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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최강욱 외 『도취된 권력, 타락한 정의』, 창비 2024

공정, 상식, 정의?

 

 

황희두 黃熙斗

노무현재단 이사 heenimhw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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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상식, 정의.’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가 내세웠던 핵심 키워드다. 들끓는 검찰개혁 여론에 ‘공정한 검찰’이라는 말을 앞세운 그는 0.73%라는 근소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그 결과는 예상대로 참혹했다. 나라는 순식간에 엉망이 되어 온갖 분야가 망가졌다. 틈만 나면 자유를 강조해온 대통령이지만 그를 풍자한 시민들은 경찰 수사를 받아야 했고, 꾸준히 대화를 요구해온 야당대표는 범죄자 취급과 함께 숱한 조리돌림을 감내해야 했으며, ‘입틀막 정권’이라는 비판이 쏟아져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마구잡이 규제는 멈출 줄 모른다. 이로 인해 문재인정부 당시 40위대를 유지하던 ‘세계 언론 자유지수’는 윤석열정부 2년 만에 62위로 추락했고, 내년에는 더 처참한 결과가 우려된다. 하루아침에 불공정, 비상식, 불의의 대한민국을 마주하게 된 상황에 『도취된 권력, 타락한 정의: 대한민국 검찰을 고발하다』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총선 기간인 2024년 4월 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검찰개혁 최전선에서 맹활약해온 최강욱 전 의원이 검찰·경찰·사법 분야의 전문가들인 조국 대표, 이연주 변호사, 조성식 기자,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이탄희 의원, 황운하 의원, 이성윤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각각 나눈 대화들을 주제별로 상세히 기록해둔 책이다. 많은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문재인정부의 검찰개혁 과정과 한계, 여러 현실적 딜레마부터 소위 ‘조국 사태’ 당시 청와대와 검찰 사이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겉으로는 ‘공익의 대변자’를 자처해온 검찰이 물밑에서 어떻게 언론을 활용하며 공생구조를 이어왔는지,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은 왜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지, 검찰과 경찰은 서로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지 등을 들여다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런 문제들이 한평생 검찰에 드나들 일이 없을 법한 일반 시민들의 삶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는지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지금 시대의 키워드가 ‘불안’이라고 짚은 이탄희 의원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묻지 마’ 범죄, 민생 불안, 소득을 제외한 모든 비용의 증가, 저출생, 기후위기, 연금붕괴 우려 등 수많은 불안이 쌓여 있는데 윤석열정부 출범 후 일반 시민들이 경찰 수사와 검찰 압수수색까지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선 법원 또한 지금처럼 관료화된 모습이 아닌 정의와 인권과 시민을 지키는 수호자로 거듭나야 하며 그래야 검찰도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지적이 와닿았다. 경찰, 검찰, 법원의 손에만 맡겨놓고 우리가 관심을 끊으면 어렵사리 해낸 개혁도 언제든 제자리로 돌아가고 말 테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복잡하게 얽혀 있던 고민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어디까지가 진실의 영역인지, 개혁을 외쳤던 정치인들 각자의 진정성과 의지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한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바로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대한민국의 모습과 현실세계의 간극이 너무나 크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민주개혁진영이 집권할 경우 확실한 개혁성과를 이루는 동시에 민주적 절차를 완벽하게 지키면서 대화와 타협을 매끄럽게 해내라고 요구하고 싶지만,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두가 납득하는 방식으로 설득하고 타협해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개혁을 거부하는 세력들은 강하게 저항할 테고, 당연히 시끄러워진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민주개혁진영 내 정치인들과 그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려올 수 있다. 그 틈으로 보수언론과 보수 정치인들이 교묘하게 파고들어 민주개혁진영 내 갈등을 키워간다. 어느새 초기 개혁 목표와 열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민주개혁진영 내부의 자중지란이라는 상처만 남는다. 조용하면서도 확실한 개혁이 결코 말처럼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그렇다고 한없이 부정적인 생각에만 갇히면 ‘결국 안 된다’라는 절망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수 있다. 무작정 절망하지 않으면서도 냉철하게 복기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담에 참여한 여덟 인물들이 마주했던 현실을 좇다보면 이런 결론에 다다른다. 영웅 한명이 거대악 무리를 당당하게 무찌르고 돌아오는 모습은 현실에선 볼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강조했던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자주 떠올린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각성, 각성한 시민들의 연대,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끝없는 학습과 사회참여가 핵심이다.

끝으로 ‘검찰독재’라는 표현이 과하다고 바라보는 청년들의 정서도 다뤄지길 바란다. 내 또래 청년들 사이에서는 검찰과 사법부에 어느정도 문제는 있어도 ‘검찰독재’ 표현까지는 과하다는 주장이 꽤 있다. 쉽게 말해 군부독재 당시에는 최루탄, 군인, 고문이라는 불합리가 직관적으로 보였지만, 오늘날 검찰·사법 권력자들은 사법시험이라는 공정한(!) 과정을 통과해 ‘정당한 권위’를 부여받은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실제 검찰 및 사법부의 문제점들을 정치적 편향이나 사소한 부작용 정도로 치부해버린다. 더 나아가 ‘아무 잘못도 없는데 검찰이 수사 기소하겠냐’라며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물론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 무한 경쟁 시스템, 능력주의 신화 같은 구조적 문제들과도 얽혀 있는 어려운 영역이다. 하지만 권력기관 개혁과 떼어놓고 볼 수 없는 현실적 고민이기에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교육인, 언론인, 시민단체 활동가, 유권자 각자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다. “다시는 이러한 주제가 담긴 책을 쓰거나 대담에 참여하는 일이 없기를 바”(8면)란다는 최강욱 전 의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개혁의 최전선에 선 정치인들이 ‘연대와 공감’의 에너지를 묵묵히 모아간다면 결코 헛된 꿈은 아니라고 믿는다. 특히 공정, 상식, 정의를 바라는 시민들과 함께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