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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인수·이영진 『사회조사와 한국적인 것의 탄생』, 소명출판 2024

‘한국적인 것’의 보편성과 특수성

 

 

오경환 吳卿煥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 kyunghwan@sungsh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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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의 역사를 서술하는 것은 사회과학이 지향하고 담보한다고 믿어지는 ‘보편성’과 역사주의적 토대에 기초한 ‘특수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필연적으로 제기한다. 역사학자 도로시 로스(Dorothy Ross)는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미국 사회과학의 기원』(1991)에서 유럽 사회과학의 역사주의적 토대에 대비되는 미국 사회과학 형성 과정의 특이성을 조망한다. 로스에 따르면 미국 사회과학은 초역사적(transhistorical)인 성격을 지닌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20세기 미국 사회과학은 이 예외주의와의 변증법적 투쟁 과정에서 과학주의적 경향으로 수렴되었다. 역사주의적 토대와 미국 예외주의를 대비시키는 로스의 이 설명은 사회과학의 역사를 추적하는 데 내재한 중요한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미국 예외주의의 초역사성은 그 자체로 미국 사회과학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역사주의적 해석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즉 신고전파 경제학과 구조기능주의 사회학으로 대표되는 20세기 후반 미국 사회과학의 과학주의적 전회는 초역사적 예외주의에 대한 수정 과정에서 또다른 초역사적 보편성을 소환함으로써 가능했다. 따라서 사회과학의 역사를 관통하는 보편과 특수의 길항은 필연적으로 탈식민주의적 비평을 소환한다. 사회과학을 배태한 유럽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보편성은 현장의 사회과학 실천으로부터 구성되는 특수성과 끊임없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김인수와 이영진의 『사회조사와 한국적인 것의 탄생』은 한국 사회과학의 역사를 현장에서 융기한 ‘한국적인 것’을 중심으로 추적한다. 이들의 추적은 한국 사회과학의 역사를 풍부하게 하면서 새로운 문제의식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적인 것’(the Koreanness)을 거대담론의 맥락에서 탐구하고자 했던 최정운의 『한국인의 탄생』(미지북스 2013)과 같은 기존의 논의들과 달리 김인수와 이영진은 사회조사, 즉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사회학적 연구활동이라는 구체적인 영역에서 ‘한국적인 것’이 구성되어가는 과정을 탐색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한국적인 것’을 실체화하여 구체적인 속성이나 요소로 파악하기보다는 사회과학 탐구에서 “지적 실천의 태도, (…) 연구 단위의 설정,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의 비교” 그리고 “탈식민/냉전 및 탈냉전 시대의 글로벌 지식 이전과 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 산물”(4~5면)로 인식한다는 점이며 이는 분명 이전 논의들이 추상적으로 구성해온 ‘한국적인 것’을 전지구적인 지식 생산의 맥락에서 파악하려 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시각을 보여준다.

저자들에 따르면 해방 이후 한국 사회과학자들은 “일제 강점기에 기원을 둔 조선적인 것의 논의에서 벗어나 필드에 직면하는 경험”(21면)을 하게 되었다. 이 경험은 결국 1960년대와 70년대 “사회과학의 토착화”(31면) 논의와 맞물려 한국적인 것을 구성하고자 하는 욕망과 교차하게 된다. 물론 한편으로 저자들은 이러한 ‘한국적인 것’의 구성이 근대화론의 압도적 자장과 오리엔탈리즘의 혐의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으며 사회조사와 한국적 특이성의 발견이 어쩌면 전지구적 지식 생산체계에서 일종의 “주문형 생산(OEM)”(204면)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냉전 지식 생산 네트워크를 “일방적이고 비대칭적인 전파”만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우발성”이 매개하는 쌍방향의 지식 재구성의 장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균형이 잡혀 있다(222면). 나아가 ‘한국적인 것’을 구성해가는 여정이 단순히 재현적(representational) 측면에 그치지 않고 구성적인 실체화의 과정이었다고 주장하며 한국 사회과학 역사의 중요한 업적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듯 보인다.

하지만 한국 사회과학자들이 “자신이 눈으로 발굴하고 식별해”(261면)갔다는 ‘한국적인 것’의 정체는 여전히 모호하다. 이는 저자들이 제3세계에서의 사회과학 실천/개입이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보편/특수의 길항에 대한 이론적 입장을 충분히 개진하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경성제대 교수로 한국사회를 조사한 스즈끼 에이따로오(鈴木榮太郞)의 연구와 현대 한국 사회과학이 맺고 있는 관계를 불교에 내재하는 현교와 밀교에 대비하여 설명한 부분은 그 자체로는 흥미롭지만 어떤 맥락에서 “포스트식민주의적 연구”(266면)인지 불분명하다. 저자들이 “탈식민 사회과학”으로 제시한 최재석의 연구가 “한국사회는 비로소 세계사적 역사발전의 연속계열 위에 자리하게 된 것”이며 “‘한국적인 것’에 대한 탐문은 이러한 심정적 여유 위에서 진행되었”다고 가정할 때 “한국적인 것”은 오직 세계사적 보편성 안에서만 설명될 수 있음이 분명해진다(235면). 이는 일찍이 문화이론가 사까이 나오끼(酒井直樹)가 지적한 쌍형상화(configuration)의 동학, 즉 서구의 보편을 통해 지역의 특수가 번역됨으로써 서구와 나머지(the West and the Rest)가 서로 형상화되는 과정이며 탈식민주의적 비평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다. 한국 사회과학이 미국 사회과학과 마찬가지로 역사주의적 토대와 초역사적 보편성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며 “한국적 고유성”(singularity)이라고까지 평가하는 중산층의 발견 역시 이러한 쌍형상화의 도식에서 살핀다면 부르주아/시민으로 대표되는 서구적 범주의 번역에 더 가깝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248면). 이러한 의문은 과연 한국 사회과학이 탈식민적 국면에 진입하였는가, 나아가 어쩔 수 없이 보편성을 추구하는 “과학”으로서의 한국 사회과학이 탈식민적 국면에 진입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연결된다. 저자들이 주목한 “현장의 융기”만으로 탈식민주의 역사가인 차크라바티(D. Chakrabarty)가 지적한 “부적절하지만 필수불가결한”(both inadequate and indispensable) 사회과학의 보편성을 탈식민적으로 돌파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들과 해방 이후 사회과학자들의 작업 전반을 비판하는 것은 아마도 완전히 적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조사라는 구체적인 영역에 주목한 이 책의 범위를 벗어나는 질문이며 저자들과 당대의 사회과학자들은 “‘그건 우리들의 주된 관심이 아니었어’라며 푸코적인 웃음을 지을지도 모르겠다.”(74~75면) 하지만 그 웃음은 에피스테메의 균열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이라기보다는 근대 사회과학을 배태한 그 보편과 특수의 에피스테메의 강고함 앞에서 짓는 쓴웃음에 가까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