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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크리스토프 코흐 『생명 그 자체의 감각』, 아르테 2024

포도주 한상자 혹은 그 이상, 뇌의 과학적 해명의 내기에 걸린 것

 

 

주재형 朱宰亨

연세대 철학과 교수 veine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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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미국에서 열린 과학 이벤트는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의 저서 『생명 그 자체의 감각: 의식의 본질에 관한 과학철학적 탐구』(The Feeling of Life Itself: Why Consciousness Is Widespread but Cant Be Computed, 2019, 박제윤 옮김)를 소개하는 글의 첫머리에 놓이기에 안성맞춤이다. 이 이벤트는 2023년 6월 20일 뉴욕에서 열린 의식과학연구협회의 26차 연례 학술회의였다. 회의는 이례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는데, 25년 전인 1998년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와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즈(David Chalmers)가 술자리에서 건 내기가 결판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향후 25년 내에(즉 2023년 무렵) 의식 현상에 대응하는 분명한 뇌신경 패턴이 발견된다는 데에 포도주 한상자가 걸린 내기를 했다. 코흐는 그러한 발견이 가능하리라는 쪽에 걸었고, 차머즈는 반대편에 섰다. 과학자와 철학자가 의식의 과학적 해명을 두고 내기를 했다니, 호사가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포도주 한상자는 이 내기에 점잖으면서도 유쾌한 풍취를 더해준다.

내기의 당사자인 크리스토프 코흐는 신경과학자 줄리오 또노니(Giulio Tononi)가 창안한 ‘통합정보이론’(integrated information theory, 약칭 IIT)을 적극 수용하여 연구 중이며, 이번에 번역된 『생명 그 자체의 감각』은 이 이론을 소개하는 코흐의 두번째 저서다. IIT는 의식을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최신 이론 중 하나이지만, 그런 만큼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기도 하다. 저자는 IIT가 의식의 신비를 과학적으로 해명해줄 것처럼 설명하지만 우리는 좀더 냉정한 시선으로 그 설명을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코흐가 풀릴 길 없어 보이는 의식의 실타래를 풀어헤칠 이론으로 내세우는 IIT란 무엇인가? 극도로 축약해서 말하자면 IIT는 의식적 경험을 특정한 물리적 체계로 정의하는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의식은, 구성요소들이 상호 연결되어 통합된 전체가 되는 물리적 체계일 뿐이다. 달리 말해 한 체계의 요소들이 체계 전체에 밀접하게 통합되어 있어서 각 요소들의 변화가 체계 전체에 반영될수록 그 체계는 의식적이다. IIT는 전체가 부분들의 단순합으로 환원되지 않는 정도를 Φ(파이)라는 값으로 계산한다. 어떤 물리체계의 파이 값이 클수록 그 물리체계는 무언가를 경험하는 의식적 존재자이다. 파이 값은 의식의 정도, 수준을 측정하는 양인 것이다.

코흐는 이 이론이 실험적인 증거로 뒷받침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는 섭동 복잡성 지수(PCI)라는 수치를 활용한 실험을 소개하는데, 이 수치는 뇌피질 여러곳에서 동시에 측정한 뇌파가 복잡하고 다양할수록 높게 나타난다. PCI 수치가 높다는 것은 뇌피질의 여러 뉴런들의 활동이 복잡한 관계망을 형성해서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PCI는 파이 값을 뇌파의 특정 값으로 구체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가정에 따라 의식있는 사람 102명과 뇌손상 환자 48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실험에서 PCI 값 0.31을 기준으로 의식 여부가 정확하게 판명되었다. 하지만 이 실험이 결정적이지는 않다. 최소한의 의식이 있는 환자들의 PCI 값이 0.31보다 낮게 산출된 경우도 있었고, 몇몇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들은 건강한 사람만큼이나 높은 수준의 PCI 값을 보여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PCI 값과 이 값의 해석 근거인 IIT의 모델이 진정 의식을 해명해주는지 실험을 통해서 확인하기에는 아직 안개가 자욱하다.

물론 코흐는 향후 기술 발전을 통해 조만간 실험실의 안개가 걷히고 의식이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리라 의심치 않는다. 그가 차머즈에게 내기를 제안한 것도 이러한 자신감의 발로였다. 내기 결과는 코흐의 패배였는데, 이유는 단지 아직 의식에 상응하는 ‘분명한’(clear) 신경 패턴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코흐는 내기에 패배하고서도 차머즈에게 다시 25년 이후를 두고 똑같은 승부를 제안했는데, 이는 결국 안개가 걷히리라는 과학자의 천성적인 낙관주의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 이론에는 분명한 철학적 난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과연 IIT가 우리의 의식적 경험을 정확히 설명하는지가 문제다. 책에서 코흐는 의식적 경험을 규정하는 다섯가지 공리를 제시하고, 이 다섯가지 공리가 어떻게 물리적 체계의 구조로 구체화될 수 있는지 설명한다. 예를 들어 첫번째 공리는 ‘경험은 그 자신에 대해 존재한다는 것’으로, 우리가 각자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나의 경험에는 나만이 접근할 수 있으며 누가 뭐라 해도 나에게는 분명히 존재한다. 1인칭적으로 접근 가능하다는 의식의 이 특성은 어떻게 물리적 관계로 번역될 수 있는가? 코흐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다른 것에 영향을 끼치는 인과적 힘을 가진다는 뜻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의식적 경험이 그 자신에 대해 존재한다는 것은 의식적 경험이 자기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과적 힘을 가진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의식적 경험에 상응하는 뇌의 신경연결망도 스스로에 영향을 끼치는 인과적 힘을 가져야 한다. IIT의 파이 값은 한 체계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인과적 힘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의식의 주관성이 이처럼 한 체계의 내재적인 인과관계로 번역될 수 있을까? 내가 나의 의식에 대해 갖는 확실성은 내 의식의 과거 상태가 현재 상태에 인과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주관적 확실성은 과거와 현재 간의 인과적 연결과 같지 않다. 후자가 전자의 조건일 수는 있더라도 말이다. IIT를 비판하는 강력한 논변을 제시한 양자물리학자 스콧 애런슨(Scott Aaronson)의 지적대로, IIT는 의식에 대한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을 규정하는 이론일 수 있다. 의식의 물리적 필요조건과 의식 자체 사이에는 안개가 아니라 간극이 있으며 다른 과학적 의식이론과 마찬가지로 IIT도 이 간극을 좁힐 수 있을지언정 넘어설 수는 없다. 차머즈는 코흐가 다시 제기한 내기를 받아들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지기를 바라지만, 이길 것 같습니다.” 차머즈의 회의에는 일리가 있다. 과학자에게 의식의 문제는 고작 1.4kg짜리 축축한 회색 덩어리 속에 있지만, 철학자에게는 추상적이면서도 문화·역사적이며 언어적인 개념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의식 개념의 미궁을 탐험한 철학자는 의식과 뇌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 얼마나 난망한 작업인지 절감한다.

작년 6월에 이어 9월에 IIT 이론가들에게 중요한 또 하나의 이벤트가 있었다. 스티븐 플레밍(Stephen Fleming) 등의 몇몇 연구자가 작성하고, 조지프 르두(Joseph LeDoux), 버나드 바스(Bernard Baars), 퍼트리샤 처칠랜드(Patricia Churchland), 대니얼 데넷(Daniel Dennett) 등 저명한 과학자와 철학자를 포함하여 124명의 학자들이 공동서명한, IIT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서신이 한 온라인 매체에 발표된 것이다. 서신의 저자들은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의 매체에서 IIT가 실험적으로 뒷받침된 유력한 이론인 양 대중에게 소개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IIT에 따르면 통합적인 물리체계는 모두 의식적이다. 코흐는 원자마저도 의식적일 수 있다고 추정하면서 IIT의 범심론이 지닌 윤리적 함의를 책의 말미에 서술한다. IIT가 옳다면 생명윤리와 동물윤리의 근본을 뒤흔들 것이다. 그런 만큼 IIT의 성패에는 포도주 한상자보다 훨씬 많은 것이 걸려 있다. 두번째 포도주 상자의 주인이 결정될 때까지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안개 밑에 절벽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토론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