘평화안들’과 결별하려는 변혁적인 반식민주의 실천을 명시함으로써 팔레스타인 해방의 정치를 되살리려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드는 가자의 알 아크사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비디에스(BDS) 운동4의 창립회원이다. 그는 조이스(J. Joyce)와 드릴로(D. DeLillo) 소설 읽기를 바탕으로 총체성에 대한 반권위주의적 비판이론을 요청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세상 만들기’』(‘Worlding’ Post-modernism, 2014)의 저자이기도 하다. 또한 팔레스타인에서 하나의 세속적 민주주의 국가를 주장하는 미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식인들의 글 모음인 『팔레스타인의 나크바5에 대항하며』(Countering the Palestinian Nakba, 2017)의 편집자이다. 가자지구에 가해진 체계적인 교육말살—이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성인들을 대상으로 수십년간 벌여온 전쟁이 격화된 결과이다—의 일환으로 이드의 대학은 이제 가자의 다른 모든 상급 교육기관들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대학의 학자와 학생 수십명이 살해되었고, 모두가 거주지에서 쫓겨난 채 지금은 기아에 직면해 있다.
『팔레스타인 정신의 탈식민화』는 이스라엘의 공격이 현재 진행되는 와중에 완성되었다. 이드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시민권자여서 그와 그의 가족은 그 공격에서 마침내 벗어날 수 있었다. 10월 26일이라는 날짜가 붙은 ‘프롤로그’는 파괴의 규모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여러 곳에서 일어났는지를 포착한다. “나는 가자시티에 있는 어느 집의 폐허 더미 위에 서서 수평선을 응시한다. 십중팔구 폐허의 돌무더기 아래에는 순교자의 시신이 놓여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경고’에 응할 수 없었던 누군가의 시신이.” 이드는 시적인 ‘유체이탈’ 명상으로 마치 유령의 관점에서 보듯 산산이 부서진 풍경을 내려다본다. 5일 후 라파흐(Rafah)에서 작성된 또 하나의 ‘프롤로그’에서 그는 아내와 어린 자식들과 함께 이스라엘의 폭탄을 피하려고 애쓴 과정을 묘사한다. 그들은 가자시티의 완파된 동네 리말(Rimal)에서 가자지구 북쪽으로 도망친 다음, 이집트 국경 쪽으로 남하했다. 이 프롤로그는 하나의 민주주의 국가뿐 아니라 휴전과 ‘즉각적인 배상 및 보상’ 요구를 되풀이하며 끝난다.
폭격과 봉쇄 사이를 오가며 살아온 이드의 경험에서 알게 되는 사실이 있지만 이 책은 증언록이 아니다. 이 책은 고(故)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지적 프로젝트를 밀고 나가려는 시도로서, 주권이 박탈되고 탈식민화와의 연결이 끊어진 국가에 대한 사이드의 경고와 아울러 오슬로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그의 비타협적 비판을 단서로 삼는다. 이드의 서술에 따르면, 오슬로협정은 명백한 실패임에도, 동시에 명백한 실패이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정치에서 겉보기로는 초월할 수 없는 지평이 되었다. 오슬로 체제는 팔레스타인 주민을—디아스포라 난민, 가자와 서안(West Bank)의 확실한 점령체제 아래 사는 사람들, 이스라엘의 이류 시민으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인들로—분할했고 “국제사회로부터 승인받은 반투스탄6”을 만들어냈는데, 그나마 쪼개진 것이었다. 이드에 따르면 가자는 지금 ‘오슬로의 거울상’이다. 즉 현재의 재앙을 가능케 한 조건이자, 공존을 약속했지만 정의나 복구는 결코 지지하지 않은 평화 프로세스의 진짜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드가 우리에게 상기하듯 “가자 사람들의 75~80퍼센트가 난민이며 그들의 귀환할 권리는 국제법상으로 보장된 것인데, 그 권리가 오슬로에 의해 완전히 무시되어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가자의 침공과 봉쇄는 오슬로의 산물이었다. 오슬로협정이 서명되기 전에는 이스라엘이 가자와 서안의 난민캠프를 공격하기 위해 F-16 전투기, 인(燐) 폭탄, 그리고 DIME(고밀도 불활성 금속 폭발물) 무기를 총동원한 적이 없었다.”
‘오슬로’는 팔레스타인의 ‘동화된 지식계급’과 정치적 엘리뜨들이 앓고 있는 허위의식의 한 형태를 일컫는데, 그들은 오슬로협정이 남긴 기구들에 의해 이빨이 빠지고 포섭되고 비정부기구(NGO)로 전문관료화되고 타락했다. 잔존하는 좌파도 이슬람주의 저항파도 이 철제 새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마스(Hamas)조차 1967년 경계에 기초한 ‘장기휴전’(hudna)을 제안함7으로써 오슬로에 굴복했다. 이드에게 팔레스타인 민중의 아편인 이런 ‘2국가론’(two-statism)은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봉쇄한 영토의 현 거주민들로 축소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논리에 대항할 수 없는 것이다. 해방의 필수요건은 시온주의가 계획적으로 분리한 팔레스타인 민중을 재통합하는 것이어야 마땅한데, 이 2국가론은 “민족별로 분리하는 인종주의적 발상”을 사실상 지지한다.
팔레스타인 정치를 오슬로협정에서 구출하려는 이런 노력에서 사이드의 유산이 중대하게 다가온다. 이드는 1993년부터 사이드가 죽은 2003년까지의 이른바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이 위대한 비평가의 분석을 재검토하고, “모든 협상이 이스라엘 점령을 그저 연장하는 끝없는 양보나 다름없다”는 그의 결론에 찬성한다. 오슬로협정을 되돌아보며 이드는 묻는다.
단지 매판계급이 닫힌 터널 끝에서 ‘독립’을 보았다는 이유로 그간 우리가 끔찍한 대량학살, 제노사이드적 봉쇄, 멈출 길 없는 우리 땅의 합병, 아파르트헤이트 장벽의 건설, 온 가족과 아이들의 구금, 수백채의 주택 파괴, 그리고 그밖의 많은 학대행위를 감내해야 했단 말인가!
팔레스타인의 ‘신민족주의’에 반격하기 위해서는 사이드, 쎄제르(A. Césaire), 파농(F. Fanon), 비코(S. Biko)의 반식민주의 전통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신민족주의는 “2국가 해법이 팔레스타인 민중의 3분의 2, 즉 난민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계 시민들의 권리를 부정한다”는 사실에 상관없이 “점령을 미화하고, 정상화8를 지지하며, 인종주의적인 2국가 해법을 수호한다.” 이드의 서술에 따르면 이 신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유대인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존재를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억압적 기구들과 협조·조정함으로써 시온주의 프로젝트의 동업자가 되었다. 신민족주의의 유일한 ‘해법’은 한정된 정치계급에 국가의 외장(국기, 국가國歌, 경찰)과 더불어 파편화된 주민들에 대한 위임권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의 민족으로서의 팔레스타인 민중의 존재를 부인하고 팔레스타인을 통치 가능하거나 통치 불가능한 고립된 소수민족 거주지의 지위로 축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구상된 국가의 지위는 주권의 양도나 마찬가지다. 그런 국가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국경이나 수자원에 대한 통제권도, 귀환할 권리도, 이스라엘 군대의 비대한 힘에 대한 방어력도 없는, 기껏해야 그들 땅의 22%에서의 명목뿐인 ‘자치권’을 부여할 것이다.
이드는 또한 사이드의 논의를 통해 서안과 가자에서 정치계급이 처한 곤경을 진단한다. 그는 1996년 입법회선거9에서 반투스탄적 조건하에서 대표 구조를 건설하려던 결정을 비난하고, 2006년 선거를 반투스탄화의 정치적 논리를 거부하면서도 ‘오슬로 바이러스’를—심지어는 승리한 하마스 사이에도—이식한 계기로 서술한다. 2006년 이후에는 하마스가 정당하지 못한 종교법을 적용하는 한편 그들만의 독특한 2국가론에 기초해서 미국에 호소하는 등 가자에서 ‘교도관’ 역할을 했다고 이드는 주장한다. 이드는 이런 일종의 데땅뜨가 10월 7일 공격으로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수년간의 명백한 봉쇄 기간 동안 이 공격작전이 구상된 경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이전의 하마스 통치에 대한 그의 평가는 암울하다.
하루하루 우리는 이 당국〔하마스〕이 봉쇄에 대한 저항의 단계에서 봉쇄와 공존하는 것으로 옮겨가다가 마침내 봉쇄를 활용하는 단계에 도달하는 것을 보았다. 이 당국은 새로운 비생산적 불로소득 생활자계급을 만들어냈는데, 이 계급의 자본은 (이집트 당국에 의해 터널이 파괴되기 전에는) 터널에서의 거래, 토지 거래, 건축 자재 거래 독점 등에 기반한다. 이는 당국의 이데올로기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과의 화해 가능성을 배제하면서 저항의 정의(定意)를 독점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이드는 특히 하마스가 2008~2009년 전쟁(이스라엘 측의 ‘캐스트 리드 작전’과 하마스 측의 ‘알 푸르콴 전투’) 직후의 팔레스타인인들의 단결과 국제적인 연대를 활용하지 못한 무능력을 길게 논한다. 이스라엘의 공격은 그 이전과 이후의 공격들과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 “그들이 맞서고 있는 상대는 결코 패배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권능”이라는 감각을 만들어내려는 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저항의 정신 혹은 실체를 꺾는 데 실패했고 1,400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하고 가자의 상당한 구획을 파괴한 뒤 일방적인 휴전을 선언했다. 그뒤에 하마스와 파타흐를 잇는 하나의 민족적 통합정부를 중개하려는 헛된 노력과 오바마 행정부를 향한 헛된 희망에 부풀어 시도된 미국과의 결실 없는 교섭이 이어졌고, 이는 이드가 보기에는 ‘승리의 좌절’이었다. 이런 과정은 하마스가 국가의 지위라는 물신을 열렬히 받아들여, 대중적 해방투쟁을 이끌기보다 ‘독립’이라는 이미 끝장난 일에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드는 다른 해방의 길—“팔레스타인의 탈(脫)오슬로화를 최우선 사항으로 삼는”, 그리고 “2국가 혹은 2감옥 해법이라는 허구에서 벗어나는” 길—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의 제안은 팔레스타인 통치의 정치적 구조에서 떨어져나와 종교적 우파(하마스)와 세속적 우파(파타흐) 양자 모두와의 관계를 끊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양자의 주요 우선순위는 그들 자신의 정치적 존속이다. 이드의 프로그램에는 팔레스타인 부르주아의 ‘고전적인 민족적 프로그램’과 함께 팔레스타인자치정부를 해체하는 일과 팔레스타인민족평의회(PNC)10의 재구성을 통해 “저항과 개혁의 강령에 기반한 연합전선” 형성을 목표로 일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드는 빠울루 프레이리(Paulo Freire)의 ‘검증되지 않은 실현 가능성’(inédito viável) 개념을 활용한다. 이 개념은 억압받는 자들이 ‘한계상황’을 이용하여 “적대적 상황을 자유·평등·정의의 창조적 실험 공간으로” 변형할 잠재력을 지닌 비판적 실천을 개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오늘날 가자지구의 극심한 적대상황을 고려하면 이런 주장은 유토피아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제국적 강대국들이 제노사이드 이후를 대비한 ‘해법들’을 은밀히 준비하고 있기에, 그밖의 대안들이란 팔레스타인의 자유에 대한 영구적인 부정과 다름없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좌파는 어떠한가? 그 대부분이 실제로는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대표기구의 하위경제 속에 통합되어 있다. “주요 좌파 정당들의 정치국원 대다수는 팔레스타인자치정부/팔레스타인해방기구에 직접 고용되어 있거나 직접 고용되지 않은 채 월급을 받는다.” 팔레스타인해방전선(PFLP), 팔레스타인인민해방민주전선(DFLP),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민당(PPP)11이 팔레스타인해방기구와 팔레스타인자치정부가 권위주의로 흘러가는 데 대해 실효적으로 도전하지 못했다고 이드는 주장한다. 따라서 좌파는 네게브(Negev) 베두인에 대한 인종청소에 맞서는 풀뿌리 민중 동원, ‘통일 인티파다’(Unity Intifada)12, 그리고 셰이크 자라(Sheikh Jarrah)에서의 퇴거조치에 대한 저항을 활용하여 현존하는 팔레스타인 정치체제 바깥에서 재건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이 운동의 원칙으로 2국가론의 확고한 거부, 국제적인 연대와 보이콧 운동에 대한 지지, 가자·서안·디아스포라 팔레스타인인들 간의 단결, 신자유주의 거부와 팔레스타인민족평의회의 재활성화, 라틴아메리카 좌파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반(反)아파르트헤이트 투쟁에서 교훈을 얻을 의향 등이 포함된다. 이 모든 것에 요구되는 것은 단순히 다른 정치가 아니라 “미국, 이스라엘, 그리고 그들의 아랍 동맹국들이 새로 그린 공간—소위 신(新)중동—에 대항하고” 그 대신 “민주적인 아랍 세계의 한복판에 세속적·민주적 팔레스타인”을 놓는 새로운 인식지도 그리기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분할의 기본 전제를 반복함으로써 분할의 유산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치명적인 자만심을 버려야 할 것이다.
이드의 개입이 소중한 것은 취지가 절박하고 전망이 개방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제안은 국가의 지위라는 유령이 가자의 폐허 위를 맴돌고 있는 지금 특히 울림이 크다. 하지만 이드가 아파르트헤이트의 불의와 범죄성을 강조하기 위해 불러낸 국제법은 국가라는 지위를 뼈대로 삼아 작동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 점령의 합법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현재의 전쟁에 제노사이드협약(Genocide Convention)을 적용하고자 하는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소송에서 보듯, 2국가 비전은 팔레스타인의 자유에 대한 사법적 확증의 조건을 정한다. 팔레스타인의 모든 대안적 프로그램의 핵심 과제 중 하나는 국제적 법질서를 잘 다루는 일이다. 국제적 법질서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정당화된 권리 주장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경연장을 제공하는 한편으로 그런 주장이 적대적인 강대국, 특히 미국에 포획되고 길들여지기 쉽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나의 민주주의 국가’를 팔레스타인 해방의 지침으로 보는 이드의 견해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이 제국적 체제의 위압적인 장애물들에 직면하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또한 최근 사건들로 더욱 강경해진 제거와 지배라는 시온주의 논리에 대한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압도적인 지지와도 맞부딪칠 것이다. 이드는 “승리의 만남에는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다”는 쎄제르의 보편주의적 구절을 되뇌지만, 명백한 절멸(絶滅)주의적 용어로 조장되고 집행된 전쟁에 집단으로 결집한 사람들과 어떤 만남을, 아니, 심지어 어떤 용인 가능한 공존을 상상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가장 유토피아적인 비전을 믿는다 해도 과도기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느낌을 피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모로코의 유대인 맑스주의자 아브라함 세르파티(Abraham Serfaty)가 감옥에서 쓴 팔레스타인 관련 글에서 설계한 청사진의 변형 판본이 과도기적 해법으로 제시될 수 있겠다. 여기서 세르파티는 ‘1인 1표’ 원칙하의 ‘탈(脫)시온주의화된’ 세속적 이스라엘과 ‘아랍’ 팔레스타인 국가라는 두 국가 설립을 주장했다.
누가 그런 비전을—이드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자면 “패권적 그림 전체를 뒤집어놓을 수 있는” 그런 비전을—추구할 수 있을까? 이드는 좌파와 우파의 조직된 구성체들을 비판하고 풀뿌리 핵심그룹과 BDS 운동을 중심에 세우는 문제는 강하게 밀어붙이지만, 무장저항의 역할에 대해서는 입장이 분명하지 않다. 다양한 정당과 파벌의 무장세력(그들이 항상 그들의 정치적 지도부의 입장을 고수한 것은 아니다)이나 1차, 2차 인티파다에 등장하여 다양한 민생수호 형태로 계속 활동하고 있는 대중적 저항전선, 가장 두드러지게는 제닌(Jenin)13에서의 대중적 저항전선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다. 이드는 10월 7일 이전 하마스가 ‘교도관’이라는 견해를 공식화했지만, 의도적으로 전쟁 이전 상태를 돌이킬 수 없이 해체한 듯 보이는 ‘투판 알 아크사’(Tufan Al-Aqsa)14 공격과 그런 견해는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또한 좌파의 팔레스타인자치정부와의 협력에 대한 이드의 비판과는 반대로, 팔레스타인해방전선이 최근 하마스, 팔레스타인 이슬람지하드, 팔레스타인민족주도(PNI)와 힘을 합쳐 압바스(Abbas)가 새로운 ‘기술관료’ 총리인 무함마드 무스타파(Muhammad Mustafa)를 임명한 것을 비난한 것도 새겨둘 만한 대목이다. 그럼에도 이드가 팔레스타인 역사상 가장 암울하고도 흉악한 순간에 전쟁의 재앙을 내장한 평화 개념들과 결별하고 광대한 반식민적 해방의 비전을 단호하게 긍정하는 지적 용기를 낸 것은 평가할 만하다.
번역: 한기욱(韓基煜)/영문학자,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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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킨은 ‘제노사이드’라는 용어를 만들고 유엔에서 제노사이드 방지운동을 이끈 폴란드계 유대인 변호사이다. 나치 독일이 점령지 국민들의 급식을 인종별로 차등 실시한 것을 ‘제노사이드 테크닉’의 하나로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가자(Gaza)지구로 반입되는 식품의 칼로리 총량을 철저히 통제해왔다.↩
- 이스라엘의 입장을 설명·홍보하는 활동.↩
- 1993년과 1995년 이루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간의 오슬로협정에서 2국가 해법이 잠정 합의되었다. 자세한 설명은 본지 254면 해제 참조.↩
-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점령과 학살, 탄압을 방조하는 친이스라엘 기업들에 대해 불매(boycott), 투자철회(divestment), 경제제재(sanction)를 실천하는 국제적 저항운동.↩
- 1948년 팔레스타인 전쟁 동안 이스라엘이 500여개 아랍계 팔레스타인 마을을 ‘인종청소’한 결과 팔레스타인인 1만 5천명이 목숨을 잃고 75만명이 난민이 된 재앙적 사건을 일컫는다.↩
- 196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 반투족을 인종적으로 격리 수용하기 위해 설정한 보호령. 여기서는 오슬로협정에서 팔레스타인 자치령으로 상정한 서안과 가자를 가리킨다.↩
- 이슬람주의 정당이자 무장단체인 하마스는 과도기적 해법으로 1967년 ‘6일전쟁’ 이전의 경계로 돌아가자는 주장, 즉 이스라엘이 6일전쟁 때 점령한 서안과 가자, 동예루살렘에서 철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장기 휴전안을 제시했다.↩
- 오슬로협정에서 하나의 독립국가로 인정받은 이스라엘과 장차 독립국이 될 팔레스타인의 국가 지위는 엄연히 달랐으나, 양자간 ‘정상적’ 관계가 수립될 수 있다는 전제로 시도되는 정책들을 특징짓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
- 오슬로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의 의회격인 팔레스타인 입법회(Palestine Legislative Council) 의원을 뽑는 선거. 1996년 첫번째 총선에서는 하마스의 보이콧으로 파타흐(Fatah)가 88석 중 62석을 점했으나, 2006년 두번째 총선에서는 하마스가 132석 중 74석을 얻어 승리했다. 파타흐는 아라파트(Y. Arafat)가 1957년에 세운 팔레스타인 정당이자 무장단체.↩
- 1964년에 발족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입법부로서 최고 의사결정기구.↩
- PFLP, DELP, PPP는 파타흐와 함께 (하마스가 여당인) 팔레스타인 입법부의 야당에 속하는 좌파 소수정당들이다.↩
- 2021년 5월 동예루살렘 팔레스타인 마을 셰이크 자라의 여덟가구가 이스라엘 당국의 퇴거명령에 반발하면서 촉발된 풀뿌리 항의시위에 이스라엘, 가자, 서안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모두 동참했는데, 이를 ‘통일 인티파다’라고 부른다.↩
-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서안의 도시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과 투쟁의 중심으로 꼽힌다.↩
-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 작전명으로 ‘알 아크사의 홍수’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