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이태원참사 특별법 통과 이후,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미현 李美賢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
zomian.lee@pspd.org
분노와 실망이 반복되는 가운데에도 자식 잃은 부모가 한가닥 희망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자식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 때문일 것이다.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대통령거부권에 막혀 앞을 내다보기 어려웠던 지난 4월, 유가족들이 시민들을 향해 ‘진실에 투표해달라’고 외치는 일을 주저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제22대 총선은 대통령거부권을 무력화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어도 야당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이를 토대로 총선 직후 극적인 여야 합의가 이뤄졌고 재발의된 특별법이 하루 만에 국회를 통과해 지난 5월 21일 공포되었다. 2022년 10월 29일 참사가 발생한 지 약 1년 7개월 만이었다.
제대로 된 특조위 활동을 위한 조건
특별법에 따라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 작업을 진행할 10·29 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는 현재 구성 중에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국회의장 추천 몫의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 명단이 정부 측에 전달되었고 8월 1일 현재 윤석열정부는 인사 검증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설립준비단 구성이나 사무실 공간 마련 등 특조위 설립을 위한 실무 준비도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참사 발생 1년 7개월이 지나서야 추진되는 진상규명 절차인 만큼 유가족이나 시민들은 특조위 설립과 조사 개시에 조금 더 속도를 내주기를 기대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벌써 3개월이 지났지만 특조위가 실제 조사에 착수하기까지는 앞으로도 몇개월의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참사 특조위의 경우 세월호특별법 시행일(2015.1.1)로부터 시행령 공포 및 시행(5.11), 조사관 일부 채용(7.27), 예산안 국무회의 통과(8.4) 등 실제 조사활동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에만 8개월이 소요되었다. 가습기살균제참사와 세월호참사 진상조사를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는 심지어 사회적참사 진상규명법 시행일(2017.12.12)로부터 시행령 공포 및 시행(2018.7.24)을 하는 데만 8개월이 걸렸다. 행정적 절차를 위해 필요한 필수적인 시간이라는 것이 있겠지만, 자칫 준비기간이 기한 없이 늘어질 수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본격 조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행정절차를 핑계로 한 정부의 비협조와 방해 때문에 얼마든지 지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특조위 설립과 진상조사 과정 전반에 걸쳐 시간과의 싸움이 주요한 쟁점이다.
시행령도 문제다. 과거 사례를 보면 세월호 특조위의 경우 위원들이 제시한 특별법 시행령안을 정부가 거부하고 당시 소관 부처였던 해양수산부 주도로 별도의 시행령안을 입법 예고했는데, 내용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 정부가 제시한 시행령안은 특별법의 핵심 내용을 임의로 변경하여 특조위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조항들로 채워져 있었다. 예를 들어 정부가 파견한 기획조정실장이 특조위와 각 소위의 업무를 종합·조정·기획하도록 한다든지, 특별법이 특조위의 조사 범위를 세월호참사의 원인규명과 재해·재난 예방 대책 마련으로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범위를 임의로 축소하여 정부 조사결과를 검증하고 세월호(해상사고) 관련 대책을 세우는 수준으로 한정한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세월호 유가족들은 ‘법을 위반한 시행령’ 개정에 대한 항의시위에 나서야만 했다. 세월호참사 특조위 내부에서도 시행령을 비롯한 여러가지 쟁점들로 갈등을 겪었고 활동 내내 각종 어려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현재 이태원참사 특조위 위원 임명을 기다리는 상황이지만, 임명이 마무리되고 설립준비단이 가동되더라도 당장 조사 작업이 개시되는 것은 아니다. 조직을 몇개 국과 과로 꾸릴 것인가, 위원들의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공무원과 외부에서 채용하는 인원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등 기구의 구체적인 설립과 구성에 대한 현실적 문제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조사기구 틀과 관련된 쟁점들은 궁극적으로 진상조사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항이라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은 관련 논의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이 담긴 시행령 초안을 조만간 소관 부처인 행정안전부가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따르면 “조사위원회의 조직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조사위원회의 의견을 들어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조사위원회의 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조사위원회의 규칙으로 정한다”고 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조사위원회 의견을 무시하고 시행령을 제정할 수 없게끔 특별법에 명시해둔 만큼, 시민대책회의는 필요하다면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유가족과 시민사회가 우려하는 점과 그에 대한 의견을 조사위원회에 개진하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태원참사 특별법의 경우 애초 법안 청원 당시부터 정부의 조사 방해 또는 비협조를 방지할 수 있는 조항들을 고심해 넣었지만, 윤석열정부가 과연 이번 이태원참사 특조위 활동에 얼마나 협조적으로 나올지는 확언할 수 없다. 국회에서 특별법 제정 논의가 이뤄지던 내내 ‘경찰 특별수사본부 수사로 원인이 다 밝혀졌다’고 공언하던 그동안의 윤석열정부의 태도로 미루어보건대 특조위 차원의 진상규명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리라는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동안 시민사회도 세월호참사 특조위와 사참위를 거치며 정부가 특조위 조사를 방해하거나 늦출 요량으로 하는 비협조적 행태에 대응해왔고, 만일 이번에도 그런 행태가 반복된다면 유가족과 시민사회가 절대 이를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며 단호하게 대응하리라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피해자 목소리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기
재난참사의 실체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참사 전과 후 그리고 참사 당시 실타래같이 얽혀 있는 하나하나의 기록과 개별 사건들을 조사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술이 복수의 경험으로 확인되면 이는 더이상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 원인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 되고 그 구조적 원인의 조각들이 맞춰져 사건의 전체가 드러나게 된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특조위 조사 개시를 앞두고 진정조사서를 제출하기 위해 한창 작업 중이다. 핼러윈 인파를 예측하고도 대책을 수립하지 않은 이유, 압사참사를 예고한 112 신고를 묵살하고 거짓으로 처리한 까닭, 응급구조가 총체적으로 실패한 경위, 46개 장례식장으로 시신을 분산 안치한 과정 등 그동안 유가족과 시민사회가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던 진상규명 과제들이 조사신청서에 담긴다.
현재 유가족들 역시 개인별 진정조사 요청을 위한 기초작업에 착수했다. 참사 당시와 직후에 있었던 일들을 복기하며 구조될 당시 희생자가 아직 살아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응급조치를 받고 구급차로 실려가는 것까지 본 사람이 있다는데 왜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와야 했는지 등 특조위가 밝혀줄 것을 기대하며 진상규명이 필요한 수많은 의문과 의혹을 정리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은, 사건의 목격자인 생존자와 구조자들의 목소리가 지난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제대로 취합되지 않았고 심지어 이들에 대한 파악조차 온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인권실태조사단이 소수의 생존자들과 유가족, 지역상인들, 구조자 심층면접과 구술을 통해 당시 피해자들이 겪은 참사의 일면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를 하기는 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인권으로 다시 쓰고 존엄으로 기억하다』(2023)라는 보고서를 발간한 것이다.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이 생존자와 유가족의 목소리를 기록한 책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창비 2023)가 출간된 것도 분명한 성취이다. 그러나 이는 큰 그림 중 아주 일부분만을 보여줄 뿐 참사 전체의 줄기를 파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정부의 공식 부상자 통계(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NDMS)에 따르면 내국인 284명, 외국인 53명 총 337명이 10·29 이태원참사로 부상을 입었다. 당시 혼란한 상황에서 스스로 몸을 추슬러 현장을 떠난 생존자 등 해당 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경우도 다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참사 직후 경찰, 소방, 지자체와 중앙정부 등 재난참사에서 공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들이 참사 수습과 대응에 어떻게 임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줄 목격자, 구조자들의 진술은 지금껏 체계적으로 조사되지도 모아지지도 않았다. 현장 상황에 대한 객관적 진술을 해줄 이들에 대한 조사가 참사 1년 반이 넘도록 전혀 이뤄져 있지 못한 것은 이번 특조위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수사기관이 ‘마약 등 수사를 위해서 부검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을 하는 등 마약과의 연루 가능성을 제기한다든지1 생존자를 가해자 취급하는 정부 고위직 인사들이나 정치인들의 발언이라든지2, 심지어 희생자를 폄하하는 언론의 보도 등이 이어지며 생존자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었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과 참사 현장 골목에서 수거된 추모 메시지들을 정리하는 대책회의 활동가는 참사 직후에 쌓였던 메시지 중에 생존자로 추정되는 이들의 메시지3가 유독 많다며, 그들은 참사 직후부터 목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우리가 놓쳤던 것임을 지적했다. 정부 차원에서든 특조위 차원에서든 지금이라도 생존자와 구조자들이야말로 그날의 진실을 알고 있는 목격자임을 인지하고 이들의 목소리가 진상규명에 절실하다는 시그널을 지속적으로 발신하고 그 진술을 취합할 필요가 있다.
이태원참사의 특징 중 하나는 내국인뿐 아니라 수많은 외국인 피해자들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외국인 유가족들은 한국 상황에 대한 소식을 접할 방법이 많지 않고 언어적 제약으로 한국정부에 정보를 요구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니 외국인 유가족들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가 소통 중인 외국인 희생자 가족들 모두가 시신 인도와 장례식을 끝으로 한번도 한국정부의 연락이나 안내를 받지 못했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1주년을 즈음해 참사 현장을 방문하고자 비자 발급 가능성을 대사관에 문의했던 이란 희생자 가족들은 3주가 지난 뒤 해당 사실이 국내 언론에 보도되고 나서야 ‘서류를 제출하면 처리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이 겪은 무책임하고 몰염치한 행정은 국적을 떠나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명제에 한국정부가 얼마나 무감각한지를 보여주는 지점으로 반드시 개선할 부분이다. 이미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한국을 여행하거나 취업을 위해 이주하는 상황에서 재난참사 예방 및 대응체계가 내국인만을 전제로 되어 있다는 것은 큰 문제이다. 지난 6월 24일 발생한 아리셀 일차전지 공장 화재에서도 전체 사망자 23명 중 18명이 외국 국적이었다.
외국인 생존자들 역시 한국정부의 지원을 받기는커녕 제대로 된 안내조차 없이 트라우마 속에 한국을 떠났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들 역시 이태원참사의 피해자이자 그날의 목격자이다. 한국정부의 재난참사 대응체계가 철저히 외면한 외국인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특조위가 놓치지 않게끔 요구하는 일도 시민사회에 남겨진 임무이다.
제22대 정기국회에서 2025년 예산 확보하기
매년 9월 1일 시작하는 정기국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은 정기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사이다. 무엇보다 특조위 사업비 예산안은 참사 2주년 전후로 큰 쟁점이 될 수 있다. 진상조사를 하는 데 있어 조사기간과 조사체계 구성이 중요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이 두가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바로 특조위 예산이다. 예산이 깎이면 조사관을 충분히 채용할 수 없고 조사국을 꾸리는 데도 제약이 생긴다. 조사관 수가 충분치 않으면 진상조사 과제를 체계적으로 깊이있게 살피기 어렵고 결국 조사결과의 설득력을 높이는 데도 어려움이 따른다. 이처럼 예산은 사실상 특조위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현행 이태원참사 특별법은 조사기간을 1년으로 정하고 있고 한차례에 한해 3개월 연장, 보고서 작성 기간으로 3개월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시행령이 공포되고 특조위 활동이 본격화되는 것은 사실상 연말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무엇보다 내년 2025년 특조위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은 제대로 된 조사가 가능할지를 알려주는 가늠자가 될 수 있다.
과거 세월호참사 특조위가 경험한 예산을 둘러싼 갈등도 향후 이태원참사 특조위와 국회가 대비해야 할 부분을 명확히 제시한다. 세월호 특조위 2015년 예산은 9월에서야 지급되었는데, 그조차 2015년분으로 신청한 160억원 중 89억원만 지급되었다. 특히 예산안과 인력안이 대폭 삭감되면서 특조위 조사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박근혜정부는 2016년에도 특조위가 요구한 예산 금액에서 69%를 대폭 삭감한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미 2015년 예산안 제출 당시 조사기한을 사실상 2016년 6월 전후로 보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이었다. 당시 정부 측은 특조위원 임명 시기를 조사기간 시작이라고 본 반면 특조위원과 유가족, 시민사회 쪽은 조사신청 접수를 시작한 9월이 실질적인 조사기간 시작 시점이라고 봤는데, 조사기간에 대한 이러한 견해차는 충실한 조사를 위해 반드시 해소되어야 했지만 끝내 중재에 이르지 못했다.
이태원참사 특별법의 경우 “조사개시 결정이 있은 날부터 1년”으로 조사기간이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어 이로 인한 갈등이나 예산삭감은 없겠으나, 조사국의 규모 등 쟁점 사안을 들먹이며 예산을 축소할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예산을 확보하는 데 제22대 국회의 노력이 절실하다.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
지난해 10월 이태원참사 1주년을 즈음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첨단기술을 활용한 인파감지 장치를 주요 도심에 설치했다며 시민들이 밀집한 상황을 시뮬레이션한 훈련 내용을 공개하고 대비책을 점검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인파밀집을 알리는 장치나 대비 훈련이 없어서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는 서울시의 논리에 동의하기 어렵지만, 과연 이러한 조치들이 시간이 지나서까지도 유효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세월호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달라져야 한다고 외치고 또 다짐했지만 이태원참사, 오송 지하차도참사를 거치며 겪은 정치와 행정은 여전히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무능력하고 무책임할 뿐이었다. 새로운 기술과 장치가 재난 대비에 도움이 될 수야 있겠지만,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재난 예방과 대비를 철저히 하겠다는 위정자의 신념과 이를 이행하는 행정 없이 재난참사 예방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최근 재난참사 관련 판례들을 보면 하급 관리자들의 직접적 과실에만 책임을 묻고, 사전 예방 시스템의 미비와 불완전한 작동을 책임져야 할 조직의 최고책임자들은 법적 처벌을 피해간다. 세월호참사 당시 구조 실패의 책임자인 해경 지휘부는 ‘조직적 무능’에도 불구하고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처럼 진상조사가 곧 책임자 처벌로 이어지지 못한 경험은 안전사회로의 근본적인 전환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고민을 우리 사회에 던져준다.
현행법의 한계가 분명한 상황이다. 시민의 안전권을 명시하고, 위험에 대한 알 권리 등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며, 재발방지를 위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도록 독립적 조사기구를 설치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무엇보다 시급한 이유이다. 이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생명안전기본법이 제21대 국회에서는 상임위에 상정만 된 채 제대로 된 논의 없이 방치되다 최종 폐기되고 말았는데, 과연 제22대 국회에는 진지한 논의가 이뤄질지 지켜볼 일이다. 재난참사 피해자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외치는 시민들이 더이상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세월호참사와 이태원참사 등 여러 사회적 참사를 겪으며 시민사회가 재차 확인한 점은 시민들의 기억과 약속과 다짐이 가진 힘이다. 그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는 기억의 힘과 직결된다. 세월호참사 이후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민들이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를 외치던 것도, 한국을 방문해 이태원 유가족에 위로를 전하던 일본 아까시시 육교참사 유족들이 ‘재발방지를 위해 절대로 사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도 기억의 힘이 진상규명을 위해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지난 6월 16일 10·29 이태원참사 서울광장 분향소를 문 닫고 인근 실내 기억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특조위 설립과 이후 진상조사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유가족들이 내린 결정이었다. 서울광장 분향소에 비해 발걸음 하는 시민들의 수가 대폭 줄어든 것을 보며 이태원참사가 잊히는 것은 아닌지, 진상조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멀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이태원참사를 기억하겠다고 했던 시민들의 다짐과 약속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곧 다가올 이태원참사 2주년에도, 그리고 특조위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활동에도 재난참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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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참사 희생자에 ‘마약·범죄 부검’ 언급한 검·경 또 있었다」, 경향신문 2023.1.13.↩
- 「‘이태원 참사’ 성과는 없는데… 정치인들, 계속되는 ‘참사 망언’」, 매일경제 2022.12.18.↩
- “나도 그날 이곳에 있었어. 두세시간 남짓한 차이로 나는 살아남았어.” “먼저 구조받아 죄송합니다. 저보다 더 오래 압박받으면서 많이 힘드셨을 텐데 부디 좋은 곳 편안히 가시길 기도드립니다.” “서 있는 제 발끝에 사람을 눕혔고 현실이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눈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찬 바닥에 누워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 현실성이 없어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전 계속해서 그 시간, 그 공간으로 갑니다. 그때 내가 뭔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미는 사람들을 못하게 했더라면, 당신들이 그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