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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배시은 裵翅銀
1994년 서울 출생. 2017년 독립문예지 『베개』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소공포』 등이 있음.
akzkeka@gmail.com
건강하지 않아도 친절한 사람들
시를 쓰지도 않고 있으면서 생각한다. 내가 쓴 시를 사람들이 읽어주면 좋겠다고. 아직 쓰지 않은 시를 사람들이 미리 읽고 있으면 좋겠다고. 사람들이 미리 읽고 있는 나의 시를 훔쳐보고선 옮겨 적고 싶다. 재빠르게 적으면 감쪽같을 거라고. 시간의 장난 같은 거라고.
건강하지 않아도 친절한 사람들. 사람들이 미리 읽고 있는 나의 시 제목을 옮겨 적었다. 이상하다. 나라면 이런 제목을 짓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만 사람들은 일찍이 건강하지 않아도 친절한 사람들을 읽고 있다. 이미 벌어진 일은 항상 그런 모양이라는 듯이.
나는 여행을 가지 않는 대신 여행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나는 그것으로 여행을 대신한다. 나를 포함하여 여행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여행 가는 대신에 다른 것을 한다. 어느 곳으로도 이동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이 있을 수밖에 없는 그곳에 앉거나 눕거나 서서 그냥 있는다.
그냥 있는 것이 움직이는 것을 대신한다. 아무것도 깨닫지 않는 것이 깨달음을 대신한다. 이상하다. 나라면 여기서 연갈이를 하지 않았을 거야. 여기서 시를 끝내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만 시는 이미 끝났다.
시를 옮겨 적는 일은 끝났다. 시를 쓰면서 생각한다. 할 수 있다면 무언갈 만들어야만 한다고.
무언가 만들 수 있는 때는 너무 짧다. 생각을 하고. 단어와 문장 등을 떠올리거나 받아 적고. 고개를 움직이고. 책상에 앉고. 신체 부위의 기능을 사용해 창작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순간은 매우 희소하며 예상만큼 충분히 남아 있지 않다. 건강하지 않아도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건강하지 않아도 친절하다는 것을 이 시는 알고 있다. 그것이 시의 효용이다.
수면의 신
하늘에 올라와 있는 것과 같다.
잠을 잔다는 것은.
생각이 멎고.
생각이 멎었다는 것은 머릿속에 언어가 없다는 뜻이다.
머릿속의 빈 공간을 누군가 떠받들고 있다.
땅이 꺼지고 있다.
이틀 연속 어둡던 하늘이 오늘은 밝다.
이십시가 되기.
이십일시가 되기.
이십이시가 되기.
꿈에서는 박이 나를 좋아했다. 나는 박과 함께 있고 싶었다. 나 또한 박에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었다. 그때 잠에서 깼다.
잘 지내세요. 이제는 저를 더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저는 잠에서 깼기 때문입니다.
나는 보고 싶다는 말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안다.
누군가가 보고 싶을 수 있다.
외부 소음은 생각을 방해한다.
어쩌면 도움을 주는 건지도 모른다.
생각에게 도움을.
간지럽지 않으면 좋겠다.
간지러운 것은 이골이 난다.
피골이 상접한 얼굴 대신에 명랑한 알람
필요로 한다.
나는 너의 생각을 매일 한다.
어제 먹은 젤리는 너무 달았다. 단맛으로부터 생각을 통제당할 만큼 달았다.
창밖에서 욕설이 들렸다.
나는 그가 방화범이라도 될 것 같았다.
양상추와 양배추가 헷갈린다.
아까는 양배추를 먹었다.
그것은 양배추가 맞을 것이다.
아마도 양배추가 지금 내 몸 안에 있다.
이제 나는 조금 더 자유롭다.
갑자기 두피 안쪽이 간지럽다.
점점 표현이 간결해지기만 한다.
계속 무언가를 저울질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선택에 있어서도 늘 나은 선택만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의 내면을 보려다 눈동자 하나를 발견한다.
누구의 눈인가?
알 수 없다.
신기한 시계를 보았는데
신기한 것은 더이상 필요 없었다.
앞에 보고 가야 돼.
차 온다.
오른쪽으로 붙어.
잠이 쏟아진다. 잠 속의 나는 잠을 모르는 나. 나는 잠보다 강해지지 못하고
수면의 신 그런 것은 없다.
그래서 나는 주장한다. 수면의 신을 믿겠습니다. 단지 친구들이 돌아왔으면 합니다. 그것을 바랍니다. 잠 속에서만 만날 수 있으니 나는 잠만을 믿을 수밖에.
나를 보러 와. 나는 잔다. 더 깊게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