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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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케이트 비턴 『오리들』, 김영사 2024

무너지지 않기, 무뎌지지 않기

 

 

김성희 金成熙

만화가 hobang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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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지 않으려고 대학에 다닌 것 아니냐?”(21면)

『오리들: 돈과 기름의 땅, 오일샌드에서 보낸 2년』(Ducks: Two Years in the Oil Sands, 2022, 김희진 옮김)은 캐나다 동부 연안에 사는 취준생 ‘케이티 비턴’의 회상으로 시작하는 자전적 그래픽노블이다. 갓 대학을 졸업한 케이티에게 부모가 던지는 질문이 낯설지 않다. ‘고생하지 않으려는’ 젊은 세대를 비난하는 부모. ‘고생’의 내용이 달라졌을 뿐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전 세대. 어딘지 익숙하다. 케이티는 전공을 살려 취직하고 싶었지만, 문학사 학위로 구할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는 없다.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좋아하는 일을 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런 이유로 케이티는 “돈이 흘러넘치는 곳”(13면) 캐나다 앨버타 오일샌드로 떠난다. 숨통을 조여오는 “학자금 대출을 갚아버리고 싶은 마음뿐”(25면)이다. 그후엔 자신이 좋아하는, 학교에서 배운 일을 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오일샌드는 캐나다의 대표적인 화석에너지 개발산업으로, 유정에서 뽑아 올린 원유에 모래나 진흙 등을 섞어 가공하여 만드는 석유 제품이다. 위험한 사업장을 선택하려는 케이티에게 삼촌은 ‘공구실’로 가라고 조언한다. 현장의 진짜 돈은 석유회사가 운영하는 ‘캠프’에 있는데, 공구실은 캠프에 배치되니 ‘돈이 흘러넘치는 인근’에 있으면 기회를 얻기 더 좋으리라는 것이다. 공구를 내어주는 일은 어렵지 않고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되니 합리적인 조언일 수 있다.

선택의 결과를 처음부터 알고 시작하는 사람이 있을까? 학자금 대출을 갚겠다는 분명한 동기가 있으니 케이티가 오일샌드로 향하는 마음은 언뜻 명료해 보였다. 대부분의 직원이 남성인 캠프에서 여성으로 일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농담을 가장한 성희롱, 노골적이고 적대적인 시선과 쑥덕거림, 나아가 실질적인 신체적 위협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버텨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케이티는 ‘싱크루드 공구실’에서 일하다 그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고 거주 비용이 들지 않는 ‘롱 레이크 공구실’로 옮겨 가기를 택한다. ‘캠프’ 더 깊숙이 들어간다는 의미였다.

고립된 일터에서 무례한 사람들에 지쳐가던 케이티는 질문한다. “사람들이 집에 있을 때와 여기 있을 때 다르다고 생각해요?”(201면) “여기 오기 전엔 무슨 일을 했어요?”(225면) “인생에 금이 간다는 걸 알면서 왜 여기에 올까요?”(232면) 거의 유일한 선택지가 이곳 오일샌드인 사람들은 다른 선택지가 있는 이들에게 선을 긋는다. “넌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 그럴 수 있잖아.” 케이티도 반박한다. “아직 학자금 대출이 남았는걸요.” “학자금 대출이지, 식구들 밥줄이 너한테 달린 건 아니잖아.”(232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돈이 흘러넘치는’ 캠프에 친인척을 부른다. 케이티 역시 오일샌드에서 일한 지 일년쯤 지나자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는 언니를 이곳으로 불렀다. 일년간 혼자 고립되어 일하면서 대출금을 절반쯤 갚은 케이티는 언니에게 자신이 경험한 젠더폭력을 털어놓으며 잠시만 오일샌드를 떠나 있겠다고 한다. 지칠 대로 지친 케이티에게 장녀인 언니가 하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미어진다. “내가 맏이잖아, 널 보호하는 게 내 일인데.” “내가 맨 앞에 서서 먼저 매를 맞으면 너희 모두의 방패막이가 될 수 있을 거라 여겼어.”(249면) 여기 캐나다 맞아? 대한민국인 줄, 빌어먹을!

밴쿠버섬 빅토리아의 해양박물관에서 전공을 살려 일하며 그동안의 경험을 담은 만화를 그리면서 비로소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한 케이티. 그러나 생활비도 안 되는 월급으로는 대출금은커녕 방세를 내기조차 빠듯하다. 특히 오일샌드에서의 생활 이후 케이티는 예전처럼 해맑을 수 없다.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불청객이 된 기분”(253면)이다.

일년 후 다시 돌아간 오일샌드에서 케이티가 언니와 나눈 대화가 인상 깊다. “아빠도 저런 남자들처럼 됐을까?”(316면) 여기 오일샌드에 오면 남자들은 변한다. 집에서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 여기서는 난무하는 이유를 계속 질문한다. 케이티는 자신이 당한 폭력만큼이나 이 남성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에 집중한다. 고립과 외로움은 인간을 다시 짐승으로 추락시키는 걸까? 자신을 귀찮게 굴지 않는 남자들, 자신의 안부를 확인해주는 남성들을 떠올리려 노력한다. 저마다의 이유로 ‘지금 여기 있는’ 남성 동료들을 바라본다. 성폭력 가해자가 무서워서 침묵한 게 아니라 캠프에 남아 있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비난이 무서워서 침묵했던 기억까지. 케이티는 오일샌드와 자신을 떼어놓고 볼 수 없게 되었다.

저자는 오일샌드와 이곳의 남성에게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사유를 멈추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으리라 결심한 듯했다. 사람에게 노동할 기회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것을 간절히 지켜야 하는 절박한 마음은 무엇인지. 케이티와 함께 공구실에 있노라면 현장 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보호구와 비품으로 버티는지가 보인다. 고립과 고독,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감정에 무뎌지거나 마약에 빠진다. 곧 떠날 사람들이라 여겨, 문제가 생겨도 사라지면 그만이니 기록되지도 않는다.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관계 없이 부유하는 환경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할까. 혹은 안부를 물을 수 없는 석유 채굴 자체부터가 문제의 시작이었을까? 그곳에 있는 모두를 향한 ‘안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오리들』의 서사를 꽉 채운다. 근 몇년간 읽은 책 중 최고의 그래픽노블이라고 할 만하다.

시각적 매력도 상당하다. 거대한 중장비와 그에 비해 개미같이 작은 사람. 냄새만으로 잠이 깨는 악취 나는 현장과 시선을 압도하는 오로라. 석유산업을 위한 거대한 설비들과 그 너머의 자연이 강렬한 대비로 다가온다. 사소해 보이는 한 개인의 선택이, 사회로의 진입장벽을 만드는 학자금 대출의 심각성부터 젠더 이슈, 산업재해, 환경 문제를 모두 통과한다. 고립이 주는 외로움이 사람을 어디까지 몰고 가는지, 그 내면을 파고드는 섬세함 역시 돋보인다. 환경과 폭력, 고립을 깊이 이해하는 케이티가 건네는 위로에 마음이 뭉클하다. 마지막까지 어른거리는 잔상은, 캠프에서 얼쩡거리는 한쪽 다리를 잃은 야생여우를 쫓아내는 케이티의 모습이었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살 곳을 잃은 여우가, 다시 자신의 생명을 위협한 인간에게 의존하여 먹이를 구해야만 하는 모습에서 케이티는 어쩌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으리라. 다리 한쪽을 잃고도 캠프에 어슬렁거리는 여우, 오염된 서식지에서 떼죽음을 당한 오리들은 어쩌면 다가올 우리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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